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12화 (213/448)

9권-12화

* * *

황제가 자신의 기함에 들어선 순간, 옆에 있던 기사가 분통을 터뜨리며 물어왔다.

“폐하, 어째서 그런 건방진 녀석을 그냥 두시는 것이옵니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시기에 해할 수는 없지.”

황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발걸음을 옮겨나갔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옅은 노기가 서려 있었다.

알카데인 황제는 함 내에 마련된 옥좌에 앉았다. 그리곤 옥좌 아래에 늘어선 신하들을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사태가 우습게 돌아가더군. 인베이더 녀석들이 에메랄드 헤븐까지 드러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다니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게리드.”

그러자 신하들 중 [게리드]라 불린 자가 이에 화답하고 나섰다. 그는 전신에 기이한 문신으로 가득 새긴 자였다. 대체 무슨 능력을 갖고 있는 건지, 전신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기세가 음울하면서도 무척이나 불길했다.

“하지만 나름 이해는 갑니다. 연합이 가진 패가 꽤 놀랍더군요. 전함끼리 출력을 공유, 증폭시키는 것도 모자라 차원결계까지 선보였습니다. 그 정도 기술력이라면 에메랄드 헤븐을 드러낼 만도 하지요.”

솔직히 에메랄드 헤븐 자체가 워낙 충격적일 만큼 대단해서 그렇지, 연합이 선보인 신기술들도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하긴 그렇겠군. 연합 녀석들. 우리가 알던 것 이상으로 준비했던 모양이다. 설마 그런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을 줄이야.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결과였다. 심지어 그런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는데도 여태껏 본국의 정보망에 걸려들질 않다니.”

황제의 미간이 자연스럽게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제국이 수십 년에 걸쳐 깔아놓은 정보망은 연합의 내부를 속속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라 자부했을 정도였다.

헌데 이번 신기술에 대해서만큼은 실용단계에 이르기까지 자그마한 단서조차 손에 넣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그만큼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는 거겠지요. 베네트 국장도 어리석은 자는 아닙니다. 정보유출이 의심되는 정황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방식을 계속 고수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요.”

“하긴 그렇겠지. 하지만 애써 만들어놓은 정보망이 이런 식으로 무용지물이 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군.”

황제가 심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자, 게리드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좀 더 신경 쓰라고 일러두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 해뒀으니 기존의 정보망 체계를 다시 정비하는 일은 게리드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지금까지 제국에서 음지에서의 일을 처리하고 정보를 총괄해온 것은 게리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정보망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게다가 이진운이란 녀석도 신경이 쓰인다. 지금까지 계속 계획을 방해해온 것도 모자라 이번엔 울브스마저 쓰러뜨렸지. 게다가 내 기세를 받아친 것도 그렇고.”

솔직히 말해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건 정보망의 허점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이진운의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하긴 연합에서도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자더군요. 외부에서 소환된 출신인 주제에 벌써 단기간에 엄청난 실력 향상을 보였습니다. 이제 1년 좀 넘은 상황입니다만 벌써 마이스터 상위권의 실력을 보유했더군요. 이 정도면 천외오천의 성장세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가히 괴물이라 할 수 있죠.”

“그렇군.”

황제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당장 지금 상황만 본다면 이진운의 존재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래봐야 마이스터 상위권 수준이고, 그만한 실력자는 아주 많지는 않더라도 그렇게까지 드문 건 아니니까.

하지만 방금 전 본 이진운에게는 드러난 실력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듯 보였다. 자신의 기세를 가른 것도 모자라 오히려 시공간을 뛰어넘는 형태의 사상기를 구사해 역으로 상처를 입혀올 줄이야.

물론 상체는 생채기 수준이고, 자신이 진심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마이스터와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진운이 보여준 행적도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게리드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다. 울부스는 대체 어떻게 하다 쓰러진 거지? 놈은 세계수의 출력 공유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 정도면 거의 반신 위에 가까운 힘을 발휘했을 텐데도 이진운 그 놈에게 졌지. 그 정도면 놈에게 뭔가 경지 이상의 특별한 게 존재한다는 말 아니냐?”

“그, 그건 저도······.”

당황하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황제는 혀를 차고 말았다.

“쯧쯧. 역시 그렇군.”

지금까지 이진운에 대해 여러 모로 정보를 수집해오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마땅한 게 없었다. 알게 된 것은 상식을 초월할 만큼 빠른 성장세와, 그가 무공이란 특이한 영능학을 주력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물론 무공에 대해선 황제도 대략적인 것은 알고 있었다.

현재 웰라우드 가의 분가나 분파들을 통해 점창의 무공이란 게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비주류 영능학 정도로 취급되고 있었지만, 최근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이진운의 영능학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선 이진운의 유명세 만큼이나 무공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였다.

그래서 황제도 무공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해 보려 했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삼재검이라느니 토납법이라느니 그런 기초적인 것들은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조금 수준 있다 싶은 무공들은 전부 강제정문이라는 강제성 있는 술식계약을 통해 전수함으로서 유출을 철저히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공이란 게 꽤 체계적이고 뛰어난 영능학인 건 사실이다만··· 그렇다고 해도 놈의 성장세는 이해가 안 간다. 아니 지구에서 영능을 접해보지 못했던 녀석이 그런 고등 영능학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상한 일이지. 분명 뭔가가 있어.’

그렇게 의구심을 드러낸 황제가 한쪽 구석을 돌아보며 물음을 던졌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리겔?”

대체 언제 나타난 것일까? 황제의 시선이 향한 그곳에는 좀 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흑의복면인이 서 있었다. 신하들도 가면을 쓴 리겔의 등장을 뒤늦게야 알아차리고는 흠칫 놀란 얼굴이 되었다.

“폐하께서 짐작하신 대로 이진운은 여러 모로 상식을 초월한 자인 건 분명하지요. 덕분에 저도 꽤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래 우리 계획도 번번이 파탄이 났지. 그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전쟁을 벌여서 시간을 벌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 점은 송구스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연이라 하기엔 매번 공교로울 정도로 그자와 계속 일이 엮여서 말입니다. 이번에도 그렇더군요. 설마 그 울브스가 패해 소멸할 줄은······.”

울브스의 소멸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솔직히 말해 리겔은 이번에야말로 이진운이 죽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이진운은 무사히 살아남고, 울브스가 도리어 소멸되었다.

이건 상상 이상으로 큰 문제였다.

“그래, 그 소식을 듣고는 나도 꽤 충격을 받았다. 악몽을 다룬다는 특성 때문에 거의 불사에 가까운 놈이 당하다니······.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기까지 하더군.”

그렇게 중얼거린 황제는 리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앞으로 놈을 좀 더 주시하도록. 철저히 지켜볼 필요가 있겠어.”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나설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해라. 이번까지만은 참겠다는 말이다.”

경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황제의 던진 그 말에, 리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번 개입으로 간섭력의 소모가 크신 겁니까?”

“간섭력의 소모보다는 윌키아 그녀의 눈을 피하는 게 문제였지. 아직까진 괜찮다만, 이 몸이 더 이상 활동하게 되면 그녀에게 들킬 위험이 높을 것이다.”

그랬다. 이 모든 것은 윌키아 몰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본디 정의롭고 선한 성품의 여신이었고, 그녀가 이런 내막을 안다면 그녀는 황제로부터 즉시 권능을 거둬갈 게 분명했다.

“성좌들께서 내려주신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한가 보군요.”

리겔의 시선은 황제의 오른손 검지에 닿아 있었다. 그곳에는 칠흑빛을 빚어 만든 듯한 반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무척이나 불길하게 보였다.

황제는 그 반지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평소에는 그녀의 눈을 가릴 수 있지만, 그녀의 힘을 직접 끌어다 쓰면 자연히 주시를 받을 수밖에 없지. 그래서 내가 나설 일을 최대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리겔의 모습에 황제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알았다면 됐다. 그럼 앞으로도 적당히 시간을 끌면서 싸움을 지속시키도록. 일단 연합의 시선은 돌려 놔야 될 테니 말이야.”

“물론입니다. 성좌분들께도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리겔은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공간제어능력을 가진 그만의 특수한 공간도약이었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게리드가 불쾌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통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놈이 정말로 폐하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건지도 의심스럽더군요.”

“나도 안다. 여전히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지. 하지만 놈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 어쩔 수 없지.”

처음에는 그의 복수심을 이용해 영입했었지만, 지금은 복수의 대상도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 이후로는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황제는 그야말로 신적 힘을 휘두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과 같이 진리를 꿰뚫어보는 진리안까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놈이 수상쩍다 하더라도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무표정했던 황제의 얼굴 위로 초조한 기색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무려 수십 년이 걸렸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어.”

그는 노쇠해버린 자신의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신의 권능도 결국 남으로부터 빌려온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새벽의 여신 윌키아가 마음만 먹으면 거둬 갈 수 있는 이 힘은, 자신에게 영생까지 부여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초대 황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황제가 신적 힘을 가졌으면서도, 인간의 수명을 넘어서지 못하고 노쇠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카데인은 그 사실을 용납하지 못했다. 고작 자신이 노화로 인해 맞는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명연장을 위해 많은 연구인력을 투입했지만, 그래봐야 인간의 최대 수명은 200세에서 300세 사이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현재 남은 수명은 불과 20년 남짓.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제 조금 남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영생이···.”

황제의 뒤틀린 입가에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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