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07화
물론 힘의 크기만 하급신에 버금갈 뿐, 실제 역량이 그 정도까지 상승하진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베네트로선 곤란했다.
물론 싸우려 한다면 싸우지 못할 것도 없었다. 징벌자의 저울은 강력한 능력이었고, 그의 경지가 그랜드 급이라 해도 그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한 몸에 국한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일단 도무누수와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다면 주변을 돌아볼 수 있을만한 여력을 남기기 어려웠다.
즉, 싸움의 여파에 연합 함대가 휘말려도 돕거나 보호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저 덩치 큰 녀석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지. 아니 오히려 그 점을 약점으로 노린 건가?’
방금 전 도무누스가 발산한 막대한 영력의 폭풍이 이 주역 전체에 고루 미쳤다. 놈이 마음만 먹는다면 울레이브 어느 곳이든 힘을 직접 투사할 수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한마디로 말해··· 놈은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 함대 전체를 인질로 잡은 셈이군.’
그렇지만 베네트 국장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 중 이 정도 난관은 이미 여러 차례 있어왔었고, 이번 상황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의 우수가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자 묵직한 압력이 이 일대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도무누스. 세계수 행성인지 뭔지를 등에 업었다고 해서 아주 기고만장해졌구나.”
그는 조용히 읊조리면서 오른손으로 내리누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자 믿기지 않는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놀랍게도 도무누스가 일으킨 영력의 폭풍이 순식간에 잠잠해지고 있었다.
[역시 만만치 않구나. 베네트. 그래도 이 정도는 막을 수 있다 이거군.]
방금 일으킬 영력의 폭풍은 그랜드 급이 발휘할 수 있는 규모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헌데도 그것을 가벼운 손동작만으로 제압해 버리다니.
그래서인지 에메랄드 헤븐 덕분에 힘의 규모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 상황에서도 도무누스의 눈빛은 무척이나 냉정해 보였다.
[하지만 과연 네 녀석이 지키는 싸움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자, 그럼 어디 받아보거라!]
쿠오오오!
도무누스의 입이 크게 벌려졌다. 그 위로 막대한 영력이 응집되면서 거대한 에너지 구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 크기만 해도 어지간한 소행성 크기에 맞먹었다.
그것을 본 베네트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성가시게 됐군. 다들 물러서! 전투 중지! 연합의 전 함대는 멀찌감치 뒤로 물러난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연합의 함대들이 일제히 거리를 벌려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무누스가 준비하고 있는 저 공격은 물러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집속되고 있는 무지막지할 정도의 영력!
저것이 해방될 경우, 아마도 이 일대 주역을 전부 쓸어버리게 될지도 몰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천외오천이 베네트 국장 옆으로 나섰다.
“일단은 저것부터 막아보죠.”
그들 중 가장 먼저 손을 쓰기 시작한 건 멀린이었다. 그가 석장을 흔든 순간, 도무누수 전면에 응집되어가던 거대한 힘의 흐름이 돌연 수축하기 시작했다.
[음? 이건!]
도무누스도 깜짝 놀란 듯 멀린을 응시했다. 그리곤 금세 뭔가 알아챈 듯 중얼거렸다.
[그렇군. 네놈이 바로 그 멀린이란 놈이구나. 환상을 다룬다기에 울브스 녀석과 비슷한 계통인 줄 알았더니, 섭리마저 속일 정도였던가.]
그랬다. 멀린이 가진 능력은 환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착시를 일으키거나 하는 환각의 일종은 아니었다.
모든 인지를 속이고, 인과를 속이며, 섭리마저 속이는 바로 그러한 종류의 환상인 것이다.
지금 보인 한 수도 그러했다. 멀린은 심지어 에메랄드 헤븐과 도무누스 사이에 이어진 에너지 공유 라인을 속임으로서 그 힘의 흐름을 뒤틀어내었다 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 멀린이 조금 계면쩍은 얼굴로 물러났다.
“역시 쉽지만은 않군요.”
일단 에너지 라인을 뒤틂으로서 당장이라도 날아올 것 같던 광범위 공격은 차단해냈지만, 그건 일순간뿐이었다.
다시 몰려드는 영력의 흐름이 도무누스를 중심으로 휘돌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만 두고보지 않겠다는 듯, 가장 먼저 용천군이 나섰다.
[모든 경계는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나니!]
그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멸사기의 흐름! 그것은 순식간에 팽창하더니 도무누스의 거대한 몸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이었다.
[여기서 그대의 죽음을 울리겠노라!]
고오오오!
검은 기류가 구 형상으로 굳어지면서 그 안에 든 모든 것을 죽음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용천군이 가진 광역 섬멸기 중 하나인 [파국의 경계].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범위 안에 든 모든 것을 죽음으로 이끄는 비기였다.
그래서일까 그 안에 든 도무누스의 육신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구체가 수축해 갈수록 멸사기의 밀도도 점점 높아지면서 완전한 소멸로 이끌고 있었다.
그 결과, 도무누스의 입이 자리했던 부분이 뭔가로 도려낸 듯 완전히 소멸되었다. 놈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한 건 안타까웠지만, 거대한 행성과 맞먹을 만큼 거대한 육신을 생각한다면 이것도 상당히 큰 피해였다.
그렇지만 그만한 데미지를 입고도 도무누스의 영기는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팽배하게 부풀어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처구니없군. 내 앞에서 감히 죽음을 논하다니······.]
전과 다를 바 없이 울려오는 영언과 함께, 도무누스의 육체가 빠른 속도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동영상을 거꾸로 되감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저건 대체··· 무슨 괴물이냐?”
로베르트 슈마허가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용천군의 한수는 그야말로 가진 전력을 다한 거였다. 헌데도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복구해 낸다고?
자신이 나선다고 해도 과연 제대로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죽어!”
사토 류지가 우주 공간을 초신속으로 내달리면서 자신의 대거로 도무누스의 육신을 종횡무진으로 난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신통찮았다.
그의 전투방식은 감식안으로 파악한 급소나 결을 가름으로서 상대를 확실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무누스에겐 전혀 먹히지 않았다. 약점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을뿐더러, 워낙 몸체가 거대한 탓에 웬만큼 베어봐야 표피 외에는 타격을 입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손상된 부분을 복원하는 재생능력은 상상을 초월해서, 그가 입힌 상처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이건 무슨 칼로 물베기잖아!”
[우습구나! 고작 필멸자 따위가 내게 덤비려는가!]
천외오천은 몇 번이나 공격을 퍼부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멀린이 중간 중간 영력의 흐름을 뒤틀지 않았더라면 전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건 진짜··· 진저리 날 정도로 괴물인데?”
연정운의 푸념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신 위에 걸친 초월자라 해도 신적 존재임은 틀림없었다. 그들은 절대 죽지 않으며, 설령 소멸한다 해도 기나긴 세월을 거쳐 다시 부활하는 게 가능한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지금 그들 앞에 있는 도무누스는 너무도 규격 외였다. 그 거대함도 거대함이지만, 이정도로 터무니없는 회복 능력이라니!
도저히 죽일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자아, 재롱은 다 부렸느냐? 이제 죽어줄 시간이다!]
하지만 베네트 국장도 그냥 손 놓고 있지 않았다. 그가 손짓하는 순간. 우주 공간을 가르는 거대한 궤적이 도무누스의 육신을 가르고 있었다.
절현광(絶絃光)
[크헉!]
지금까지 한 번도 비명을 지르지 않던 도무누스가 고통스런 영언을 토해냈다. 머리부터 놈의 꼬리지느러미가 있는 곳까지 엄청나게 긴 상흔이 그려져 있었다.
“국장, 어떻게 한 겁니까?”
로베르트 슈마허가 놀란 두 눈을 끔뻑이며 던진 물음에 베네트 국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놈에겐 일반적인 공격은 통용되지 않는다. 육체는 어디까지나 물질세계에 간섭하기 위한 매개일 뿐, 놈의 본체는 바로 영혼에 있지. 놈을 해치우고자 한다면 그 본질을 공격해야 해.”
“오호라! 그래서였군. 어쩐지 너무 회복이 빠르더라.”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일정 수준 이하의 영체 공격은 완전 무시해 버리니까.”
하지만 방법을 알아도 소용이 없을 만큼 도무누스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베네트 국장이 사용한 수법처럼 놈의 본질에 타격을 주기 위해 공격수단을 바꿔보기도 했지만, 생각처럼 잘 먹혀들질 않았다.
그냥 반신 급이라면 어떻게든 먹혔을지도 모르겠지만, 놈은 에메랄드 헤븐을 통해 막대한 영력을 공급받고 있는 상태다. 그 힘으로 영체까지 강화된 탓에 제대로 된 데미지를 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놈이 막대한 영력을 모아서 연합 함대를 향해 쏘려던 브레스 공격만큼은 철저히 막아냈다는 게 성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도무누스도 그렇게 심기가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기껏 에메랄드 헤븐으로부터 막대한 영력을 공급받고 있으면서도, 놈들의 집요한 공격에 제대로 전력을 다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놈들! 어지간히도 성가시게 구는구나! 이렇게 된 이상 확실하게 쓸어주마!]
분노에 찬 영언과 함께 도무누스의 거대한 육신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단위까지 분열된 도무누스의 육신은 이제 연합 함대의 숫자보다 훨씬 불어나 있었다.
물론 분열된 만큼 크기나 힘의 규모는 훨씬 더 작아졌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천외오천과 베네트 국장이 제아무리 분전한다 하더라도 저 엄청난 숫자를 다 막아낼 수는 없었다.
고오오오!
“이런 미친!”
“우리가 아니라 함대를 노릴 셈이었어!”
그제야 도무누스의 속셈을 깨달은 천외오천이 즉각 대응에 나섰지만, 수만 단위로 불어난 놈을 막기는 요원했다.
필사적으로 손을 써봤지만, 제거할 수 있었던 분열체는 수천 정도 뿐. 그나마도 금세 다시 복원되고 있었다.
고래 형상을 하고 있는 주둥이 앞으로 몰려드는 커다란 영력의 구체! 그것은 전면으로 쏘아지기 위해 맹렬한 형태로 응축되고 있었다.
그것이 연합 함대들을 향해 쏘아지려는 순간, 베네트 국장이 기다렸다는 듯 크게 외쳤다.
“전 함대, 라비린토스 필드 전개!”
[통합출력공명시스템 아르마다-라비린토스 필드 전개합니다.]
그 순간, 연합 함대를 둘러싼 우주 공간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히 공간이 왜곡되는 게 아니었다. 시공간이 복잡한 형태로 뒤틀리면서 수많은 경계와 장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도무누스의 공격이 용서 없이 내리꽂혔다.
콰콰콰콰콰콰!
수많은 빛줄기가 쏟아져 나가 우주공간을 가로질렀다. 어지간한 행성 서너 개쯤은 초토화하고도 남을 만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 막강한 화력도 연합 함대 앞에선 멈춰서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끝없이 뻗어나가고는 있는데, 함대에 닿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연합 함대와 도무누스의 영력포 사이의 거리가 무한대로 늘어난 것만 같았다.
결국 한없이 뻗어나가기만 하던 영력포들은 끝없는 거리 속에서 여력을 다한 채 소멸되고 말았다. 제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 한들, 무한의 공간 앞에선 무의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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