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07화
그리고 그 다음날. 이진운과 일행은 곧바로 백악관에서 메켈린과 대면할 수 있었다.
“처음 뵙겠소. 본인은 메켈린 스콧라이어라 하오. 현재 미합중국의 대통령 직을 맡고 있소.”
“아르탈 행성 연합 관리국 직속 독립기동함대 인피니티 킹덤의 사령관 이진운라 하지.”
간단하게 서로를 소개한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엘레나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소. 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지구권 통합이 선결조건이라고 하더군. 그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있소?”
“자신들을 멸망시킬 적을 앞둔 상태에서도 의견 통합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멍청이들을 굳이 도울 이유는 없다더군. 그게 연합이 조건을 내세운 이유지.”
“꽤 직설적인 이유군.”
메켈린은 쓰게 웃고 말았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이후로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소릴 대놓고 들은 경우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솔직히 나도 대놓고 말하자면, 지구권 통합은 절대 쉽지 않소.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내가 미국 대통령이긴 해도 미국 내의 모든 의사결정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유요.”
“물론 나도 각 국가관의 이해나 상관관계를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것이 지구 멸망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나?”
“······.”
이진운이 던진 날카로운 그 말에, 메켈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합리적으로 보면 이진운의 말이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멸망을 앞두고도 아옹다옹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측근들과 상의해볼 생각이오. 그들을 설득한 뒤 상하원 의원들을 통해 미국의 의견부터 통일하고 봐야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골머리가 다 아팠다. 민주당이야 자신이 소속해 있던 정당이니 어떻게든 될 것 같았지만, 네오콘 출신들이 넘쳐나는 공화당은 어떻게 설득해야 한단 말인가?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면 미국이란 국가도 사실상 없어지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국수주의자들인 그들이 용납할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속내를 꿰뚫기라도 하듯, 이진운이 던진 날카로운 말이 폐부를 찔러왔다.
“당신한텐 미안한 이야기지만 최대한 서둘렀으면 좋겠군. 하루가 늦어질수록 지구의 멸망 확률은 더욱 높아질 테니까. 3년이란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아. 기회는 단 한번뿐이다. 지금부터 대비하기도 모자란데 설득되지 않는 자들을 일일이 설득한다고 시간을 허비할 순 없어.”
“미스터 리. 혹시 그 말은······?”
“눈앞의 멸망을 두고도 상황 파악조차 못하는 머저리들이라면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는 뜻이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메켈린이 두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지구권 통합을 위해 무력이라도 사용할 생각인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본보기를 보일 수밖에. 그때쯤 되면 나도 수단방법 가릴 수 없게 될 테니까. 아니면 지구가 멸망하게 그냥 놔 둘까? 솔직히 말해 우리 입장에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지구가 멸망해도 연합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니까. 지구 출신의 소환자들의 가족과 친인들만 함께 데려가면 끝이지.”
“으음······.”
그의 말 대로였다. 연합이 제안한 건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구가 망하건 말건 그냥 놔둬도 연합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의미였다.
그건 지구 출신 소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인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안타깝겠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 도울 이유나 의리 따윈 없을 터. 가족과 친인들만 건사할 수 있다면 연합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구의 멸망은 당신들의 선택지에 달렸어. 살아남길 원한다면 무력으로라도 통합시킬 것이고, 그마저 원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멸망하게 방치할 수밖에······.”
“···알겠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지.”
메켈린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무거운 안색으로 대답했다.
* * *
이진운이 말한 살아남길 원한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지구권 통합에 있어 반대하는 세력이 과반수를 넘지 않는 것이었다. 반대하는 국가들이 과반수를 넘는다면 더 이상 지구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하게 포기할 생각인 것이다.
이진운과의 첫 대면을 마친 메켈린은 즉시 자신의 최측근들을 불러들였다.
전 세계 각국을 설득하기 전에 미국의 의사부터 하나로 통일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측근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그 뒤에 공화당과 민주당 양 당의 당수들을 설득하고, 상하의원까지 순차적으로 설득시켜 미국에서만큼은 지구권 통합을 반대하는 세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측근들부터 사태를 알아야 했다. 그들이 협조해줘야 어떻게든 일을 진행해볼 수 있을 테니까.
메켈린은 측근들에게 자신이 들은 바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증거로 조나단이 제공해준 영상과 엘레나에게 도움을 청해 이능의 힘도 그들 앞에서 직접 선보였다.
초능력도 놀랍지만, 연합과 인베이더가 보유한 함대들의 힘이 실로 놀라웠다. 특히 우주공간이 일그러지고 소행성들이 무더기로 박살나는 광경은 소름끼칠 정도였다.
헌데 저런 싸움에 지구도 말려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하아··· 정말 믿기지가 않습니다. 초능력에, 외계인에 이젠 지구침공이라니······.”
“만일 대통령님이 아니셨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겁니다.”
물론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메켈린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하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출처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자신들의 가문의 명예까지 걸어가며 진실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마냥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연합에 가입해야 하네. 그 선결조건이 바로 지구권의 통합이고.”
“그러자면 공화당이 가장 큰 걸림돌이겠군요. 특히 네오콘이.”
“그렇겠지.”
보좌관들 중 누군가의 말에 메켈린도 긍정해 보였다. 지금 그가 가장 마음에 걸려하던 부분이 바로 공화당과 네오콘이었다.
지독한 국수주의자들인 그들에게 미합중국이란 존재를 없애고 하나로 통합된 세계정부의 일부가 되자고 한다면 강렬하게 반발할 게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해야 해. 일단은 자리를 마련해 보지.”
그렇게 하여 민주당과 공화당 양 당의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정식으로 의회가 열린 건 아니지만, 이만한 숫자의 상하의원들이 모였으니 작은 의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 모으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다. 메켈린이 제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상하의원들 쯤 되는 인물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는 게 쉬울 리 없지 않은가?
그나마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름까지 들먹이고 나서야 이 자존심 높은 작자들을 겨우 오늘 모임에 참석시킬 수 있었다.
오늘 이 장소만 해도 그랬다. 로스차일드 가에서 제공해준 별장으로서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곳의 야외 만찬에 참석한 의원들은 하나같이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음식을 즐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만찬이 진행되자, 메켈린이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금까지 많이들 궁금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많은 의원분들을 무슨 일로 한 자리에 모이게 했는지 말입니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공화당, 양 당의 의원들이 대부분 모였지만 어느 하나 이유를 아는 이들이 없었다. 대통령과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초청한 자리인지라 거절하지 않고 참석했을 뿐이었다.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초대하게 된 건 다름이 아닙니다. 미국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 세계의 명운이 걸린 일을 논하고자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명운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의원들이 그의 말에 웅성거렸다. 여기서 갑자기 왜 그런 뜬금없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말을 꺼낸 자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다 보니 일단 다들 섣부른 말은 삼가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제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우리 지구는 곧 멸망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것도 시한이 고작 3년 남았죠.”
다들 황당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말이 나오나 했더니 갑자기 멸망 운운이라니······. 종교나 음모론에서나 볼 법한 멸망론 아닌가?
민주당 대표가 어이없다는 투로 물어왔다.
“혹시 해서 묻겠는데···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대통령 각하? 아니면 농담?”
“저는 제정신입니다. 아주 말짱하지요. 그건 제 전담 주치의가 증명해줄 겁니다. 그리고 농담할 생각도 없습니다. 지금 하는 말은 전부 진실이지요.”
“미치거나 농담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게 더 어이가 없군요.”
여기저기서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보통 때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했을 공화당의 대표조차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을 지경이었다.
“허, 대통령이 실성을 하다니······.”
하지만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도 메켈린은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다.
“물론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인지라 여러분들이 듣기엔 좀 황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지요. 하지만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정보였고, 그만한 증거도 있습니다.”
그때부터 메켈린은 이진운과 엘레나에게 전해 들었던 사실들을 양당 의원들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초능력이 존재하고, 저 먼 우주에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거대한 우주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수많은 행성의 지성체들을 멸해온 괴물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구 침공이 고작 3년 앞까지 임박해 왔다고 전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대통령께서 어떻게 그런 망상을 하게 됐는지······.”
민주당 대표가 이젠 숫제 비난조로 외쳤다. 기껏 초대해서 이런 허황된 소리나 하자고 귀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게 한 것인가?
“망상이 아닙니다. 엄연한 사실이지요. 믿긴 어렵지만 말입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고 칩시다. 그럼 대통령께서는 그 정보를 어디서 들었다는 겁니까?”
그래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대통령의 태도에, 민주당 대표는 한숨을 내쉬며 채근하듯 물었다. 그래도 자신들 당에서 나온 대통령이니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식이었다.
“실종자들에게 들었습니다.”
“실종자? 설마······!”
갑자기 실종자 운운하는 그 말에 민주당 대표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퍼뜩 놀라 반응했다. 실종자라 한다면 기억나는 건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래요. 다들 아시겠지만 지난 12년 동안 전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실종사건이 발생했었죠. 대상은 거의 무작위에 가깝고, 실종된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사건 말입니다.”
“그럼 혹시 그 실종자들이?”
“민주당 대표께서 짐작하시는 대롭니다. 그들은 바로 그 외계로 불려나가 있었죠. 그래서 지구상에서 암만 찾아도 찾지 못했던 겁니다.”
메켈린은 그동안 빈번하게 발생했던 대규모 실종자들이 어디로 사라진 것이며,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막내딸인 엘레나 로스차일드도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와 함께 엘레나가 메켈린 옆 단상 위로 올라섰다. 이때가 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바로 그 엘레나 로스차일드에요. 2년 전에 지구에서 실종되었던 당사자죠.”
인사를 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모두의 안색이 경직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