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01화
TPU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KM사는 또 한 번 세계를 발칵 뒤집히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대를 초월한 신기술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컸다. 이전에는 TPU 하나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무려 세 가지나 되는 기술을 동시에 발표해 버렸다.
전 세계를 통틀어 봐도 현재의 과학력으로는 감히 구현할 수조차 없는 그런 기술들이었다.
이번 KM사의 발표회 장소로 선정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좌석은 참석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그들은 그냥 일반인이 아니었다. 전 세계 각국의 고위급 관료들과 유수의 기업 임원들, 그리고 수많은 기자들과 전문가들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참석자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유태진은 서슴없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리곤 첫 인사말과 함께 발표회를 시작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오신 여러분, 정말로 반갑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실 거라 생각은 했지만 제가 예측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참석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 말과 함께 유태진을 비추던 카메라가 관중석을 향했다. 그러자 경기장의 거대한 스크린 위로도 이곳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비쳐졌다.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의 최대 수용 인원은 10만 정도. 그런데도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비좁아 보이는 모습은 이곳에 참석한 사람의 수가 10만 명을 웃돌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만큼 전 세계가 오늘 KM사의 발표회를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수고스럽게 이곳까지 찾아온 일을 결코 후회하시진 않으실 겁니다. 그만큼 오늘 제가 발표할 내용들이 앞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대단하니까요.”
그가 손짓하자 관중석을 비추고 있던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그러자 이미 모두에게 익숙한 형태의 반도체의 사진이 떠올랐다.
“지난 발표 때 저희 KM사는 TPU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게 바뀌었죠. 이제 컴퓨터는 더 이상 책상 위를 차지하는 성가시고 크기만 큰 물건이 아니라, 언제든 휴대할 수 있는 가벼운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가정용 PC와 스마트폰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그리고 성능은 그 몇 십 배나 되고요.”
그래서 이젠 데스크 탑 형태의 PC보다는 보다 작아진 노트북이나 스마트 폰을 컴퓨터처럼 사용하는 일이 늘어났다. 모니터와 키보드만 있으면 이것을 특수한 중계포트를 사용해 스마트폰과 연결시켜서 컴퓨터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성능은 물론 발열과 전력소모량까지 크게 줄어든 탓에, 현재의 배터리 기술만으로도 훨씬 장기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파격이라면 파격이랄 수 있는 성능이었다.
다만 아직까진 TPU가 양산 초기 단계 수준이라서 생각만큼 그리 많이 대중화되진 못했지만, 그것도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앞으로 반도체가 사용되는 모든 제품에는 TPU의 장착은 필수가 될 것이다.
스크린 속에서도 그런 변화된 생활상의 모습들을 영상을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일상뿐만 아닙니다. 각종 연구나 무기개발 등에도 변화를 주었지요. 최근 슈퍼컴퓨터들은 기존보다 훨씬 작으면서 성능을 수십, 수백 배나 뛰어난 새로운 슈퍼컴퓨터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연구 과정 중에 난제로 남았던 문제들도 여럿 해결되었죠.”
물론 성능이 수십, 수백 배 향상된 슈퍼컴퓨터의 탄생이 긍정적일 수만은 없었다. 그것으로 독재국가에서는 보다 수월하게 핵실험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게 되었고,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기술이 발전하다보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그림자이니,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입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미래는 보다 진보된 일상이니까요. 그래서 오늘 그 미래의 생활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현실로 끄집어내고자 합니다. 자, 스크린 꺼 주세요.”
유태진이 그렇게 외치자, 지금까지 영상을 비추던 스크린이 정전이라도 되듯 바로 꺼져버렸다.
사람들이 이 상황에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대는 가운데, 유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보신 수많은 디스플레이들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옛날 전자총에 의한 브라운관부터 LCD등을 거쳐 점점 얇고 가벼워졌죠. 최근에는 고글 형태의 증강현실도 테스트 버전이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현대의 디스플레이는 가볍고 얇으며 휴대하기 간편한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심지어 휘거나 접을 수 있는 것도 개발 중이죠. 하지만 이건 제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실체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얇고 가벼워진다 해도 보다 넓은 화면을 보려면 결국 디스플레이의 면적은 자연 넓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요소지요. 뭐 정말로 종이처럼 말거나 접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문제는 해소되겠지만, 결국 물리적인 질량과 크기가 존재하는 이상 불편한 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물리적인 스크린 대신 휴대할 수 있는 프로젝터 형태의 방식을 연구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건 또 나름대로 제약이 많죠. 편편하고 바탕이 화면을 잘 비출 수 있는 벽이나 보드가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그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디스플레이는 아무리 발전해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눈으로 볼 수 있는 화면을 띄우기 위해선 작던 크던 물리적인 스크린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증강현실이라 해서 다를 것 없었다.
“그래서 저희 KM사는 수십 년 뒤에나 당도할 디스플레이의 혁신을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고자 합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믿기지 않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텅 빈 허공에 거대한 스크린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스크린이 아니었다. 바로 영상 자체가 허공에 투영되는 형태인 홀로그램 스크린이었던 것이다.
“오오!?”
“저건 뭐야?”
“홀로그램 기술이라고?”
사람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디스플레이란 말이 나올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뚜렷한 홀로그램이라니? 심지어 지금까지 구현하기 어려운 완벽한 색상을 구현하고 있지 않은가?
물리적인 최첨단 디스플레이에 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선명한 화질이었다.
“신기하죠? 이것이 바로 저희 KM사가 오늘 발표할 신기술 중 첫 번째인 홀로그램 스크린입니다.”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는 어떤 영화 속 장면이 비쳐졌다. 그것은 명작으로 이름을 떨친 판타지 영화 반지 원정대였는데, 그곳에 나왔던 자연 절경들이 여과 없이 비쳐졌다. 마치 자신이 영화 속 풍경의 장소에 실제 자리하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모든 이들이 그 기술력에 경탄만 한 것은 아니다.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있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유태진도 바로 그 점을 짚어내기 시작했다.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의심하시는 분들도 여럿 계실 겁니다. 기존에도 홀로그램 기술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홀로그램 기술들은 어설플 뿐더러 제약도 아주 많죠. 레이저 광선으로 공기를 플라즈마 시키는 현상을 이용해서 겨우 단색을 표현하는 데에 그치거나, 특정 광원장치들을 입체적으로 배치시켜서야 간신히 홀로그램 영상을 투영하는 수준이니까요. 그렇지만 저희 홀로그램 기술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유태진은 또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없이 많은 홀로그램 스크린들이 형성되었다. 그것들은 좀 전에 만들어낸 홀로그램 스크린보다는 작았지만, 무수히 많다는 것이 달랐다.
눈대중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가 손짓하는 순간, 그렇게 형성된 홀로그램 스크린들이 갑자기 허공을 날아가더니, 관중석에 자리한 사람들의 개개인의 정면에 하나씩 배치되었다. 수많은 스크린에는 바로 유태진의 현재 얼굴이 실시간으로 비치고 있었다.
자신 앞에 당도한 홀로그램 스크린을 본 사람들은 까무러칠 듯 놀라 외쳤다.
“이런 미친!?”
“홀로그램을 형성하는 데에 제약이 없어?”
“세상에!”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냥 직사각형의 와일드 형태의 홀로그램 스크린은 기존의 형태를 벗어나 변화하더니, 유태진의 모습을 그대로 입체적인 형태로 투영하기 시작했다. 마치 진짜 유태진이 각 사람 앞에 서 있는 듯한 광경이었다.
“지금 보다시피 언제 어디서든 투영시킬 수 있으며, 영화 속에서 봤던 SF속의 홀로그램 기술처럼 모양과 형태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마치 제가 여러분들 앞에 서 있는 것 같죠?”
“······.”
올림픽 주경기장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처럼 고요해졌다. 그만큼 지금 본 홀로그램 기술이 가져온 충격이 크다는 의미였다.
정적이 내려앉은 가운데, 유태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이 기술은 우리의 많은 일상을 변화시킬 겁니다. TPU가 작고 편리하면서도 막대한 연산과 정보처리를 해결해 준다면, 이 기술은 여러분들의 시각의 혁신을 가져다 줄 테니까요. 스마트폰? 그 작은 스크린으로 뭘 하겠습니까? 눈만 나빠지겠죠. 접는 스크린? 접어봐야 얼마나 접힙니까? 아무 의미 없죠. 조금 신기하긴 해도 실제 활용 면에서는 크게 유용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홀로그램 기술이라면 그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증강현실처럼 여러 가지 편의성 기능들을 고글 따위의 장비 없이 즉시 시각화 시켜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 기술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혁신 디스플레이(IDP-Innovation Display)라고.”
너무도 거창한 기술명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말에 태클을 걸지 못했다. 자신들이 본 게 사실이라면 이건 혁신이란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놀랄 일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지금 공개한 IDP는 어디까지나 이번 발표의 첫 번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까.
그 다음엔 대체 뭐가 튀어나올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 정도면 IDP에 대해선 충분히 보여드린 것 같으니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죠.”
사람들은 IDP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없어 아쉬워했지만, 그것은 금세 사그라졌다. 그 다음 내용도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발표할 내용은 바로 가상현실입니다.”
“가상현실?”
“우리가 아는 그런 어정쩡한 가상현실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가상현실이란 말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현재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가상현실은 그저 특수한 고글을 쓰고 체험하는 말뿐인 가상현실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최근 개발되고 있는 증강현실보다도 훨씬 못했다.
“물론 기존의 가상현실과 같다면 제가 굳이 이곳에서 발표할 이유가 없겠죠. 제가 발표하고자 하는 가상현실은 그와 차원이 다릅니다. 여러분들도 많이들 접하셨을 겁니다. 영화나 소설, 만화 등에서 자주 나오는,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가상 세계에 접속해 모험을 해나가는 그런 내용들을 말입니다.”
최근 전 세계 대중들 사이에서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상현실을 주제로 하는 영화나 소설, 애니메이션도 적지 않았다.
유명한 영화인 메트릭스도 바로 그런 가상현실을 표현한 영화중에 하나였다.
“저희 KM사에서는 바로 그 영화 속에서나 가능했던 가상현실기술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유태진이 내놓은 그 말에 IDP때와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충격이 올림픽 주 경기장을 그대로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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