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08화
“저··· 정말인가?”
“저 얼굴, 진짜 엘레나 로스차일드야!”
“어떻게 된 거지? 분명 2년 전에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자라긴 했지만 엘레나 로스차일드가 틀림없군. 옛날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다들 모를 리가 없었다. 로스차일드 가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가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로스차일드 가와 안면이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 엘레나는 조나단 로스차일드가 애지중지한다는 막내딸인 만큼 더욱더 기억에 남아 있었다.
심지어 일반인들 중에서도 엘레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2년 전 엘레나까지 대규모 실종사건에 포함되면서 그 사실이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상착의를 알아본 듯하자, 엘레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계속해 나갔다.
“아직도 절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네요.”
“진짜 엘레나 로스차일드인가?”
사람들도 소문을 들어서 대충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지난 2년간 엘레나를 자처하는 가짜들이 대거 출몰하면서 얼마나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가?
로스차일드 가의 힘과 위명을 이용하려는 작자들 때문에 한동안 몸살을 앓았었다.
헌데 이제와 진짜가 나타났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예, 진짜 엘레나 로스차일드에요. 이미 저희 집안에서 철저히 검증도 받았고요.”
“나 조나단 로스차일드가 보증하지요. 아 아이는 제 친딸이 맞습니다.”
이번엔 가주인 조나단까지 나서서 확인시켜주니 사람들도 이젠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다른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다.
“그렇다면 방금 대통령이 한 말 정말입니까?”
“예, 지구에서 사라졌던 2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 영능이란 걸 배우고 인베이더란 괴물들과 싸워 왔어요. 그리고 지금은 연합에 소속되어 있죠.”
“그럼 지금 그 말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요. 이 자리에서 보여 달라고 하신다면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엘레나는 그 즉시 무기를 구현해냈다. 이미 백악관에서 한번 보인 바 있는 무구구현이었다.
“헉! 갑자기 검이 나타나다니 무슨 마술인가?”
“설마 저게 그 초능력!?”
사람들이 놀란 목소리로 떠드는 가운데, 엘레나는 조용히 진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길게 검기가 드리워졌다. 마치 광선검을 연상케 하는 그 광경에 사람들의 경악은 더욱 커졌다.
“저··· 정말로!?”
“저거 설마 라이트 세이버냐?”
“제다이!”
역시 미국은 미국이었다. 검기를 보고는 다른 걸 연상하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스타워즈의 라이트 세이버를 언급하다니.
하지만 그런 감상조차 곧 사그라졌다. 그녀의 검이 휘둘러진 순간, 어지간한 작은 오두막 크기 정도 되는 거대한 정원석이 두부처럼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휘두르는 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뭔가가 번뜩거린 건 느꼈는데, 그것이 지나간 순간 정원석이 수백 수천 토막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거··· 눈속임은 아니겠지?”
“이게 정말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이라고?”
다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검을 구현한 거야 눈속임이라 할 수 있지만, 멀쩡했던 바위를 저렇게 잘게 쪼개는 게 과연 눈속임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미리 쪼개져 있는 상태인 것을 원형을 유지해서 쌓아놓은 게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좀 전의 바위의 상태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의심하는 사람들은 몇몇 있었다. 그래서 엘레나는 미리 준비된 특수합금으로 시범을 보였다. 미리 사람들에게 합금이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준 뒤, 그것을 검기로 베어냄으로서 사실임을 입증해보인 것이다.
“미치겠군. 티타늄 합금을 이렇게 가볍게 잘라?”
“초능력이란 게 우습게 볼 게 아니군.”
“이런 게 휘둘러지면 최신식 탱크고 전함이고 멀쩡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그들의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광선검 같은 것을 만들어낸다 쳐도 결국 사람의 손에서 휘둘러지는, 좀 더 잘 드는 날카로운 검에 지나지 않는다.
미사일이나 사정거리가 긴 화포라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중얼거림을 들은 엘레나는 그런 생각을 부정하였다.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놀랍긴 해도 현대화기와 비교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셨죠?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죠. 그럼 연합은 왜 인베이더와 싸울 때 영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손에 꼽는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전함의 주포보다도 위력이 뒤떨어지는데 말이죠.”
“그건···. 모르겠군. 초능력의 존재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말이야.”
누군가가 내놓은 대답에 엘레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인식할 수 없는 걸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거기서부터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럼 저길 보시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레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저 멀리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광음과 함께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맹렬히 날아오고 있는 그것은 대전차 미사일인 헬 파이어였다.
무려 세 발의 헬 파이어 미사일이 만찬이 열린 이곳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미···미사일이잖아!”
“이 무슨!?”
“도망쳐!”
야외 만찬장이 아수라장이 되려던 그 순간, 아리엔이 앞으로 나섰다. 거기에 사람들이 뭐라 말하려던 그때, 발검 자세를 취한 그녀의 검집으로부터 뿜어진 푸른 섬광이 길게 허공을 갈랐다.
분광십팔수검
섬뢰일정(閃雷一挺)
그것은 말 그대로 하늘을 베었다. 푸른 하늘 위에 종횡으로 새겨지는 현란한 궤적들! 그리고 그것이 미사일들이 날아오는 궤도와 맞닿는 순간, 그것들을 수십 수백 조각으로 잘라버렸다.
텅그렁!
수백 조각의 금속쪼가리로 화한 미사일들이 미처 폭발할 새조차 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지표면을 나뒹굴었다. 엘레나의 쾌검에 의해 만들어진 검기의 궤적들이 미사일이 제대로 기폭할 수 없도록 정교하게 베어낸 것이다.
사람들은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베어내!?”
“세상에 맙소사!”
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로 엘레나를 쳐다보았다.
단순히 날카롭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검은 현대화기 그 자체를 이미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자루 검만으로 미사일들을 베어 없앤 엘레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아셨죠? 설혹 핵미사일이라 해도 마찬가지에요. 광속으로 날아드는 광학병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데, 이런 미사일이야 말할 것도 없죠.”
사람들은 비로소 오버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았다. 그들은 같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을 초월한 그 무언가였다.
그제야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지구 멸망에 대한 위기감이 새삼 엄습해왔다.
‘그렇다면 인베이더란 괴물들은 대체······’
‘영상 속의 과학력을 가진 연합조차 인베이더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어. 우리 지구 따위는 말 그대로 순식간에 짓밟히겠군.’
미국의 힘으로도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 따윈 깨끗하게 지워졌다. 어떻게든 저 연합에 가입해 지원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 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된 뒤에야 엘레나를 향한 질문이 던져졌다.
“그럼 연합에서는 우리 지구가 가입할 경우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겁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기술지원이지요. 인베이더와 대적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술이 지원될 거예요.”
“기술지원이라면······?”
“대표적인 걸 꼽자면 전함 제작에 필요한 기술이죠. 적어도 우주에서 싸울 수 있는 전함제조는 가능해야 인베이더와 맞붙어볼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지금 지구의 문명 수준으론 우주 진출조차 힘들잖아요.”
우주전함 제조 기술이란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기껏해야 적당한 수준의 지원군을 보내줄 거라 생각했지, 설마 우주전함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전수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밖에도 여러 기술들을 지원해줄 예정이에요. 적어도 지구가 자체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요. 물론 연합에서는 아주 오래된 구세대 기술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인베이더의 산발적인 침공쯤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거예요.”
이야기를 듣고 난 사람들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우주진출조차 못한 지구의 과학 수준을 생각하면 우주전함 기술은 자연 탐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인베이더의 침공을 생각하면 우주전함 기술은 필시 손에 넣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 문제였다.
‘하필이면 지구통합이라니······.’
‘그렇다면 국가란 개념이 사라진다는 얘긴데······ 우리 미국도 결국 없어져야 한다는 소리잖아.’
특히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었다. 그런 국가가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 되었다.
“꼭 지구권이 하나로 통합이 되어야만 하오?”
민주당 대표의 물음에, 엘레나는 분명하게 답해주었다.
“예, 반드시 필요한 일이에요. 지구가 하나로 통합이 되어도 어려울 판국인데, 이렇게 수십, 수백 개의 나라로 쪼개진 상태로 인베이더와 싸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지구의 통합은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이에요. 군대에서도 지휘체계가 사분오열 되면 안 되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죠. 지휘체계조차 엉망인 행성에 연합이 과연 기술지원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멸망할 게 뻔한데요?”
정곡을 찌르는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통합을 다들 꺼리는 기색이었다.
결국 공화당 대표가 마지못해 나서서 물었다.
“그럼 기존에 존재하던 국가는 어떻게 되는 건가?”
“우리 미국의 예를 보시면 되겠네요. 51개의 주가 하나의 연방을 이룬 것처럼, 전 세계도 그런 식으로 구성된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그러면 굳이 통합을 할 이유가 없잖은가?”
“그럼 저희 미합중국은 무슨 이유로 한데 뭉쳐 있는 거죠? 각 주마다 주정부가 따로 있는데 각자 독립해도 무방하잖아요.”
“그건······.”
정곡을 찔러온 그 말에 공화당 대표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통합 자체가 껄끄러운 일이라면 미국도 진작 해체되었을 것이다.
물론 원치 않게 미합중국의 일개 주로 통합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무 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건 즉 세계의 모든 국가가 하나로 통합된다 하더라도, 각 지역의 문화와 민족의 특수성만 고려해준다면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국가라는 게 단지 그런 합리성만 가지고 새로이 만들어지거나 없어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사람들에게 국가가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어요. 경우에 따라선 국가의 존재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신념 그 자체가 된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우리가 인베이더의 위협을 떨쳐내고 저 우주에 진출하기 위해선 통합은 반드시 필요해요. 우주는 우리 지구인들이 하나로 뭉친다 해도 벅찬 곳이거든요.”
그렇게 말한 엘레나는 사람들 앞에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릴게요. 우리 지구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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