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31화 (232/448)

10권-06화

“허!? 그건 또 뭐냐? 라이트 세이버?”

검신을 타고 흐르는 눈부신 검기의 형태에 메켈린이 당황해 물었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광선검을 연상케 하는 그 광경에 그것을 입에 담았지만, 엘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아니고요. 이건 제 힘의 일부라 할 수 있어요. 무기의 성능이 아니죠. 검기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곤 벽 쪽을 향했다.

“숙부님 조금 실례 좀 할게요.”

“실례? 무슨···?”

“저것 좀 망가뜨려도 되죠?”

그녀의 시선이 향한 창밖 너머로 의전용 차량이 보였다. 미합중국 대통령만 탈 수 있는 의전용 차량은 어지간한 전차에 비견할만한 내구성을 갖고 있었다.

그제야 메켈린은 엘레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너 설마!?”

“잘 보세요.”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몇 줄기 검광이 번뜩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이 움직이는 것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허공을 가로지르는 푸른 섬광이 일순 번뜩이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던 의전용 차량이 수십 수백 조각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와장창창!

바깥에선 소란이 벌어졌다. 멀쩡하게 서 있던 의전용 차량이 돌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수한 철 조각 폐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테러라 지레짐작하고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맙소사!”

메켈린은 진심으로 경악했다. 조나단이 가져온 영상을 통해 보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어지간한 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는 튼튼한 의전용 차량을 무슨 버터 자르듯이 썰어버린 것도 놀랍거늘, 창가에서 의전용 차량이 대기 중인 곳까지의 거리는 무려 수백 미터가 넘었다.

엘레나는 놀랍게도 검 한 자루로 그 간격을 초월해 차량을 베어낸 것이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잠시 뒤에야 퍼뜩 정신을 차린 메켈린은 즉시 비서실에 연락했다. 그리고 의전용 차량이 박살난 것은 테러가 아니라 모종의 실험에 의해 그렇게 되었음을 알렸다.

비서실에서는 그 말에 쉬이 납득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비상경계는 곧 해제되었다.

어떻게든 소란을 수습한 메켈린은 한숨을 내쉬며 조나단을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한밤중에 찾아와서 이런 소릴 해서 자네가 미친 줄 알았지. 헌데 정말이었군.”

“이해합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땐 그런 심정이었으니 말이지요.”

조나단도 그 말에 쓴웃음으로 화답했다.

아무튼 영능의 존재는 분명히 확인되었다. 단순히 눈속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의전용 차량을 한순간에 수백 토막으로 베어버린 그 힘! 그것이 사람을 향한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엘레나 솔직하게 묻겠다. 네 스승이라는 미스터 리는 어떤 사람이지?”

“저와 함께 온 함대 인피니티 킹덤의 사령관이자, 아르탈 행성 연합을 대표해 온 전권대사라 할 수 있죠. 즉, 그의 결정이 곧 연합의 뜻이라 할 수 있어요.”

“그렇군.”

메켈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조나단과 엘레나로부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엘레나는 현재 인피니티 킹덤이란 함대와 함께 왔고, 그 함대는 현재 달의 뒷면에 정박중이라고 했다.

심지어 광학 스텔스 모드를 전개 중이라서 지구권의 과학력으로는 관측조차 할 수 없다고 하니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희가 이끌고 온 함대의 힘은 어느 정도지?”

“솔직히 말한다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도 과학자는 아니라서요.”

“대략적으로 말한다면?”

“지구 같은 행성 수십 개는 박살낼 수 있는 수준의 화력? 하여튼 그 정도에요.”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모듈밴더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선명한 홀로그램 창이 텅 빈 허공에 출현하였다.

“그건?”

“모듈 밴더라고 해요. 지구식으로 말한다면 개인용 스마트 폰에 가까운 물건이에요. 물론 수준은 그것하고 천차만별이지만······.”

“허 참. 볼수록 놀랄 일 투성이군.”

메켈린은 놀람과 감탄이 뒤섞인 얼굴이 되었다.

지구에도 홀로그램 기술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용하기가 무척이나 복잡하면서도 많은 조건들을 요했다.

사용할 기기도 제법 큰데다가, 저런 홀로그램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여러 방향에서 빛을 쏘는 방식이어야 허공에 상을 맺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용되는 경우도 대규모 공연이 벌어지는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면 쉬이 활용되는 경우가 드물 정도였다.

하지만 저건 그냥 구현 자체가 자유롭지 않은가? 빛이나 뭔가를 쏴서 그걸 매개로 상을 맺는 게 아니라 영화 속에 나올 법한 홀로그램 창이 만들어지다니. 심지어 팔찌 형태로 휴대까지 간편해 보였다.

“홀로그램 기술이에요. 그냥 홀로그램도 아니고 유질량 홀로그램이죠. 만져보시면 아시겠지만 약간의 질량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터치감도 있고요.”

“정말이군.”

엘레나의 말대로 만져보니 정말로 질감이 느껴졌다. 물론 말랑말랑한 젤리를 건드는 느낌이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그냥 홀로그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건 내 상상을 한참 뛰어넘었어. 허공에 상을 맺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질량을 생성케 하는 홀로그램이라고? 이건 말 그대로 별차원의 기술이군.’

그리고 그 뒤에 홀로그램 창 위에 떠오른 영상은 메켈린을 더욱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곳에는 인베이더와 연합과의 전투가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 내용은 최근 라인트라에서 벌어진 전쟁의 영상이었다.

콰아앙!

엄청난 음향과 함께 영상 속의 우주공간이 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전함들이 침몰하고 주변에 떠돌던 거대한 소행성들이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스러졌다.

그리고 영상의 중심에는 엄청난 크기의 전함들과 그것을 압도할 만큼 거대한 괴물이 있었다. 지구의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거대한 괴물. 그것은 반신 급의 괴물 도무누스였다.

서로를 향해 온갖 공격을 퍼붓고 우주공간이 비명을 내질렀다.

지구 같은 행성이라면 수십, 수백 번이라도 박살날 수 있는 화력이 서로를 향해 전개되고 있었다.

주포가 고개를 쳐든 순간 강력한 중력파포와 마이크로 블랙홀이 형성되었고, 태양광을 능가하는 엄청난 열기의 감마 레이 버스트가 상대 함대를 말살시켰다.

정말이지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엄청난 광경들이었다.

“저게 인베이더와 연합의 전쟁이에요. 바로 최근 벌어졌던 일이죠. 저 정도에요.”

“······.”

연합도 연합이지만, 인베이더란 괴물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헌데 저런 괴물들이 하필이면 3년 뒤에 지구로 쳐들어온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지구의 멸망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충격적인 나머지 잠시 목이 잠겨있던 메켈린이 간신히 물었다.

“그럼 지구는 끝장이란 거냐?”

“그걸 막기 위해 연합에 가입하고자 하는 거예요. 적어도 인베이더와 싸우기 위한 최소한의 힘은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필요에 따라선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요.”

“살기 위한 지구권 통합이라.”

엘레나가 말한 연합의 요구는 간단했다. 지구권의 의사 통합.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한 상태로는 의견이 분열되어 대응할 수 없으니 최소한 통합해야 한다는 게 그 뜻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인베이더란 괴물이 쳐들어온단 사실도 과연 믿어줄지 의문이지만, 만일 믿는다 하더라도 그게 과연 쉬울 것인가?

그렇기에 이진운의 존재에 대해 알아야 했다. 엘레나의 말대로라면 그는 연합을 대신해 찾아온 자들의 대표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인물이지?”

물론 이진운에 대해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가 실종되기 전까지에 대해선 대략적으로 알아봤으니까. 한국 출신이며,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라는 것도 이미 알아냈다.

그리고 이진운 본인이 알지 못하는 출생에 대한 정보들도 이미 입수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메켈린이나 조나단은 그와 함께 지냈던 엘레나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숙부님이나 아버지가 기대하고 있는 애국심과는 아주 동떨어진 분이죠. 세상에 대해 꽤 냉소적이기도 하고요. 스승님의 관심사는 언제나 자기 주변의 가까운 사람에 한해서일 뿐이에요.”

“그렇군. 어떤 인물인지는 대충 알겠다. 자신의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전형적인 개인주의자 타입인가.”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겐 어떠한 대의나 명분도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별다른 욕심도 없이 자신의 품안에 있는 것만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 무슨 말이나 조건이 먹혀들겠는가.

물론 보편적인 사람의 감성을 갖고 있는 만큼 타인이 겪는 불행이나 고통에 대해 동정하기도 하고 애통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일 뿐이다.

모르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가며 싸울지를 묻는다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은 안 먹히겠군.”

“이미 조사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조국에 대한 애착이 생길만한 삶을 살아오신 분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지금까지 버려진 고아로 살아온 데다, 그가 성장해온 고아원도 한국의 허술한 법과 제도 때문에 온갖 불합리한 풍파를 견뎌 와야 했다. 만일 이진운이 청부업자로 활동하지 않았더라면 보육원도 진작에 쓰러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버려진 고아로 살아온 데다, 그가 성장해온 고아원도 한국의 허술한 법과 제도 때문에 온갖 불합리한 풍파를 견뎌 와야 했다. 만일 이진운이 청부업자로 활동하지 않았더라면 보육원도 진작에 쓰러졌을 것이다.

물론 조나단과 메켈린은 조사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거기까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그가 어떤 불법적인 경로로 돈을 벌어들인 것까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결국 협상이 답이라는 말이군. 그것도 합리적인 방식의······.”

지금까지 살아온 성향을 보면 이진운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할 인물은 절대 아니다.

영웅적인 풍모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인베이더들에게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할 때는 망설이지 않았으니까요.”

하긴 엘레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엘레나는 그가 보호하고자 하는 친인의 범주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메켈린은 고마움을 표했다.

“···그래. 아무튼 고맙구나. 많은 도움이 되었어.”

“고맙긴요. 이게 다 지구를 위해서인데요. 저도 지구인이고요. 아무튼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떻게든 노력은 해 보마.”

어쨌든 엘레나와 조나단 덕분에 다른 국가보다 현 상황을 더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충분히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진운의 성향도 파악한 만큼 어떤 무모한 시도를 할 일도 방지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다른 국가들은 과연 어떨까?

‘러시아나 중국··· 특히 중국은 미친 짓을 할지도 모르겠군.’

겉으로 보면 이진운은 일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가진 힘이 엄청나다 하더라도, 일단 외면상으로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으니까.

그가 알고 있거나, 그가 가진 힘을 분석하겠다고 국가의 무력을 동원하는 일도 발생할지 모른다.

‘적어도 우리 미국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어.’

그렇게 신중을 기한 메켈린은 엘레나에게 말했다.

“그와 만나고 싶구나. 약속은 잡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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