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50화 (251/448)

10권-25화

“그래서 그 자를 조사해서 뭔가 알아낸 게 있나?”

“예, 저희도 뭔가 미심쩍다 싶어서 더 깊이 파고들어갔더니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호오?”

푸튼 대통령이 흥미를 내보이며 던진 물음에, KGB국장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명예 시민권자와 미국의 로스차일드 가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그리고 로스차일드 가는 이번 미국 정재계를 뒤흔들고 있는 외계인 침략설이 시작된 진원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명예 시민권자와 현재 미 정재계의 움직임이 서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가?”

“그럴 가능성이 꽤 높다고 봅니다. 심지어 현 로스차일드 가의 가주인 조나단의 막내딸 엘레나 로스차일드까지 명예 시민권자와 같은 일행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되었습니다.”

“흐음,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공교롭군.”

한두 가지만 연관되었다면 우연이라고 봤을 테지만, 세 가지 요소가 겹친 상태라면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었다. KGB국장의 말대로 의심해볼 여지는 충분했다.

“그럼 한번 조사해 봐. 그 소문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그리고 대체 뭘 기도하는 것인지도 말이야.”

“예, 각하.”

KGB국장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곧장 집무실을 벗어났다.

“외계인 침략설에 로스차일드가 엮여 있고, 새로운 명예 시민권자가 그곳과 연관되어 있다라. 뭔가 돌아가는 게 심상치가 않군 그래.”

KBG국장의 보고를 받고 난 푸튼 대통령은 오늘 알게 된 사실로 인해 장차 세상을 뒤흔들만한 큰 변화가 닥칠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단지 자신만의 직감일 뿐이었지만,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위기를 넘겨왔으며, 그럴 때마다 직감을 믿고 행동해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직감은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푸튼 대통령은 그렇게 믿었다.

* * *

노을 보육원에 남아 있던 레이첸은 생각지도 못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바로 아이들의 뒤치다꺼리 때문이었다.

리스티와 달리 싸우는 것 외엔 별다른 특기를 가진 것이 없었던 그는 보육원에 남아있기로 했었는데, 지금와선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휴우···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겨우 해방된 레이첸은 푸념을 내뱉었다. 인베이더와 싸우라면 몇 날 며칠이고 싸울 자신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불과 몇 시간만으로도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생했어, 레이첸.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그리 쉽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옆을 돌아보니 그곳에 윤재민이 있었다. 레이첸은 그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그러게. 확실히 쉽진 않더라. 나 어릴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무튼 몸이 힘든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힘들었어. 뭐 이리 까다롭던지, 조금만 잘못 하면 울기부터 하더라. 그렇다고 무턱대고 야단을 칠 수도 없고 말이야.”

“재낸 평범한 아이들이니까 그렇지. 아직 철도 덜 들었고 말이야. 어려서부터 강해지려고 노력해온 너하고는 달라. 여긴 인베이더란 괴물이 없었으니까.”

“···하긴 그렇네. 형 말이 맞아.”

레이첸도 그 말에 납득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일찍 철들었던 건, 인베이더와 싸워야 하는 가문의 사명 때문이었다.

좋은 것만 보고 자랐어야 할 나이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보았고, 인간의 무기력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각오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저 아이들은 어떨까? 그런 지옥같은 현실이 닥쳐도 지금의 밝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평화도 앞으로 3년으로 끝이란 게 문제네.”

저도 모르게 내뱉은 레이첸의 그 말에, 윤재민의 얼굴도 자연 어두워졌다. 이제 지구도 더 이상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대략 3년 후엔 지구에도 인베이더의 침공이 시작될 터.

그때가 되면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들 살기 위해 말 그대로 발버둥 쳐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 점이 너무도 안타깝고도 서글펐다.

부우웅!

그때, 자동차의 엔진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그것은 보육원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야 온 건가?”

보통 차들과 달리 고급스러운 엔진 음. 보통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레이첸과 윤재민은 그 차이를 확실히 알아챌 수 있었다.

“엔진 소리를 보니 우리 사부님 오셨네.”

레이첸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무진 한 대가 보육원 입구 앞에 섰다. 그리고 유태진 일행이 차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유태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레이첸의 찌든 얼굴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애들 돌보느라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구나. 그 표정인 걸 보니.”

“예, 그냥 아무 생각 말고 스승님이나 따라갈 걸 하고 후회하고 있는 중이죠. 그건 그렇고 가신 일은 잘되셨어요?”

“그래, 잘 됐지. 덕분에 일이 쉬워지게 되었어.”

유태진은 레이첸과 윤재민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풀어서 이야기 해 주었다. 서일태를 응징하고, 세화 그룹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과 위탁 생산 계약을 맺었음을.

“앞으로 세화 그룹은 연합의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삼을 생각이다. 그러자면 앞으로 많이 바쁘게 될 거다.”

“으휴··· 그럼 앞으로 편히 쉴 날은 없다는 소리군요.”

레이첸은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 쪽이 자신의 전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관련 분야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싸우다 보면 장비가 망가질 때도 있었고, 전함을 응급수리 해야 할 때도 생기는 법이다.

그것도 어느 정도 기본지식이 갖춰져야 가능한 만큼, 어지간한 지구인들보다는 수준 높은 기술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아리엔과 클레브는 어디 갔지?”

두 사람을 찾던 유태진의 물음에, 레이첸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사채업자 박살내러 갔죠. 엊그제 갑자기 들이닥쳐서 난리를 피우더라고요. 이 보육원 건물과 땅을 내놓으라고. 아주 우릴 쫓아낼 기세던데요?”

“흐음, 그랬구나.”

서일태가 남기고 간 잔재는 여전히 남아 보육원을 성가시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나섰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들은 일개 사채업자들이 상대하기엔 너무도 강했으니까.

그래서 그에 대한 관심을 끊은 유태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잘 들어라. 이제부터 우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거다. KM사의 이름으로 TPU와 같이 지구의 수준을 뛰어넘는 기술들을 여럿 발표할 예정이지.”

“그거 혹시 지구인들의 반응을 떠볼 생각인 거죠? 그들이 어떻게 나올까 하고요.”

혹시나 하면서 묻는 레이첸의 말에, 유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우리가 공개할 것들은 최소한으로 잡는다 해도 지구의 과학 수준을 뛰어넘는 오파츠 수준의 기술들이지. 과연 세계는 이걸 어떻게 판단할까?”

“뭐, 외계인을 고문해서 나온 기술 아닐까 의심하겠죠. 그런 밈(Meme)들 꽤 있잖아요. 지구의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던데.”

그의 반문에 대답한 건 리스티였다. 지구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봤던 그녀는 그런 사소한 음모론까지 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그게 바로 유태진이 노리는 바이기도 했다.

“그래, 다들 한번쯤은 의심을 해보겠지. 이런 앞선 기술이 과연 현대의 과학력으로 나올 수 있는지를 말이야. 우리는 지금부터 사람들의 머리에 그런 의문을 심어줄 생각이다.”

“와, 아저씨 머리 잘 썼네요. 그런 의심을 역이용할 생각이군요.”

그제야 유태진의 의도를 알아챈 리스티가 탄성을 내질렀다. KM사를 만들 때는 단순히 기술이전을 위한 수단 정도로 여겼을 뿐, 이걸 이런 식으로 이용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침 좀 전에 한 가지 소식을 전해 들었지. 인베이더 침공에 대한 정보 일부가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첩보원들을 통해 흘러들어갔다고 하더군. 그런 상황에서 현대의 기술력으로 따라갈 수 없는 기술이 발표되면 각 국 정부는 어떻게 판단을 내릴까?”

“다들 반신반의 하긴 하겠죠. 현재의 과학력이 따라갈 수 없는 기술이 출현한다면, 미국에서 퍼져나간 외계인 침공설도 자연 설득력을 갖게 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미국에서 시작된 외계인 침공설은 단순히 음모론으로 그치지 않게 될 것이다. 적어도 수십에서 수백 년 앞선 기술들이 하나도 아니고, 한꺼번에 여럿이 동시에 등장하는데 의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리스티의 말 대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가 연합과 인베이더의 존재를 전 세계에 공표한다 해도, 그만한 신빙성을 얻을 수 있게 되겠지.”

한 마디로 말해 사람들이 외계인을 고문해야 얻을 수 있다고 여길 만큼 앞선 기술들을 내놓음으로서, 어떤 황당무계한 말을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공신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쉽진 않겠네요. 너무 앞선 기술을 내놓으면 이해할 리도 없고요.”

사실 연합에서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기술들은 전부 영력에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그건 지구인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리스티는 바로 그 점을 언급하고 있었다. 유태진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일단 단순 과학 기술 쪽으로 가야겠지. 지구는 순수한 과학 기술만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초능력 같은 게 연관된 기술을 내놔봐야 사이비 취급만 받겠지.”

“그럼 제한되는 게 제법 많겠네요. TPU처럼 전자나 그런 기술계통 쪽으로만 생각해야 할까 봐요. 그러면 연합 역사 속에서도 아주 오래된 구식 기술 중에서 찾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일단은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당장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는 그런 기술만 내놓으면 될 뿐이니까.”

“알았어요. 지구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골라보도록 할게요.”

그때부터 리스티는 자신의 밴더의 데이터와 지구의 인터넷 상의 기록들을 대조해가면서, 현재 지구에 공개할만한 기술이 뭐가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헌데 그때, 레이첸이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저런 건 어떨까?”

“저런 거라니, 뭘?”

검색 중이던 리스티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레이첸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바를 털어놓았다.

“내가 여기 와서 애들 돌보면서 느낀 건데 말이야. 영상매체가 너무 원시적이더라.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널찍한 패널을 통해 화면을 전송한다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 오래 보면 눈도 아프고 말이야. 내가 볼 땐 다른 것보단 우선 그것부터 바꿔보면 좋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그러니까 TV등에 사용되는 스크린 같은 영상매체를 홀로그램으로 대체하자 이거냐?”

이번엔 유태진이 그렇게 묻자, 레이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예, 솔직히 말해 우리도 모듈밴더가 거의 일상이 되어 있잖아요. 그게 없이는 불편해서 어딜 돌아다니기도 힘들 정도니 말 다한 셈이죠.”

모듈 밴더는 지구의 스마트 폰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성능인데다 어디서든 휴대할 수 있는 팔찌 형태로 존재하며, 터치스크린 대신 허공에 출력할 수 있는 유질량 홀로그램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선 망막 투영 형태로 타인에게 보이지 않게 영상을 출력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구에서 한창 개발 중인 접는 스크린은 물론, 고글 형태의 증강현실기술도 감히 여기에 비교할 수 없었다.

“음, 일리 있어요. 사람들이 가장 깊게 체감할 수 있는 게 바로 시각적인 부분이죠. 그리고 또 의견 있어요?”

레이첸의 내놓은 의견이 생각보다 쓸모 있다고 판단한 리스티가 재차 물었다. 그러자 레이첸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가상현실은 어때?”

“가상현실요?”

“아이들하고 놀아주면서 지구의 게임이란 것도 해봤는데 말이야. 근데 이게 그냥 손가락 노동이더라고. 화면 속의 캐릭터를 조종하면서 즐기는 건데, 내가 볼 땐 별 실감도 안 나고 재미도 없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해서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여기서는 가상현실이 말 그대로 상상속의 기술이던데? 그거면 파급력이 꽤 클 거야.”

그 말을 듣고서야 리스티는 아차 싶었다.

“아, 가상현실은 전혀 생각 못했네요.”

평소 가상현실게임 같은 거에 관심을 두지 않던 그녀였다. 워낙 현실적으로 살아온 리스티에게 있어 가상은 어디까지나 가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선 미처 생각이 못 미쳤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레이첸은 자신의 의견을 추가로 덧붙였다.

“일단은 게임이 좋겠어. 게임 같은 게 보통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하기 좋은 방법이잖아. 이걸 군사용이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활용해봐야, 게임처럼 대중적이지 못하면 우리가 기술을 공개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랬다. 그들이 앞선 기술을 공개하는 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보다 더 많이 접하고, 기술의 출처에 대해 의문을 느끼라고 하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접하지 못하는 기술은 지금 상황에선 쓸모가 없었다.

그렇게 세심한 부분까지 짚어내자, 리스티는 레이첸을 조금은 뜻밖이라는 듯 바라보았다.

“흐음··· 그냥 철부지인 줄 알았는데, 아주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네.”

“뭐야?”

레이첸이 그 말에 발끈했지만, 리스티는 그가 화를 내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뼈대가 잡힌 즉시 계획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한 차례 쓴웃음을 지은 유태진은 씩씩대는 레이첸을 붙잡고 진정시켰다.

“네가 참아라. 저 녀석이 하는 말은 항상 직구였으니까. 너도 알잖아.”

게다가 한창 일에 몰두한 지금, 레이첸이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리스티를 바라보면서 그는 조용히 생각했다.

‘시간이 없어. 예정대로 통합을 진행하려면 적어도 1개월 이내엔 다 끝내야 해.’

고작 1개월 정도로 그 모든 것을 해내기엔 너무도 촉박했지만. 자신들에겐 시간이 없었다. 세계통합을 이루고 우주전력을 3년 내에 갖추기 위해선, 기존의 계획에서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진행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계획은 세워졌다. 앞으로 1개월 내로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주지.’

유태진은 그렇게 각오를 다지면서, 다가올 앞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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