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02화 (203/448)

9권-02화

거듭된 공세 앞에 울브스도 더 이상 이진운의 공격을 맞아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점 누적되어가는 데미지가 이젠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었다.

반면 그의 공격은 이진운에게 거의 통용되지 않았다. 영력의 크기는 수십 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그것도 맞췄을 때의 이야기였다.

제아무리 강력한 공격도 적을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거지?’

자신에게 타격을 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질의 무공도 그랬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회피의 방어는 또 어떤가?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다양한 공격을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가로막히거나 헛된 허공만 가르고 말았다.

마치 자신이 어떻게 공격할지 이미 예측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물론 자신도 영적 감각을 통해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감지할 수 있었지만, 저건 그런 영역을 한참 넘어섰다.

‘설마 미래예지라도 가진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래서일까? 공격은 갈수록 더 거세지고, 울브스는 점점 궁지로 내몰렸다. 쌓여가는 데미지도 심상치 않아서 이대로 가다간 오히려 자신이 당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꿈을 이용한 수법조차 이젠 거의 통용되지 않기 시작했다.

‘크··· 이대로는 안 되겠군. 어중간한 식으로는 놈에게 잡아먹힌다.’

무슨 결단이라도 내린 것일까? 그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이진운도 눈치 챌 수 있었다.

‘기세가 변했다. 뭔가를 시도할 생각인 모양이지?’

그도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울브스는 자신의 공세 앞에 궁지에 몰린 쥐 꼴이 되었다. 여타 무공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그가 소림의 무공 앞에 거듭 데미지를 입으면서 완전히 여유를 잃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에 나올 행동패턴은 뻔했다.

‘궁지에 몰린 자가 취할 행동은 하나지.’

카룬다임의 지시로 자신의 목숨을 취하러 온 이상 적당히 하다 물러나거나, 도주를 선택하지는 않을 터. 이 싸움에 종지부를 맺을 확실한 승부수를 걸어올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돌연 거리를 벌린 울브스가 싸움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인정하겠네. 자넨 대단해. 카룬다임께서 경계하실 만큼 말이야.”

“뭘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게다가 일반적인 방법으론 타격을 줄 수 없는 내게 이만한 데미지를 입히다니. 자네의 한계가 어디쯤인지도 모를 지경이군.”

말이 길어지는 듯하자, 이진운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지? 이제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또 뭐고.”

“이 싸움, 확실하게 끝내겠다는 뜻이라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서라도 말이야.”

전에 없을 만큼 살기에 찬 어조.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울브스는 말 그대로 자신을 확실히 끝장낼 생각인 것이다.

그것을 이번 대화로 확신하게 된 이진운은 차갑게 웃었다.

“당신이 그랬듯, 말 뿐인 선언은 공허할 뿐이지. 어디 해봐. 과연 날 끝낼 수 있을지 말이야.”

“···오만하구나. 과연 자네는 내 악몽을 견딜 수 있을까?”

이진운의 비웃음에 불쾌한 낯빛을 떠올린 울브스의 신형이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를 이루던 형체가 사라지고 이 일대를 자욱한 안개 같은 것들이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안개는 아니었다.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안개와는 그 성질부터가 달랐다.

‘그렇군. 이건 그냥 수증기 따위가 아니야. 울브스 그 자체라 해야겠군.’

넓게 퍼져나가는 안개는 어떠한 간섭으로도 흩어지지 않았다. 마치 물리법칙 자체로부터 동떨어진 것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확산될수록 주변 공간이 몽환적으로 변했다. 이건 마치 현실이 아닌, 말 그대로 꿈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게 놈이 말한 악몽인가?’

그때였다, 안개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이 변했다. 뚜렷한 상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놈의 주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악몽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건······.”

이진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참혹한 전장 한복판의 광경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잔인한 살육을 벌이고 있는 광경에, 그는 잠시 넋 나간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죽여라! 모두 죽여! 저 허약한 놈들을 밟아버려라! 약해빠진 놈들이 이런 풍요로운 땅을 오랫동안 독차지하고 있었다니, 정말 화가 치미는구나!”

“저 위선자들을 남겨두지 마라!”

여기저기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거꾸러졌다.

하지만 전황은 양 측이 대등하지 않았다. 일방적이라고 할 만큼 한쪽 세력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우세한 쪽의 세력은 전부 검은 의복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그리고 그에 대적하는 자들은 흰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역부족으로 보였다. 세력이든 실력이든 모든 면에서 한참 뒤떨어져 보였다.

그들은 결국 비분을 삼킨 채 후퇴하기 시작했다.

“크으··· 더러운 마교 놈들에게 패하다니······!”

“피해! 후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그랬다. 이건 과거 이진운이 천화운이었던 전생 시절에 겪었던 정마대전이었다. 갑작스런 마교의 침공으로 중원무림이 패퇴했던 1차 정마대전 당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이진운은 침중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 광경을 응시했다. 그가 잊고 있었던 오래 전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래, 그때의 광경이 맞았어. 이게 놈이 내가 보여주려 하는 내 악몽이란 건가?’

악몽 이란 꿈을 꾸고 있는 당사자가 보기 싫어하는, 가장 최악의 것을 말한다. 울브스의 능력은 바로 그런 악몽을 실체화하여 대상을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광경일 것이다. 이진운은 이때의 기억을 절대 잊을 수 없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차 정마대전에서 중원 연합군이 패퇴하던 이날, 스승이신 태원진인께서 죽음을 맞이하셨기 때문이었다.

콰아앙!

무시무시한 힘의 격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어찌나 강력하던지, 그 여파에 휘말린 자들의 육신이 갈가리 찢겨나갈 지경이었다.

허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건 인세를 초월한 자들 간의 격돌!

초절정의 무인조차 다가갈 수 없을 지경인데, 그 이하의 무인들이야 더 말해 뭐하겠는가.

콰콰콰쾅!

격렬한 기파와 강기가 소용돌이치던 그 사이에서 두 명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다름 아닌,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와 이진운의 전생인 천룡검신 천화운이었다.

둘은 미친 듯이 맞붙어 싸웠다. 그들이 한 수 한 수 떨쳐낼 때마다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고, 그 여파는 이 일대를 초토화시킬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 둘의 싸움은 대등하지 못했다. 이미 현경의 진경을 넘어 상위의 반열에 도달한 천마와, 이제 겨우 현경의 초입에 이른 천화운의 수준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은 누구보다도 천화운 본인이 더 잘 알았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듯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은 아군이 후퇴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천마를 자유롭게 풀어둔다면 중원연합군은 말 그대로 전멸하게 될 테니까.

무상천마강(無上天魔罡)

비의 명화신염주(冥火迅念珠)

돌연 천마의 장심에서 만들어진 붉은 구슬이 공간을 쇄도해왔다.

저것은 평범한 강환(罡丸)이 아니었다. 천마의 비전 중 하나인 명화신기를 작은 환 형태로 응축한, 심의경 그 자체인 것이다.

검으로 따진다면 심어검의 영역이라 해야 할 것이다.

“크으······.”

천화운은 명화신염주를 간신히 걷어냈다. 그 힘은 가히 파천이라서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내부가 진탕될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속도도 무시무시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듯 날아드는 명화신염주는 천마의 의념에 따라 다시 쇄도해 들어왔다.

쾅! 콰아앙!

이진운은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무력한 광경이었다.

‘그래, 난 정말 나약했었지.’

현경의 고수를 나약하다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지만, 모든 건 상대적인 법이다.

이때의 자신은 천마에 비한다면 확실히 약자였다.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도, 상대는 시종 여유로웠고 자신은 한수 한수를 받아낼 때마다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그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거듭된 열세를 거듭하던 천화운이 모든 것을 쥐어짜 반격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한수였다.

천룡대라삼검(天龍大羅三劍)

연환결 천룡무한(天龍無限)

이때는 아직 모든 중원 문파들의 공동전인이 되기 전의 일이었다. 천룡무상신공도 없었고, 천룡무상검이란 절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천룡신공에 바탕을 둔 천룡대라삼검이 그가 가진 최고의 한 수였다.

구오오!

마치 용이 포효하듯 울린 굉음과 함께 천룡마파신검을 중심으로 일어난 거대한 용의 그림자가 한 줄기 섬광처럼 허공을 날았다.

뜻이 일자, 기운이 일어나고, 그것이 곧 검이 되나니··· 그것이 바로 의형검강을 넘어선 의기검형의 경지.

심검지도 중에서도 현경에 닿아야 가능한 지고의 영역이었다.

“하찮구나. 중원의 하나뿐인 현경의 고수가 고작 이 정도라니······.”

천마의 비웃음과 함께 천룡무한이 그와 격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화의 영역이었다. 천룡은 허공을 누비며 무수한 변화를 낳고, 그것은 천마의 권장과 맞부딪치면서 믿기지 않는 여파를 흩뿌렸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열세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것마저 통하지 않다니······.”

천화운은 입가에서 선혈을 흘리면서 한탄했다. 지금 구사한 연환결 천룡무한은 말 그대로 천룡대라삼검의 3개의 초식을 하나로 이은 연계식. 현재 그가 가진 최강의 한수였다.

허나 이것조차 천마에겐 의미가 없었다.

무상천마강(無上天魔罡)

비의. 광폭잔혈격(狂暴殘血擊)

일순 천마의 전신에서 번져 나온 칠흑빛 강기의 불꽃이 거대한 형태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팽배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곧 무시무시한 형태로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콰우우우!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쓸려나갔다. 검은 강기의 폭류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심지어 찬란한 빛을 뿌리던 천화운의 천룡무상조차 그 폭발 속에 휘말려 소멸되고 말았으니, 다른 것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천화운은 피를 토하며 부르짖었다.

“이 정도라니······.”

그야말로 압도적인 폭력! 거대한 검은 불길을 휘날리며 다가오고 있는 천마는 현재의 자신으로선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자신이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옷자락 하나 상하게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천마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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