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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13화 (214/448)

9권-13화

* * *

그 이후로도 연합과 인베이더의 전쟁은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에메랄드 헤븐을 잃고 일시적으로 후퇴했던 인베이더 함대가 전력을 더욱 확충해 라인트라로 다시 들이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연합 측의 전력도 만만찮았다.

황제는 그날 도무누스를 패퇴시키고 에메랄드 헤븐을 박살낸 것을 끝으로 다시 제국으로 귀환했지만, 그가 남기고 간 전력은 적잖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워프항행을 가로막던 차원 단층 현상까지 사라지면서, 후방에서 대기 중이었던 아군 함대들까지 대거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전력과 물자 부족으로 허덕일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서로 피 말리는 전쟁이 지속되었다.

양 측의 전력은 사실상 거의 엇비슷했다. 인베이더 측에 도무누스와 루클라가 있다면, 연합에는 베네트 국장과 천외오천이 버티고 있었다.

베네트 국장은 징벌자의 천칭으로 도무누스의 능력을 크게 감소시켰고, 천외오천은 그런 도무누스가 더 이상 전장에서 날뛸 수 없도록 철저히 봉쇄하는 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무누스를 묶어뒀다고 해서 전황이 연합 쪽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기만 한 건 아니었다. 베네트 국장과 천외오천이 도무누스를 묶어두느라 바쁜 사이, 어느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게 된 루클라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합 함대 중에도 강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오버러들 중 루클라에게 대적할 수 있는 그랜드 급의 강자는 전무한 상황.

결국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한 이진운이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하하! 형편없는 것들! 버러지 같구나!]

폭산하는 전함을 배경으로 루클라가 통쾌하다는 듯 크게 웃어 젖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외오천과 베네트 국장이 도무누스 하나에 발이 묶인 그 순간부터,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대적할 자가 없었던 것이다.

나름대로 강자라 자부하던 놈들이 덤벼오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피떡이 되어 나가 떨어졌다. 그것은 설령 전함이라 해도 다를 바 없었다.

준대형 전함조차 그의 무력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인데, 일개 오버러들 따위가 대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헌데 그때였다. 냉소로 가득 찬 누군가의 목소리가 루클라의 귓전에 와 닿았다.

“제멋대로 떠드는군. 그런 약자들을 상대로 무위를 뽐낸 게 그렇게 자랑스럽나?”

[뭣이? 어디서 나타난 버러지기에 내 앞에서 그리 지껄이고 있는 거냐, 네놈은?]

“나? 바로 네 녀석을 박살내줄 분이지.”

루클라는 재빨리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자루 검을 들고 있는 검은 머리의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루클라는 보자마자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카룬다임이 그토록 경계하던 자. 그리고 불사에 가까웠던 울부스를 소멸시킴으로서 그 우려를 확신으로 바꾼 요주의 인물이었다. 결코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닌 것이다.

루클라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래, 이진운이란 녀석이었지. 헌데 고작 마이스터 따위가 감히!]

“그렇게 떠들던 울브스도 내 손에 소멸되었지. 이제 너도 그 뒤를 따라 죽어줬으면 좋겠다.”

[건방진!]

루클라의 전신에서 무궁무진한 영력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더니 거대한 소용돌이로 화했다. 그것은 눈부실 만큼 화려한 은빛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아랑조(餓狼爪)

월령기(月靈氣) 은광명동(銀光鳴動)

멸류광(滅流光)

쿠콰콰콰!

무시무시한 영기의 폭류! 그것이 우주 공간채로 분쇄할 듯 몰아쳐 왔지만, 이진운의 안색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검 끝에 서린 기세가 점점 첨예해지더니 어느 순간, 마치 크리스탈을 깎아 만든 듯한 거대한 검의 형상이 구현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경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천무강(天武罡)이었다.

빛의 형태로 무의미하게 산란되는 작은 기운까지 완전히 응집시켜 결정화 한 강기의 최종 형태.

그만큼 위력은 기존의 강기와 차원을 달리했다.

그리고 이런 천무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삼절검의 삼대 오의를 하나의 궤적에 담아낸 극의의 한수!

공간을 베어내는 한수 앞에 재해처럼 밀려오던 영력의 폭풍이 두 갈래로 쪼개진다.

삼절검(三絶劍)

합식 광절단혼섬(光切斷魂閃)

촤아아악!

강대함에 비하면 너무도 허무하게 흩어져 가는 은빛 영력의 폭풍이었다. 루클라도 뜻밖의 결과에 당황한듯 되물었다. 설마 자신의 한 수를 이토록 가볍게 파훼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였다.

[네놈, 대체 어떻게 한 거냐? 분명 느껴지는 격은 마이스터에 불과한데?]

그랬다. 울브스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격이 아직 그랜드 급에 이르지 못했음을.

그렇다면 지금 보인 일검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돌아온 이진운의 대답은 한결 같이 차가웠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울브스도 내 손에 소멸되었다고.”

[···실력 이상의 무언가가 네놈에게 있다 이건가. 그게 바로 무공이고?]

“······.”

이진운은 그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검 끝을 겨누었다.

[그래.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이거지! 어디 원 없이 싸워보자.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그 말을 끝으로 루클라와 이진운의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되었다. 우주공간을 뒤엎고, 전함마저 그 충격에 휩쓸려 밀려나갈 정도의 전투가!

쾅! 콰아아앙!

쿠구구구!

루클라를 집중 경계하고 있던 연합의 병사들은 루클라와 이진운의 전투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일개 개인이 전함의 화력을 압도할만한 위력이라니!”

“저 루클라를 상대로 거의 대등하게 맞서고 있어! 이 정도면 천외오천 수준 아냐?”

“이진운이라고 했지? 최근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고 소문은 들었었지만, 이건 오히려 소문이 부족한 지경이잖아!”

“어이, 물러서! 자칫 휘말린다! 여파가 여기까지 밀려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인베이더 함대와 충돌하면서 루클라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뼈저리게 절감한 연합이었다. 천외오천이나 5대가문의 가주 수준이 아니면 대적할 자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여기서 그에 버금가는 신흥 강자가 튀어나올 줄이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강자가 아군이라는 점이었다.

한편 이진운은 루클라와 격전을 거듭하면서 놈이 사용하는 전투 방식을 파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만만치가 않군. 무공과 다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흡사한 느낌이 드는데···독자적으로 만든 수법인가?’

루클라의 수법은 무공과 상이하면서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무공으로 친다면 조공(爪功)에 가까웠는데, 생각보다 파괴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아마도 루클라가 수백 년에 걸친 전투 속에서 거듭 다듬고 체계화 시킨 결과물일 터.

물론 이진운이 보기엔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벼이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놈이 가진 막대한 영력 때문에 이 조법의 위력이 극대화 되고 있어. 그 덕에 허점이 있어도 허점이 아닌 게 되는군.’

이진운은 정묘한 초식들을 앞세워 루클라를 공략했지만, 번번이 놈의 막대한 영력을 앞세운 공세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전투 자체는 루클라의 우세라 할 수 있었다. 아직 이진운은 현경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놈을 상대로 팽팽한 수준으로 맞서는 건 가능했지만, 놈에게 치명타를 입힐만한 위력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웨어울프라고 했던가? 저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은 상당히 짜증나는군.’

놈이 가진 조법의 허점을 노려 검상을 입히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시간을 되돌린 듯 급속히 회복해버렸다. 바로 수인족들의 특성 중 하나인 경이적인 재생능력이었다.

인간이라면 치명상이라 할 수 있는 상처도 수인족들은 숨 몇 번 쉬는 사이에 회복할 정도니, 그런 수인족 중에서도 정점에 올라선 루클라가 가진 재생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저 정도면 목을 잘라도 살아날지도 모르겠어.’

그렇기에 싸움의 승패는 꽤 길고 지난해졌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끝이 없었다.

결국 이진운의 예상대로 되었다. 둘의 싸움이 무승부로 돌아간 것이다.

양 측 함대가 서로 전력을 물리기로 한 이상 루클라와 이진운도 더 이상 싸움을 고집할 수 없었다.

[치잇! 조금만 더 싸웠다면 죽일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럴 때 후퇴라니!]

분하다는 듯 으르렁대는 루클라에게, 이진운은 살기 돋힌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오늘 내게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거지? 그 재생력이 없었다면 네놈은 이미 수십 번도 더 죽었을 거다.”

[이놈이!]

루클라는 두 눈을 희번덕거렸지만, 이미 아군은 전부 후퇴하느라 병력을 물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분을 못 참고 다시 싸움을 걸었다간, 결국 연합 함대들에게 포위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적군 속에 고립되고 나면 제아무리 루클라라 해도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어디 두고 보자! 다음에는 반드시 네놈을 쳐 죽일 거다!]

진부한 말을 남기고 루클라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이진운도 굳이 놈을 잡지 않았다.

사실 루클라는 이진운에게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소모한 심력만 해도 엄청났다. 화경의 끝자락에 올라선 상태에서 현경의 경지에서 사용할 법한 수법들을 여러 차례 사용한 탓이었다.

덕분에 여러모로 무리가 좀 따랐고, 더 이상 싸움을 지속했다간 오히려 자신이 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런 놈을 상대로 이렇게 고생하다니··· 아직도 멀었어. 조만간 현경에 올라서야 해,’

현경에 올라선다면 지금처럼 전생의 경지와 경험에 기대어 겨우겨우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제대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경지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지금까지 다듬어왔던 육체가 슬슬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내공도 어느덧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수위를 넘어선 상태였다.

* * *

라인트라의 대전쟁은 무려 1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처음 맞닥뜨렸던 때처럼 치열하진 않지만, 그래도 밀리고 밀리는 전투를 지속해 나가고 있었다.

전쟁이 이렇게까지 지지부진하게 길어지게 된 것은 바로 양측이 제대로 된 결정패를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베이더 측은 준비하고 있던 위상전환을 비롯하여 에메랄드 헤븐에 도무누스까지 모든 패를 소진했고, 연합 쪽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연합 쪽이 지금까지 패하지 않고 대등하게 맞선 것 자체가 용했다. 아마 이진운과 리스티가 만든 아르마다 시스템과 SB탄이 없었더라면 진즉 패퇴해 라인트라 주역을 인베이더들에게 내줬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 인베이더나 연합 모두 이 전쟁을 결정지을 만한 결정패가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전장의 승패를 주도할 수 있는 절대강자에 의한 활약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정이 그리 여의치가 못했다.

도무누스는 초월 급 인베이더답게 베네트 국장과 천외오천 모두를 상대로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고, 이진운은 루클라를 상대로 수십 번에 걸친 접전을 벌이면서 양측이 보유한 강자들이 서로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어느 쪽이든 우위를 차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전쟁의 향방은 양측 모두 자연스럽게 함대전으로 흐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려 1년에 걸친 이 전쟁도 슬슬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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