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46화 (247/448)

10권-21화

“뭐야? 실패했다고!?”

서일태 부회장은 대포폰으로 날아온 비밀 보안요원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진운이란 건방진 녀석을 조금 압박해볼 생각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키라고 했더니, 그 간단한 일마저 제대로 처리를 못한 것이다.

[그 차 운전수가 무슨 F1 레이서라도 되는 건지, 정말 믿기지 않는 솜씨로 빠져 나갔습니다. 지금 영상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허?”

비밀 보안요원들이 전송해준 블랙박스의 영상을 본 서일태 부회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크게 벌렸다.

“무슨 자동차로 곡예를 하나? 이런 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보안요원이 고의적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키기 위해 빠르게 차를 몰아 접근한 순간, 이진운이란 자가 탄 차가 믿기지 않는 묘기를 발휘했다. 좌측의 두 바퀴가 번쩍 들리더니 우측의 두 바퀴만으로 차체가 비스듬하게 선 상태로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비밀 보안요원의 차는 이진운이 탄 차가 있었던 자리를 지나쳐 그 앞차와 충돌했고,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공교로운 것은 그 앞차조차 이진운의 차를 몰아넣기 위해 진로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던 또 다른 비밀 보안요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수작을 부리다가 자기들끼리 공멸해 버린 꼴이 되었다.

하지만 이진운의 차를 노리는 비밀 보안요원들은 그들이 전부가 아니다. 줄곧 따라붙던 차들 두 대가 더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차를 거의 수직에 가깝게 새워 정체된 도로 사이를 질주하는 차를 무슨 수로 따라잡을 것인가?

게다가 다른 차량이 없을 땐 F1레이싱의 드리프트를 방불케 할 만큼 놀라운 코너링으로 그들의 추격을 뿌리쳐 버렸다.

그리고 영상은 그것으로 끝났다.

“위협은커녕 완전히 농락당해버렸군.”

서일태 부회장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고의적인 교통사고로 위협하는 게 계획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실패하고 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다른 건 어떻게 됐지? 지금쯤 구속수사를 시작할 때가 된 걸로 아는데···.”

두 장관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그가 뇌물을 먹여온 정관계의 인사들에게 이진운을 구속 수사해줄 것을 확답 받아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아무런 언질도, 소식도 없는 걸 보면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연락을 취해봤지만, 그들에게서 심상찮은 소리들만 돌아왔다.

[미안하네. 사정이 여의치 않네. 도움이 못 되겠어.]

“장관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내 입으로 말하기 어렵네. 그 정도면 알아듣겠지?]

장관이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만큼 상부에서 지시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럼 이만 끊겠네.]

장관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번에 돕기로 했던 정치인이나 관료들 모두가 같은 태도를 보이며 거리를 두는 게 아닌가.

그만큼 이번 일에 얽히는 것 자체를 껄끄러워 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고민하던 서일태 부회장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VIP가?”

하지만 자신이 아는 이번 대통령은 친기업적인 성향을 가진 위인이었다. 세화 그룹을 편들었으면 모를까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하나 뿐이다.

‘설마 미국 기업이라고 미국에서 외압이라도 들어온 건가?’

자신의 짐작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위기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화 그룹이 제아무리 한국에서 제법 행세한다 해도 미국이 작정하고 압력을 행사한다면 견뎌낼 도리가 없었다.

‘아니야. 아직 확실한 게 아니야.’

미국에서 직접 손을 썼다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화 그룹 자체가 지금쯤 초토화 되었겠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일이 쉽진 않겠어.”

이제 더 이상 이진운을 압박할 방법이 없었다. 교통사고를 가장해 목숨을 위협해보려 하기도 했지만 놈은 쉽게 빠져나갔다. 다음부터는 놈도 자신의 안위를 철저히 보호할 테니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방법을 찾아야 해. 어떻게든 놈을 압박해서 계약을···.”

헌데 그때였다. 누군가가 부회장실로 들이닥쳤다.

“아버지! 아버지!”

“뭐냐? 뭔데 이 소란이야?”

서일태 부회장이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일이 꼬여서 심란해 죽겠는데, 아들까지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영 못마땅해서였다.

“큰일 났습니다. 주주들이···”

“주주들이 뭐? 말을 해, 말을!”

“이번 주가 폭락과 위탁생산 계약에 실패한 건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면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겠답니다.”

“뭐야!?”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서일태 부회장은 이를 악물고 말았다. 최근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다곤 하지만 설마 주주총회까지 열겠다고 할 줄이야.

‘잘못하면 회장 자리는 고사하고, 부회장 자리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그는 즉시 입을 열었다.

“즉시 이사들을 소집해! 그리고 백기사가 되어 줄 우호주주들에게도 연락해서 확답을 받아 놔!”

* * *

보육원으로 돌아온 유태진은 뜻밖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인 유문택과 보육원 원장님이 오랜 친구였던 사이처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분이 며칠 사이에 이렇게 가까워지게 된 건 다 유태진 덕분이었다. 유문택 회장은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손자를 키워준 보육원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고, 보육원장은 자식처럼 키운 유태진의 친할아버지란 사실에 친근감을 느꼈던 것이다.

유문택 회장은 돌아온 이진운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물었다.

“돌아왔구나. 일은 잘 처리했고?”

“예, 계획대로는 되어가는군요.”

“그럼 남은 건 주주총회뿐인가?”

“예, 궁지로 몰아넣었으니, 이제 끝을 내야지요.”

“후후··· 정말이지 그렇게까지 암담하던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구나. 우리 손주가 돌아왔을 뿐인데도 너무도 많은 게 달라졌어. 이게 다 원장님이 우리 손주를 잘 키워주신 덕분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원장님에게 공치사를 하는 유문택 회장. 그렇지만 원장님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별말씀을. 솔직히 말해 제가 한 건 별거 없었습니다. 제가 잘 키웠다기보다는 스스로 잘 컸다는 느낌이라서요. 회장님 핏줄이라 그런지 뭐가 다르긴 다른가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 보니 정말 잘난 손주군요.”

유태진은 두 분이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게 영 어색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리고 주주총회는 내일 10시 정각에 열릴 예정입니다. 할아버지도 참석 하실 겁니까?”

“물론이지. 서일태 그 놈의 마지막 모습은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생각이다.”

분명하게 답하는 유문택 회장의 두 눈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로 인해 아들과 며느리를 잃고, 손자와도 수십 년이나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 사무친 고통은 결코 용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예, 할아버지가 겪은 고통을 수십 배로 갚아줄 생각입니다. 그러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이진운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할아버지를 위로했다.

* * *

다음날 오전 9시 30분. 수많은 차량들이 주주총회가 열리는 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엔 개미 주주들도 적지 않았지만,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거물들도 적지 않았다.

외국계 자본은 물론, 국민연금에서도 이번 주주총회에 참석하기로 한 것이다.

“어떤가?”

서일태 부회장은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초조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기관과 국민연금공단 쪽에서도 부정적이고 저희 편을 들어줄 백기사들조차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젠장!”

“아무래도 이번 주가 폭락과 계약 실패에 대한 문책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어디 내 잘못인가? 유문택 그 늙은이가 병들어서 그런 것 아닌가! 그리고 계약에 실패한 건 그 이진운이란 어린 것이 작정하고 일부러 파토를 내서 그렇지. 내 잘못은 아니잖나.”

“하지만 주주들은 그런 사정을 생각 안합니다. 오직 결과만 보지요.”

비서의 대답은 냉정했지만, 그게 바로 자신이 처한 현실이기도 했다. 서일태 부회장은 쓰디쓴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가세.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는군.”

“예.”

서일태 부회장은 애써 분기를 참으며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들이 다수 보였다. 주주 총회가 열릴 때마다 봤던 인사들이었다.

서일태 부회장은 핏발 선 눈으로 그들 중 일부를 노려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떠받들면서 아부를 일삼던 작자들이었다. 헌데 시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에게서 곧바로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니 그들이 곱게 보일 수가 없었다.

‘어디 두고 보자! 꼭 기억해두지. 오늘 위기만 넘기면, 가만 두지 않겠다.’

분노를 곱씹으면서 오늘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고민하던 그때, 전혀 상상도 못한 말이 사회자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유문택 회장님 입장하십니다. 다들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뭐!?”

서일태 부회장은 마치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이 되었다.

난데없이 유문택 회장이라니!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그 늙은이의 이름이 왜 여기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때, 회의장 입구에서 누군가가 들어섰다. 휠체어를 탄 채로 회의장에 천천히 진입하고 있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유문택 회장이었다.

“지··· 진짜다! 유문택 회장이야!”

“죽을 날을 받아놨다던 분이 어떻게 여기에?”

여기저기서 놀람에 찬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유문택 회장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이란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 앞에 나타난 유문택 회장은 소문과 전혀 달랐다. 휠체어를 타고 있긴 했지만, 얼굴 혈색이 좋아 보이는 게 병색이라고는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유문택 회장이 입을 열었다.

“나 유문택이오. 그동안 몸이 불편해서 총회에도 제대로 참석도 못하고 그랬는데, 오늘은 많이 좋아져서 이렇게 오게 되었소이다. 이 늙은이를 이렇게 반갑게 맞아 주셔서 정말 고맙소.”

그렇게 말하고는 휠체어를 탄 채로 자신이 앉던 자리로 향했다. 그가 탄 휠체어를 한 젊은 사내가 조심스럽게 밀어주고 있었다.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던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서일태 부회장은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저놈이 어떻게 이 자리에!?’

그 사내는 다름 아닌, KM사의 CEO인 이진운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 유문택 회장의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세화 그룹의 주주총회에 등장한 것이다.

‘설마 유 회장하고 이미 진즉부터 결탁하고 있었던 건가? 그럼 이 모든 게 다 저놈들이 작정하고 꾸민 짓이었어?’

그제야 모든 게 의심스러워졌다. 유문택 회장과 이진운이란 놈이 저렇게 가까운 사이라면,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일들도 다 저놈들의 공작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지만 대체 무슨 수로?’

유문택 회장의 병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분명 얼마 살지 못할 죽을병이었다. 그런데 그 뒤 실종되었다던 늙은이가 지금은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KM사의 이진운과는 대체 어떻게 알게 되었고?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었다. 바로 저놈들이 자신의 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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