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26화 (227/448)

10권-01화

한둘도 아니고 무려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는 모습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어지간히 담량이 큰 자라 해도,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진운 일행은 달랐다.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포위한 자들을 흘겨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뭘 어쩔 건데? 그걸로 우릴 쏘겠다고?”

“광학병기도 아니고 이건 뭐 화약식 딱총이네. 여긴 이런 무기를 다 사용하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우리한테 총을 겨누려면 최소한 대인화기 형태의 레이저 건이나 레일건 정도는 가져 왔어야지.”

레이첸과 리스티, 그리고 아리엔이 저마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윤재민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이 상황 자체가 그저 우스운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자 당혹스러운 건 포위한 쪽이었다. 상황을 보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자신들인데, 여유는 오히려 포위된 녀석들이 부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총구를 겨눈 호위병력들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손 들라고 한 말 안 들리나?”

그때, 엘레나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다들 총을 거두세요. 로스차일드 일족인 제 앞에서 무슨 무례인가요? 이분들은 제 손님입니다. 예의를 지키세요.”

그러자 호위들이 살짝 반응을 드러냈다. 엘레나의 얼굴을 알아본 기색이었다.

“으음, 정말로 아가씨의 얼굴이군. 목소리도 그렇고. 거의 흡사해.”

“사진 속 얼굴보다는 조금 더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실종된 지 2년이나 지났다고 하니 그 정도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로스차일드 가의 호위들은 다들 엘레나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직접 봤던 자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사진을 통해 숙지해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엘레나가 진짜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아서, 비슷한 체형과 얼굴을 가진 사람이 없으리란 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약간의 성형수술까지 더하면 진짜나 다름없는 가짜 인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심 간다고 해서 아주 무시할 순 없었던지 호위들 중 하나가 나섰다. 이들 호위들의 리더를 맡고 있는 자였다.

“일단 사실여부부터 확인한 다음에 예를 갖추지요. 지금은 우리의 통제를 따라줘야겠습니다. 그건 아가씨의 얼굴을 하고 있는 당신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해는 해요. 하지만 지금 그 태도는 좀 무례하군요.”

엘레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태도를 지적했지만, 리더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얼마나 많은 가짜들이 아가씨 행세를 하며 본가를 드나들었는지 압니까? 얼굴이 비슷하고 목소리가 같다고 해서,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그 말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일 겁니다.”

엘레나는 그제야 이들이 이렇게 험악하게 나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엘레나가 실종되고 나자 그녀를 자처하는 가짜들이 로스차일드 가를 이용해먹기 위해 나타났던 모양이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확인부터 하죠. 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말이에요.”

확인 과정은 간단했다. 홍채 인증부터 해서 정맥인증과 DNA판별까지,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방법은 많았으니까.

특히 로스차일드 가문처럼 막대한 부와 권세를 쌓은 가문은 이런 식의 보안 시스템이 필수였다.

하지만 그것도 확인하려면 일단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 인증 검사 장비들은 전부 안에 있었다.

리더가 이진운과 일행을 차갑게 응시하면서 말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통제에 따르도록. 두 손은 머리 위로. 일단 복장수색부터 하겠다. 위험한 물건이 없는지부터 확인할 테니까.”

“뭐야? 지금 우리 몸을 뒤져보겠다는 거야?”

복장수색을 하겠다는 그 말에, 발끈한 건 레이첸이었다. 고작 원시적인 변두리 행성에서 행세하는 가문 주제에 누구의 몸을 뒤져가며 수색하겠다고?

게다가 지금 복장 수색을 당했다간 골치 아플 일이 많았다. 지금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은 평상복 같아도, 전부다 오버러들의 전투복인 배틀 슈트였다. 지구의 과학력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물건으로서, 메가톤 급 핵폭탄이 직격해도 견딜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저들이 복장수색을 했다가 배틀 슈트가 반응이라도 하면 이상한 오인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그들의 손목에 차고 있는 모듈밴더만 하더라도 의심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황스러운 건 엘레나였다. 이진운은 그런 제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엘레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다는 걸 너도 잘 알겠지?”

“···예, 이해해요. 그래도 저희 가문 사람이니 최대한 사정을 두셨으면 해요.”

한숨에 찬 그 대답에, 일행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통제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걸음을 내딛자, 리더를 비롯한 호위들의 적대감이 커졌다.

“이놈들!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손들어!”

그들이 겨눈 총구가 이젠 이진운 일행을 정조준 했다. 심지어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자들도 있었다.

“웃기는 소리들 하고 있네. 강아지가 호랑이 앞에서 짖어대면 호랑이가 가만히 들어줄 것 같냐? 뭐, 손을 들라고? 그리고 몸수색? 이것들이 미쳐 돌아가나? 누구 앞에서 망발이야?”

레이첸은 코웃음 치며 더욱더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호위병력들이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역시 불순분자들이 맞군! 자, 쏴라! 죽지만 않으면 되니 최대한 급소만 피해 제압해!”

“파이어!”

타타타탕! 퓽! 퓽!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가 맹렬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고용한 만큼 하나같이 용병으로 전전하면서 전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자들이었다. 사람의 급소를 피해서 제압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상을 한참 넘어섰다. 그들이 쏘아낸 총탄이 상대의 팔다리를 관통해있어야 하거늘, 지금 이 광경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놈들 다 멀쩡하잖아?”

호위병력들이 경악에 찬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신들이 쏜 총탄은 절대 공포탄이 아니었다. 총을 쏠 때 전해지는 반동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총탄이 빗나가거나 조준이 잘못되지도 않았다. 그건 전장에서 쌓은 날카로운 감각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허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하? 고작 이런 금속 쪼가리 따윌 쏴서 우릴 어쩌겠다고? 차라리 전쟁용 함포라도 가져와서 쏘지 그래? 그게 더 나을 텐데.”

레이첸이 가슴 앞에 들어 올린 자신의 오른손을 활짝 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구릿빛 탄환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저··· 저건!?”

“탄두잖아! 설마······. 그걸 다 손으로 잡아냈다고?”

“말도 안 돼!”

믿기지 않는 광경에 모두가 불신과 경악으로 부르짖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아도 눈앞의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레이첸의 손에서 쏟아진 그것들은 자신들이 쏜 탄환과 완벽히 일치하고 있었다.

“자, 애들 장난 그만하고 덤비지 그래? 이런 딱총으로 시간 보내긴 지루하잖아?”

레이첸은 검지를 까딱거리면서 그들을 도발했다. 그러자 호위병력들은 거의 발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주··· 죽여!”

“무슨 속임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어!”

“이 괴물들!”

그때부터 인정사정없는 공격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래도 급소는 피해 쐈다면, 이젠 반드시 죽이겠다는 식의 공격이었다.

투두두두!

탕탕탕!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갑작스럽게 눈앞을 뒤덮는 거대한 화염 앞에 모조리 탄화되어버렸다. 그것은 서늘하기까지 해 보이는 푸른 염화!

총탄과 그것이 닿는 순간, 그대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증발해버린 것이다.

“이, 무슨!?”

“사람의 몸에서 불길이 일어나?”

“사이킥인가? 그런 게 진짜로 있었어?”

“놀랄 것 없어. 지금부터 너희들이 겪을 건 철저한 비현실일 테니까. 너희들이 알던 그동안의 상식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마!”

레이첸은 푸른 불길을 전신에 두른 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위협을 느낀 건지 호위들이 거의 발작에 가까운 모습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어디서 이런 괴물이!”

“죽어!”

제아무리 전장에서 생사를 오가며 갈고 닦은 실력자들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상식을 벗어나는 경이적인 비현실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패닉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까.

더 환장할 일은 그런 비현실적인 광경이 저 소년 하나에게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어떤 소녀는 검으로 총탄을 튕겨내면서 호위들을 제압하고 있었고, 어떤 자는 주먹을 휘둘러 날아오는 총탄을 모조리 뭉개 버렸다.

모든 게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건 꿈인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리더는 완전히 넋을 잃어버렸다. 아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겪은 이상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다.

그 결과, 호위들은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모두 제압되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1초도 걸리지 않았겠지만, 다들 느긋하게 움직였기에 1분 가까이 걸린 것이다.

정신을 잃고 널브러져 있는 호위들을 내려다보면서 엘레나가 탄식을 토해내었다.

“결국 이렇게 됐네요. 이렇게 되지 않길 바랐는데······.”

하지만 이진운은 이에 대해 크게 불쾌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걸 반기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엘레나 너에겐 미안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되묻는 엘레나에게, 이진운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어차피 로스차일드를 설득하려면 우리가 우주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가장 효과적인 건 바로 힘을 보여주는 거고.”

“아, 지구에 없는 영능이라면 확실한 증거가 되겠군요.”

“그렇지. 이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일일 테니까.”

그렇게 말한 뒤 이진운은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우린 엘레나의 집인 로스차일드 가의 제압에 들어간다. 리스티, 너는 이곳의 사정이 바깥에 알려지는 걸 막아. 통신이고 외부의 관측이고 모조리 틀어막아버려. 여기서 벌어지는 소란이 외부에 전해져봐야 좋을 것 없다.”

“알았어요. 바로 처리할게요.”

리스티는 그 즉시 손을 썼다. 방법은 간단했다. 외부로 이어지는 통신망을 모조리 끊는 것은 물론, 인식장해 술식을 사용해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외부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아마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할 터. 이로서 로스차일드 가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자, 그럼 다들 제압을 시작한다. 다들 죽지 않게 제압해. 어찌 됐던 아군이 될 놈들이니까.”

“예.”

이진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행은 곧장 로스차일드 가문의 대문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 일행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엘레나가 착잡한 표정으로 작게 뇌아렸다.

“···아버지, 정말 죄송해요. 이럴 생각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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