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21화 (222/448)

9권-21화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지만 자신이 아는 윤재민이 맞았다. 홀로그램 창에 뜬 사진을 입체화 시키자 윤재민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 마냥 생생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여기 있어선 안 되는 녀석이 왜?”

윤재민은 노을 보육원에서 이진운과 함께 자란, 친동생 같은 녀석이었다. 마음이 여리고 착한 녀석인지라 이진운이 독립한 이후에도 남아서 보육원 아이들의 맏이 역할을 해왔다.

헌데 그런 녀석이 이곳에 소환되어 와 있다고? 그것도 1년도 훨씬 전에?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윤재민도 지구인인 이상 아르탈 행성연합으로 소환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어째서 지금까지 윤재민이 소환된 사실을 알지 못했던 거지?

“아!”

이진운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자신이 윤재민의 소환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는지를.

“그래, 라인트라 대전 때문이었어. 1년 이상을 그곳에 처박혀 싸움질만 했으니 바깥 사정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마 윤재민도 자신의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천외오천 급에 버금갈 만큼 꽤 유명해졌지만, 1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보잘 것 없었다.

일부 한정된 곳에서나 조금 소문을 탔을 뿐, 연합 내부적으로 본다면 그렇게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윤재민이 소환된 뒤에 자신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이 녀석도 이젠 내가 이곳에 소환된 걸 알았겠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재민이 찾아오지 않은 건, 그동안 라인트라 전선에 쭉 머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만나자고 그 먼 전쟁터까지 찾아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동안 이 녀석이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진운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지금 즉시 만나 봐야겠어.”

* * *

이진운이 윤재민을 만나는 건 무척이나 쉬웠다. 관리국의 인사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이루어졌으니까.

현재 연합 내에서 이진운의 위상은 천외오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지난 1년간 라인트라 대전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그의 진정한 무위가 대외적으로 공개되었고, 그랜드 급의 강자임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 이진운의 부탁이니 누가 거절하겠는가. 상대에게 해를 입히려는 것도 아니고 지구에서부터 서로 가까운 사이라서 만나보고자 하는 것인데 굳이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둘의 만남은 부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성사되었다.

관리국 본청에 마련된 응접실에서 둘은 무려 2년 만에 재회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부둥켜안았다.

“재민아!”

“진운이 형!”

“이렇게 보니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설마 너까지 이곳에 소환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도요, 형!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한동안 보육원도 찾아오지 않고 하도 소식이 없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이런 데에 소환되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구나. 헌데 결국 너까지 이곳에 끌려오다니”

이진운은 만나서 기쁜 와중에도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윤재민이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인지라 천생이 학자나 연구자가 어울리는 타입이었다.

그런 녀석이 이런 험한 곳에 소환되어 인베이더와 싸울 수밖에 없게 되다니. 착잡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윤재민이 소환된 지도 벌써 일년 반이었다. 지금까지 이렇듯 무사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생각보다 잘 적응한 듯 보였다.

그때 윤재민이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형은 이곳에서 엄청 유명해졌던데? 처음 와서 깜짝 놀랐어.”

“뭐? 그럼 오자마자 내 소식을 들었던 거야?”

“교육생들 사이에서 거의 전설처럼 취급되던데? 소환되자마자 알데마란을 쓰러뜨리고, 첫 실습에서 믿기지 않는 대활약을 했다고 말이야.”

“거기까지 들었다면 왜 날 찾아오지 않았던 거냐?”

이진운이 조금 서운하다는 듯 말하자, 윤재민이 어쩔 수 없었다며 답했다.

“나도 형을 찾아가 만나고 싶었지. 하지만 찾아갈 수가 없었어. 교육생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고는 면회가 안 되더라고.”

“아, 그랬지.”

교육생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절대 외부인과 접촉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윤재민의 면회신청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6개월 교육기간이 끝난 다음에 만나려 했더니, 그때는 형이 라인트라에서 한창 싸우고 있다는 소릴 들었어. 그래서 못 만났던 거야.”

“그랬구나.”

이진운은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라인트라에 처박혀 싸운 시간만 해도 무려 1년이나 됐으니 윤재민을 만날 수 없었던 건 당연했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그러는 형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때부터 이진운과 윤재민은 그동안 겪어왔던 일들을 털어놓으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특히 윤재민은 이진운이 경험했던 사건들에 대해 듣고 나서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곤 이진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랬구나. 불과 2년 사이에 참 엄청난 일들을 겪었네.”

“뭐, 그런 편이지. 그래도 이 형이 강한 편이라서 별 탈 없었으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이진운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픽 웃고 말았다. 윤재민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은 사실 하룻강아지가 호랑이 걱정해주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지구로 귀환한다고?”

“그래, 지구가 인베이더의 침략 가시권에 들어갈 날도 이제 머지않았어. 그때를 대비하려면 서둘러야지. 남은 시간이 고작 3년뿐이니 말이야.”

“그게 사실이라면 끔찍한 일이네. 지구에는 우리 보육원도 있는데 말이야.”

그동안 윤재민도 실전을 통해 인베이더들과 여러 차례 싸워 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잘 알았다. 놈들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들인지를.

그런 놈들이 지구로 쳐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주먹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특히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는 보육원이 가장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해 내야겠지. 우리가 자라온 그곳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이진운의 무거운 그 말에 윤재민도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말대로야. 어떻게든 지켜 내야지.”

벌써 2년이나 지났지만, 보육원에서 자라던 아이들의 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물론 피가 이어진 친동생들은 아니지만 그들의 진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면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 여러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하고.”

“그렇겠지.”

윤재민도 지구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알았다.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고는 하나, 그 정도는 아르탈 행성연합에 비한다면 가히 원시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인베이더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그래서 말인데··· 재민아, 너도 함께 해줬으면 한다.”

“나도?”

“그래 너도 함께 말이야.”

이진운이 내민 그 제안에 윤재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지구에는 형의 함대에 소속된 인원만 갈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그런 건 아니야. 함대 자체는 우리 인피니티 킹덤 뿐이지만, 데려갈 수 있는 인원은 내가 어느 정도 임의로 선정할 수 있지. 지구에 가면 단순히 싸우는 일만 하는 게 아니야. 전함을 제조하려면 여러 방면의 전문 기술자들은 물론, 각성하기 시작할 사람들을 교육시킬 여러 인력들이 필요해.”

“그랬구나.”

“그래서 가급적이면 지구 출신들로만 데려갈 생각이다. 아무래도 같은 지구출신이면 사람들도 거부감을 덜 느낄 테니까.”

윤재민은 이진운의 설명에 납득했다는 얼굴로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주저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구에 간다 해서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충분하고도 넘치지. 솔직히 말해 너 정도 되는 소환자가 지구 출신 중에 얼마나 될 것 같으냐?”

지난 일년 반 동안 윤재민은 믿기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단지 윤재민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진운이 직접 보고 느낀 바가 그러했다.

‘마치 도가나 불가의 기운 같군. 이 정도면 상당히 상위에 손꼽힐만한 실력인데 말이야. 재민이가 이렇게까지 재능이 있었나?’

처음 윤재민을 봤을 때 이진운은 재회의 기쁨과 동시에 놀람을 금치 못했었다. 자신이 알던 윤재민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전신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온화한 존재감.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깊고 무거웠다. 이진운도 지금까지 성직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봤지만, 윤재민 만큼의 존재감을 가진 자들은 극히 드물었다.

‘성직자라고 했었지? 그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를 섬기는···.’

뜻밖에도 윤재민은 성직자가 되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전에 엘레나를 회복시켜 주었던 여신대리자 베르다인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이 정도면 거의 대신관 수준은 족히 되어 보였다.

오버러 기준으로 표현한다면 거의 마이스터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성직자들의 실력 향상은 일반적인 오버러들과는 기준이 많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불과 일년 반 만에 이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쌓았다면 그만큼 재능이 대단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진운이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용케 신을 섬기는 성직자가 되었구나. 난 연구자나 학자가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네 적성에 잘 맞나 보지?”

“응, 여신님께서도 아주 좋으신 분이고, 그분을 섬기는 분들도 다들 좋은 분이셔. 그래서 더 버틸 수 있었던 거고.”

“그래?”

여신이 좋으신 분이라고? 그 말은 윤재민이 여신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의미 아닌가.

이진운은 내심 궁금해졌다.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라면 아르탈 행성 연합이 창립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준 신적 존재 아닌가.

대체 어떤 존재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녀에 대한 정보는 사람들의 말이나 데이터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쉽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여신과 직접 대면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그 중에 윤재민이 끼어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긴 했지만, 어떤 이유가 있을 터.

그에 대해서는 좀 더 나중에 차차 물어보기로 했다.

“아무튼 이제부터 너는 나와 함께 가자. 자, 소개시켜줄 사람들이 있어.”

“제자들 말이지?”

“그래.”

윤재민은 이진운에게 그가 받은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과연 형이 어떤 사람들을 제자로 받아들인 건지를.

어지간해서는 쉽게 마음문을 열지 않는 형이 누군가를 가까이 뒀다는 사실이 기꺼우면서도 궁금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진운의 일행과 윤재민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그 첫 대면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