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11화
문을 여는 건 아주 간단했다. 전자식 도어로 된 문의 비밀번호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삑삑삑!
몇 번 번호를 터치하자,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그러자 안에서 그 소릴 들었던지, 놀라 숨을 삼키는 아이들의 반응이 감지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이진운은 아이들이 떨고 있는 게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나같이 두려움에 차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고아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밝고 활달했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고작 방문자가 찾아온 정도로 저리 겁을 집어먹는 걸 보면 아주 충격적인 일을 겪었음이 틀림없었다.
이진운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안 그래도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안으로 발을 들이며 일부러 친근한 목소리를 냈다.
“얘들아, 아저씨다. 아저씨가 왔어. 진운 아저씨 기억 안나?”
“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일까? 방금 전까지 숨어 있던 아이들에게서 숨을 삼키는 듯한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경계심이 옅어진 건지 아니면 이진운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건지, 아이들이 하나 둘씩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진운 아저씨가!”
“그럴 리가 없어! 아저씬 실종됐다고 했었잖아.”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녀석들의 얼굴에는 경악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진운은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자신이 진짜임을 확인시켜줬다.
“와서 잘 봐라. 내가 진짜인지 아닌지 말이야. 아직도 기억 못하겠어? 용환아, 넌 내가 2년 전에 선물로 노트북까지 선물해 줬잖아. 네 장래희망이 작가라서 말이야. 그리고 태영이 넌 내가 바이올린을 사줬고. 무슨 대회에 나간다고 하더니 입상은 한 거냐?”
“지··· 진짜다! 진짜 진운 아저씨야!”
“아저씨, 어떻게 된 거에요? 왜 이제야 왔어요? 그동안 원장님이 얼마나 찾았는데···
···.”
“아저씨, 보고 싶었어! 으아아앙!”
이진운이 읊어대는 소리를 듣고 진짜인 걸 확인하자마자 어떤 아이는 그에게 매달려 울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북받쳐 와서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놀랄 일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얘들 마음고생이 심했나 봐요. 잘 울지도 않던 녀석들까지 이렇게 우는 걸 보니.”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윤재민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보육원의 맏이역할을 해왔던 그로서는 아이들이 가슴 아파 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진운과 마찬가지로 실종되었던 윤재민을 알아본 아이들이 놀라다 못해 혼란스런 얼굴이 되었다.
“뭐야? 이젠 재민이 형까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하게 만들더니, 둘이 그동안 같이 있었어?”
아이들이 어떻게 된 거냐며 캐물었지만, 이진운은 그보다 급한 게 있었다.
“그건 나중에 차차 이야기 해줄게. 원장님은? 원장님은 어디 가셨지?”
“아저씨, 원장님이 지금 많이 아프셔.”
“으음.”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안에서 느껴지는 원장님의 기운이 워낙 미약해서 어디가 편찮으실 거라 짐작했지만, 이렇게 듣고 보니 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럼 어서 원장님께 가 보자.”
“응.”
이진운과 윤재민은 우선 아이들을 따라 원장님부터 뵙기로 했다. 헌데 그 전에 아이들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이진운이 데리고 온 일행을 향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근데 저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에요?”
“아저씨 손님들.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너무 경계 안 해도 돼. 그러니까 너희가 손님들 모시고 저 방으로 가 있어. 손님 대접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
“예, 물론이죠.”
이진운은 그렇게 아이들을 다독이고는 아리엔들에게 가볍게 시선을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이진운의 뜻을 알아챈 그들은 자신들을 안내하는 아이들을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그리고 이진운은 윤재민과 함께 원장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방안의 침대에 누워 있는 원장님의 모습을.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원장님의 얼굴과 몸을 심각할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원장님!”
이진운이 불렀지만, 원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정신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즉 혼수상태였다.
이진운은 상태를 살피기 위해 원장의 손목을 붙잡고 맥부터 짚었다. 상태는 심각했다.
어딘가 드러난 부상을 입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내부가 엉망이었다. 혈도는 노폐물로 가득 차 있었고, 장기들의 상태도 심상치 않았다.
얼마나 심각한지 직접 진기를 불어넣어도 쉬이 흘러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형, 내가 볼게.”
상태가 심각해 보이자 이번에는 윤재민이 나섰다. 이진운은 기꺼이 자리를 비켜줬다.
윤재민은 대신관들 중에서도 상위의 위계에 다다른 성직자였다. 이런 치료에 관련된 분야만큼은 그가 이진운보다 훨씬 더 나았다.
윤재민은 신성마법으로 원장의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그리고는 낮게 침음하고 말았다.
“음···.”
“어떤데?”
“아주 안 좋아.”
이진운의 물음에 윤재민은 안색을 굳혔다.
“거듭된 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몸의 밸런스가 엉망이 되었어. 그래서 온갖 병이 발생한 거고. 이건 완전 종합 병동이야.”
윤재민은 자세한 병명은 말하지 않았다. 병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입으로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치료할 수는 있지?”
“물론이지. 나 정도 되면 죽은 자가 아닌 이상 살려낼 수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 봐.”
이진운이 재차 묻자, 윤재민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면서 그 즉시 치료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들끓는 방대한 기운! 그것은 온화하면서도 거대하기까지 한 신성력의 소용돌이였다.
상위계 백마법. 홀리 와인더<성유신광파聖流神光波>
마법이 발동된 순간, 휘황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부정한 것을 사르는 고위 백마법 중 하나로서, 악령이나 악에 속한 강력한 존재를 소멸시키는 공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 마법 자체가 원장을 치료할 수 있는 마법은 아니지만, 이 보육원 일대를 완벽히 정화함으로서 원장에게 악영향이 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제하려 한 것이다.
‘재민이 녀석, 이런 고위 마법을 보육원 소독하는 데에 쓰다니···.’
이진운은 내심 혀를 내두르면서도 윤재민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만큼 원장의 존재가 그에겐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이은 신성마법이 원장에게 깃들었다. 그것은 윤재민이 발현한 축복이었다.
상위계 백마법. 에이션 로이즈<축복>.
대상의 회복력을 상승시키고, 악과 저주 등 온갖 부정한 것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신성마법 에이션 로이즈.
그 때문인지 원장의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야윈 몸이 다시 회복되는 건 아니지만, 안색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야 본격적인 치료를 해볼 수 있겠어.”
“역시··· 지금 그건 치료가 아니었지?”
“곧바로 치료하기엔 원장님에게 너무 체력이 없었거든. 이제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시켜드렸으니 치료를 해 드려야지.”
윤재민은 그렇게 답하면서 자신의 양 손을 원장의 가슴팍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거대한 신성마법진이 입체적으로 주변을 둘러싸는 가 싶더니, 찬란한 휘광이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최상계 백마법. 페일로드<재생>
화아악!
이것이 대신관 중에서도 극소수만 사용할 수 있다는 최상계 백마법 페일로드. 어떠한 질병이나 중상도 회복시킬 수 있으며, 잃어버린 신체나 장기마저 다시 재생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회복마법 중 하나였다.
잠시 뒤 빛이 사그라진 뒤 윤재민은 원장의 가슴팍에 댔던 양 손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곤 숨을 몰아쉬었다.
“휴··· 겨우 끝났어. 병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
“그만큼 심각했던 거냐?”
이진운이 묻자, 윤재민이 한층 더 어두운 기색으로 말했다.
“아마 우리가 며칠만 더 늦게 왔어도 돌아가셨을지도 몰라.”
“그 정도였다 이거지?”
이진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대체 원장님이 이렇게 쓰러질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은 원인이 대체 뭐란 말인가?
자신이 사라지기 2년 전까지만 해도 별 탈 없이 지내오신 분이었다. 어떤 이유가 있지 않고선 몸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이를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군.’
그렇게 결단을 내린 이진운은 다시 윤재민에게 물었다.
“그럼 원장님은 완치되신 거지?”
“응, 맞아. 하지만 이대로 며칠 잠들어계실 거야. 그만큼 많이 지치셨거든. 육체는 어떻게든 회복되었지만, 정신적인 부분이 커.”
“그럼 이대로 잠들어 계시도록 놔둬야겠군.”
이진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장실을 나섰다. 그리곤 일행과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응접실로 향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걱정스런 기색으로 다가왔다.
“아저씨! 원장님은 어때요? 많이 아프시죠?”
“이제 더는 걱정할 것 없다. 원장님은 다 나으셨으니까.”
“정말요?”
“그래. 피곤해서 잠시 잠드신 것뿐이야. 며칠 쉬시면 괜찮아 지실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이진운이 전한 희소식에 다들 얼굴히 환하게 변했다. 그만큼 원장님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윤재민에게 말을 걸었다.
“재민아,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좀 먹이고 해. 난 좀 가볼 데가 있으니까.”
“형은요?”
“일단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자초지종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일을 윤재민에게 맡겨둔 이진운은 보육원을 나섰다.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익숙하게 드나들었던 바(Bar)였다.
* * *
“너, 어떻게 된 거야?”
바텐더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진운의 모습에 깜짝 놀라 외쳤다. 설마 2년 전부터 종적이 사라졌던 이진운이 나타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무슨 날 귀신 본 듯한 눈을 하고 있어?”
“그럴 수밖에 없잖아! 이 녀석아! 무려 2년이다. 그동안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나로선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바텐더는 놀랐던 기색을 억누르면서 물었다.
“그동안 어디 있었냐? 내 정보망으로도 널 찾을 수가 없던데?”
“그건 말하기 곤란해. 나중에 알려지긴 하겠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어.”
이진운은 그렇게 얼버무렸지만, 바텐더는 그 말만으로도 대충 감을 잡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역시··· 너도 그 대규모 실종 사건의 당사자 중 하나가 맞았군. 말하기 곤란할 만도 해.”
“눈치 빠른 건 여전하군. 아무튼 그에 대한 대답은 곤란하고··· 나도 물을 게 있어서 찾아왔다.”
“보아하니 의뢰를 받고자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정보를 얻고 싶은 모양이지?”
바텐더는 청부 의뢰 중계 뿐만 아니라, 온갖 정보를 다루는 정보상인 역할도 했다. 그렇기에 청부의뢰에 필요한 정보도 바텐더에게 적정 대가를 치르고 구매하기도 했다.
이진운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노을 보육원 알지?”
“알지. 네가 자란 곳이라는 것쯤은.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이진운이 날카로운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지난 2년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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