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28화 (229/448)

10권-03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이 마음을 드러내진 않았다. 지금까지 봐온 가짜들도 다들 그러했었다. 연기를 배운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그럴듯한 모습과 표정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저 소녀의 정체가 확실해질 때까지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를 생각이었다. 조나단은 애써 침착한 얼굴로 화답해 나갔다.

“물론 자네 말대로 그 아이가 내 딸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냥 그 말만 듣고 믿기에는 지난 2년간의 시간동안 우리가 겪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 일단은 확인이 필요해.”

“하긴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믿지 못할 만도 해. 확인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하게 해주지. 엘레나도 그걸 원할 거고.”

얼마든지 확인하게 해주겠다는 그 말에, 조나단의 가슴 속에 차 있던 의심이 일정 부분 누그러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전에 한 가지만 묻고 싶군. 왜 우리 가문을 찾아온 거지?”

“엘레나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아이니까. 자기 집에 돌아가겠다는데 막을 이유가 있을까?”

“···그렇군.”

조나단은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상대방이 내놓은 답변은 그야말로 정론이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만큼 더 큰 이유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진운의 대답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당신들 로스차일드 가문의 인맥과 영향력도 필요해.”

“우리 가문의? 본가를 이용해서 뭘 할 생각이지?”

조나단이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당신들 가문을 이용해서 어떤 이득을 취할 생각은 없어.”

“그럼 무엇 때문에 접근한 거냐?”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고 해두지. 그걸 해결하기 위해 당신들 가문의 도움이 필요한 거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조나단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건 그 옆의 가신들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지구의 명운이라고?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대로 가다간 지구는 3년도 채 못 되어 멸망하게 될 거야.”

“며··· 멸망!? 난데없이 웬 헛소리지? 지구가 멸망해? 냉전도 오래전에 끝난 지금 시대에 무슨 핵전쟁이라도 벌어질 상황인가? 아니면 저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거대한 소행성이 날아오기라도 하는 건가?”

이젠 눈앞의 사내가 강력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가 아니라 그냥 미쳐버린 망상가로 보였다. 3년 후에 지구의 멸망이 다가온다니··· 자신이 무슨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가라고 주장하기라도 할 생각인 것인가, 이 자는?

그런 조나단의 표정을 통해 생각하는 바를 읽어낸 이진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헛소리 같지만 전부 사실이니 어떡하겠나? 지구 멸망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어.”

“그럴 리가! 우리 가문은 전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런 본가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멸망의 조짐이 생긴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로 치부하는 그에게, 이진운은 분명하게 말했다.

“한 가지 사실은 간과했군. 우린 당신들과 달라.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고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기에 알 수 있지.”

“그 말은···?”

“그래, 이제야 좀 말을 알아들은 것 같군. 로스차일드 가문이 지구에서 대단한 위치라는 건 나도 잘 알지. 하지만 그런 당신네 가문도 이런 힘이 존재할 거란 건 한 번도 못 들어봤을 텐데.”

이진운은 오른손 검지를 세웠다. 그러자 손가락 위로 휘황찬란한 섬광이 길게 솟아올랐다. 그것은 검 없이 구현한 의형검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살짝 휘둘러지는 순간 궤적에 포함된 모든 것이 그대로 절단되었다. 무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참격의 흔적이 대지 위에 새겨진 것이다.

로스차일드 본가의 저택 부지가 직경만 30km에 달했기에 망정이지, 이게 일반적인 도심이나 주택가에서 행해졌다면 상상을 초월한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조나단은 입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비명을 억지로 참아내면서 침음했다.

“으음··· 믿기지 않는 힘이야. 이게 일개 개인이 가질 수 있다고?”

이건 상상을 초월했다. 손가락 위로 마치 제다이 나이트의 라이트 세이버 같은 검을 구현하더니, 단 한번 휘둘러서 광활한 저택 부지를 둘로 나눠버렸다.

만일 이게 자신들을 향해 휘둘러졌다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봐주면서 싸웠는지도 알 수 있었다.

아마 마음만 먹는다면 로스차일드 본가 따윈 한순간에 초토화 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건··· 대체 무슨 힘이지?”

“영능이지.”

“영능?”

처음 듣는 명칭에 조나단이 되묻자, 이진운은 간단하게 비유해서 설명해주었다.

“당신들 상식에 맞춰 이야기한다면 초능력에 가까울 테지. 판타지나 무협에 비유한다면 마법이나 무공일 테고.”

“으음.”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보편적인 감각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영자란 무형의 에너지가 존재하고, 그것을 다루는 수법이 바로 영능이지. 우린 바로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방금 전에 사용한 수법도 그런 종류의 일환이고.”

조나단으로서는 난생 처음 듣는 것들이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상대가 말한 영능이란 게 한순간에 생겨난 게 아니란 것을.

영자란 무형에너지를 관측하고, 그것을 활용할 체계적인 방법까지 만들어내려면 아주 오랜시간 분석하고 연구해야 했을 터. 그것도 상당한 규모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믿기지가 않는구나. 설마···우리 가문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런 게 만들어졌다는 건가? 아니면 오래 전부터 은밀히 전해 내려오기라도 한 건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지만, 어떠한 단서도 없는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당신도 상황 파악이 되었겠지? 이런 힘을 가진 우리가 그냥 허튼 소리나 하려고 로스차일드 가문까지 찾아왔을까? 그리고 실종되었던 당신 딸은 어떻고? 왜 실종되었고, 어째서 2년 동안 돌아올 수 없었는지도 온통 의문이었을 텐데.”

“···다 이유가 있다 이거군.”

이쯤 되니 조나단도 이진운이 뭘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그때의 실종부터 영능의 존재, 그리고 방금 말한 지구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조나단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일단 자리를 옮기기로 하지. 이런 장소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상대방이 비로소 제대로 대화를 할 생각을 드러내자, 이진운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었다.

“이제야 마음을 먹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엘레나에 대한 증명도 같이 했으면 좋겠군. 당신도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겠지. 진짜 딸인지 아닌지 여부를 두고 계속 의심하는 것도 괴롭겠지?”

“···바로 준비시켜두지.”

엘레나가 다시 한 번 언급되자 조나단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종되었던 딸이 돌아왔는데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느라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는 지금의 처지가 너무도 한심스러워서였다.

이진운 일행은 초토화된 정원을 뒤로 한 채 저택 내부로 향했다. 곳곳에 남아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호위 병력들과 가신들이 보였지만, 더 이상 적대감을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이진운 일행의 비인간적인 무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는 다들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런 반응을 본 레이첸이 투덜거렸다.

“칫, 시시하네. 대단한 가문이라더니 이 정도로 쫄아서 난리들이야? 우리 가문에 비하면 참······.”

“어쩔 수 없잖아요. 전부 다 영능을 처음 경험해본 사람들인데. 오빠네 바이우드 가문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죠.”

엘레나는 레이첸을 향해 눈을 흘기며 그렇게 쏘아붙였다. 자신의 가문이 바이우드 가문에 비해 보잘 것 없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비교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바이우드 가문?’

함께 걸어가던 조나단은 엘레나의 입에서 언급된 바이우드 가문이란 명칭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오랜 세월을 내려온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젠 온갖 음모론에서 흑막으로 등장할 만큼 유명하고도 막강했다.

헌데도 그런 로스차일드 가문을 평가절하 할 만큼 대단한 가문이 존재했다면 자신이 모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곧 알게 되겠지.’

어느덧 응접실에 도착했다. 조나단의 뒤를 따라 이동한 일행들은 그곳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편에는 조나단과 그의 가신들이 마주앉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니 메이드로 보이는 여성들이 차를 내왔다.

“이제 좀 대화할만한 환경이 된 것 같군.”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이진운은 자신 앞에 놓인 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과가 준비되는 사이 엘레나는 홍채와 정맥, 그리고 유전자 감식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조나단의 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확인해봤다. 정말로 내 딸이더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조나단은 감정을 억누르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당장이라도 엘레나를 품에 안고 그동안의 슬픔과 아픔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진운도 그런 상대의 마음을 읽었지만, 일단 이대로 대화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당신이라면 잘 알거야. 그동안 있었던 대량실종 사태를. 지난 10년, 아니 12년 동안 매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실종된 사건은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래 잘 알지. 엘레나도 그 실종자들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조나단은 그 이후 실종자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어디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오랜 시간동안 조사해왔다. 특히 딸이 실종된 이후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얻은 게 없었다. 알아낸 것은 그들이 마치 종교에서 말하는 휴거라도 당한 듯 세상에서 완벽하게 증발되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이진운은 오히려 그렇게 반문하면서 오른손 검지로 슬쩍 저 위를 가리켰다. 그것을 본 조나단이 무슨 뜻인가 싶어 되물었다.

“저 위를 말하는 건가? 하늘?”

“아니, 하늘 말고 저 위엔 뭐가 있을까?”

조나단은 그제야 이진운이 어딜 가리키는 건지 깨달았다. 지구멸망을 운운했던 아까의 그 말과 지구상에서 찾을 수 없었던 실종자들. 그리고 지금까지 로스차일드 가문의 정보망에도 한번도 걸려들지 않았던 영능이란 힘!

그 말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딱 한 군데뿐이다.

“···설마 우주를 말하는 건가?”

“그래, 정답이야. 우린 우주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에서 관측할 수 없는 아주 먼 행성에 있었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으로 소환되었다고 하는 게 옳겠군.”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행성에 있었다는 그 말에 조나단은 이젠 놀라다 못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말 터무니없군. 이젠 초능력에 이어 우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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