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16화
아니, 단순히 생소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궁지에 몰린 건 아니었다. 이진운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무공 자체가 기존의 것들과는 근간부터 달리했다.
루클라가 당황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연이은 천중무한신공에 기반을 둔 천중칠절예의 강맹무쌍한 맹격! 그 한수 한수를 받아낼 때마다 루클라는 무력감을 절감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녀석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보다 조금 못하거나 비슷했던 녀석이 어떻게!?’
단순히 힘이나 영력의 규모 차이의 문제였다면 이렇게까지 밀리진 않았을 것이다.
놈의 공격이 제아무리 강맹하다 해도 인간인 이상 인베이더인 자신의 힘과 영력의 양을 능가하진 못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 구사하고 있는 그런 틀을 넘어섰다.
강하고 단단하기 그지없는 형태로 발전된 무공! 단순히 근력이 아니라 인력과 척력, 거기에 근간을 둔 하늘의 무게를 담아낸 신공절학이었다.
그 앞에선 힘이니, 영력의 크기니 따윈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흐아아아압!]
루클라의 전신에서 일어난 폭발적인 영기가 양 팔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요동치듯 울부짖더니 곧, 그의 종횡무진하는 양 손과 함께 허공에 무수한 은빛 궤적을 그려내었다.
아랑조(餓狼爪)
단역(斷域)-난현(亂絃)
현란무조가 무수한 허 속에 실을 감춘 환(幻)의 수법이라면, 이것은 극쾌의 동작으로 한순간에 공간을 연쇄적으로 할퀴어내는 실(實)의 수법.
그 절삭력과 위력은 준대형 전함이라도 정통으로 맞는다면 일격 침몰시킬 만큼 강력했다.
하지만 그런 막강한 공력을 앞두고도 이진운은 멈추지 않았다. 시야를 어지럽히며 옥죄어오는 무수한 잔광을 일축하듯, 우직한 자세로 주먹을 뻗어냈다. 보기엔 한없이 느려터진 권격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상도 짓눌러 버릴 듯한 무궁무진한 힘이 숨겨져 있었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1절. 연환천중인(連環天重印)
비의 만력강천(滿力鋼穿)-쇄심붕천타(碎心崩天打)
공간을 가로지르며 일로의 권격이 밀려들어 왔다. 거기엔 강렬한 힘이나 소리 따윈 없었다.
다만 심령을 압도하는 전율적인 존재감만이 세상을 짓눌러왔을 뿐이다.
헌데 그것이 루클라의 공세를 단숨에 짓이겨버렸다. 단지 주먹을 느리게 뻗었을 뿐인데도 공간 그 자체가 짓눌려 허물어지고 있었다.
경악할 수밖에 없는 그 현상에 루클라는 두 눈을 부릅떴다.
[크으······ 이건!?]
눈앞의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저런 느려터진 주먹 따위에 어찌 자신의 전력을 다한 수법이 무너지는 것일까?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느껴지는 압박감이 이젠 신체는 물론 정신마저 짓눌러오고 있었다.
루클라는 화급히 이를 피하고자 했지만 이미 권세(拳勢) 앞에 제압되어 버린 터라 회피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숨이 턱턱 막혔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주먹의 위세는 갈수록 거대해지더니 어느덧 이 주역 전체가 거대한 권영(拳影) 하나로 가득 찬 듯했다.
경악과 불신의 감정이 교차하고 권세가 절정에 이른 그 순간, 내부가 화끈거리더니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커헉! 크으······.]
루클라가 토혈을 하며 나가떨어졌다. 무려 수십 킬로미터나 날아간 그가 멈춰 서게 된 것은 작은 소행성 위에 처박힌 뒤였다.
[네놈 대체······이 무슨!?]
루클라는 당혹에 차 중얼거렸다. 이번 타격은 말 그대로 심대했다. 단순히 몸을 망가뜨리고 그런 영역의 것이 아니었다.
이진운의 주먹에서 일어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격중당한 순간, 그가 가진 영능의 근간이 극심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그것은 심의지도(心意之道). 검으로 친다면 바로 심검(心劍)에 해당하는 이치였다.
“후우······.”
이진운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진기를 추슬렀다.
생각보다 무리가 가는 일이었다.
그가 사용한 천중무한신공과 천중칠절예는 기존의 점창파의 무공들과는 그 궤를 전혀 달리했다.
왜냐면 그의 손에서 새롭게 창안된 무공이기 때문이었다.
전생을 거치고 현생을 살면서 이진운은 온갖 과학 지식과 마도공학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곧 그의 무공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많은 무공들이 개량되고 발전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바로 이 무공들이라 할 수 있었다.
본디 칠절중수라 불렸던 절기는 천중칠절예로, 그리고 천중대연공은 천중무한신공으로 새롭게 재탄생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무공들이 이진운의 손에서 완벽한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그러니 클레브가 어설프게 구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커서 이 무공을 오래 사용하는 건 현재로선 버거웠다. 이건 깨달음이나 경지의 문제가 아니라 단련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한 건 불과 2년 남짓. 그가 원하는 수준까지 육체가 단련이 되었을 리가 없었다.
“더 끌기도 뭣하니 이번 일격으로 끝내주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1년에 걸친 싸움이었다. 이미 수십 차례 이상 싸워온 상대인 만큼 바로 장사지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손을 위로 떠올렸다. 그러자 그 위로 강렬한 인력체가 형성되었다. 구체의 형상을 띤 그것은 곧 주변의 기운을 맹렬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찌나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는지, 이를 감지한 사람들이 구역질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고오오오!
루클라는 보는 즉시 알아챘다. 이진운의 손 위에 떠오른 구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그건 그의 경지에서는 절대 가능해선 안 되는, 믿기지 않는 현상의 재래였다.
[미친! 초월자도 아닌 녀석이 무려 플라즈마 빅뱅을 구현한다고?]
가공할 인력으로 주변의 기운을 무절제할 정도로 끌어들인 후, 기운들 각각에 척력의 성질을 심어서 충돌시킴으로서 태초의 빅뱅을 재현하는 수법. 그것이 바로 천중칠절예의 극의 중 하나인 무한역도구인 것이다.
지금 그의 손 위에서 들끓고 있는 기운들이 일단 폭주를 시작한다면, 그 위력은 한 개의 행성이 날아가는 정도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수법이었다.
헌데 그것이 지금 루클라를 없애기 위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자, 그럼 이걸로 지난 1년의 세월에 대한 작별인사를 대신하지. 잘 가라.”
전별을 고하는 그 말과 함께 이진운의 손을 떠난 눈부신 구체가 루클라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쇄심붕천타에 이미 큰 피해를 입은 루클라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1절. 연환천중인(連環天重印)
비의 경라인(勁螺印)-극의 무한역도구(無限力道究)
빛이 다가올수록 그 안에 담긴 무시무시한 힘의 실체가 루클라에게 확연하게 전해져왔다. 너무 강대한 너머지 저 힘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고작 이걸로 끝이라고? 이 몸이!?’
루클라의 두 눈 위로 절망과 분노가 교차했다. 이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자신보다 못했던 이진운에게 추월당해 죽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였다.
[으아아아!]
루클라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쥐어짜냈다. 몸이 엉망이 된 터라 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앉아 죽을 순 없었다.
심지어 생명력까지 쥐어짜낸 그 순간, 나름 막대한 영기가 크게 공명하면서 전면을 둘러쌌다. 그의 독자적인 영력 운용법인 월령기(月靈氣)의 방어기인 월광공진벽(月光共振壁)이 구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 이진운의 무한역도구가 떨어져 내렸다. 그 광경은 마치 거대한 유성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쿠구구구!
무한역도구가 작열한 그 지점을 기축으로 무시무시한 섬광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빅뱅.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분쇄하는 파괴의 섬광이었다.
루클라가 처박혔던 소행성은 그 섬광 속에서 완전히 녹아 소멸되었고, 루클라 본인의 형상도 그 속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제아무리 놈이 신화 급 인베이더라 해도 저 속에서 살아나올 순 없었다.
“와우, 정말 무시무시한데? 이게 네 필살기야?”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진운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연정운이 있었다. 도무누스를 쓰러뜨리고 여유가 생긴 연정운이 이진운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필살기라면 필살기지.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이진운도 무한역도구를 구현하느라 막대한 진기를 소모한 상태였다.
만유합원신기는 물론 역기충혈대법으로 진기를 증폭한 것으로도 모자라, 남아있던 잠력까지 전부 끌어다 썼다. 그러니 이젠 더 싸우라 해도 움직일 여력조차 없었다.
“아무튼 위력 하나는 대단하다. 어지간한 플래닛 버스트 수준인데? 유인행성에서 사용했으면 자칫 폐기지정까지 받겠어.”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진운의 무한역도구는 아직도 계속해서 팽창 중이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달 정도의 행성은 박살나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만족스럽지 못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력은 강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맞추는 것도 어려운 게 문제야. 루클라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니까 먹혔지, 어지간한 상대라면 이렇게 기운을 모으느라 준비할 시간도 없었을 거다.”
“하긴 그렇겠네.”
팽창해가던 빛도 어느 순간부터 수축하기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일으킨 유사 플라즈마 빅뱅인 만큼, 그 한계도 명확했다.
“아무튼 이걸로 놈도 확실히 죽었겠다. 놈의 목숨이 꽤 끈질기긴 했지만, 저런 거에 휘말린 이상 살아 돌아온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겠지.”
“아마도.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은······.”
빛이 사그라지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린 연정운의 말에, 이진운도 긍정해 보였다.
무한역도구를 정면으로 맞받은 이상, 신이 아니고서는 절대 살아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전혀 예상 못했던 이변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빠르게 수축하면서 희미해지던 빛의 중심에서 존재할 리 없는 하나의 인영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소멸했을 줄 알았던 루클라였다.
“말도 안 돼! 저걸 견뎌냈다고? 어떻게 된 거야?”
“그럴 리가! 루클라가 정상인 몸으로도 받아낼 수 없는 수법이었어. 하물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는 절대 불가능해!”
연정운은 물론이고, 무한역도구를 구사했던 이진운조차 경악에 차 두 눈을 부릅떴다. 그들의 상식으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당황하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어떤 일이 벌어졌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루클라가 살아남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진운은 살아남은 채 우두커니 우주공간에 서 있는 루클라에게서 어떤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저건 루클라가 아니야. 뭔가 느낌이 달라!”
“뭐? 루클라가 아니라고?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이진운이 내뱉은 그 말에 연정운이 이해할 수 없다며 되물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루클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놈과 눈빛이 전혀 달라. 이건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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