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39화 (240/448)

10권-14화

서울 00종합병원.

리무진을 타고 병원에 도착한 이진운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타고 온 리무진이 워낙 고급사양이기도 했지만, 그 주위를 호위하듯 둘러싼 검은 승용차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보낸 보디가드들로서 한때 PMC에서 활약하던 실력자들이기도 했다.

물론 이진운을 해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번거로운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을 따로 붙인 것이다.

하지만 유문택 회장을 만나려 했던 이진운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접수를 받는 간호사가 곤란하다는 듯 면회신청을 거절한 것이다.

“그분과 면회는 어렵습니다. 가족이 아니면 절대 면회가 안되요. 아니면 회장님의 허락을 받아 오시던가요. 면회를 신청할 정도면 아시는 관계이실 텐데요.”

“그래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들으신다면 거절하실 리 없고요. 일단 전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죄송합니다만 병원 내 규정 때문에 곤란합니다. 내규를 어길 순 없어서요.”

이렇게 되자 이진운도 조금 난감해졌다. 억지로 힘으로 하자면 안 될 것도 없었지만, 이런 일에 무공이나 마법을 쓰긴 애매해서였다.

그러자 이진운에게 정보를 전해 주었던 로스차일드 가의 사내가 나섰다.

“이진운 님. 이런 문제는 저희가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곧장 연락을 취했다. 그리곤 잠시 뒤 간호사에게 말했다.

“곧 연락이 올 겁니다. 병원 이사장에게 말을 해 뒀으니 면회신청 받을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군요.

“예? 무슨···?”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원 내 간호사 앞에 놓인 인터폰이 울렸다. 재빨리 받아든 간호사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상대의 말에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를 내려놓은 간호사가 이진운에게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저어··· 면회신청이 가능할 것 같네요. 지금 바로 처리해드릴게요.”

이진운은 그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완강하던 간호사의 태도가 고작 전화 한 통에 돌변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래서 권력을 탐하는 거겠지.’

덕분에 이진운은 유문택 회장이 입원한 병실로 곧장 안내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수위에 드는 대기업의 회장답게 그는 VIP전용 입원실에 입원 중이었다. 이진운이 입원실 안으로 들어서자 노쇠한 70대 노인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채로 이진운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몸이 편치 않아서 이렇게 반쯤 누워서 맞이하게 된 점을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소.”

“괜찮습니다. 병환이 있으신 몸인데 이렇게 면회를 받아들여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지요.”

이진운 대신 나서서 말을 받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내. 지금 유문택은 이진운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 로스차일드 가에서 오셨다고?”

유문택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막대한 재력과 권력을 누리는 자들이라면 로스차일드 가의 이름이 가진 무게를 모를 리가 없었다.

세화 그룹이 한국에서 수위권에 드는 기업이라고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나 다름없다.

“한 가지 전해드릴 소식이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소식? 흐음··· 우리 세화 그룹이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무슨 소식을 전달받을 만큼 깊은 인연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소만.”

“저희야 그렇지요. 하지만 제 옆에 계신 분은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유 회장님과 가장 깊은 연을 가지고 계시죠.”

“그게 무슨?”

로스차일드 가 출신 사내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시선을 옮기는 유문택 회장. 덕분에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이진운의 얼굴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왔다.

헌데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이렇게 친근하고 낯익은 느낌이 든단 말인가?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 유문택 회장은 이진운의 얼굴을 더욱더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행동이 상대에게 실례가 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이진운의 생김새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던 것이다.

잠시 뒤, 유문택 회장이 혼이 빠져나간 사람마냥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런···!? 이렇게까지 우리 진영이와 쏙 빼닮은 사람이···.”

그랬다. 이진운의 얼굴은 죽은 유문택의 아들이었던 유진영과 거의 흡사했던 것이다. 물론 완전히 같진 않았지만, 얼굴의 특징은 거의 빼닮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이제야 알아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순 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상념이 스쳐지나갔다.

로스차일드 가의 사람이 찾아온 것도 놀라운데, 이젠 자신의 자식과 닮은 사내가 자신과 가장 깊은 연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하나밖에 없었다.

유문택 회장은 로스차일드 가의 사내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말했던··· 그 소식이란 게··· 이 청년을 말하는 거요? 설마 이 청년이···?”

“역시 짐작하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이분이 바로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리셨던 유회장님의 친손자인 유태진 님 이십니다.”

“어떻게··· 어떻게? 그 아이는 분명··· 2년 전에 실종되었다고 들었는데···”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인지 유문택 화장의 두 눈이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는 억누르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 확인 차 묻겠소. 이 청년이 정말로 내 친손자가 맞소? 내가 알기로 내 손자는 2년 전 벌어진 대규모 실종 사건 때 사라졌다 들었소. 그때 실종된 사람들 중 돌아온 자가 아무도 없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저 청년이 내 손자일 거라 단정하는 거요?”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생김새만 비슷한 거라면 성형 수술로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이분이 가짜가 아닌지 의심하시는 모양인데 진짜입니다. 저희 가문에서 직접 검사해 본 결과입니다.”

그런 의심을 불식시킬 생각인지 사내는 품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유전자 검사에 대한 결과가 나와 있었다.

“으음···.”

유문택 회장은 작게 침음성을 삼켰다. 종이에는 눈앞의 청년과 자신이 명백한 혈연관계임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이런 검사지 따윈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사내는 점잖게 말했다.

“뭘 의심하시는지는 압니다. 아마도 회장님의 핏줄을 가장해서 세화 그룹의 지분과 회장 자리를 강탈할 가능성 때문에 그러시겠죠?”

“······.”

“솔직히 말해 저희 로스차일드 가문에서는 세화 그룹 따윈 안중에도 없습니다. 굳이 빼앗으려 했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을 꾸밀 이유가 없지요.”

“하긴···.”

유문택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로스차일드 가의 힘이라면 세화 그룹 따윌 노렸다면 이런 사기행각 없이도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청년이 정말로 자신의 친혈육이라는 사실이었다.

유문택 회장은 점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네가 내 손자더냐?”

“예, 할아버지. 제가 바로 지금까지 이진운이란 이름으로 살아왔던 할아버지의 손자 유태진입니다.”

이진운은 아니, 유태진은 할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렇게 화답해주었다. 그 뒤 결국 격정을 참을 수 없게 된 유문택이 다가온 유태진을 덥석 끌어안았다.

“인석아! 왜 이제 왔어!”

“할아버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할아비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네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고, 너마저 실종된 후로, 하루도 밤잠을 이룰 날이 없었어.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게냐?”

눈물마저 흥건하게 쏟아내며 소리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유태진도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혈육의 정조차 느끼지 못했거늘, 이젠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이 노인의 모습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게 피로 이어진 연이라 이건가?’

그는 비로소 하늘이 이어준 혈연은 결코 끊을 수 없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고 말았다.

* * *

한바탕 울음으로 오랜 아픔을 쏟아낸 유문택 회장은 유태진과 오랜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유태진의 부모에 대한 지난 이야기들을 하거나,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털어놓은 것이다.

“대체 그동안 어디 있었던 게냐? 널 키운 보육원장이 네 유전자를 경찰서에 등록시킨 덕분에 네가 어디서 자랐는지 알게 됐지만, 또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지난 2년에 대한 거라면 이야기가 좀 복잡하군요.”

할아버지의 물음에 유태진은 한 차례 쓴웃음을 짓고는, 자신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찬찬히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문택 회장으로서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저 먼 우주로 소환된 것도 모자라, 우주에 지구 따윈 하찮을 만큼 거대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찌 쉬이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태진은 할아버지 앞에서 여러 가지를 보여주었다. 마법으로 불을 일으켜 보이거나, 혹은 지구상의 과학수준으론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모듈 밴더를 보여줌으로 입증해보인 것이다.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고··· 지구가 이제 3년 후에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예, 인베이더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서 로스차일드 가문도 저에게 협조하고 있는 거고요.”

“그랬구나. 그랬어.”

자신이 손자를 찾아 헤매는 동안, 손자는 자신이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자신이 젊은 시절에 일군 모든 게 하찮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손자에게 세화 그룹을 물려줄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런 큰일을 하는 손자의 발목을 자신이 잡을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놔두고 네 할 일을 해라. 이 늙은 할아비는 걱정하지 말고. 나보다는 지구를 지켜내는 게 우선이지 않느냐?”

“아니요. 할아버지도 중요합니다. 이제야 겨우 만난 할아버지인데 어떻게 놔둡니까? 그리고 서씨 일가도 가만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래봐야 작은 일일 뿐이다. 지구의 안녕보단 하찮은 일이잖느냐?”

회사를 장악하려는 서씨 가문 문제보다는 지구를 우선시하는 그 말에, 이진운은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된 교통사고가 그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라도 말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유문택 회장의 안색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마치 못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변한 것이다.

“들으신 대롭니다. 그 사건은 서씨 가문이 세화 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저지른 인위적인 살인사건이었던 거죠. 그리고 제가 실종되었던 건 그때 교통사고를 냈던 자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절 보육원에 버렸기 때문이고요. 아마도 제가 그 교통사고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기 때문인 것 같더군요.”

“으으··· 그랬던 거냐? 그놈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어?”

유문택 회장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만큼 분노했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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