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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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지구로 돌아간다고요?”
“그래,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준비가 끝나면 바로 출발하게 되겠지.”
일행이 모인 자리에서 이진운이 그렇게 발표하자 다들 깜짝 놀라 외쳤다.
소환자가 자신의 고향 행성으로 귀환하는 경우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직책이나 실력이 되면 종종 휴가 형식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이렇게 함대 전체를 이끌고 귀환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진운은 놀란 일행들에게 베네트 국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라인트라 대전 이후 지구의 침략시기가 크게 당겨졌으며,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지구를 지원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전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지구의 상황이 어떤지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다 듣고 난 아르페인은 조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8년 정도는 남은 줄 알았던 침공시기가 그렇게까지 당겨졌다니······. 사태가 생각 외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군요.”
“일단 라인트라 대전 같은 큰 전쟁은 없지만, 인베이더의 점진적인 침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연합을 비롯한 제국과 공화국에 속한 행성들 자체는 별 탈 없이 건재한 상태지만, 이 3대 세력에 속하지 않은 우주의 문명들은 그렇지 못했다. 인베이더들은 그런 영역들을 지금도 시시각각 집어삼켜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 대상이 하필 지구가 포함되었을 뿐이다.
이진운과 마찬가지로 지구 출신인 엘레나가 손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럼 지구로 돌아가면 뭘 하게 되는 건가요?”
“일단은 지구권 통합부터 추진해야겠지. 그게 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했고.”
“지구권 통합이라니··· 그런 게 가능하긴 할까요.”
엘레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구 내에 난립하고 있는 국가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그 국가들을 통합한다는 게 과연 말처럼 쉬울까?
각 국가마다 인종, 민족, 그리고 종교 문제까지 얽힌 탓에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곳곳에서 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지 않은가.
게다가 3년이란 시간제한까지 붙은 것도 문제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일단은 협상과 설득을 통해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풀어나가야겠지.”
“그래도 안 되면요?”
“정 말을 안 듣는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좀 강압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
엘레나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한 강압적인 수단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해 봐도 그 수밖에 없었다. 단지 협성과 설득만으로 국가들의 통합을 유도한다? 절대 불가능했다. 중동만 해도 종교 문제로 무수한 테러를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온건책이 먹혀들 리 없었다.
결국 힘을 앞세워야 어떻게든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말이다. 엘레나.”
이진운이 은근한 목소리로 엘레나를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너희 가문이 로스차일드라고 했었지?”
“예.”
“너희 가문의 힘을 조금 빌릴 수 있을까?”
가문의 이름이 언급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질문이었다. 엘레나는 자신이 짐작하고 있는 바를 확인 차 물었다.
“그러니까 스승님의 뜻은 지구권 통합에 저희 가문의 도움을 받으시겠다는 거네요. 맞죠?”
“그래, 나도 로스차일드에 대해 자세한건 모르지만, 소문대로라면 세계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들었다.”
이진운의 대답을 들은 엘레나가 조금 난감하단 표정으로 입술을 열었다.
“음, 어느 정도는 사실인데요. 그래도 지구권 통합 같은 걸 시도할 만큼은 아니에요. 그랬으면 저희 가문이 진작 세계 정복을 했겠죠.”
하지만 이진운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는 생각 안했다. 단지 그들의 영향력만 조금 빌릴 생각이었다.
“나도 그 정도를 기대한 건 아니야. 단지 대화할 계기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
“대화요?”
“로스차일드의 이름이라면 가능하겠지. 각 국가 수반들과의 대화할 자리를 마련하는 것 정도는.”
그 말이 조금 뜻밖이었던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엘레나가 잠시 고민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음··· 물론 가능은 하죠. 하지만 그 정도는 스승님이 우리 함대만 몰고 가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요.”
“그래도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보다는 중간에서 중계해주는 세력이 있으면 좀 더 유연하게 진행해나갈 수 있지. 그게 로스차일드처럼 힘과 재력이 있는 가문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일리 있는 말이기에 엘레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볼 때 그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저희 가문의 이름을 앞세운다 해도 일단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 뿐이지, 지구권 통합 같은 허무맹랑한 일을 현실화시켜주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아마 듣자마자 다들 코웃음부터 칠걸요? 그냥 일단 힘을 보여준 다음에 지구권 통합을 이야기한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함대를 끌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겠지만, 그쯤 되면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 된다. 그건 오히려 반감만 키울 수 있어. 물론 협상과 설득이 안 먹히면 강압적인 방법을 써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반감을 키워서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지.”
“일단 보여주기 식 명분이 중요하다 이거네요. 무턱대고 너흴 힘으로 강압한 게 아니라, 유화책을 썼는데도 먹히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다, 하고 말이죠.”
“그런 셈이지.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쪽으로 여론을 조장할 수도 있고. 너희 가문이라면 꽤 많이 갖고 있을 텐데, 언론사라든가 방송국 말이야.”
“그렇죠.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려면 여론을 주무르는 건 필수니까요.”
역시 로스차일드 가문 출신답게 엘레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상당한 명석함을 보였다. 하긴 세계를 주름잡는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평범함하고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스승님이 말씀하신 대로 부탁해 볼게요. 가문 어른들에게 말씀드리면 아마 흔쾌히 들어주실 거예요.”
“좋아, 그럼 이 문제는 일단 네게 맡기마.”
이로서 이번 일에 대해 협력해줄 현지 협력세력 문제를 일단락지은 이진운은 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지구권 통합은 우리가 지구로 귀환하는 목적 중 1단계에 불과해. 진짜 중요한 건 지구의 문명 수준을 끌어올리고, 인베이더와 최소한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지구권에는 영능이 금지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아르페인의 질문에, 이진운은 베네트 국장이 제안해준 대로 말했다.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지구인들이 자체적으로 전함을 제작할 수 있게 하는 게 현재 목표다.”
“음, 전함 제작이라면 어느 정도를?”
“5세대 전 구형 타입. 중형 전함이지.”
“아, 워프 항행이 개발되기 전의 타입이군요. 광속 비행도 불가능하고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지구야 자기들 터전인 태양계만 지켜내면 되니까. 처음부터 너무 과한 걸 줄 필요는 없어. 솔직히 말해 그 이상의 기술을 전수한다 해도 3년 만에 소화한다는 것도 사실 어렵고. 지금 주는 기술만 해도 지구인들에게는 넘치도록 벅찰 거다.”
“하긴 그렇겠군요. 워낙 기술력이 원시적이니 말이죠. 그걸 이해하고 인프라를 형성하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리겠군요.”
테크놀러지 기술이란 건 단순히 알려준다고 해서 곧바로 실용화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술의 개념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전함을 제작하는 인프라 문제부터 막힐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걸 단축하기 위해 관리국에서 그에 필요한 함을 따로 제공해주기로 했다.”
이진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영상을 띄웠다. 거기에는 두 척의 거대한 함이 비쳐지고 있었다.
“다목적 공업함 [루크아딘]과, 수송함 [골고다인]이다. 이거면 인프라 형성하는 데도 꽤 도움이 되겠지.”
수송함이야 그렇다 쳐도 루크아딘은 마도공학 물품은 물론 전함의 제조까지 대부분의 제조를 가능케 해주는 만능 공업함이었다. 재료와 시간만 충분하다면 준대형 전함도 제조가 가능할 것이다.
아르페인이 제법 놀란 표정이 되었다. 연합 입장에서는 우주 구석지에 처박혀 있는 시골 변두리 행성에 불과한 지구에 이만한 지원을 해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베네트 국장님이 아주 큰맘을 먹으셨군요. 저런 함까지 지원해줄 줄이야. 관리국이라 해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우리로서는 고마울 뿐이지.”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납득 안가는 결정도 아니었다. 현재 소환된 지구 출신 중에서 탄생한 그랜드 급의 실력자만 이진운을 포함해 무려 여섯이나 된다.
수십 개의 행성 중에서도 그랜드 급 하나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관리국이 이 정도 지원을 해주는 것도 크게 과하진 않았다.
“그럼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해야겠군요. 필요한 물자들도 종류가 꽤 많을 테니까요.”
“그러니 부탁하지. 그 부분에 대해선 자네만 믿겠어.”
지금까지 아르페인은 이진운을 대신해서 훌륭하게 사령관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이진운은 직접 전장에 나서서 싸우는 타입이지, 누굴 지휘할만한 타입은 아니었다.
만일 아르페인을 카멜롯의 함장이자 사령관 대리로 영입하지 않았더라면 인피니티 킹덤은 상당히 힘든 싸움을 계속해왔을 것이다.
그렇게 기술지원과 물자에 대한 문제를 아르페인에게 떠맡긴 이진운은 이번에는 아리엔과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너희들도 앞으로 할 일이 있다.”
“저희들이요?”
“그래.”
아리엔들은 이진운의 갑작스런 그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자신들이 지구에 가서 뭘 한단 말인가?
“베네트 국장의 예상대로라면 우리가 돌아간 직후에 어떤 변화가 생길 거라고 하더구나.”
“변화요?”
“그동안 금지되었던 영능의 활성화지.”
이진운이 던진 충격적인 소식에, 일행이 깜짝 놀라 반응했다.
“그 말은, 설마··· 지구에서 살고 있는 지구인들도 영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까?”
“그래, 관리국에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오로라 시스템이 사람들을 각성시킨 것도 다 인베이더의 침략 대상이 되거나, 그들에게 대적할 상황인 경우였으니까.”
물론 지구는 조금 예외적인 경우였다. 인베이더의 침략을 받지 않은 행성들 중에선 오로라 시스템이 없던 시절에도 어느 정도 자체적인 방식으로 영능을 다룰 줄 알았으니까.
오로라 시스템은 단지 직관적인 방식으로 영능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보조적인 힘일 뿐, 전혀 모르고 있던 영능을 자각하게 해주는 그런 시스템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같은 경우라면 지구인들이 오로라 시스템과 영적 라인이 연결되는 순간, 영능도 함께 자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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