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08화 (209/448)

9권-08화

안 그래도 거대한 도무누스의 눈이 일순 크게 떠졌다. 이건 공간 왜곡 정도가 아니었다. 단순히 공간 자체만 길게 늘려놓은 공간왜곡이었다면 자신의 공격이 고작 한계 사정거리를 좀 넘어섰다고 해서 이렇게 날아가던 도중에 소실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도무누스의 눈에는 연합 함대를 둘러싼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시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얽힘.

그것을 본 순간,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차원결계? 그럴 리가!?]

초월자 중에 차원을 다루는 자들은 더러 존재했지만, 마도공학적으로 차원을 다루는 방법은 아직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연합은 물론 인베이더 쪽에서도 연구 중이긴 했지만, 이제 겨우 시작 단계였다.

자신의 공격을 받아낼 정도로 완성된 차원결계라고?

도무누스는 믿을 수 없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자 좀 전엔 놀란 나머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군.

[아니군. 완전한 건 아니야. 그래, 말하자면 유사 차원결계 정도는 되겠어.]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이상의 것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도무누스는 어디까지나 전투계열의 초월 급 인베이더였을 뿐, 생산이나 연구 계통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놀랍군, 연합에서 이런 기술을 개발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여러 방편으로 연합 내에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지만 이런 차원계열의 마도공학 기술이 완성됐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철저히 비밀로 해 왔다는 말이 된다.

‘역시 만만치가 않군. 하긴 이러니 천년 이상 우리와 싸워 올 수 있었겠지만.’

그의 시선이 베네트 국장으로 향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그래, 이걸 믿고 있었다 이거지?’

도무누스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연합 함대 자체를 인질로 삼아 놈들을 유린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이라면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구나. 공학적인 기술로 차원결계까지 다룰 수 있을 줄이야.]

“운이 좋았지.”

[그걸 운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그래, 지금까지 용케 잘 숨겨온 건 운이 맞겠군.]

베네트 국장의 덤덤한 화답에, 도무누스는 한층 더 기세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원결계라고 해도 절대적인 건 아니야. 하물며 불완전한 거라면 더더욱 그렇지! 과연 그 결계가 언제까지 함대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으냐!]

고오오오!

수만에 이르는 도무누스의 분열체들이 막대한 힘을 집속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차원결계에 자신의 공격이 막혔던 그 순간부터 세계수로부터 공급받는 방대한 영력을 누적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 총량은 조금 전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웠다.

베네트 국장은 자신과 연결된 통신 회선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리스티. 막을 수 있겠지?”

[예, 아직까진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미완성이라 해도 명색이 차원회랑결계니까요.]

그랬다. 이것은 바로 통합출력공명 시스템 아르마다에 근간을 둔 새로운 방어체계인 라비린토스(차원영겁회랑)이었다.

차원은 시간과 공간을 통칭하는 개념이고, 이를 다룬다 함은 하나의 우주를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즉 연합 함대와 도무누스 사이에 하나의 작은 소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이 라비린토스는 완전하진 못했다. 아직 연합에서도 차원에 대한 개념은 연구 중이었고, 시작 단계에 불과했으니까.

이걸 불완전하게나마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진운에게 배운 진법 덕분이었다. 진법은 일정 공간 내에 영력의 배열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현상을 만들어낸다.

그 중에는 환상을 보여주는 것들도 있었고, 실제 자연 현상을 일으키는 것도 있었다.

리스티는 그 모든 것이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서도 크게 관심 갖게 된 몇 가지가 있었다.

바로 시간과 공간을 간접적으로나마 제어하는 진법들이었다.

이진운도 단지 원리와 지식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는데 리스티는 이것을 배우자마자 바로 실용화 시켰다.

그것이 도무누스의 공격을 훌륭히 막아낸 차원영겁회랑 라비린토스였다. 아르마다 시스템에 의해 연합의 전함들 사이에 연결된 에너지 공유라인의 무형적 형태에 일부러 변화를 줌으로서 유사시에 진법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진법의 공능은 함대가 가진 디스토션 필드의 효과와 융합되면서 일종의 유사 차원결계로 진화하게 되었다.

고오오오!

또다시 우주공간을 불사르며 다가오는 강대한 빛줄기들의 향연! 그것은 실로 엄청나단 말로도 다 표현 못할 만큼 가공했다.

설령 태양 규모의 행성이 가로막는다 해도 충분히 부수고 나아갈 정도의 위력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격이 미처 닿지 못한 채 꺼지는 촛불마냥 소실되고 만 것이다.

[이것도 안 통하나?]

도무누스의 두 눈에 분기가 어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공격인데도 이마저도 통하지 않다니.

[불완전하다고는 해도 평범한 차원결계는 아니군. 시공간 자체를 무수히 꼬아버림으로서 차원단층을 층층이 쌓아올린 것과 거의 유사한 방어력을 보이는 건가?]

대충 원리는 알 것 같았다. 이건 거의 미로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미로.

그렇기에 단순히 다가가는 것조차 지난했다. 공격이든 접근이든, 시공간 자체가 꼬인 미로 속에서 영영 헤매다가 결국 자멸하고 말 테니까. 자신이 먼저 펼쳤던 공격이 힘이 다해 소실된 것도 바로 그런 원리였다.

쾅! 콰아아앙!

그러는 사이 천외오천과 베네트 국장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하, 다 죽어!”

사토 류지가 도무누스의 분열체 사이를 질주하면서 놈들을 난도질해 터뜨려 버렸다.

도무누스의 본체에는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었지만, 그래도 분체는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저도 거들지요.”

멀린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다루는 환상은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 그가 석장을 허공을 내려치는 순간, 분열체 수백 개체가 거대한 무언가에 짓눌린 듯 단번에 압사되어 소멸되었다.

제아무리 분열체라 하더라도 그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준대형 전함에 버금가는 크기인 걸 생각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자자, 다 죽어! 오늘 난 트리거 해피다! 모조리 저격해주마!”

연정운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마탄들 중 가장 흉악한 수법을 미친 듯이 난사했다. 그가 이번에 사용한 탄종은 다름 아닌 공허탄. 마탄에 적중한 대상을 무(無)와 혼돈(混沌)의 공간이라는 허수차원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강력한 수법이었다.

물론 강력한 만큼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일정 수준의 격을 가진 존재들은 일정 확률로 공허탄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무누스의 분열체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가진 반신의 격은 분열체들에게까지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에 뒤질세라, 다른 천외오천들도 분전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이나 보여준 용천군의 비기 흑천의 포효가 크게 퍼져나가면서 공간을 죽음으로 뒤덮고, 지금까지 힘을 아끼고 있던 로베르트 슈마허도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자, 봐라! 축퇴로의 막대한 권능을 손에 쥔 거신의 위력을!”

로베르트 슈마허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사상기를 일으켰다. 그의 고유스킬은 바로 자신의 뇌리 속에 구체화 된 상상이나 이미지를 현실로 구현하는 망상구현.

그는 그 스킬을 진화시켜 서브컬쳐 속의 능력과 장비들을 사상기를 통해 구현할 수 있었다.

거대한 갑주와 같은 형상이 허공에 나타나더니 로베르트 슈마허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종의 로봇이었다. 전고만 무려 200미터를 넘는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자 받아라! 호밍 레이저!]

안에서 로베르트 슈마허가 움직인 순간, 거신도 따라 움직였다. 양 손이 활짝 펼쳐진 순간,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섬광들이 우주공간을 광선으로 가득 채워나갔다.

그것들의 목표는 인베이더 함대와 도무누스의 분열체 전부였다.

막강한 위력의 빛줄기들은 목표물들을 인정사정없이 강타하거나 꿰뚫었다. 어찌나 강력하던지 인베이더 함대의 디스토션 필드도 일부 뚫릴 지경이었다.

“으앗! 이 미친 와패니즈 자식! 조심 못해?”

한창 신나게 도무누스 분열체 사이로 공격을 퍼붓던 사토 류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근접전에 특화된 자신이 적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던 때에 이 같은 정신 나간 광역 공격이라니!

자칫 잘못했다간 자신마저 휘말릴 뻔했다.

그러자 그 소릴 들은 로베르트 슈마허가 코웃음 쳤다.

[흥, 감식안 갖고 직사의 마안 운운하는 오타쿠 놈한테 들을 소린 아닌데?]

“뭐야? 사상기로 건 버스터를 구현해 놓은 네놈은 오타쿠가 아니고?”

[닥치고 비켜! 더 휘말리기 싫으면!]

그렇게 쏘아붙인 거신의 손가락에서 무수한 탄환이 쏟아졌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미사일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무려 마이크로 블랙홀을 일으킬 수 있는 광자어뢰였다.

미사일들이 작열한 순간 작은 마이크로 블랙홀들이 생성되면서 모든 것을 찢어발기고 삼켜버렸다.

그것은 함대든 도무누스의 분열체든 구분하지 않았다. 모두 공평하게 소멸로 이끈 것이다.

[후우······.]

한차례 힘을 쓴 덕분에 분열체의 수를 상당수 줄일 수 있었지만, 그만큼 소모도 적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망상구현은 가상의 존재를 현실로 끌어올 수 있었지만, 그만큼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게 강력할수록 심력과 영력의 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지금까지 그가 최대한 힘을 아끼며 싸웠던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하지만 런 활약조차 베네트 앞에선 무색했다. 그는 도무누스의 본체를 상대로 가히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아고 있었다.

절현광(絶絃光) 쌍아(雙牙)

공간을 가르는 두 줄기의 섬광! 거기에 도무누스의 본체가 네 갈래로 찢어졌다.

[크웃! 이놈이!]

도무누스는 재빨리 찢겨진 자신의 육체를 이으면서 대응하려 했지만, 그보다 베네트 국장의 공격이 더 빨랐다.

베네트 국장의 고유스킬 [징벌자의 저울]이 그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현광 난무(亂舞)!

이번에는 복합적인 궤적들이 종횡난무하면서 그를 찢어발겼다. 이건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한수였다.

대형 행성에 가까운 크기인 도무누스의 육신이 수백 수천 갈래로 찢겨져나갔다. 이런 거대한 것을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찢어발길 수 있는 베네트 국장의 무위가 가히 인간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베네트 국장의 눈매는 여전히 차가웠다. 이걸로도 도무누스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도무누스의 육신은 시간을 거꾸로 되감은 듯 순식간에 복원되었다. 믿기지 않는 회복능력이었다.

아니 도무누스의 회복능력은 이전에도 가공하긴 했지만, 이건 기존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영체복원까지 이렇게 순식간에···? 역시 저 행성 때문인가.”

그가 가진 비기인 절현광은 물질 뿐만 아니라 영체에게도 타격을 주는 수법이었다. 그런데도 이렇듯 순식간에 회복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에메랄드 헤븐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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