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09화 (210/448)

9권-09화

‘결론은 저 행성을 제거해야 승산이 있다는 건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제아무리 베네트 국장이라 하더라도 셀 수 없이 많은 세계수들에 의해 막대한 영력으로 방어되는 행성을 부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혹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도무누스가 가만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이놈!]

도무누스가 흉포한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제아무리 회복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해도 고통 그 자체가 경감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역시 보통 포효가 아닌지, 옆에 있던 수 킬로미터짜리 소행성이 박살 나 흩어졌다. 이것이 바로 초월 급 인베이더의 위용이었다.

베네트 국장은 그 이후에도 몇 차례나 공격을 가해 놈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놈의 본질 자체를 없애지 못하는 한, 끝없이 재생해 되살아날 것이다.

심지어 천외오천들이 제거한 분열체들도 다시 늘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홀로 군단을 감당한다는 도무누스의 능력.

이래선 승산이 없었다.

[하찮구나! 필멸자들아, 유한을 사는 것들이 고작 무한에 다다른 초월자 앞에서 무슨 발악을 하겠다는 거냐? 더 이상 저항 말고 얌전히 죽어라!]

고오오!

“젠장, 끝이 없는데?”

“도대체가 죽어야 말이지. 징벌자의 저울이 발동된 상태라 그런지 싸울 만은 한데, 이러다간 우리가 먼저 지쳐 죽겠다.”

연정운과 사토 류지는 그렇게 떠들면서 이 난관을 극복할만한 방법을 강구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저 에메랄드 헤븐이라도 없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저걸 없앤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문제였다.

“이제 어쩝니까, 국장님.”

대책을 묻는 멀린의 말에, 베네트 국장은 다시 한 번 도무누스의 육신을 찢어발기면서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그가 곧 올 테니까.”

“그라니요? 그게 누굽니까?”

지금까지 지원군이 온다는 소린 들은 적도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베네트 국장은 조금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음, 귀신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이제야 오셨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주공간 한복판에서 돌연 일그러짐이 형성되었다. 그건 워프 아웃의 조짐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열린 웜 홀을 통해서 다수의 함대가 쏟아져 나왔다. 아르탈 행성 연합의 전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전함들이었다.

그 정체를 알아본 연정운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저건 제국의!?”

현재 우주에서 제국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아르탈 행성 연합과 동맹 관계인 3대 세력 중 하나인 론데니움 제국.

제국 소속의 전함들의 측면에는 그들을 상징하는 새벽별의 문장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다.

“세상에··· 론데니움 제국이라니. 대체 저 치들이 어떻게?”

사토 류지조차 경악에 찬 얼굴이 되었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제국 함대가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국 함대라니, 국장님 대체 누굴 부른 겁니까? 저만한 규모의 함대라면 보통 거물이 아닐 텐데요.”

“알카데인 황제지.”

“에엑, 그 작자를 부른 겁니까?”

생각지도 못한 그 이름에 연정운이 기겁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베네트 국장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부르지 않았다. 그 자가 스스로 구원해주기로 자청한 거지.”

“그 작자가 말입니까?”

그 자가 스스로 자청했다는 말에 연정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알카데인 황제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자라면 당연히 보일 법한 반응이었다.

옆에 있던 멀린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따.

“이상한 일이군요. 동맹이긴 해도 좀처럼 나서는 일이 없던 황제가 무슨 일로······?”

론데니움 제국 당대의 황제 알카데인 1세는 폭군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자였다. 모든 것을 스스로 주관해야 성이 풀리며, 자신의 성미를 거스르는 자는 참혹하게 처단하는 공포정치로 지금까지 오랫동안 나라를 이끌어왔다.

물론 그런 알카데인 황제에게 간언한 충신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제국의 안녕을 걱정하던 지식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황제의 노여움 속에서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황제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모조리 처형당한 것이다.

그 뒤로 그에게는 이명이 붙었다. 폭군, 혹은 철혈황제로.

물론 그런 공포정치에 대해 반발하는 자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크고 강대해서, 감히 저항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몇 차례 반란도 일어났었지만, 그럴 때마다 황제의 손에 의해 참혹하게 진압되었다. 심지어 어떤 행성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행성에 살던 모든 사람들을 전부 학살한 전례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런 폭군 황제가 이쪽에서 요청한 것도 아닌데도 먼저 지원을 자청했다고 하니 어느 누가 믿어지겠는가.

물론 지금은 노년이 다 된 상태인지라 어느 정도 폭군 기질이 조금 잠잠해졌다곤 하지만, 사람은 본디 타고난 본성이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그 황제,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결정은 아닐 거다. 하지만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니 어쩔 수 없었지.”

연정운의 말에 그렇게 대꾸해준 베네트 국장의 얼굴도 조금은 심사가 복잡해 보였다. 그만큼 알카데인 황제는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가 무슨 의도로, 어떤 목적을 갖고 지원하겠다고 직접 함대를 이끌고 나선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제국 함대라고? 하필이면 이럴 때에! 대체 차원단층은 어떻게 하고 워프를 성공시킨 거지?]

도무누스조차 제국 함대의 출현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특히 디멘션 쿼츠에 의해 라인트라 일대의 워프 자체가 차단된 상황인데, 제국이 무슨 수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런 도무누스의 의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들려왔다.

“신의 권능 앞에서 그런 잔재주는 하등 무의미하다는 걸 알아 둬라.”

[네놈은!?]

자신 앞에 나타난 한 사내의 모습에 도무누스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희디힌 수염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노년의 사내는 바로 다름 아닌, 현 제국의 황제 알카데인 1세였다.

제국 함대의 선두에 맨 몸으로 나타난 그는 도무누스를 무덤덤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인베이더의 하수인 주제에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감히 짐에게 놈이란 단어를 쓰다니.”

[알카데인! 네놈이 직접 나섰나?]

“그렇다. 최근 들어 네놈들이 좀 시끄럽게 군다고 하더군. 그래서 짐이 나선 거다.”

도무누스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여유로운 태도.

하지만 론데니움 제국의 황제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인세를 아득히 초월한 신의 힘을 휘두르니까.

“그리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내놨다지?”

[하? 에메랄드 헤븐을 장난감이라고? 어디, 그 힘을 네놈도 직접 경험해 볼 테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무누스의 전신으로 막대한 영력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 일대에 존재하는 우주공간상의 영력은 물론, 에메랄드 헤븐으로부터 제공되는 막대한 영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가공한 힘의 집속을 체감하면서도 알카데인 황제는 태연자약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역시 그렇군. 행성에 심은 세계수란 것으로 행성 에너지를 자유롭게 끌어다 사용한다는 건가?”

그랬다. 지금 도무누스가 다루고 있는 영력의 규모는 어지간한 반신의 역량을 훨씬 초월한 수준. 저 힘이 휘둘러지는 것만으로도 이 일대 시공간이 헝클어질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알카데인 황제를 위협하지 못한다.

“허나 고작 저 따위 것을 믿고 짐 앞에서 날뛴 거라면 오늘 꽤 따끔한 맛을 볼 거다.”

황제가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아들었다. 마치 예식용으로 만들어진 검처럼 화려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것이야말로 황제 대대로 전승되어온 최고의 신기 [여명]이었다.

[자, 네놈이 끌고 온 함대 째로 쓸려나가 죽어라!]

죽음을 선언하는 포효와 함께, 도무누스가 해방한 거대한 영력의 해일이 우주공간을 모조리 집어삼킬 듯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이제까지 해온 공격보다도 더 강대한 규모였다.

허나 그것을 앞두고도, 알카데인 황제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착각하고 있구나. 제아무리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다 해도, 그게 온전히 네 것일 것 같으냐? 자, 봐라. 진정한 신위를!”

그가 오른손에 쥔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순간,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 주역의 모든 영력이 그의 의지 하에 지배되었다. 그것은 적아를 구분할 것도 없었다.

그의 권능이 지배가 닿는 곳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크!? 이런!]

도무누스의 당혹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진 방대한 영력은 물론, 세계수의 영력까지 모조리 알카데인 황제의 손아귀 안으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방출한 영력의 해일조차 순식간에 흩어지면서 알카데인 황제가 든 검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무누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 그럼 주제 파악을 못하고 건방지게 군 대가를 치러야겠지.”

그 말과 함께 알카데인 황제의 검이 수직으로 내리 떨어졌다. 그것은 시공간을 가르는 절대적인 참격이 되었다.

······!

소리 없는 막강한 파장과 함께, 우주공간 한복판에 단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그 궤적 안에 든 모든 것을 이등분해 버렸다.

그것은 도무누스는 물론이고, 그 뒤에 존재하고 있던 거대하기 짝이 없는 에메랄드 헤븐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행성을 일격에 쪼개 버렸어!?”

“세상에······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경악에 찬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 일 검에 행성을 완전히 두 조각으로 쪼개다니! 이게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무위란 말인가?

사람들은 그제야 제국의 황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실감했다. 역사나 이야기를 통해 들어왔었지만, 그 전설이 사실임을 이렇게 체감하게 되는 경우는 단연 처음이었다.

론데니움 제국의 황제들이 보유한 신적인 강함.

그것은 제국의 건국신화와 연관되어 있었다.

론데니움 제국을 연 초대 황제는 새벽의 신 윌키아의 도움으로 제국을 건국했고. 그녀로부터 대대로 한 가지를 약속받았다.

그것은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는 자신의 자손들에게 신의 권능을 허락해주는 것이었다.

초대 황제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던 여신 윌키아는 그 청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제국의 황제들은 대대로 신적 권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부여받는 권능에도 한계는 있었다. 제아무리 신적 권능을 다룰 수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수명을 초월할 수 없으며, 다룰 수 있는 권능도 하급신 수준으로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제국의 황제는 충분히 무적을 구가했다. 물질계에 간섭할 수 있는 하급신의 존재는 대적할 만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또 한 번 증명되었다.

[알카데이이인!]

육체가 두 조각 난 도무누스가 분노에 찬 포효를 터뜨렸다. 자신을 두 조각을 내고도 모자라 에메랄드 헤븐까지 박살을 내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전무후무한 참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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