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30화 (231/448)

10권-05화

그 순간 조나단의 얼굴 위로 두려움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설마 하는 기대감도 어렸다.

“그럼 내 딸도?”

“아니, 아직 배우는 단계라서 그 정도는 못 돼. 하지만 엘레나 혼자만으로도 미국의 주 방위군 정도는 우습게 제압할 정도는 된다.”

“주 방위군을 혼자서···!? 갈수록 미치겠군.”

“그만큼 인베이더라는 것들이 괴물이라는 거다. 좀 강력한 개체 하나만으로도 전쟁의 판도를 뒤집지.”

물론 주 방위군이 연방정부 직할의 연방군에 비한다면 수준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엄연히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에 속한 군대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군사강국과 비견되는 수준이었다.

헌데 자신의 딸이 혼자서 그런 주 방위군을 감당할 수 있다니. 지난 2년이란 시간 동안 많이 자랐지만, 여전히 어리고 연약해 보이는 딸의 모습을 생각하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놀랐던 감정도 곧 수습되었다. 지금까지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는 거대 세력을 이끌어온 만큼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도 익숙했던 것이다.

“일단은 내 의형에게 말을 해보지. 내 부탁이라면 만나 주실 테지.”

“되도록 최대한 서둘러줬으면 좋겠어.”

재촉하는 그 말에 조나단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지구 멸망에 관한 일이니 서둘러야겠지. 아무리 늦어도 며칠 내로 만날 수 있게 해주겠네.”

“그럼 우리 일행이 묵을 방이나 내 줬으면 좋겠는데. 우린 현재 실종자가 된 처지라서 지구에서 머물 만한 연고가 없어서 말이야.

“알겠네. 바로 조치해두겠네. 어차피 본가에 손님이 머물 빈 방은 넘치도록 많으니까.”

조나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가신들이 즉시 바깥에 있던 고용인들을 불러들였다. 이진운 일행을 숙소로 안내해줄 사람들이었다.

일행은 곧 그들을 따라 응접실을 나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을 뒤따라 나서려던 이진운은 잠시 멈춰서더니 조나단을 돌아보았다.

“당신도 오늘만큼은 엘레나와 회포나 푸는 게 어때? 지난 2년 동안 헤어져서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텐데 말이야.”

“···그래야겠지.”

저도 모르게 엘레나를 응시하게 된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 * *

이진운 일행은 로스차일드 본가 저택에서 하루를 보냈다. 조나단은 일행 개개인에게 개별 고용인까지 붙여줘 가며 귀빈 대접을 해줬지만, 생각만큼 편한 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처음 얼굴을 보게 된 리스티의 얼굴이 별로 편치 못해 보였다. 잠을 설친 듯한 기색이었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못 잤어?”

“그렇다기보다는 불편해서요. 침대도 그렇고··· 이것저것 다요. 심지어 씻는 것도 그래요. 대단한 가문이라더니 시설이 너무 구시대적이에요. 아저씨는요?”

이것저것 불평을 토해내며 이진운에게 질문을 돌리는 리스티. 하지만 이진운은 크게 불편함을 느낀 일이 없었다. 오히려 지구에 있던 시절에는 이보다 훨씬 못한 곳에서 살지 않았던가.

나름대로 청부 일을 하면서 거금을 벌긴 했지만, 그가 살던 저택은 큰 부지에 비해 꽤 수수한 편이었으니까.

“글쎄. 난 별로 불편함을 못 느꼈다. 그냥 익숙하던데. 오히려 예전에 살던 곳보다 더 나은 편이라서 말이야.”

그제야 이진운이 지구 출신임을 재삼 깨달은 리스티였다. 이런 불편한 곳에서 평생 살아왔으니 불편함을 잘 모를 만도 했다.

“하긴, 아저씨는 이곳 출신이었죠? 난 연합 태생이라 그런지 영 아니네요. 특히 침대는 못 견디겠어요. 모함에서 공수라도 해 와야 할까 봐요.”

“침대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곳 침대하고 차이가 있어?”

달의 뒷면에서 대기중인 모함에서 침대를 공수해오겠다는 말에 이진운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지만, 리스티는 정색하며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침대는 영능학의 총체라니까요. 거기에 얼마나 많은 기술과 술식이 담겨 있는데요. 지구의 침대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어요. 몸의 컨디션은 물론, 노화방지, 피부개선 등 얼마나 기능이 다양한데요?”

“···그 정도였나?”

편하다는 건 느끼긴 했어도 그 정도인줄은 미처 몰랐던 이진운이었다. 하긴 내공이 일정 수준이 되면서 항상 육체의 컨디션을 최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만큼, 그 효과를 크게 못 느낀 탓도 컸다.

그리고 그런 불편은 다른 일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엘레나는 이진운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애당초 지구 출신이 아닌 레이첸이나 아리엔, 클레브들은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공수라도 해 와야 하나?”

이쯤 되자 이진운도 모함에서 침대를 직접 공수해 와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조나단이 별다른 기별도 없이 그들을 찾아왔다. 마침 아침 식사를 끝낸 시각이었다.

“무슨 일이지?”

이진운이 묻자 조나단이 바로 용건을 꺼내놓았다.

“의형께서 자네들을 보고자 하셨네.”

“벌써? 며칠 걸린다더니.”

이진운이 뜻밖이란 듯 묻자, 조나단이 자신 옆에 있는 엘레나를 가리켰다.

“엘레나의 공이 컸지.”

“그 아이가 우리에 대한 걸 이야기 했나 보지?”

“어느 정도는. 설명을 하지 않고선 자네들을 만나게 할 명분이 없었어. 사사롭게는 내 의형이지만 미합중국을 통솔하는 위치에 계신 분이네. 신분조차 명확하지 않은 자네들을 만나게 하는 게 그리 쉬울 줄 알았나?”

“하긴 그렇겠지.”

연합에서 보면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지구 내에서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두 손가락 안에 꼽는 중요 인물 중 하나다. 제아무리 개인적인 연이 있다 하더라도, 법과 절차가 있는 만큼 만나게 해주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그럼 언제 쯤 만날 수 있지?”

“바로 지금. 즉시 보고자 하시더군.”

딱히 정해진 약속 시간도 없이, 바로 만나자 한다는 그 말에 이진운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격도 급하지.”

* * *

현 미합중국의 대통령 [메켈린 스콧라이어]는 대단한 사업가였다. 자수성가로 일어선 그는 여러 차례 투자를 통해 거금을 벌어들였고, 그것으로 사업체를 세워 미국 내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부자가 되었다.

그 와중에 로스차일드 가문과도 접촉하게 되었고, 당시 후계자 위치에 있던 조나단과도 의형제지간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뒤, 메켈린은 조나단의 도움으로 오랜 꿈이었던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벌써 임기를 한번 마치고 재선까지 성공한 그는 어느덧 대통령 임기 7년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미국을 운영해왔던 그는 오늘 느닷없이 날아온 소식에 자신의 의제가 미친 것 아닌지 의심해야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이 말을 믿으란 소리냐?”

메켈린은 하도 기가 막혀서 그렇게 되물었지만, 조나단은 진지하기만 했다.

“예. 제 두 눈으로 확실히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더군요.”

“휴우······.”

메켈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조나단과 의형제의 연을 맺은 지도 어언 15년이 흐른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조나단에 대해선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았다. 그는 진중하면서도 거짓을 말하는 성품이 아니었다. 차라리 말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허튼 소릴 내뱉을 위인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외계인에 이젠 외계괴수, 그리고 초능력자인가? 미치겠군. 마블이나 D.C라도 초빙해야 하나? 슈퍼맨까지 나오면 안성맞춤이겠어.”

“하지만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것도 제 집에서 말이죠.”

메켈린은 조나단이 가져온 영상들을 모니터를 통해 확인했다. 그것은 저택의 CCTV를 통해 촬영된 영상이었다.

거기엔 이진운이란 자의 일행들이 로스차일드 가 저택을 지키는 호위병력들을 제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이 놀랍게도 초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불을 뿜고 손에서는 광선검 같은 것을 일으켜서 베는 광경에, 메켈린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거, CG는 아니지?”

“CG따윈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 현실이죠. 그리고 제 저택이 지금 저 꼴이 났고요.”

아름답기로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의 정원이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 그것도 이진운이란 사내의 발구름 한 번에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크레이터만 남게 된 것이다.

“이건··· 인간이 아니군. 초능력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이런 게 가능하다고?”

“심지어 제 딸도 마찬가지더군요. 그 연합이란 곳에는 미약하든 어쨌든 다들 이런 초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제 딸도 마찬가지고요.”

조나단의 딸인 엘레나가 언급되자 메켈린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2년 동안이나 실종되었던 엘레나가 돌아왔다고 했지? 한번 보고 싶군.”

“지금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경호원들에게는 막지 말라고 하고.”

얼마 뒤 엘레나가 백악관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녀를 보자마자 메켈린은 엘레나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엘레나!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이렇게 무사하다니! 하나님이 도우셨어.”

어렸던 시절에 비해 많이 성장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메켈린은 엘레나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어린 시절에도 종종 안아주던 그였던지라, 엘라나도 별 부담 없이 안겨들었다.

잠시 뒤 그의 품에서 떨어진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숙부님.”

“그래, 고생 많았다. 설마 네가 실종된 것도 모자라 그런 일들을 겪었을 줄은 정말 몰랐구나.”

“하지만 믿기지 않으시겠죠?”

대놓고 묻는 그 말에, 메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한다면 그렇구나. 너무 상식에서 동떨어진 이야기야. 믿기 쉽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러니 널 못 믿는다고 해서 서운해 하진 마렴.”

“알아요. 저도 직접 겪지 않았다면 못 믿었을 거예요.”

그녀도 이능이란 게 지구에서는 비현실적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외계인과 연합의 존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증거로 보여드릴게요. 영능의 힘을요.”

“지금 이 자리에서 가능하니?”

“물론이죠. 참 지금 제가 이곳에 올 때 금속탐지기에 무기가 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건 아시죠?”

“그렇지. 몸수색까지 거쳤는데도 아무것도 없다고 했었지.”

제아무리 가까운 친인이라 하더라도 미 합중국의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선 금속탐지기는 물론 몸수색까지 거치는 건 기본이었다. 엘레나도 그런 과정을 통과했기에 이렇게 백악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잘 보세요.”

그 말과 함께 엘레나의 손 위에 희미한 광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등이나 램프의 불빛과는 전혀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일어나는 정체불명의 빛이었다.

그것이 점차 어떤 형상으로 변하더니, 곧 잦아들기 시작했다. 빛이 수그러든 뒤에 나타난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엘레나는 그렇게 자신의 손 안에 구현화 된 검을 쥔 채 말했다.

“제 고유스킬인 무구구현이에요. 온갖 무장이나 무기들을 임의로 구현할 수 있죠.”

“그게······?”

눈으로 보고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빛이 나타나더니, 그것이 어떤 형상으로 빚어지면서 검이 생성되었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설마 마술 같은 건 아니겠지?”

“그런 속임수 따위와 비교하면 서운하죠. 그럼 마술로 이런 것도 가능할까요?”

엘레나는 즉시 검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신 위로 선명하기까지 한 새파란 광망이 길게 치솟아 올랐다.

최근 성취를 이룬 검기상인의 경지였다. 어느덧 그녀도 절정에 이르고 만 것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