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06화
공급이 줄어들면서 더 이상 실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게 생겼다.
‘젠장! 어떻게 이런 일이!? 카룬다임께서 우려하시던 게 정말이었단 말인가?’
점점 궁지로 내몰리게 된 루클라는 더 이상 여유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여유는커녕 이젠 자기 목숨마저 부지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 사실을 눈치 챈 연정운이 빈정거렸다.
“이제 슬슬 힘이 빠지는 게 눈에 띄는데? 저 행성에서 공급되는 힘이 슬슬 줄어드는가 보지?”
그 말에 루클라의 두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역시 네놈들, 그걸 노리고 시간을 끌고 있었구나!]
“그럼 당연하지. 그 무식한 힘을 그냥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지. 내 친구 녀석이 성공한 모양이야.”
그 말을 끝으로 연정운의 겨눈 총구가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낳는다. 그것은 곧 일점포화 형태의 섬광이 되어 날아들었다.
콰우우우!
[크, 젠장!]
루클라는 재빨리 영력을 끌어올려 방어에 나섰다. 응집된 영력이 강기화 되어 그 섬광을 쳐낸 것이다.
하지만 뼈가 으스러질 듯한 통증이 타고 올랐다. 조금 전만 해도 가볍게 받아내던 일격이었다. 헌데 힘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이젠 쳐내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연정운 하나만이 아니다. 다른 천외오천들까지 전부 루클라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고오오오!
용천군을 중심으로 검은 기류가 응집되었다. 죽음 그 자체를 뭉쳐 만들어내는 그것은 거대한 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절멸위광(絶滅威光)!
베는 대상을 소멸로 이끈다는 필살의 검기. 그것이 바로 용천군의 절멸위광이었다.
[자아, 목을 내놓아라!]
우주공간을 수직이등분하는 거대한 칠흑빛 참격! 그것은 루클라를 향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하지만 루클라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제아무리 에메랄드 헤븐의 영력 공급이 없다 해도 수많은 전투를 경험해온 신화 급 인베이더다.
고작 이점 하나를 잃었다고 해서 단숨에 당해줄 위인은 아니었다.
위이이잉!
그의 양 손 위로 맹렬한 소용돌이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응집된 영력을 회전시켜 만든 강기의 와류였다.
그리고 그것은 용천군이 내지른 칠흑빛 궤적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콰아아앙!
실로 무시무시한 충격이었다. 그들 둘의 격돌로 인해, 근처에 있던 전함들이 격류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떠밀려버렸다. 그나마 배리어의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렸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방어가 느슨했다면, 죄다 격침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수준의 여파였다.
[크으··· 이런!]
그런 힘을 받아낸 루클라도 무사하진 못했다. 어찌어찌 젖 먹던 힘까지 더해 절멸위광을 겨우 받아내긴 했지만, 그 대가로 오른팔이 두 갈래로 쪼개진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베어진 정도가 아니었다. 절멸위광은 용천군이 보유한 멸사기에 근본을 둔 힘이다. 절단면을 타고 침입해 들어오는 죽음의 기운이 그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슈각!
그는 왼손으로 재빨리 오른팔을 잘라내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나뒀다간 멸사기에 의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그만큼 멸사기는 생명체에게 치명적이었다.
잘려나간 오른팔을 저 멀리 우주공간으로 던져버린 루클라는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빌어먹을! 계획이 완전히 꼬여버렸군. 울브스 이 자식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에메랄드 헤븐에 이상이 생긴 걸 보면 무사하지 못했을 게 뻔해.’
그렇다면 더 이상 싸워 봐야 의미가 없었다. 에메랄드 헤븐도 빼앗기고, 전력도 급감한 지금, 승산은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잘려나간 팔은 다시 재생시키면 그만이었지만, 그만큼 기력을 소모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후퇴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천외오천 놈들이 자신을 호락호락 놔줄 것 같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들어둔 마지막 보험을 사용하는 수밖에······.’
이건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었다.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말란 당부까지 들었는데, 이젠 선택의 방도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 루클라의 결연한 표정을 읽어낸 연정운이 슬쩍 빈정거렸다.
“뭐야, 그 표정은? 마지막까지 발악이라도 해 보려고?”
[발악이라··· 그래, 네놈 말이 맞다. 발악이지.]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 상대의 태도에 연정운은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놈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슬쩍 떠보듯 말을 던졌다.
“헛수고일 텐데? 네 녀석이 더 잘 알 것 아냐? 발악해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거. 너 혼자서 전세를 뒤집기에는 글렀어.”
[그래, 인정하지. 우리가 열세에 처한 것도 사실이고 말이야. 하지만 졌다고 받아들이긴 이르지. 우리에겐 아직 사용하지 않은 패가 하나 더 있거든.]
“패?”
연정운은 물론 천외오천들도 그 말에서 섬뜩할 정도의 불길함을 느꼈다. 그것은 에메랄드 헤븐이 등장할 때보다도 더 크고 강렬하게 와 닿고 있었다.
어떤 영능이든 경지가 오를수록 영성과 직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된다. 그런 직감은 경지가 높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상당한 정확성을 보이는데, 특히 천외오천 쯤 되면 거의 미래예지에 가까울 정도였다.
[흉계를 꾸몄구나.]
용성군이 작게 읊조린 그 순간, 루클라가 말한 비장의 패의 정체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또 하나의 거대한 행성이 서서히 걷혀가는 광학 스텔스 장막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에메랄드 헤븐 2호였다. 놈들이 보유한 세계수로 뒤덮인 행성은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인베이더들이 가진 패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 에메랄드 헤븐에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거대할지도 모를 존재가 그 형상을 드러낸 것이다.
[하아아··· 결국 나까지 나서게 되었구나. 이 무능한 것들 같으니······.]
거대한 고래의 형상을 한 그것이 강렬한 영언을 내뱉었다. 워낙 상상 이상으로 크고 강대해서 그 영언조차 거의 폭력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크윽! 뭐지······!]
[뇌가 흔들리는 것 같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통스런 목소리들. 갑작스런 강렬한 영언에 사람들의 영혼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정도 영언에 데미지를 받을 천외오천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았다.
바로 눈앞의 괴물의 정체 때문이었다. 연정운이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이 괴물은 도무누스!?”
“이게 그 불길함의 정체였군요. 곤란한데요.”
어지간한 일로는 웃음을 잃지 않는 멀린조차 조금은 곤혹스럽다는 얼굴이었다.
탐식의 성좌 자나파의 대리자 도무누스.
그 크기만 해도 어지간한 행성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 괴물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행성들을 집어삼켜온 존재였다.
이 존재야말로 진정한 괴물 중의 괴물. 루클라나 울브스와 같은 신화 급마저 뛰어넘는 초월급의 강대한 존재인 것이다.
인베이더들 위에 군림하는 성좌들의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격은 무려 반신위에 이르렀다.
천외오천이라 할지라도 상대하기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천외오천이 전부 덤벼든다 해도 살아남는 것조차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하아, 인베이더 놈들이 아주 작정을 했군. 아예 우리와 전면전이라도 해보자는 건가?”
천외오천 중 일인인 로베르트 슈마허가 기가 막힌다는 듯 내뱉었다.
반신 위에 발을 걸친 초월 급의 존재는 신좌 급 만큼 섭리의 간섭력에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좀체 나서는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도무누스가 직접 나타난 걸 보면 단단히 작정한 걸로 보였다.
“아아, 진짜. 이젠 정말로 목숨이라도 걸어야 하나? 이런 덩치는 내 능력으로도 죽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야.”
머리를 긁적이던 또 다른 천외오천인 사토 류지가 쥔 단검이 그를 향해 겨누어졌다. 그가 가진 능력은 상대의 수많은 정보와 약점, 즉 결을 읽고 베어내는 것.
지금까지 수많은 적들을 장사지낼 수 있게 만들어준 감식안(監識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절대적이진 못했다. 자신보다 월등한 역량이나 격을 가진 존재에게는 감식안의 효과가 하락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도무누스에게는 약점이라 할 만한 게 좀처럼 파악되지 않았다. 아니 대충 어떤 존재인지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저 괴물이 가진 특성 자체가 문제였다.
‘나와는 완전히 상극일세. 이거 싸워야 하나?’
사토 류지가 갈등하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울려왔다.
“천외오천은 뒤로 물러서라. 이제부터는 내가 나서지.”
“국장!”
뒤를 돌아본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바로 베네트 국장이었다. 지금까지 기함에서 전황을 주시하던 그가 드디어 몸소 나선 것이다.
도무누스도 그의 존재를 눈치 채고는 입을 열었다.
[베네트. 네놈이구나. 아주 오랜만이야.]
“그래, 오래간만이군. 도무누스. 그 거대한 덩치도 여전하구나.”
[나야 여전하지. 하지만 관리국장인 네놈이 직접 나서다니. 라인트라를 어떻게든 사수하겠다 이건가?]
“네놈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 말과 함께 베네트 국장에게서 강대한 존재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세가 아니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일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건지, 도무누스가 매서운 눈빛을 드러냈다.
[그래, 네놈이 가진 [징벌자의 저울]이 꽤 강력하긴 하지.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네놈이라도 쉽지 않을 거다.]
징벌자의 저울. 그것은 베네트 국장이 가진 고유 스킬의 이름이었다.
적으로 판명되는 대상의 이능을 제한하는 능력으로서, 매우 유명했다. 아주 봉인하는 건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상대의 격을 한두 단계 하락시키거나, 혹은 섭리적인 제약을 가하는 아주 강력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반신 급 초월자들도 베네트 국장과는 섣불리 맞서기를 꺼려했다. 심지어 어떤 반신 급 초월자들 중에선 그의 손에 소멸된 경우도 있었다.
하긴 그만한 능력이 없었다면 그가 오늘날 관리국의 수장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도무누스는 오늘따리 위축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베네트 국장이 오른손 검지로 저 멀리 보이는 행성을 가리켰다. 그것은 두 번째 에메랄드 헤븐이었다.
“내 앞에서 그리 당당한 걸 보면, 저 행성을 믿는 건가?”
[그래. 저 행성으로부터 공급받는 무궁무진한 영력이 날 반신을 넘어 준신급에 이르게 해주지. 봐라 이 막대한 힘을!]
고오오오!
끔찍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영력이 우주 공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루클라도 좀 전에 에메랄드 헤븐의 영력을 등에 업고 막대한 힘을 휘두르긴 했지만, 이건 차원부터가 달랐다.
도무누스의 역량이 훨씬 높은 만큼 다룰 수 있는 힘의 크기조차 비교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것을 대충 계측해본 베네트 국장의 눈매가 살며시 찌푸려졌다.
‘힘의 규모만 보면 하급신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수준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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