11권-02화
“지···진짜인가?”
“정말로 가상현실을 만들어 냈다고?”
“그럴 리가! 홀로그램 기술이 놀랍긴 하지만 가상현실은 아예 분야 자체부터가 다르잖아. 그런데 그걸 어떻게?”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지금, 사람들도 진정한 가상현실이 개발되려면 얼마나 큰 기술적 난관들이 존재하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물론 쉬이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지금 현재 개발되고 있는 가상현실이라고 해 봐야 HMD(Head Mounted Display.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를 머리에 뒤집어쓰는 것들이 고작이니까요. 솔직히 이런 건 가상현실이랄 수도 없습니다. 모니터에 출력되는 화면을 안구 가까이 밀착시킨 게 전부니까요.”
HMD에 기반을 둔 가상현실은 그저 스크린 자체를 머리에 고정시키는 헤드형 고글에 투영시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눈동자 바로 앞에 영상을 배치하는 만큼 초점이나 투시점의 변화 등이 일반적인 모니터를 볼 때와 어느 정도 차이점을 두고 있었지만, 이걸 두고 제대로 된 가상현실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유태진은 그 점을 지적하면서 사람들 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어떤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것은 영화에 어지간히 관심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번쯤 볼 수밖에 없었던 유명한 영화의 장면들이었다.
“여러분들도 한번쯤은 보신 적 있을 겁니다. 바로 매트릭스란 영화였죠. 그곳에는 기계들이 만들어낸 가상세계 인간들이 강제적으로 접속한 채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매트릭스 안은 현실 그 자체나 다름없어서, 사람들이 그것이 가상세계인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죠.
바로 저희 KM사가 개발한 가상현실도 그렇습니다.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세계. 그것이 여러분의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영화 속에서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길고 가느다란 쇠말뚝 같은 접속단자로 사람의 뇌와 다이렉트로 연결해서 가상현실의 정보를 직접 주입해 가상현실과 사람의 정신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런 방식으로 접속하는 건 아닙니다. 저런 꼬챙이 같은 걸로 머리를 거의 관통할 것처럼 단자를 연결한다면 트라우마로 가상현실에 거부감을 느낄 사람들도 적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희의 접속 방식은 뇌파 동조 방식을 채용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한다면 와이파이를 상상하시는 게 간단하겠군요.”
유태진의 설명에 사람들이 의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진 건 가상현실 분야를 자주 취재하던 기자였다.
“유태진씨가 말한 가상현실 기술이 조금 납득이 안 갑니다.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현실의 정보를 뇌에 주입하려면 그 용량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요. 사람의 뇌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요?”
뇌에 주입되는 정보량 운운하는 그 말에 유태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하하, 전문가랍시고 떠드는 얼뜨기들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요.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받아들이는 정보가 얼마나 됩니까?”
“그··· 글쎄요?”
“사람이 볼 수 있는 거리엔 한계가 있습니다.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대역과 거리, 그리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감각도 엄연히 한계가 있죠. 흔히 사람은 한치 앞밖에 못 본다고 합니다. 결국 한 사림이 받아들이는 정보량은 그 정도라는 거죠. 무슨 가상현실을 구현한다고 해서 지구 규모를 재현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데이터 량을 한꺼번에 주입받는 게 아니란 겁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을까요?”
“아, 예······.”
기자는 별 말없이 물러섰다. 자신이 던진 질문이 이런 식으로 논파 당하니 뭐라 할 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분야에 관해 전문가라는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가상현실 세계를 현실과 다름없는 수준으로 구축하려면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연산장치가 필요합니다. 최신형 슈퍼컴퓨터로도 무리라는 계산이 나왔는데 그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래서 개발한 게 바로 TPU입니다. TPU로 서버를 만든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요. 물론 현재 각 국 정부와 기업에서도 TPU로 슈퍼컴퓨터들을 제작 중인 걸로 압니다만, 그 퍼포먼스를 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저희 KM사 뿐입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고 계신 TPU의 성능은 실제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런 소린 오늘 처음 듣습니다만.”
“굳이 공개할 이유가 없었죠. 저희 회사에서 굳이 OS나 주변기기 사업까지 관여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가상현실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에 대한 사실들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더군요.”
“허, 그랬군요. 그리고 TPU를 먼저 발표한 것도 바로 가상현실을 위한 중간과정이었던 거군요.”
“가상현실뿐만이 아닙니다. KM사에서 개발 중인 여러 기술들이 바로 TPU의 성능에 그 기반을 두고 완성되고 있지요. 앞으로 많이 보시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새삼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세상을 놀래게 만든 TPU의 성능이 제대로 발휘된 게 아니었다니.
아직 발휘되지 않은 잠재력을 다 끌어낼 수 있다면 과연, 그 진짜 성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자, 설명은 이쯤 해두기로 하죠. 말로 구구절절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한번 보는 게 더 낫다는 말처럼,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도 직접 보고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뭐?”
“지금 이 자리에서?”
체험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 올림픽 주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은 무려 10만 명이나 되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가상현실을 체험하려면 얼마나 많은 접속기가 필요할 것인가?
상식적으론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유태진은 모두의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렸다.
“아까 올림픽 주경기장에 들어오시기 전에 행사요원들로부터 받은 게 있을 겁니다. 일종의 헤어밴드 형태를 하고 있는 물건이었죠. 그걸 머리에 착용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가상현실에 접속하기 위한 커넥터입니다.”
“뭐라고?”
“이 작은 게?”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처음에 이곳에 입장할 때만 해도 무슨 이런 걸 다 주나 했었다. 단순히 기념품으로 주는 건가 싶었는데, 설마 이게 그 가상현실 접속기일 줄이야.
그래도 믿기지가 않는지, 다들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헤어밴드 형태의 접속기를 착용했다.
“곧 나른한 기분이 드실 겁니다. 그러니 의자에 편히 기댄 상태로 가상현실을 체험해보시길 바랍니다.”
유태진의 말대로 잠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몸이 붕 뜨면서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이 지나가자, 어느덧 의식이 몽롱해졌다. 굳이 비유한다면 잠시 졸음이 쏟아져 깜빡 잠이든 느낌이라 할 수 있었다.
의식은 금세 회복되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았는데, 어느새 눈앞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 여긴?”
“초···초원이라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난 발표회장에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광활하기까지 한 초원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거대한 산맥도 보였다.
저편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늘하면서도 기분 좋은 그 느낌에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럴 수가! 전부 진짜 같아! 이게 정말로 가상현실이라고?”
“그럴 리가···. 혹시 무슨 최면술에 걸려 잠들었다가 여기로 옮겨진 거 아니야?”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여긴 어디지?”
“이곳이 가상현실이라면··· 이게 전부 가짜라는 건가?”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신을 잃은 사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거라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고, 혹은 이것이 전부 꿈일지도 모른다고 혼동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래도 정말로 가상현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현실감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초원에 난 풀을 뜯어보고 그것을 생으로 씹어 맛을 보기도 했다.
“웩! 역시 맛은 없지만, 이건 너무 사실적이야. 이게 정말로 가상현실이라고?”
씹던 풀이나 핥던 흙을 뱉어낸 사람들은 이 모든 게 너무 현실적이라는 사실에 더 믿기지가 않았다.
이건 자신들이 알던 가상현실의 개념을 아득히 넘어선 무언가였다.
“우리가 정말로 지금 가상현실 안에 있는 걸까?”
“모르겠어. 너무 진짜 같아.”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뭔가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 멀리 초원 너머로 보이던 산맥에서 작은 점 같은 게 나타나더니,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쿠오오오!
“서··· 설마 저건?”
“드, 드래곤!?”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는 긴 포효와 함께 그들 앞에 등장한 괴물체의 정체는 바로 드래곤이었다. 광택이 날만큼 매끄러운 붉은 비늘이 촘촘하게 전신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등 뒤에는 거대한 피막형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도··· 도망쳐!”
“으아아아!”
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공포에 질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들 앞에 나타난 드래곤은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어지간한 고층 건물보다 더 커 보이는 체구를 자랑했다. 일개 사람 따윈 그 앞에선 벌레보다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헌데 그때였다. 필사적으로 도망가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등 뒤에 와닿는 따가운 열기를 느꼈다. 그것은 점점 강렬해지면서, 이젠 뜨거워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렬해져 있었다.
도망가는 와중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열기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브레스라고?”
“이런 미친!?”
드래곤이 긴 호흡을 들이마신 순간, 그 입가에 막대한 화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날숨과 함께 토해지는 순간, 막대한 열기를 동반한 붉은 섬광이 그들을 도망갈 새조차 없이 덮쳐들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
굉음과 충격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억겁의 열기가 고통과 함께 그들의 몸을 사르려던 순간, 모두의 귓전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여러분. 이만 꿈에서 깨실 시간입니다.]
그들이 보던 모든 광경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눈앞의 정경이 깨져나가는 거울처럼 쩍쩍 금이 가더니 수백 수천 조각이 되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들이 보고 있던 세상은 완전히 무너졌고, 그 대신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비친 광경은 바로 그들이 참석했던 발표회의 장소로 사용된, 올림픽 주경기장의 모습이었다.
“이··· 이게···!?”
“우리가 지금 본 게 전부··· 정말로 가상현실이라고?”
“이럴 수가!”
경악과 신음이 뒤를 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경탄을 내뱉을 경황조차 없어 보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태진은 웃으며 감상을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저희 KM사의 가상현실이 마음에 드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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