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49화 (250/448)

10권-24화

계약서에 서명을 끝낸 뒤, 유태진은 유문택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할아버지. 앞으로 세화 그룹은 연합이 제공할 기술들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최초의 기업이 될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시범 케이스지요. 이곳을 전진 기지 삼아서 지구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어레인지 한 후 각 국가와 기업에 전파할 겁니다.”

“쉽진 않겠군. 우리 그룹이 보유한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이긴 하다만, 연합이란 곳의 기술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구나.”

“어떻게든 해 봐야지요. 3년이란 시간 안에 전함을 뽑아내서 어떻게든 구색은 갖춰야 합니다.”

“솔직히 3년이란 시간 갖고는 기술을 소화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턱없이 부족할 게다.”

유문택은 작게 한숨지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기술이란 건 단순히 이전만 받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할뿐더러, 그것을 생산할 기반 공정과 설비까지 개발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손자가 말한 연합의 과학 수준을 생각하면 어찌 따라가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연합에서 구식으로 취급되는 기술조차도 지구의 현재 과학 수준과 비교하면 최소한 수백 년 이상 앞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자신의 옆에 있는 리스티를 가리키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건 리스티가 도와줄 겁니다. 연합의 기술 대부분을 이해하고 있는 게 이 녀석이거든요.”

“예, 맞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마침 지구의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충 파악되었고요. 한 1년 정도만 죽어라 고생하면 그럭저럭 전함 비슷한 수준까진 제작할 수 있을 거예요.”

“리스티 양, 그게 정말로 가능한 겐가?”

고작 1년이면 가능하단 말에 유문택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현재 지구의 기술 수준으론 로켓으로 달에 가는 것도 고작이었다. 그런데 우주를 항행하는 수준을 넘어 전투가 가능한 전함 제작에 고작 1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물론 가능하죠. 우리가 그냥 맨 몸으로 지구에 온건 아니거든요. 저 달 뒤편에 함대만 있는 게 아니라 다목적 공업함도 함께 있어요. 그곳의 설비를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기반 설비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잘 아시죠?”

“물론이네. 공업함이라··· 그런 것까지 있을 줄은 몰랐군. 규모가 얼마나 되나?”

“꽤 크죠. 다목적 공업함 [루크아딘]의 전장이 대충 54.9km나 되니까요. 지구상에 있는 어지간한 대도시보다도 더 클걸요?”

“허··· 54.9km? 그 정도면 함선이 아니라 우주를 유영하는 인공대지(콜로니) 그 자체나 다름없구나.”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먼 우주까지 여행할 수 있는 전함인 만큼 규모가 클 거라고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무려 수십 킬로미터 단위라니!

입을 쩍 벌리고 놀라는 유문택 회장에게, 리스티는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 정도는 되니까 1년 안에 전함을 제작할 수 있다고 장담한 거죠.”

“그··· 그렇구나. 그 정도는 되니까 가능한 거였어.”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태진은 조용히 웃고 말았다.

인피니티 킹덤이 끌고 온 것은 공업함 루크아딘 뿐만이 아니었다. 막대한 물자를 실은 수송함 [골고다인]도 함께 왔다.

‘그리고 골고다인의 크기는 루크아딘보다 족히 두 배는 더 크지.’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해선 할아버지에게 일단 함구해 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루크아딘의 크기에 놀란 상황에서, 골고다인의 규모까지 밝혔다간 놀라 까무러치실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간신히 놀람을 진정시킨 유문택 회장은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그 정도로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도 전력을 다해 도우마. 그게 지구를 지키는 길이라면 더더욱 그래야겠지. 아니 이왕 이렇게 된 거, 회사의 전권을 너희에게 맡기마. 그게 더 확실하겠어.”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세화 그룹은 할아버지가 평생을 일궈온 결실이었다. 그것마저 기꺼이 넘겨주겠다고 하니, 유태진도 그저 감사한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감사는 무슨. 우리 손주가 하는 일인데, 이 할아비라도 적극 도와야지. 회사를 말아먹어도 좋으니,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그게 너희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말이야.”

유문택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에 유태진 일행도 한층 더 계획을 앞당기기로 했다.

세화 그룹이라는 기반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이상, 기술 이전 과정도 보다 수월하고 자유로워 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국에서도 적극 도울 테지만, 지구에 자신들만의 기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전 세계 각국을 설득해 하나로 통합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터. 그때까지 세화 그룹을 통해서 전함을 비롯한 각종 기술들을 지구에 이식할 생각이었다.

* * *

한편, 청와대에서는 한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바로 서일태 부회장의 처분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미국의 명예 시민권자를 상대로 살인교사를 저지르다니! 이건 감히 상상도 못했던 대사건이었다.

‘대체 명예 시민권자라니?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명예 시민권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사실이 왜 알려지지 않았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명예 시민권자를 한국의 대기업 부회장인 서일태가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각하. 백악관에서 범죄자 인도를 요구해 왔습니다.”

비서실장이 전해온 그 말에, 문광식 대통령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빌어먹을! 서일태 그 인간은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일을 저질러도 상대는 봐 가면서 그랬어야지.”

일단 범죄 자체는 한국에서 저질러진 판국이었다. 그렇다면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서일태를 한국 법정에서 재판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른 이유를 근거로 서일태를 내놓기를 요구해왔다.

“휴우··· 이렇게 된 이상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겠군. 그놈의 범죄자 인도조약 때문이라도 말이야.”

보통의 경우라면 자국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 자국민을 타국의 법정에서 재판받게 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일태는 그런 일반적인 경우와 달랐다. 그는 이중국적자로서 대한민국의 국민임과 동시에, 미국의 국적을 가진 미국 시민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자국민 범죄자를 인도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들어주지 않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한국 국적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만큼 범죄를 저지른 속지국가인 한국 법정에서 심판을 받았을 테지만, 이번 범행의 대상이 된 상대 피해자의 신분이 너무 좋지 못했다.

그냥 평범한 미국 시민권자도 아니고, 무려 명예 시민권자였으니까.

“미국의 명예 시민권자라니···. 대체 그런 인물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듣기로는 그 명예 시민권자가 유문택 회장의 손자라고 했다. 그것도 무려 수십 년 전에 잃어버렸던 손자.

하지만 그의 신분이 너무도 불분명했다. 보고받은 대로라면 노을 보육원이란 곳에서 고아로 자랐다고 했는데, 성장한 이후의 종적 자체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근 2년간은 그와 접촉한 인물조차 없었다.

“2년이라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군.”

지난 2년 전부터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 나타났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것도 무려 미국의 명예 시민권자가 되어 나타나다니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그는 2년 전 대규모 실종사건 당시 실종자 명단에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물론 그가 실종된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보육원 원장이 나중에 실종 신고를 올렸지만, 대충 날짜를 계산해보면 2년 전에 발생했던 대규모 실종 사건 때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단 조사는 해 봐야겠군.”

지금까지 12년 전부터 발생했던 대규모 실종 사건들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실종된 사람은 다시 되돌아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실종자 명단에 오른 사람이 다시 나타나다니···. 처음 있는 사례인 만큼 조사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조사해 보도록 하게.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상대는 미국 몡예시민권자야. 자칫 잘못하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에게 조용히 알아보라고 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명예 시민권자가 한국인이라면, 이걸 우리 쪽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겠지?”

“최근 각하의 지지도가 조금 불안한 상황이니, 국면전환용으로 활용하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문광식 대통령은 최근 측근의 비리 문제가 얽히면서 가파른 지지도 하락을 겪고 있었다. 아직 임기가 많이 남은 상황에서 이런 지지도 하락이 계속된다면 좀 더 일찍 레임덕이 올지도 몰랐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면전환용 계기가 필요했다.

“하긴 한국 출신의 누군가가 뭘 이뤄내면 국위선양이라고 치켜 세워주니 이용하긴 좋지. 그럼, 알아서 처리하게. 평소대로 언론사들을 통해 크게 퍼트려. 그리고 한국의 자랑이라고 치켜 세워주기도 하고. 안 그래도 서일태 그놈 때문에 악감정이 생겼을 수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라도 무마 해야지.”

“알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해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나가 봐.”

비서실장을 내보낸 뒤, 문광식 대통령은 서일태에 대해선 일절 관심을 끊어버렸다. 미국이 한국인 범죄자를 내놓으라는 요청으로 자신의 치적에 오점이 생길까봐 부담스러웠을 뿐,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는 서일태를 도울 의리 따윈 없었던 것이다.

* * *

최근 푸튼 대통령은 이상한 첩보를 전해 듣고 있었다.

현재 미국에 침투해 있던 첩보 요원들이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미국 정재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게 황당했다. 바로 외계의 침략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보고를 듣던 푸튼 대통령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요즘, 미국 놈들이 미친 건가? 아니면 무슨 사이언톨로지 같은 사이비 종교라도 성행하는 건가?”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사실이었습니다. 저희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조사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KGB국장의 거듭된 대답에, 푸튼 대통령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외계인의 침공이라니! 어이가 없군. 우주과학부에서는 뭐라든가? 무슨 천체나 우주에 어떤 이상 조짐이라도 발견했나?”

“저희도 혹시나 하는 심정에 조사를 의뢰해 봤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다고 합니다.”

“그럼 뭘 가지고 대체 외계인 침공이 머지않았다고 저 난리를 치는 거지? 이해 못할 일이군.”

지금 미국의 정재계는 눈에 띌 만큼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뭔가를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짐작되었는데, 처음에는 러시아에서도 미국이 무슨 전쟁 준비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정보력을 총동원해 사태를 예의 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온 거라곤 고작 외계인 침공 설이 고작이었다. 한 가지 더 있다면, 그로 인해 지구 멸망이 머지않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냥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갈까 싶기도 했지만, 미국이 저렇게 진지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그냥 웃어넘길 일은 아닐 성 싶었다.

그래서 KGB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을 대거 움직여 미국의 동태를 조사해 온 것이다.

그래도 얻은 바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닌지, KGB국장이 추가적인 보고를 올려왔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있었습니다.”

“뭔가, 그게?”

“최근 한국에 미국 명예 시민권을 수여받은 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 어떤 일이 연관되면서 그 신분이 밝혀졌다고 하는군요.”

“명예 시민권자? 그런 소식은 처음 듣는데?”

“저희도 이번에 처음 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이더군요. 알아본 바에 의하면 명예 시민권을 수여한 것도 대외적인 공표 없이 비밀리에 행해졌다고 합니다.”

“그건 좀 수상하군. 뭔가가 있어.”

푸튼 대통령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미국의 명예 시민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만한 기여를 해야 주어지는, 영예스런 권한이었다.

그런데 어떠한 업적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자에게 은밀히 수여하였다면, 그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뜻일 터.

그 점이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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