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99화 (200/448)

8권-24화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아리엔의 검은 지금도 계속해서 실시간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걸로도 부족해! 이보다 더 정묘하게!’

그녀의 갈망이 고조될수록 만상개화 의검천추의 효과도 더욱 강해져갔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고, 풀리지 않던 검의들이 새롭게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크으으!]

카르발타는 분노에 찬 신음을 터뜨렸다. 실로 치욕적이었다. 고작 20세도 되지 못한 어린 것한테 자신이 이렇게 압도되다니.

더 기가 막힌 것은 힘으로 월등히 뒤떨어진 상대의 검술에, 자신이 오래도록 갈고 닦아온 검술이 짓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불과 20여초 남짓 사이, 그는 궁지로 내몰렸다. 그나마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던 건 그의 힘과 속도가 압도적인데다, 막대한 영력이 전신을 빈틈없이 보호하고 있어서였다.

허나 그런 방어도 완전하진 못했는지 아리엔의 검격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그의 갑주 위에는 깊은 상흔이 새겨졌다.

아직까지 큰 상처는 없었지만, 카르발타에게는 갑옷 위에 새겨진 검흔들이 마치 자신의 자존심에 난 상처나 다를 게 없었다.

쿠오오!

전보다 더 난폭하고 격렬한 영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젠 단순히 전력을 다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폭주에 가까울 만큼 강렬해져 있었다.

그런 변화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깨달은 아리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래선 안 돼!’

분명 검술의 묘리로 압도하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게 이 싸움의 승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본적인 힘에서부터 너무 큰 차이가 났다. 아리엔이 제아무리 카르발타를 수십, 수백 번 벤다 하더라도,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막대한 영력의 방어를 완전히 뚫지 못하는 이상 제대로 된 유효 치명타를 입히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보다 강한 힘이 필요해! 저 호신강기 같은 영력의 방어를 뚫을 수 있는 그런 힘이!’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녀는 점창의 무공 중 상당수를 배우긴 했지만, 이진운이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도 여럿 존재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역기충혈대법이었다. 활용하기에 따라선 자신의 진기를 몇 배로 폭증시킬 수 있지만, 사용자를 자칫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수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미처 전수받지 못했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무공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배우지 못한 무공이 무슨 소용이야? 다른 대체 수단을 찾아야 해!’

수많은 무공들이 뇌리로 스쳐지나갔다.

이진운에게 배운 신공절학은 많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무공은 현재 가진 내공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 딱 하나 있어!’

불현듯 떠오른 게 있었다.

그동안 거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그것은 이진운이 복원해준 웰라우드 가문의 비전이었다.

그동안 점창의 무공을 배우느라 잊고 있었지만, 가문의 비전만큼 지금 상황에 적합한 것도 없었다.

‘벌써 32초가 지났어.’

만상개화 의검천추의 유지시간은 1분.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28초뿐이었다. 그 안에 쓰러뜨리지 못하면 그녀에게 더 이상의 승산은 없었다.

‘그 안에 끝내야 해!’

그렇게 각오를 다진 순간, 이진운이 복원해준 웰라우드 가문의 비전이 가진 의미들이 자연스럽게 뇌리에서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아리엔은 그제야 가문의 비전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구나. 이게 우리 가문의······.’

웰라우드 가문의 비전은 결코 하찮은 게 아니었다. 점창의 무공들과 비교해 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단지 방향성이 다를 뿐이었다.

점창의 무공들 대다수가 빠르면서도 정묘하게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형태라면, 웰라우드 가문의 비전은 현재 가지고 있는 힘을 최대한 극대화하여 압도적인 적을 짓누르는 방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체내의 진기가 웰라우드 가문의 비전 운용법에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점창의 내공 운용법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방식에 조금 낮선 느낌이 들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복원되면서 여러 부분이 바뀌긴 했어도, 기본적인 틀은 어렸을 때부터 수련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오오오!

체내의 진기가 무섭도록 폭증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겨울에 눈덩이를 굴린 듯,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고 있었다.

주변의 대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중심으로 막대한 기파가 사방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 변화를 눈치 챈 카르발타가 당혹에 찬 표정이 되었다.

[이 무슨!?]

분명 자신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영력을 보유하고 있던 소녀였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 막대한 영력을 뿜어내고 있단 말인가?

허나 거기에 놀라고 있을 새가 없었다.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아리엔의 검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웰라우드 류.

진강(進强).

뻗어오는 7연격! 그것은 지금까지 보여준 검술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다. 오로지 빠르고 강한, 강맹일변도의 공격들!

허나 전에 비해 정묘함이 사라진 단조로운 공격이라고 해서 결코 얕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첫 공격을 받아낼 때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두 번째 참격을 받아낼 때는 그 충격이 2배로 증가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참격을 받아낸 순간, 무려 4배의 충격이 그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카르발타는 그제야 이 수법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이어질수록 더 강해지는 공격이라고!?’

그리고 네 번째 다섯 번째 공격이 그의 방어 위를 두들겨왔다. 이젠 위력이 무려 8배, 16배로 증가한 검격은 카르발타라 해도 견디기 힘들 만큼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참격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첫 수에 비해 32배에 달하는 일검! 마치 휘둘러지는 것만으로도 이 일대의 대기가 파열하는 것 같았다.

콰아앙!

검을 받아낸 것만으로도 전신이 찌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강력하던지 아리엔의 검을 막아낸 카르발타를 중심으로 반경 1km의 지표면이 크레이터 형상으로 깊게 가라앉아 있을 지경이었다.

이게 바로 웰라우드 류. 오랫동안 우주에서 잊혀졌던 5대가문의 비전인 것이다.

멈추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일곱 번째 참격! 64배에 이르는 위력의 검초가 다시 한 번 카르발타를 강타했다.

그는 검을 앞세워 막아냈지만, 그 안에 담긴 충격은 조금도 상쇄할 수 없었다.

[커으······.]

그는 무려 수백 미터를 날아가 세계수 밑동에 처박혔다. 제아무리 막대한 힘과 영력을 다룰 수 있다 하더라도 중형 전함조차 날려버릴 수 있는 일격을 받아내는 건 무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쓰러지진 않았다. 만상개화 의검천추를 개방한 아리엔에게 밀렸다 해도, 그는 신화 급의 인베이더였다.

[이 몸이 본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고작 네년 따위에게 내가 질 것 같으냐!?]

격노한 카르발타의 검이 갑자기 자신이 처박혔던 세계수의 밑동에 자신의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그 순간, 세계수 한 그루가 빠른 속도로 앙상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모든 기운이 검 한 자루 안으로 빨려나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이명이자 스킬인 사혼검의 정체. 직접 죽인 자들의 생명력으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증폭시키는 카르발타만의 특기였다.

그렇기에 죽인자의 수가 누적될수록 그는 더욱더 강해진다. 물론 그 효과는 무한한 게 아니라서 하루가 지나면 다시 리셋된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스킬의 효과는 지금과 같은 경우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고오오오!

무시무시한 기운이 저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를 중심으로 타오르는 기운의 총량만 해도 거의 본신의 힘에 버금갔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평범한 생명체도 아니고 무려 세계수 한 그루를 통째로 집어삼켜 만든 힘이다. 어지간한 그랜드 급마저 크게 웃도는 수준이니, 객관적으로 본다면 더 이상 아리엔에게 승산이란 없었다.

그렇지만 상대와의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체감하면서도 아리엔은 조금도 전의를 잃지 않았다. 카르발타의 사혼검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유명한 스킬 중 하나.

그와 싸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런 경우도 이미 다 상정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12초 남았어. 단판 승부야! 이걸로 이 싸움을 끝내겠어.’

상대가 세계수 한 그루를 말라죽게 해 가면서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하는 것처럼, 아리엔도 그러했다.

이번 일격으로 이 싸움에 종지부를 맺을 생각이었다.

그녀의 뇌리로 하나의 검리가 떠오른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그런 영역이었다.

고유스킬이 발동중인 지금도 그것은 실낱처럼 희미하기 그지없었지만,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쿵!

지표면을 박찬 순간, 그녀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상공을 향해 치솟았다. 응조칠식경공(鷹鳥七式輕功) 비응등천(飛鷹登天)이었다.

그것을 본 카르발타가 아리엔이 날아오른 상공을 향해 검을 겨누며 성난 외침을 토해냈다.

[내 앞에서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세계수마저 압도할 것 같은 거대한 검강이 아리엔이 날아오른 곳을 향해 길게 뻗어 올라왔다. 장대하기까지 한 그것은 가히 하늘과 땅을 잇는 빛의 기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아마도 카르발타는 그 검강으로 아리엔을 그대로 베어낼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상공으로 올라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카르발타를 확실히 끝장내기 위해서였다.

“도망!? 아니, 난 지금 당신을 끝장낼 거야!”

그렇게 내뱉은 순간, 아리엔의 검 끝으로 막대한 진력이 집중되었다. 그동안 증폭된 모든 진기가 몰려들자, 검 위로 거대한 검강이 치솟았다.

그것은 카르발타의 것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족했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그 어떤 검강보다 강렬했다.

웰라우드 류.

극광(極光).

이것이 바로 웰라우드 류의 검리 중 하나인 극광. 영력을 증폭하는 원리를 극대화함으로서 검에 담아내는 힘을 최대한 증폭하는 수법이었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준비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극광은 검의 출력과 위력을 상승시키는 기반일 뿐, 다른 검식과 더해져야 비로소 그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까.

높은 하늘까지 상승했던 아리엔의 몸이 드디어 중력에 이끌려 하강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강이 실린 검을 앞세운 채 카르발타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 줄기 유성 같았다.

이것이 바로 웰라우드의 비전 중 하나인 낙성(落星). 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별처럼 무시무시한 기세와 속도, 위력으로 상대를 수직으로 베어버리는 일격이었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극광과 낙성. 그 두 개의 비전이 하나로 연계된 순간, 그것은 보다 강력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되었다.

웰라우드 류.

극광(極光) 낙성(落星).

2단 연계비전. 극광성운(極光星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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