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10화 (211/448)

9권-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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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헤븐을 성공적으로 정지시킨 이진운 일행은 서둘러 행성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에메랄드 헤븐 인근에 아군의 중형 전함 한 척이 대기하고 있었고, 일행은 별 탈 없이 무사히 행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에메랄드 헤븐의 기능 정지로 전세가 연합에게 유리해지는가 싶더니, 또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튀어나와버린 것이다.

“두 번째가 또 있었다고?”

새롭게 출현한 두 번째 에메랄드 헤븐의 등장에 어지간한 일로는 동요하지 않던 이진운조차 당혹을 금치 못했다.

인베이더 놈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히 패를 숨기고 있을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심지어 놈들이 감춘 건 또 하나의 에메랄드 헤븐 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초월 급 인베이더 도무누스.

어지간한 행성과 맞먹는 그 거대함도 놀라웠지만, 그 안에 내재된 그 압도적인 격은 모두를 질리게 만들었다.

반신 급 존재가 뿌리는 영압은 자신보다 하위의 존재에게 강한 족쇄처럼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진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내 전생 마지막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겠어. 아직 본신 능력을 다 되찾기도 전에 이런 괴물이 튀어나오다니······.’

그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 현경의 문턱에 겨우 발을 걸친 상태였다. 불과 1년 좀 넘는 시간 동안 이룬 성취라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였지만, 도무누스라는 괴물과 비교하자면 하찮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나마 천외오천이 저렇게 분전할 수 있는 것도 베네트 국장의 고유스킬인 징벌자의 저울이 작용하고 있어서일 뿐.

만일 베네트 국장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에메랄드 헤븐의 힘을 등에 업은 도무누스의 압도적인 폭력 앞에 진작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스승님, 이제 어떻게 하죠?”

아리엔이 우려에 찬 목소리로 건네 온 그 물음에, 이진운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자신이 가세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다.

‘덩치가 큰 만큼 허점도 많아 보이긴 한데··· 그게 생각보다 이점이 되지 못하고 있어.’

생각보다 베네트 국장과 천외오천은 도무누스를 상대로 크게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다루는 힘의 규모를 비롯한 종합적인 스펙은 도무누스가 압도적이었지만, 어디 싸움이란 게 단지 스펙만으로 되는 것이던가?

도무누스는 몇 번이나 대출력의 공격으로 이 주역 째로 모조리 쓸어버리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베네트 국장들이 놈의 육신을 가르고 찢으면서 공격을 무산시켜버렸다.

허나 문제는 도무누스의 믿기지 않는 회복능력이었다. 산산이 찢고 조각을 내도 금세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오는 그 재생력은 거의 사기에 가까웠다.

‘저 사기적인 회복능력만 아니었어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을 텐데······. 아마도 놈이 가진 반신으로서의 권능이 바로 저 회복능력인 것 같군. 저 회복능력을 어쩌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가 없겠어.’

하지만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대로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진운은 제자들과 일행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여기 있어라. 내가 나갈 테니까.”

“뭐야, 아저··· 아니, 스승님. 이제 와서 우릴 빼놓겠다고?”

발끈하면서 튀어나오는 레이첸의 모습에, 이진운은 다그치듯 냉정하게 말했다.

“레이첸. 저 싸움은 지금까지 해온 그런 수준이 아니야. 네 실력이 제법이긴 하다만, 저기에 끼어들었다간 아마 몇 초도 못 버티고 죽고 말거다. 말 그대로 개죽음이지. 그런데도 나와 함께 갈 테냐?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데려가 주마.”

“으음······.”

이진운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레이첸도 따라가겠다고 고집부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진운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낄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저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흉험한 싸움은 가히 초월적이라서, 자신이 나섰다간 그 여파만으로도 쓸려나갈 것 같았다.

레이첸이 수긍한 듯 보이자, 이진운도 그에 대해선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았다.

“일단 너희들은 이 함을 타고 곧바로 인피니티 킹덤으로 돌아가 있어라. 리스티가 개발한 라비린토스라면 도무누스가 전력을 다한 공격도 최소한 몇 번은 견딜 테니까. 그게 더 안전할 거다.”

“알겠어요.”

“그럴게요, 스승님.”

이제 일행 중에서 더 이상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제자들을 뒤로한 채 이진운은 즉시 함을 나섰다. 배틀 슈트의 플로트 윙을 전개한 그는 속도를 최대한 끌어 올려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도무누스는 몇 번이나 영파포를 쏘아낸 상태였다. 강대한 영력을 한데 응집시켜서 쏘는 대규모 범위 공격에 연합 함대가 전멸하는가 싶었지만, 그조차도 리스티가 발동시킨 라비린토스의 차원회랑을 관통하진 못했다.

“적어도 몇 번은 버텨주겠군. 그때까지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 할 텐데.”

라비린토스는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했지만, 아직 완전하지 못했다. 사실 이진운에게 배운 진법의 이론을 토대로 급조해 개발한 방어 시스템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좀 더 완성도를 높였을 테지만, 이 정도만 해도 리스티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해줬다 할 수 있으니 뭐라 불만을 가질 수도 없는 일이다.

이진운이 접전 지역으로 다가서는 걸 눈치 챈 건지, 천외오천들의 시선들이 느껴졌다. 하긴 그들도 현경과 비견된다는 그랜드 급의 강자들이었다. 이진운의 접근을 눈치 못 챘을 리 없었다.

서둘러 가세하려던 그때, 전면의 우주 공간에서 대규모 일그러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진운도 익히 알고 있는 워프 아웃의 전조 현상이었다.

깜짝 놀란 그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워프 아웃이라고? 대체 누가!?”

현재 라인트라 주역은 워프 자체가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관리국의 갈라르 호른 함대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리클의 조력과 디멘션 쿼츠 때문이었을 뿐, 워프는 여전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리클이나 리겔 둘 다 그동안 비축해놓은 디멘션 쿼츠를 전부 소모한 상황인데, 대체 어느 누가 이곳으로 워프를 성공시켰단 말인가?

경각심이 든 이진운이 경계 태세로 주시하던 그때, 드디어 웜 홀이 열렸다.

고오오오!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한 웜 홀의 출현과 함께,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대규모 함대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합의 전함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전함과 거기에 그려진 문장은 그 소속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저 새벽별은··· 제국인가!?”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교육 과정 속에서 여러 차례 접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전함의 형태도 제국의 규격 형태와 대동소이했다.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론데니움 제국의 함대였다.

“설마, 적은 아니겠지?”

이진운도 제국이 연합과 동맹이란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인베이더와의 전쟁에서 상당 부분 방관하고 있던 제국이 이런 시기에 나서다니.

조금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헌데 그때, 이진운의 기감으로 믿기지 않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인식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동요를 드러낸 그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이건······!?”

이진운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제국의 함대 선두에 선 한 인영을.

흰 수염과 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노년의 사내였지만, 그 육신 안에 내포된 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그런 영역의 존재감이었다.

‘이건 반신조차도 아니야. 그마저도 뛰어 넘었어!’

아직 경지를 다 되찾진 못했지만, 영혼의 격만큼은 반신의 영역에 달해 있었다. 그런 자신을 넘어선 수준이라면 하급신 이상이란 뜻이 된다.

“···정말이었군. 제국의 황제는 하급신의 신위를 발휘할 수 있다더니······.”

교육을 통해 배우긴 했지만, 그게 사실일 줄이야. 일개 인간이 신과 다름없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리고 제국의 황제 알카데인 1세는 그의 눈앞에서 이적 같은 광경을 보여주었다.

태산압정과 같은 형태로 곧게 내리긋는 평이한 일로의 검격!

그것이 말 그대로 우주 공간을 쪼개버렸다. 그 궤적이 닿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베어진 것이다.

에메랄드 헤븐의 막강한 영력을 등에 업은 도무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놈의 거대한 육신을 절반으로 가른 것도 모자라, 심지어 그 뒤에 존재하고 있던 행성 에메랄드 헤븐까지 같이 쪼개져 버렸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한수였다.

“일검에 행성을 쪼개다니······. 이게 신의 힘인가?”

이진운조차 질릴 듯한 기분이었다. 전생의 힘을 되찾는다면 지구의 달 정도 되는 소행성은 쪼갤 수도 있을 듯싶었지만, 제국 황제가 보여준 한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에메랄드 헤븐은 그보다 거의 수백 배 이상 컸다. 헌데도 그런 거대한 행성을 도무누스와 함께 그대로 이등분해버린 것이다.

“흐음, 이대로 놔두면 연합과 아군의 함대가 휘말리겠군.”

낮게 중얼거린 황제가 손을 펼치자, 쪼개진 행성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것은 그가 일으킨 거대한 영력의 폭풍이었다.

그가 의지를 일으킨 순간, 우주에 존재하는 기운들이 감응하였고 그것은 곧 황제의 힘이 되었다.

콰드드드득!

굉음을 동반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에메랄드 헤븐은 마치 분쇄기에 들어간 나무토막처럼 흔적도 없이 갈려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반으로 쪼개졌던 거대한 행성은 제대로 폭발해 보지조차 못하고 완전히 소멸하고 만 것이다.

다시 몸을 복원시킨 도무누스가 그 사실을 깨닫고는 욕지기를 터뜨렸다.

[이런, 빌어먹을!]

“자, 여기서 더 해볼 텐가? 지금의 네놈이라면 짐에게 대적할 수 없음을 잘 알 것이다.”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듯 내뱉는 황제의 발언에, 도무누스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분기가 치솟았지만 그의 이성은 냉정하게 현 상황을 판단하였다.

에메랄드 헤븐 1호는 강탈당하고, 2호기는 박살난 지금 더 싸워 봐야 의미가 없었다. 설령 그것들이 멀쩡했다 하더라도, 진짜 신위를 발휘하는 황제를 상대로는 승산을 점치가 어려웠으리라.

[···으득, 이번엔 우리가 졌다.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그래, 좋은 판단이군. 이왕 자비를 베푼 김에 길도 터주도록 하마.”

황제는 더 이상 손을 쓸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놈을 살려주는 것도 모자라 길까지 내주었다. 제국의 함대가 양 갈래로 갈라지자, 인베이더 함대가 후퇴할 수 있는 퇴로가 생겨났다.

그것을 본 이진운이 참다못해 나서려던 그 순간, 어느새 다가온 연정운이 황급히 그를 붙잡아 말렸다.

“참아. 지금 나서선 안 돼.”

“이대로 놈들을 놔 주자고?”

이진운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지만, 연정운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어쩔 수 없어. 황제가 직접 나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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