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34화 (235/448)

10권-09화

그 이후로 만찬장은 미국이란 국가 존재자체를 건 회의장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구 멸망이 눈앞에 와 있는데, 그것을 어찌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물론 살아날 길은 있다지만, 그건 곧 국가의 소멸을 의미했다. 연합에 가입한다는 건 바로 그것을 의미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모인 정계의 거물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세계를 주름잡던 우리 미합중국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는 소린데······.”

“하지만 어쩔 수 없잖은가? 지구가 살아남기 위해선 말이야.”

“뭐 통합이 필요하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게 조건이라니, 이건 너무 강압에 가까운 제안이군.”

“하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조국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국가의 개념은 사라지지만 그래도 지방자치라는 형태로나마 존속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국가의 소멸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나! 우리 위대한 미합중국이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

“맞네! 우리가 뭔가 요상한 수단에 속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믿는 사람들의 수에 비한다면 그 비율은 적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들은 불신의 씨앗을 퍼뜨릴 것이고, 결국 통합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레나가 나섰다.

“여전히 믿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네요.”

그러자 누군가가 나서서 불신을 내보였다. 공화당 소속의 상원의원 중 한 명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우리가 속고 있다는 느낌이지. 외계인에 초능력에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분명 이 자리에서 보셨을 텐데요. 초능력의 존재를요. 날아오는 미사일을 베어도 부족했던가요?”

“글쎄! 그게 정말로 검으로 벤 것인지, 아니면 날아오는 미사일에 어떤 야료를 부렸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이렇게 나오는 건가? 엘레나는 피식 웃어보였다.

“전형적인 음모론으로 빠지시는군요. 그럼 지구 통합이란 허무맹랑한 제안을 주장한 제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요? 제가 무슨 이득이 있어서 이런 고생을 해가며 여러분들을 속일 필요가 있는 거죠?”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혹시, 전 세계를 식민지화 하거나 세계정복을 노리는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외계 괴물에 의해 지구가 곧 멸망할 거라는 소리보다는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로스차일드 가라면 더더욱 그렇지. 여태껏 음모론의 중심에 서 있던 가문 아닌가!”

역시 음모론에 매몰된 사람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음모론 속에서만 사고를 계속할 뿐이었다.

그래서 엘레나는 지금까지와 달리 냉소적으로 내뱉었다.

“솔직히 말해. 세계정복 따윈 관심 없어요. 저 혼자만으로도 미합중국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돈데, 이런 우주 변두리에 처박힌 시골 행성 따위를 뭐하러 정복해요?”

“뭐··· 뭐라!?”

“너 따위가 우리 조국을 어쩔 수 있다니! 무슨 망발을!?”

지금까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던 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나섰다. 조국이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존심을 건드려주니 역시 생각했던 대로 반응해주고 있었다.

“망발이라니요. 전 엄연한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당신들은 미합중국을 엄청 대단하게 여기는데, 그래봐야 저 우주로 나가면 잘 나가는 일개 회사 수준도 못 되요. 우주적인 대기업은 수십 개의 행성도 보유하고 있는데, 고작 한 행성에서 조금 행세한다고 자랑이라니요.”

“감히!”

“그리고 지금까지 보여드린 능력이 제 전부가 아니랍니다. 이 기회에 한번 보여드리죠.”

이진운도 말했었다. 엘레나 혼자서도 주 정부 방위군을 감당할 수 있다고. 그건 사실이면서 동시에 사실이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배운 무공 수준만 따져 평가한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가진 고유스킬 무구구현까지 더한다면 그녀가 가진 객관적인 전투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바로 지금처럼.

우우웅!

수많은 무기들이 허공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가 구현했던 검과 같은 냉병기가 아니었다. 현대에서 볼법한 화기들의 포신이었고, 어떤 것은 지구에서도 보지 못했던 병기의 포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엘레나의 바로 앞에는 그런 포신보다 더 거대하고 웅장한 포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으로 막대한 에너지가 맺혀들기 시작했다.

“이게 제 진짜 힘이랍니다!”

“헉! 이런 미친!?”

“설마 우릴 제거하려고?”

포구에 맺힌 둥근 광류가 더욱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에 비례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안색도 눈에 띌 만큼 창백해져갔다.

이건 예정에도 없던 일인지라 메켈린조차 당황해 외칠 정도였다.

“엘레나 너!?”

하지만 그런 메켈린을 붙잡는 이가 있었다. 옆에 있던 조나단이었다.

“조금만 두고 보시죠. 엘레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를 아이가 아닙니다.”

작게 속삭이는 그 말에, 메켈린은 그제야 진정한 얼굴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엘레나가 구현한 포신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로 절정에 이르렀다.

고오오오!

“자, 파이어!”

그녀의 외침과 함께 수많은 포신을 떠난 분류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분출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할 정도로 스쳐지나가 저 먼 곳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곳에는 거대한 산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대한 빛과 포탄들은 그 산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콰우우우우!

눈부신 섬광과 폭발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지진이 발생한 듯 일어난 거센 진동에 사람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넘어졌다.

그리고 섬광과 폭발이 가라앉은 뒤, 사람들은 그 결과물을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어억!”

“세상에······!”

“산이··· 통째로 사라졌어!?”

그랬다. 산 자체가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포격이 작열한 그곳에는 이젠 거대한 크레이터만이 황폐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수십 메가톤 급 핵무기보다도 더 강력할지도 몰랐다.

“이래도 제가 미합중국을 혼자서 제압 못하리라 생각하시나요? 그냥 멸망시키는 거면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우주공간에서라면 함대의 막대한 화력 탓에 그녀의 강함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지만, 자체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화력과 공격의 광범위함만 따진다면 상당한 수준이었다. 특히 전함과 같은 병기의 일부를 구현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은 연합 내에서도 전술적으로 큰 가치를 가졌다.

하물며 이런 문명레벨 4 수준의 지구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세계정복? 그딴 게 무슨 의미라고요.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저와 동료들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요. 함대에 소속된 전함 한척만 끌고 와도 지구 전체를 초토화 할 수 있어요. 지금 이건 전함의 주포 일부를 구현화 했을 뿐인데도 이 정도고요.”

“······.”

엘레나의 무시무시함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은 더 이상 뭐라 대꾸하지도 못했다. 그녀 혼자만으로도 미국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 저와 저희 친인들은 가문과 가족만 데리고 지구를 떠나도 큰 상관없어요. 연합에서 새롭게 뿌리 내리고 살면 그만이니까요. 물론 그만한 능력도 되고요. 하지만 그러면 지구는 멸망하겠죠. 세계정복, 식민지? 그게 연합이나 저희에게 무슨 이득이 되죠? 솔직히 말해 지구는 우주적으로 볼 때 아무런 가치도 없는 행성이에요. 딱히 대단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부유한 행성도 아니고요. 하긴 우주에서 통용되는 공용화폐조차 없는 이 행성에 뭘 바랄까요? 차라리 연합에서 제공해주겠다는 전함 제조 기술이 지구 따위보단 훨씬 더 가치가 있을 텐데요.”

“그거야······.”

“으음······.”

엘레나의 논리적이면서 냉소적인 그 말에 어느 누구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랬다. 지구는 연합 입장에서 볼 때 아무런 가치도 없는 행성이었다. 소환자로 불려온 지구인들의 고향이라는 점을 뺀다면 굳이 지구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았다.

애당초 엘레나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따질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와 연합에게 비참하게 애걸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조력을 얻어내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구 멸망이란 단어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지구의 멸망이 필정이라면 자신들은 대체 앞으로 무얼 해야 한단 말인가?

민주당 대표가 한탄하듯 말했다.

“너무 무지했군. 동방의 속담에 우물 안 개구리라더니··· 우리가 바로 그 꼴이었던가?”

그리고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공화당 대표의 얼굴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반면 조나단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엘레나의 공격에 의해 날아가 버린 산이 있던 곳을 향하고 있었다.

‘별다른 자원이 매장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문의 소유인데 이렇게 날려버리게 되다니······.’

산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지만, 어차피 저 산도 로스차일드 가문의 소유였다. 누군가가 손해배상 하라고 소송을 걸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손실이 아쉬워 조나단만 입맛을 다실뿐이었다.

‘그래도 산 하나로 저들의 뜻을 굽혔으면 싸게 먹힌 셈이지. 엘레나가 정말 많이 컸구나.’

꽤 과격한 방식이긴 했지만, 그 어떤 설득보다 효과적이기도 했다.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임으로서 그들의 존재가 큰 가치를 둘만큼 별 것 아님을 확인시켜줬으니까.

불과 2년 전의 순진무구했던 엘레나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대응이었다.

‘그만큼 지난 2년간 온갖 고생이 많았다는 거겠지.’

착잡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지금은 저 고집쟁이들을 꺾었다는 게 중요했다. 이제야 겨우 지구통합의 첫발을 디딘 것이다.

“이제야 겨우 이야기가 끝난 모양이군.”

그때 누군가가 엘레나 곁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를 알아본 엘레나가 낮게 탄성을 흘렸다.

“아, 스승님?”

“다··· 당신은?”

사람들도 그제야 이진운을 알아보았다. 조나단이 보여준 영상 속에서 무지막지한 실력을 보여준 초능력자. 그리고 연합을 대표하는 전권대사와 다름없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허나 나타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등 뒤에 거대한 음영이 드리워지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전함이 유령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광학 스텔스 모드로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이진운 일행이 타고 온 소형 전함이 그 형체를 드러낸 것이다.

“저··· 전함?!”

“저게 그 우주전함인가?

제아무리 소형 전함이라 하더라도 그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전장만 무려 50m에 이를 정도니, 사람들이 거기에 압도되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진운은 그런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더 이상 반대 의견도 없는 것 같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지. 지구권을 통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이야. 당신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줘야 할 거야.”

이진운의 서늘한 시선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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