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04화
하지만 상대의 그런 반응에 이진운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21세기에도 외계인이 실존할 거라고 운운하는 세상인데, 우리가 우주의 어느 행성에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이유는 없을 텐데. 심지어 미국에는 외계인 고문한다는 51구역인가 하는 소문도 있더만.”
“다 헛소문이지. 그런 일 전혀 없네. 그곳은 그냥 첨단 연구지역일 뿐이야. 워낙 중요한 기술들 때문에 보안이 너무 철저해서 그런 소문이 돌았던 거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조나단은 51구역에 대해선 단호히 잘라 말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가주인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 아무튼 이 우주에는 우리 지구인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지성체들이 존재하고 있어. 지구에만 생명체가 사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지금 나더러 외계인 납치 설을 믿으라는 건가? 허 참, 이젠 CSI의 멀더와 스칼렛만 부르면 되겠어.”
이젠 외계인의 실존 여부까지 언급하는 이진운의 말에, 조나단은 이젠 믿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상대가 굉장한 초능력까지 보여주긴 했지만, 외계인에 대한 것까지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지 않은가.
그러자 옆에서 엘레나가 거들었다.
“아버지, 스승님의 말은 전부 다 진짜에요. 물론 외계인이라 해서 영화에 나오는 그런 괴물은 아니에요.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거나 거의 유사한 유사인종에 가까워요.”
“으음······.”
이젠 딸이란 사실이 확실해진 엘레나까지 이렇게 말하니, 더 이상 허황되다고 고집부릴 수도 없었다.
거기에 이진운이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두자면 납치가 아니라 소환이지. 말은 분명하게 알아들었으면 좋겠군.”
“그게 무슨 차이지? 사람들이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던 사건들인데 이게 납치가 아니고 뭐냐!”
이건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지구에서 사라졌던 실종자들이었다. 이게 납치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납치란 말인가?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딸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납치 사실을 부정하는 이진운의 말은 변하지 않았다.
“납치는 아니야. 그 외계인들도 의도한 게 아닌 일이었으니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이야. 의도하지 않았는데 강제로 데려갔다? 무슨 그런 앞뒤도 맞지 않는 모순된 소리를!”
“이제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지.”
이진운은 그때부터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대략적인 사실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 우주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오로라 시스템과, 지성체를 멸하기 위해 온 우주를 파괴하고 다니는 인베이더의 존재. 그리고 이에 대적하고 있는 아르탈 행성 연합과 론데니움 제국, 메세니아 연방 공화국 같은 우주적인 세력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리고 아무런 관련도 없던 지구의 사람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연합에 소환되어 싸우게 되었는지도 알아듣기 쉽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까··· 그 인베이더라는 놈들이 우리 지구를 3년 이내에 침공해올 가능성이 높다 이건가?”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도 이렇게 서둘러 귀환하진 않았겠지.”
“으으음··· 정말로 믿기 힘든 이야기야. 초능력에 외계인의 존재도 그렇지만 이젠 우주 곳곳을 침략하는 우주괴수까지 나오다니······.”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실을 듣게 된 탓인지 조나단은 너무도 혼란스러워 했다. 그건 그 옆의 측근들도 마찬가지였다.
조나단은 지난 2년 동안 그 인베이더란 괴물들과 싸워 온 엘레나가 불쌍하고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내색할 때가 아니었다.
이진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구는 그야말로 멸망의 기로 앞에 놓인 거나 다름없었다.
“3년이라니··· 뭘 해보기에는 너무 턱없이 부족해.”
조나단은 눈앞이 노래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진운에게 들은 연합이나 제국, 공화국의 세력은 아직 태양계는커녕 달에도 겨우 유인으로 도달할 수준에 불과한 지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하고 수준이 높았다.
그런 우주의 거대 세력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게 그 인베이더들이니, 지구가 멸망하는 것 쯤은 한순간에 불과할 터였다.
“···그래서 우리 가문에게 무슨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 로스차일드 가문도 결국은 변두리 시골 행성에 틀어박혀 있는 작은 가문에 불과할 텐데 말이야.”
조나단이 그렇게 묻자, 이진운은 이제야 본론을 꺼내놓았다.
“당신들 가문의 인지도가 필요하지. 이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면 말이야.”
“설마 그 말은··· 지구권 국가들을 전부 하나로 묶을 셈인가?”
그 의미를 깨닫고는 깜짝 놀라 되묻는 조나단에게, 이진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바로 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최소 조건 중 하나거든. 각국의 의견통합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행성 따윌 연합에서 받아들일 리가 없지.”
“그럼 UN은?”
“강제성조차 별로 없는 그런 느슨한 국제기구 따윈 의미가 없어. 러시아나 중국이 국제정세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UN에서 그들의 과격 행태를 과연 막을 수나 있나?”
“······.”
조나단도 그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UN은 말이 국제기구이지, 순위권에 드는 초강대국들을 상대로는 별다른 강제성이나 제제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통합만 가능해. 적어도 지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이야.”
“정말로 막막하군···. 우리 가문이라 해도 세계 통합을 운운하긴 어려워. 미국 내에서는 그럭저럭 발언권이 있지만 세계통합 같은 걸 운운하면 바로 끝장이야.”
만일 로스차일드 가문이 진지하게 세계통합을 추진한다고 하면 세계적으로 비웃음을 사거나, 아니면 공공의 적이 되어 매장당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영화나 각종 서브컬쳐 속에 등장하는 세계정복을 노리는 악의 세력으로 정말 낙인찍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구권 전체가 3년이란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어떻게든 살기위해 발버둥치려면 무모한 짓이라도 시도해 봐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진운이 조나단에게 건네 온 요구사항은 그렇게까지 무모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각 국의 정상들부터 만나볼 생각이다. 그들을 설득해서 어떻게든 세계통합의 밑바탕을 닦아야지.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렇군. 그게 우리 가문을 찾아온 목적이었군.”
“그래.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어.”
그래도 막무가내는 아니란 사실에 조나단도 조금은 안도하는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만남을 주선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 자리에서 통합을 운운해봐야 먹히지 않을 게 뻔했다.
오히려 미친 소리로 치부하거나, 자신들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도 쉽지 않을 거다. 그나마 현 미국 대통령인 메켈린 스콧라이어는 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니 그래도 좀 낫지만, 러시아 대통령이나 중국의 주석은 적대적으로 나오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그 정도는 나도 충분히 감안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끝가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우리도 손을 쓸 수밖에 없어.”
손을 쓴다는 말에 조나단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그 말은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건가?”
“그래야지. 나도 지구가 멸망하는 꼴은 보기 싫거든. 방치하다가 멸망하느니 힘으로 제압해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겠지.”
지구 전체를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스케일의 대답에, 조나단은 일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곧 호흡을 가라앉힌 그가 다시 물었다.
“···당신이 강하다는 건 알아. 그 초능력의 힘도 잘 봤고. 하지만 상대는 전 세계야.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들의 힘은 미국 못지않지. 그런 국가들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저택의 정원을 초토화시킨 그 힘은 확실히 대단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현대 화기로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의 위력이었다.
헌데 그 정도로 전 세계를 무력으로 제압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차라리 세계 각국의 중앙정부나 국가수반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이는 정도라면 모를까 세계를 무력으로 억누를 정도라 보긴 힘들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흐음, 그럼 한 가지 이야기를 해 주지. 연합에서는 인베이더를 여러 단계로 나누는데 그 중에서 제법 강한 녀석의 등급을 성멸 급이라고 이름 붙였다.”
“성멸?”
“이름 그대로 별을 멸한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준 이하의 문명이라면 단독으로도 행성 하나를 멸하는 게 가능하단 의미지.”
“그런 게··· 가능하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그에게 이진운은 설명 대신 모듈밴더로 홀로그램 창을 띄웠다. 거기에는 성멸급 개체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연합의 교육용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조나단과 가신들은 처음에는 지구의 과학력으로는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정교한 홀로그램 스크린의 모습에 놀라워하다가 곧 영상의 내용에 경악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인간이 아닌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형 괴물 하나가 어떤 행성을 초토화하는 광경이 담겨져 있었다.
콰아앙! 콰콰콰!
영상에 나온 그곳은 현대의 지구와 비견될만한 과학력을 보유한 행성이었는데, 성멸급 인베이더를 상대로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인베이더가 입에서 빛을 뿜을 때마다 도시 전체가 쓸려나갔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물론 행성에 속한 국가들도 최대한 저항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헛된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강력한 화포도, 미사일도 인베이더를 조금도 손상시킬 수 없었으니까.
“잘 봤겠지? 그냥 그래픽으로 꾸민 영상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들이다. 그 행성에 남아 있던 위성들이 당시 촬영했던 영상이지.”
“······.”
“지구의 문명은 연합이 책정한 등급 중에서도 4레벨에 해당한다. 통신 네크워크를 이룬 단계를 의미하지. 그건 연합의 기준에서 수준 이하란 의미야. 연합이 인정하는 문명 수준은 최소한 콜로니를 세우고 주변 항성계로 진출할 수 있어야 하지. 그게 바로 5레벨이야.”
“······.”
이진운은 그 이상 덧붙이지 않았지만, 조나단이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한 마디로 말해 지구는 성멸 급 하나만 나타나도 단독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거였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은 행성 전체가 황폐화 된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살아 있는 존재는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나마 살아남아 있던 위성이 없었더라면 이 행성이 초토화된 이유조차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나단과 가신들은 반쯤 넋 나간 얼굴이 되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어서였다.
그런 그들에게 이진운은 가소롭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지구권 국가들의 군사력? 웃을 가치조차 없는 일이야. 여기 있는 레이첸만 하더라도 전 세계를 혼자서 짓밟을 수 있어. 몸이 하나뿐인 만큼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말이야.”
“이런 어린 소년이?”
그건 더 충격적이었는지, 조나단이 흠칫 몸을 떨었다. 레이첸은 그런 조나단이 한심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이 정도 가지고 놀라지 마. 저건 그나마 양호한 거니까. 인베이더 중에는 저것보다 더한 괴물들도 있어. 정말 상종 못할 것들이지. 그런 괴물들마저 잡는 게 바로 여기 스승이야. 그런데 지구권 국가들을 무서워해? 그건 개미가 전차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 이상으로 비현실적인 소리라고.”
그 말을 듣자 이진운이 달라 보였다. 설마 저런 영상 속의 괴물마저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진운과 그 일행이 가진 힘을 다시 재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진운은 그런 조나단들의 시선에 픽 웃고 말았다.
“인베이더란 것들은 말 그대로 별을 부수고 항성계를 파괴하는 괴물들이다. 그런 괴물들과 싸우는 우리들이 그보다 약할 것 같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