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27화 (228/448)

10권-02화

* * *

“대체 이건······!?”

로스차일드의 가주 조나단 로스차일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CCTV를 통해 외부상황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꿈이라도 꾸는 걸까? 너무도 비현실적이야. 심지어 내 딸이라고 한 아이까지 말도 안 되는 힘을 발휘했어. 아니, 그 전에 내 딸이 맞긴 한 건가?”

앳돼 보이는 소년이 날아오는 총탄을 맨손으로 잡아내는 것도 모자라 이젠 전신에서 푸른 불길을 일으켜 총탄을 전부 탄화시켜 버렸다.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일행으로 보이는 자들도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방금 그 소년 같진 않아도 인간이라 믿기 힘든 힘과 능력을 발휘해 현대화기로 무장한 가문의 호위들을 갓난아이 다루듯 제압하고 있었다.

수백 명에 달하던 호위들이 제압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이 장난이라도 치듯 여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아마 그보다 더 짧게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조나단 로스차일드는 어떻게든 자신의 이성을 붙들었다. 여기서 냉정을 잃고 흔들렸다간 가문이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그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즉시 외부에 연락을 넣어라! 본가의 PMC(Private Military Company.민간군사업체)를 불러!”

“아··· 안 됩니다! 진작부터 시도하고 있었지만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통신 자체가 먹통이에요.”

“그럼 유선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둔 비상 핫라인이 있을 텐데?”

“···그것도 불통입니다. 아무래도 저 자들이 외부와 연결된 통신망을 전부 차단시킨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전파방해나 유선의 절단 흔적도 없다는 겁니다. 모든 게 멀쩡한데 통신만 막힌 상태입니다. ”

가신들의 보고에 조나단의 얼굴은 말 그대로 혼란으로 일그러졌다.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무선이야 그렇다 쳐도 유선까지 차단하다니! 유선을 물리적으로 끊어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자기 폭탄(EMP)이 터진 것도 아닌데 어째서?”

모든 게 상식에서 한참 벗어났다. 대체 무엇이 통신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파악이 되질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저들이 모니터 화면 너머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 그냥 눈속임이 아니라 진짜로 초능력인지를.

만일 이 가정이 진짜라 한다면 아마도 통신을 방해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방법도 초능력에 기인한 방법일 가능성이 컸다.

쾅! 타타타탕!

현대 화기가 쏟아내고 있는 굉음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침입자들은 저택을 지키고 있는 무장 병력들을 그야말로 양떼를 학살하는 맹수마냥 휩쓸고 다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박살난 화기들과 정신을 잃고 쓰러진 병력들만 남아 있었다.

이쯤 되니 두려움보다는 의문이 들었다.

“이해가 안 가는군. 어째서지? 저런 힘이 있는데 어째서 내 딸의 모습을 한 아이를 앞세웠던 거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저 힘이 정말로 초능력 같은 거라면, 굳이 자신의 딸과 흡사한 가짜를 앞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무장병력을 저토록 간단히 제압할 힘이라면 그런 번거로운 짓 할 필요 없이 힘으로 협박을 했어도 충분히 먹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가정은 두 가지다.

가짜 딸을 앞세워서라도 자신에게 뭔가를 얻어낼 게 있다거나, 아니면 지금 모니터 속에서 현대화기들을 상대로 초인적인 힘을 보여주고 있는 저 소녀가 진짜로 엘레나일 가능성이었다.

‘엘레나···.’

실종된 지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만일 저 소녀가 진짜 엘레나라면 대체 지난 2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란 말인가?

게다가 저 믿기지 않는 초인적인 힘도 그랬다. 세계를 주름잡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가주로서 세상에 숨겨진 비사나 사실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영화에서나 볼법한 초능력 같은 게 실제 한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가주님! 제3 방어선 돌파 당했습니다. 막을 수가 없어요!”

“괴··· 괴물들입니다. 시큐리티 시스템이 무용지물로 박살났습니다. 이젠 더 이상···.”

이쯤 되니 더 대응할 방법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되지만 않았어도 뭐든 시도해 봤을 것이다. 가문이 소유한 PMC를 움직이거나, 혹은 주정부나 연방정부에 도움을 청해 군대를 동원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통신이 불가능해진 이상 가문을 지키기 위해 마련해둔 패들은 전부 쓸모없게 되었다.

“······.”

조나단은 잠시 말없이 고민어린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 곧 모니터 화면 너머에서 그의 결단을 촉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침입자들을 이끄는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CCTV를 똑똑히 응시하며 입을 연 것이다.

[흐음, 이 정도로 박살이 났는데도 더 버티겠다 이건가?]

무심하기까지 한 목소리. 더 놀라운 건 지금 하는 말이 영어가 아닌데도 그 의미가 분명하게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 있다는 것 다 안다. 여기저기 설치된 CCTV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까.]

조나단은 모니터 속의 사내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직접 마주한 것도 아니고 모니터 화면 속의 상대의 눈을 응시했을 뿐인데도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만 것이다.

‘대체 저 자는······.’

지금까지 조나단은 수많은 거물들을 만나봤었다. 말 그대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미국이나 러시아의 대통령들은 물론, 그 배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들조차 자신에게 이런 위압감을 전해주지 못했거늘··· 고작 20대에 불과한 사내의 눈빛에 압도되고 말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조나단 로스차일드. 우린 당신과 대화를 원한다. 그쪽에서도 지금쯤 확인되었을 텐데. 우리에게 제압된 자들 중 죽은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걸.]

“······.”

[일부러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수고를 한 건 우리도 당신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신사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았겠지.]

조나단은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그랬다. 지금까지 저들이 쓰러뜨린 무장병력들 중 사망자는 없었다. 다친 자들은 여럿 있었지만 불구가 될 정도로 부상을 입은 자들조차 없을 정도였다.

침입자들이 보여준 힘을 생각한다면 거의 기적적인 일이었다. 헌데 그게 의도적인 결과였다니······.

‘그렇군. 내가··· 아니 우리 가문이 저들에게 어떤 이용 가치가 있다는 건가? 그래서 죽은 자가 나오지 않도록 배려한 거고?’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용 가치가 있다는 건 적어도 어느 정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상대가 뭘 요구할지 모르는 만큼, 치러야 할 대가가 결코 가볍진 않겠지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가문을 온존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헌데 그때, 사내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말이야. 이 상황만 모면하기 위해 우릴 기만하겠다면 이걸 잘 보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내의 오른발이 가볍게 지면을 내리눌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동작과 달리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아아앙!

마치 거대한 폭탄이 터져나간 듯한 굉음과 함께 사내를 중심으로 저택 정원이 삽시간에 초토화된 것은 물론 지표면이 크레이터 형태로 깊게 가라앉아버렸다. 그것은 모니터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보였다.

조나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 이건 무슨!?”

반경만 무려 500미터에 이르렀고, 그 깊이는 1미터에 가까웠다. 단지 가벼운 발구름만으로 만들어낸 결과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저··· 정말로 인간인가?’

가히 초월적이라 할 만한 위력 앞에 조나단은 경악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발구름만으로 이 정도라면, 그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할 경우 과연 어떻겠는가?

조나단은 이런 무력을 보여준 상대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건 직접적인 경고였다. 허튼 수작을 부렸다간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인 것이다.

‘···차라리 통신이 두절된 게 다행이군. 저런 힘의 소유자라면 군대를 동원한다 해도 제압할 수 없겠지.’

핵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핵은 남발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가 사용하는 힘의 정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핵이라 해도 과연 저 자를 죽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조나단이 입을 열었다.

“모두 준비해라. 내가 직접 저들을 만나겠다.”

“가주님! 직접 나서시는 건 위험합니다. 차라리 제가···!”

“저희들에게 맡겨 주시면······!”

“패닉 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핵전쟁 상황까지 상정해 만든 그곳이라면 저놈들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안전한 그곳으로······.”

주변에서 모두 그를 만류하고 나섰다. 하지만 조나단의 뜻은 분명했다.

“지금 저 무력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저들이 우릴 죽이려 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숨어 있다고 해서 안전할 것 같은가?”

“···그건.”

그들도 뭐라 말을 열지 못했다. 저택 내부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만들어진 패닉 룸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단 한 번의 가벼운 발구름만으로 직경 1km의 크레이터를 만들어내는 괴물 같은 자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 일단 피하시는 건 어떨지요? 비상탈출로는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저택에 숨겨져 있던 통신회선까지 철저히 차단한 자들이야. 비상탈출구로 도망친다고 해서 모를 것 같은가?”

“······.”

“도망치다 잡혀서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직접 대면해서 저들의 요구사항을 듣는 게 더 낫겠지. 그래도 죽은 사람 하나 없는 걸 보면 우릴 해할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 말이야.”

그리하여 조나단은 가신들과 함께 저택 바깥으로 나섰다. 그러자 로스차일드 본가의 저택을 초토화시킨 장본인들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나오셨군. 당신이 그 조나단 로스차일드인가?”

이진운이 그와 눈을 마주치며 묻자,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맞네. 내가 그 조나단이지.”

“엘레나의 아버지라지?”

“글세, 거기 있는 아이가 정말 내 딸이 맞다면 그렇겠지.”

엘레나의 이름이 언급되자 조나단은 엘레나 쪽을 힐끔 쳐다보면서 그렇게 답했다. 아직도 저 소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의심할 필요 없어. 당신 딸 맞으니까. 유전자 검사까지 해보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

“······.”

유전자 검사까지 운운하는 걸 보면 정말로 저 아이가 내 딸이 맞단 말인가?

조나단은 복잡한 표정으로 엘레나와 이진운을 번갈아 보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눈빛만 보면 2년 전 봤던 자신의 딸과 정말 쏙 빼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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