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35화 (236/448)

10권-10화

* * *

이진운과 대담의 시간을 갖게 된 미국의 정재계 인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담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사로 돌아간다! 즉시 임원들을 소집해라! 긴급 사안이다!”

“내 밑에 녀석들은 전부 모이라고 해! 아주 중대한 일이다!”

“메클리 씨를 호출해라. 아주 중대한 일이 있는데 그의 조언을 듣고 싶다.”

휴대전화기를 붙잡고 정부의 요인, 군 책임자, 혹은 전략기획실 등 다양한 곳으로 연락을 취하는 사람들.

이제 조금씩 세계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대담이 끝난 뒤 이진운 일행은 로스차일드 가의 별장에서 머물게 되었다. 다들 휴식을 취하던 가운데 윤재민이 이진운에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형, 어쩔 셈이야?”

“어쩔 셈이냐니, 뭘?”

“저들을 설득한 건 좋은데 말이야. 정보 통제를 전혀 안했잖아. 이러다간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정보가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는데 말이야.”

윤재민은 그 점이 우려스러웠다. 연합에 대한 존재와 인베이더의 침공 사실을 알려준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에게 이 정보를 함구하란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태연스러웠다.

“상관없어. 어차피 다 알려지게 될 정보들이니까. 그리고 저들이 이런 정보를 쉽게 유출할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린데?”

“미국이란 국가의 틀이 사라진다고 해서 미국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란 거다. 지구권 전체가 하나의 연방국가로 태어나게 된다면 이곳은 아메리칸 주가 되겠지. 결국 전 세계가 통합된다 해도 저들이 사는 곳은 아메리카라는 거다.”

“그러니까 지구 전체가 연방국가가 된다 해도 아메리카에 대한 소속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거네.”

“한국만 해도 그렇지.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의 지역갈등도 결국 해당 지역에 대한 소속감 때문 아니냐.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된다고 해서 그게 쉬이 없어질 리가 없어. 그건 미국도 다를 바 없고.”

“그럼 정보를 유출하지 않을 거란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라는 건 말이야. 사용하기에 따라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지. 저들은 그것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고.”

“아!”

“그러기 위해선 저들도 발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어.”

“그렇구나! 남들보다 한 발짝 먼저 움직여서 연방국가 내에서 주도권을 쥘 생각이라 이거네.”

“그렇지. 새로운 국가와 체계에 남들보다 먼저 적응할 수 있는 자가 장차 세계를 좌우할 수 있을 테니까.”

세계가 통합된다 하더라도 그 내부에서는 얼마든지 경쟁이 벌어질 수 있었다. 물론 전 세계의 군권과 외교권은 연방정부가 쥐게 되므로 예전과 같은 전쟁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물밑 아래에서 벌어지는 주도권 경쟁은 여전히 치열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미국은 바로 정보를 선점한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게 틀림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니야. 어디론가 정보가 새긴 새겠지. 그렇지만 정보가 유출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어.”

“어째서?”

“남들이 볼 땐 전부 다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테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우주에 연합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있고, 초능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인베이더란 괴물이 곧 지구를 침공할 거란 정보를 누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타국에서 우연찮게 이 정보를 입수한다 쳐도 그냥 헛소리로 치부할 가능성이 컸다.

미국의 정재계 관계자들도 직접 보고 겪기 전까지는 믿지 못했으니, 그냥 정보만 접한 국가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윤재민이 또다시 우려를 내비쳐왔다.

“그런데 말이야. 미국을 그냥 놔둬도 괜찮겠어?

“그들이 전 세계 지도층과 협상 자리를 마련해주기로 했어. 일단 그들에게도 그 정도 메리트는 있어야겠지.”

물론 이진운도 미국 주도의 세계가 그리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세계 통합에 기여를 하는 것은 사실인 만큼 그 정도는 용납해줄 생각이었다.

다만 그게 좀 지나치다 싶으면 언제든 제제할 것이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레이첸이 입을 열었다.

“아저··· 아니 스승님! 질문이 있는데.”

“뭐냐?”

자기도 모르게 아저씨라고 부르려다가 재빨리 호칭을 바꾸는 레이첸. 이진운이 던진 날카로운 시선을 느껴서였다.

“그럼 그 세계통합 협상이란 게 성사될 때까지 여기서 시간 죽이면서 기다릴 생각이야?”

“그게 하루아침에 될 것 같진 않으니, 돌아가 볼 생각이다.”

“돌아간다고? 모함으로?”

레이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이진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고향으로.”

* * *

다음날 아침. 이진운 일행은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곳이 이진운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비행기에 탑승한 윤재민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세상에··· 내가 전용기에 다 타볼 줄이야.”

그랬다. 그들이 탑승한 비행기는 보통 여객기가 아니었다. 바로 로스차일드 가에서 제공해준 전용기였다.

그래서인지 내부 시설부터가 화려하고 넓었다. 겉보기엔 비행기였지만, 그 내부에는 없는 게 없을 지경이었다.

각종 오락시설부터 해서, 샤워장, 영화관, 그리고 침실까지, 그야말로 즐길 수 있는 것들로 가득했다.

옆에서 레이첸이 픽 웃으며 빈정거렸다

“이 아저씨는 뭘 이런 거에 다 놀라고 그래? 촌스럽게. 이따위 것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카멜롯에도 타 봤으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지구에서는 처음이란 말이야.”

윤재민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자신의 처지가 옛날과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보육원에서 고아로 자라난 2년 전만 하더라도 비행기는 감히 상상도 못했었다. 언젠가 독립해서 돈을 번다면 비행기도 타고 해외도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해봤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었다.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든 마당에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나간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릴까?

헌데 이젠 그런 차원을 넘어 로스차일드 가의 귀빈 취급을 받으며 호화스런 전용기까지 다 타보게 되었다. 윤재민으로서는 꽤나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레이첸이 말한 것처럼 카멜롯에 비한다면 지구의 전용비행기 따윈 별것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느낀 감동이 적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감동에 초를 치는 인물들은 여럿 있었다.

“이게 지구의 비행기라는 거구나. 엄청 촌스러! 아직도 이렇게 원시적으로 나는 비행체를 사용하고 있다니.”

리스티는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면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온갖 첨단 과학과 마도공학 지식을 가진 그녀에게 있어, 지구의 제트 여객기 따윈 종이 비행기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이런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횡단한다는 지구인들이 외려 더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거 가다가 떨어지는 건 아니야?”

그런 리스티의 옆에 있던 아리엔이 조금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 처음 타보는 지구의 비행기가 영 믿음이 안가는 모양이었다.

“넌 여기서 떨어져도 멀쩡하잖아. 뭘 그리 겁을 먹어?”

“차라리 맨몸으로 떨어진다면 어떻게든 내가 반응할 수 있잖아. 플로트 윙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고. 그런데 비행기를 탄 채로 추락하는 건 좀 무서워!”

“추락해도 상처 하나 안날 애가 참 별 걸 다 걱정하네.”

리스티는 아리엔의 불안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리면서 창밖에만 관심을 보였다. 창밖 너머로 보이고 있는 비행기의 날개에 달린 제트 엔진을 관찰하는 듯 보였다.

그 덕분에 윤재민은 감동이 식어버렸다. 그런 동생의 마음을 헤아린 이진운이 위로인지 뭔지 모를 말을 건네왔다.

“원래 저런 녀석들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워낙 개성적인 아이들이라서 말이야. 하긴 저 애들 입장에선 이런 비행기는 박물관 유물만도 못하겠지.”

“그건 그렇네요.”

윤재민은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에 몸을 기댔다.

* * *

꽤나 긴 시간동안 비행을 거친 이진운 일행은 드디어 한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들은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는 것 같은데?”

의아해하는 레이첸의 물음에 엘레나가 답했다.

“저희 가문 전용기를 타고 와서 그래요. 레이첸 오빠네 가문하고 비교하면 별 것 아니지만 지구에서는 꽤 잘나가거든요.”

“아아, 그렇군.”

일행은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바로 차에 탑승했다. 이미 로스차일드 가에서 미리 손을 써 놨던지, 차체가 기다란 리무진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일행은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바로 차에 탑승했다. 이미 로스차일드 가에서 미리 손을 써 놨던지, 차체가 기다란 리무진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라는 것을 경험해 봤던 일행은 이번에는 별 소동 없이 자연스럽게 탑승했다.

그들에겐 일반적인 차량이나 어지간한 사람들은 타볼 일 없는 초고가의 외제차인 리무진이나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에 타자마자 이진운은 운전사에게 말했다.

“노을 보육원으로 바로 가줬으면 좋겠군.”

“예.”

운전수는 즉시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킨 뒤 노을 보육원을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곧 도착할 수 있었다.

리무진에서 내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노을 보육원이 있는 지역은 제법 낙후된 곳이다. 리무진 같은 고급 차량이 들어올 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진운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보육원의 모습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이제야 겨우 돌아왔구나.’

불과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진운에게는 수십년 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보육원 사정이 어떻게 됐을지 걱정이었다.

혹시나 몰라 자신이 만든 재단을 통해 보육원에 정기적으로 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 뒀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건 같은 보육원 출신인 윤재민도 마찬가지였던지 그리움과 염려가 가득해 보였다.

그때 레이첸이 불쑥 물었다.

“여기가 스승이 자란 곳이야?”

“그래, 내가 여기서 자랐지.”

“흠, 뜻밖이네. 스승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서 자랄 줄이야.”

눈치 없는 레이첸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알고 있는 이진운은 자신의 아버지 못지않은 절대강자였다. 그 정도면 연합 내에서도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인데, 그런 강자가 이런 초라한 건물에서 자라나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자, 그만 들어 가보자. 원장님이 걱정하시겠구나.”

“응, 형.”

이진운의 말에 윤재민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보육원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이진운은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건물은 예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신축한 건물 그대로였고, 안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기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헌데 분위기 자체가 을씨년스러웠다. 마치 무슨 우환이 닥치거나, 보육원 전체가 폐가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바깥에서 뛰놀 아이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이 방문했는데도 죄다 안에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이진운은 얼굴을 굳힌 채 보육원 문에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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