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01화 (202/448)

9권-01화

울브스와 이진운의 전투는 가히 박빙의 상태로 전개되고 있었다. 무공이란 오묘함을 이점으로 삼고 있는 이진운의 전투 스타일은 울브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지만, 울브스는 압도적인 영력과 꿈을 다루는 능력을 적극 활용해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맞서 싸웠다.

하지만 싸움이 계속될수록 울브스의 인상은 무겁게 변했다.

‘생각보다 더 강해.’

솔직히 말해 이렇게까지 길게 끌줄은 몰랐다. 상대는 그랜드 급도 아니었다. 느껴지는 경지는 마이스터 최상급에 불과한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울브스의 고유능력이 전투 쪽에 특화된 것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자신은 본체인 것도 모자라, 세계수로부터 막대한 힘까지 공유 받고 있는 상태 아니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압도하기는커녕 대등한 게 전부라고?

‘역시··· 카룬다임께서 우려할 만 한 자였군.’

그때, 폭풍우와 같은 강기가 휘몰아쳐왔다. 그것은 종횡무진 사방을 잠식한 채 날아들고 있었다.

피할 곳조차 없는 그 상황에서 울브스는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몸이 강기의 폭풍 앞에 갈기갈기 찢겨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실제로도 그는 갈기갈기 찢겼다. 애당초 강기에 저항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진운은 그 광경을 보고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자신의 좌측을 향해 있었다.

‘성가시군. 악몽을 다룬다는 저 능력은······.’

산산이 찢겨 죽었던 울브스는 그곳에 멀쩡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그랬다.

싸움 자체는 분명 자신이 주도하고 있었지만, 놈은 끝까지 되살아났다. 아니 되살아났다는 말도 잘못된 표현이었다.

‘악몽을 다룬다더니··· 악몽이란 개념 그 자체였다는 건가?’

놈에겐 분명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젊은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세상에 간섭하기 위한 매개체였을 뿐이다.

곧바로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놈의 본질 자체를 없애야 이 싸움이 끝난다는 말인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심검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상대를 벨 수 있다곤 하지만, 이렇듯 꿈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벤다는 건 시도해 본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끝을 떠난 검이 벼락보다 더 빨리 날아가더니 다시 울브스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었다.

“컥!”

신음과 함께 또 한 번 쓰러지는 울브스.

그렇게 심어검(心御劍)의 한 수로 울브스를 쓰러뜨렸지만, 놈은 또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소용없는 짓이지. 제아무리 날 죽여도 난 끝없이 되살아나니까. 난 바로 자네의 악몽이라네.”

이진운은 계속해서 어검술로 놈을 찢어발겼다. 그 모든 공세가 무의미 할 만큼 놈은 계속해서 되살아났지만, 그래도 그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식이면 결국 평행선이군.’

이래서는 끝이 나질 않는다. 죽어도 계속 되살아나서 공격을 퍼붓는 울브스와, 압도적인 전투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상대에게 치명상을 줄 수 없는 이진운.

이대로 가다간 며칠 밤낮으로 싸운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피륙으로 된 육신을 가진 만큼, 장기적으로 가면 결국 지칠 수밖에 없는 이진운이 패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진운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번 전쟁의 승패는 에메랄드 헤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인베이더 놈들이 에메랄드 헤븐의 조율을 무사히 끝마치게 되면, 그 막대한 힘을 함대와 공유함으로서 연합 함대를 압도적인 화력으로 전멸시킬 것이고, 반대로 그것을 저지한다면 아르마다 시스템을 보유한 연합 함대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

이진운은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무공들을 떠올렸다. 마음 같아선 점창의 무공만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울브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만한 상성의 무공이 없었다.

지금보다 경지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방법이 있었을 테지만, 현재로서는 시도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음?”

한창 전투를 이어나가던 울브스가 일순 뜻밖이라는 듯 소리를 냈다. 제멋대로 허공을 날아다니며 자신의 몸을 찢어발기던 검을 이진운이 돌연 거둬들였기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인가? 포기하기라도 한 건가?”

포기를 운운하는 그 말에 이진운이 차갑게 되받아쳤다.

“포기? 가당치도 않은 소리군.”

“그럼 왜 공격을 멈춘 겐가? 더 이상 나를 죽여 봐야 진정으로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가 아닌가.”

“아니,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지.”

“좋은 생각이면··· 혹시 날 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떠오른 건가?”

울부스가 농담처럼 내뱉었지만, 이진운은 차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말을 긍정했다.

“그래, 맞다. 네놈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어.”

“······.”

지금까지 수많은 자들을 상대해 봤던 울브스였다. 그보다 강한 자들도 제법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발밑 아래 모두 쓰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죽일 수 없는 자들과, 아무리 죽어도 다시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단순히 힘과 실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수십, 수백 번 이상 찢어 죽였지만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절망에 빠져 자멸했다. 그래서 붙은 게 바로 악몽의 주인. 그게 오늘날 악명을 떨치고 있는 울브스의 정체였다.

물론 그런 울브스에게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에는 나서지 않았고 철저히 상대할 수 있는 자들만 죽여 왔다.

그것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수많은 강자들과 싸우고서도 승자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자신감이지?’

지금까지 싸운 방식이나 다루는 힘으로 볼 때, 이진운도 오래 전에 쓰러뜨렸던 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의 육신은 찢어발길 수 있을지언정, 본질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었으니까.

‘대리자 급의 신성력이라면 모를까, 저 무공이란 걸로 날 해할 순 없는데······.’

하지만 지금 이진운이 보여주고 있는 자신감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영 못 믿겠다는 얼굴이군.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 몸으로 직접 느껴봐라.”

이진운은 그렇게 내뱉자마자, 즉시 발걸음을 뗐다. 헌데 그 동작이 이전과 사뭇 달랐다.

그가 구사한 점창의 무공이 표홀하면서도 경쾌했다면, 지금의 보법은 장중하면서도 공간 자체를 초월해 이동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소림의 비전 중 하나인 대나이신법. 마음 가는 데에 이미 몸이 도달해 있다는 신공절학 중 하나였다.

“웃!”

갑작스런 움직임에 울브스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이진운의 신형은 유령처럼 다가와 그의 코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리고 피할 새조차 없이 내질러진 일격! 그것은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었다.

콰앙!

무시무시한 진기의 폭류가 강기화 되어 공간을 진탕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울브스의 육신도 그에 박살나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이전의 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울브스의 육신이 박살나고 다시 새로 출현하는 건 반복된 패턴이니까.

하지만 다시 출현한 울브스의 안색이 달랐다. 언제나 평온을 유지했던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크··· 이건!?”

“네놈도 고통을 느끼는 모양이군. 실체가 없는 존재라고 해서 고통이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비웃는 건지 조롱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 그건 마치 울브스가 타격을 입을 것을 예견했다는 투였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겐가? 어떻게······!?”

“네놈은 악몽 그 자체라지? 그래서 선택한 거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혼란에 찬 목소리로 묻는 그 말에, 이진운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사특한 번뇌를 없애는 데엔 불가의 무공이 제일이지.”

“!?”

대답을 듣고서도 울브스는 여전히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진운이 다루는 것이 무공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물며 무공도 수많은 갈래로 나뉘고, 그 중에 불가의 무공이 있다는 사실을 울브스가 알 턱이 없었다.

휘익!

작은 파공성과 함께 이진운의 신형이 또 한 번 울브스를 향해 쇄도해나갔다. 그러자 여태껏 맨몸으로 공격을 받아내면서 싸웠던 울브스도 지금까지완 달리 제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일격이 자신에게 유효 타격을 주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맞고 버티는 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진운의 공부는 그렇게 놔둘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의 오묘한 보법절기는 울브스의 빈틈으로 파고들었고, 그의 연이은 절기들이 울브스를 유린해 나가기 시작했다.

줄줄이 풀려나오는 그것들은 말 그대로 소림무공의 정화였다.

그의 전신을 휘도는 진기는 소림의 최고 심공인 무상대능력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그의 발은 금강보동신법과 초연물외신법의 경로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뻗는 양 손은 아라한신권과, 금강복마권 등 수많은 종류의 무공을 쏟아냈다. 이 모든 게 소림을 대표하는 72절기에 이름을 올린 것들로서, 하나같이 신공절학이 아닌 게 없었다.

그 속에서 울브스는 순식간에, 수십 수백 번을 찢겨나가고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던 공격들이, 이젠 그에게 격심한 고통과 데미지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반복된 죽음을 경험한 울브스의 두 눈이 혼란과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었다.

악몽이란 바로 물리적으로는 간섭할 수 없는 비 실체의 개념. 그것에 타격을 준다고?

신에게 받는 신성력이라도 되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진운은 무식한 주먹질과 손짓으로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진운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정종무공 중에서도 정통이라 할 수 있는 소림의 정화였으니까.

중원무림에서는 옛부터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다.

천하공부출소림(天下工夫出小林). 모든 무공은 바로 소림에서 시작되었다고.

물론 그게 사실이진 않지만, 그만큼 중원의 무학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의 본질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으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들도 가장 많았다.

인간이 깨달아 부처가 되고자 함이 무엇이던가? 불완전함을 떨쳐내고 완전한 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것을 위한 방편이 불가의 무공이었고, 그들은 인간의 번뇌와 갈등을 뛰어넘어 저 피안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결실인 불가의 무공이 한낮 악몽 따위에 흔들려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 앞에서는 울브스의 악몽도, 인간이 품은 번뇌도 다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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