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00화 (201/448)

8권-25화

쿠구구구!

지상에서부터 거대한 기둥 같은 검강으로 베어오는 카르발타와, 저 상공에서부터 구름마저 가르며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아리엔.

급기야 천지를 뒤흔들만한 두 힘이 서로 정면으로 격돌하였다.

쿠르르릉!

굉음이 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만큼 그 둘의 격돌은 강대하기 짝이 없었다. 행성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성장한 세계수 한 그루의 힘을 그대로 담아낸 카르발타와, 수백 년 만에 되찾은 웰라우드 류의 운용법으로 자신의 진기를 수십 배 이상 폭증시킨 아리엔의 거대한 검강.

두 힘은 서로 길항(拮抗)했다. 힘의 규모에서만큼은 카르발타의 것이 압도적이었지만, 진기의 운용과 검강의 응집력은 아리엔의 것이 월등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등해 보였던 것도 잠시 뿐. 몇 초 지나지 않아 우열이 뚜렷해졌다.

점점 쪼개져가는 자신의 검강을 보면서, 카르발타의 눈동자 위로 당황과 불신의 기색이 떠올랐다.

[아니, 어떻게!?]

검강의 첨단이 갈라지더니, 이젠 아리엔이 그려내는 참격의 궤적을 따라 길게 두 조각이 되어 박살나기 시작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고작 마이스터도 못되는 어린 것을 상대로 사혼검을 사용한 것 자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심지어 이 힘으로도 해치우기는커녕 오히려 밀린다고?

그는 육신을 지탱하는 마지막 힘까지 끌어 모아 검강에 집중시켰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쪼개지는 속도는 더욱 가속화 됐으며, 급기야 아리엔의 검강이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그 순간 카르발타의 뇌리로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의 공격이 이렇게까지 무력화 될 수 있었는지를······. 저 어린 것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라고 해 봐야 무공의 체득 여부뿐일 텐데도, 그게 이렇게까지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의 상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아리엔의 거대한 검강의 궤적이 드디어 그의 육신까지 베고 지나간 것이다.

“하아······.”

마침내 카르발타의 육신을 베어낸 아리엔은 간신히 버티고 서서 거친 숨결을 토해냈다.

내공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심력조차 바닥난 상태. 당장 쓰러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허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카르발타를 베어낸 마지막 한수로 선택한 극광성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냈으니까.

심지어 그녀를 간신히 지탱해주던 만상개화 의검천추마저 종료된 상황. 이젠 그 후유증마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자신에게 허용될 리 없는 경지를 무리하게 끌어올린 대가였다.

헌데 그때였다.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기가 막히는군. 이제 스물도 안 되는 계집에게 이 몸이 이렇게까지 당하다니···.]

“당신?”

머리를 울리는 두통마저 잊은 채 아리엔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카르발타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극광성운의 한 수에 치명상을 입긴 했지만, 곧바로 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멀쩡하진 못했는지 움직이는 동작이 느린데다 곳곳에 빈틈이 보였다. 아니 몸 이곳저곳이 부스러지는 걸 보면 죽음을 잠시 지연시킨 듯 보였다.

[그래, 인정하지. 내 패배다. 설마 이렇게까지 해낼 줄은 몰랐어. 무공이란 게 이 정도일 줄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그 말에 아리엔은 의아했다. 방금 전까지 보인 태도를 생각하면 이렇듯 패배를 인정할 만한 자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죽기 직전에 이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그런 미심쩍었던 생각이 틀리진 않았는지, 카르발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패했어도 이 싸움은 무예를 겨루는 게 아니지. 바로 누가 살아남느냐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죽어가는 카르발타의 육신에서 격렬한 에너지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종의 폭주였다.

그 불안정한 현상보고 상대의 의도를 알아챈 아리엔이 깜짝 놀라 외쳤다.

“설마 자폭!?”

[그래. 맞다. 자폭이지. 내 분신을 상대하느라 지친 그 몸으로 과연 자폭을 견딜 수 있을까? 나야 분신 하나를 포기하는 걸로 끝나지만, 네가 치를 대가는 그 목숨이다. 하하하.]

마지막까지 치졸하기 그지없는 카르발타였다. 그는 기분 좋다는 듯 웃어대었다. 어차피 본체엔 아무 피해도 오지 않으니, 분신 따윈 자폭으로 버려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그런 더러운 짓을!”

“언니!”

사정을 눈치 챈 클레브와 엘레나가 경신법을 사용해 빠르게 다가왔다. 자신들이 끼어들만한 수준이 아니라서 초반 빼고는 거의 방관하다시피 했지만, 아리엔이 모든 힘을 소진한 지금은 자신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 죽어라! 이 몸뚱이를 터뜨려서 너희 세 년놈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마.]

카르발타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팽창하던 에너지가 정점에 이른 순간이었다. 눈부신 빛과 함께 폭발하려던 그 힘이 갑자기 급감하기 시작했다.

피시식!

그것은 마치 활활 타오르던 촛불이 불어온 바람에 꺼지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일 정도로 유형화 된 폭주의 힘이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그 광경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다급하게 달려오던 클레브와 엘레나는 물론, 자폭하려던 당사자인 카르발타조차 두 눈을 부릅떴다.

[이게··· 대체!? 왜, 왜··· 폭발하질 않는 거냐?]

믿기지가 않았다. 당연히 폭발해야 할 에너지가, 이렇게 급속도로 소멸되다니.

어떻게든 다시 되살려보기 위해 영력을 제어해봤지만, 그것들은 이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때, 아리엔에게서 조소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말 멍청하네요.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 줄도 모르고 자폭을 시도하다니요.”

[뭣이?]

아리엔의 말을 듣자마자 카르발타는 즉시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체내를 장악하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들을.

그것들이 자폭하기 위해 끌어올렸던 영력의 운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던 것이다.

[대체 이런 게 언제 내 몸 안에 들어온 거지?!]

허나 자폭을 막은 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것은 격렬한 형태로 역류하더니 그의 체내 곳곳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컥! 커으···.]

“이미 당신은 아까 전부터 망가져 있었어요. 제 검을 일곱 번 받아낼 때부터요. 그걸 알아채지 못한 때부터 이 싸움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죠.”

[일곱 번이라면··· 그때 그!?]

아리엔이 던진 그 말을 듣고서야 카르발타는 뒤늦게 깨달았다. 점점 힘과 위력이 배로 증폭해 나가던 기이하기까지 한 검식이 원인이었음을.

그것은 웰라우드 류의 진강이었지만, 진강이 아니었다. 진강을 깊게 익힐 경우 터득할 수 있는 심화비기인 칠절광연(七絶洸燃).

일곱 번의 연격 속에 담아낸 진력을 상대의 내부로 은밀히 침투시켜서 내부를 파괴하고 영력의 흐름을 뒤틀어버리는 비기였던 것이다.

[하!? 이, 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너무도 기가 막혔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절대 저지를 수 없는 실수였다. 자신의 내부를 살피는 일을 등한시 하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당초 분신으로 나타난 게 당신의 실책이었어요. 익숙하지도 않은 몸으로 상대하려니 실수가 있을 수밖에요. 저는 그 허를 찌른 거고요.”

[그랬군. 그랬었어.]

아리엔이 덧붙인 설명을 듣고서야, 카르발타는 납득했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자폭이라는 마지막 수단조차 이렇게 막혀버리다니.

이젠 진짜 뭐라 핑계를 대거나 부정할 수도 없는, 자신의 완벽한 패배였다.

[이번 싸움은 확실히 내 패배다. 인정하지.]

이미 부서지기 시작한 그의 몸은 반 가까이 부스러져 있었다. 점점 형체를 알수 없게 변해가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지. 네 이름은 뭐지?]

“제 이름을요?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처음부터 이진운을 노린 작자들이었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카르발타는 그래도 듣고 싶어 했다.

[그래, 알고 있지. 하지만 날 이긴 자의 이름을 그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다.]

“그렇다면 말씀드리죠. 아리엔 웰라우드, 이진운 스승님에게 사사받은 점창의 문도이자, 웰라우드 가의 혈족입니다.”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아리엔의 말에, 카르발타는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듯 곱씹었다.

[음, 아리엔 웰라우드. 좋아, 기억하겠다. 그리고 기다리겠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하던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카르발타의 육신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걸로 이 싸움도 간신히 종지부를 맺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리엔의 시선은 카르발타의 분신이 소멸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기다리겠다니······.”

그녀는 카르발타가 남긴 그 말을 저도 모르게 되뇌었다.

그는 인베이더였다. 더없이 흉포하면서도 자신보다 격이 낮은 존재는 벌레보다 더 하찮게 여기는 그런 작자인데, 그런 카르발타가 자신을 기억하겠다며 말을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리엔은 묘한 감흥에 휩싸였다. 분명 상대는 상종할 수 없는 적이 분명한데도, 그 말을 들은 순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설레는 감정이 치솟아서였다.

‘설마 날 인정한다는 그 말 때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그 감정을 털어냈다. 지금은 고작 인베이더에게 인정받은 걸로 기뻐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싸움은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었으니까.

마침 싸움을 끝낸 건지, 저 쪽에서부터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서 다가왔다. 바로 레이첸이었다.

“다들 무사했네. 그 괴물을 상대로 말이야.”

“어쩌다 보니.”

아리엔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괴물은 괴물이었다. 고작 분신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듯 목숨을 걸고 싸워야 간신히 이길 수 있다니.

어쨌든 이기긴 했지만, 몸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무리하게 전력을 쥐어짠 탓이었다.

그건 레이첸도 마찬가지였는지, 몸 여기저기가 엉망인 듯 보였다.

“우리야 이렇게 겨우 이겼는데, 문제는 저쪽이군.”

레이첸이 고갯짓 한 방향에는 더욱더 흉험한 싸움이 한창이었다.

안개와도 같은 무언가가 펼쳐져 있어, 내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서 이진운과 울브스가 생사를 다투는 치열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어쩌지? 우리가 끼어들 수 있을까?”

레이첸이 그렇게 물었지만, 아리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안 돼. 우리 수준으론 무리야. 저기 들어가 봐야 스승님의 방해 밖에 안 돼.”

고작 분신에 지나지 않은 카르발타와 데이모스를 상대로도 고전을 면치 못한 자신들이었다. 본체인 것도 모자라 세계수의 가호까지 받고 있는 울브스를 상대로 끼어들어봐야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이진운의 약점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럼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젠장.”

레이첸도 그 사실을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다.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아리엔의 입을 통해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할 정도로 변함없었다. 자신들은 저 싸움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면서, 이진운이 무사히 이기길 기도해주는 게 전부였다.

‘꼭 이겨서 돌아오라고,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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