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97화 (198/448)

8권-22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쓴 단중범화경은 중력장으로 공진을 일으켜 공간 자체를 진동시키는 수법. 마치 범종이 메아리치듯 반복적으로 공진이 연이어 작용하면서 범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산산이 분쇄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데이모스가 배리어를 다중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공간 자체를 공진시키는 방식 앞에서는 제대로 방어가 될 리 없었다.

이런 방식의 현상은 방어하는 개체까지 같이 투과해 같이 공진시켜 버리니까.

[크크···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이미 다 큰 호랑이었군.]

이내 냉정을 되찾았는지 데이모스가 작게 실소를 흘렸다. 역시 그랜드 급 강자답게 몸이 부서진 상황에서도 막대한 영력으로 용케 버티면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바이우드 가문 놈들과는 꽤 많이 부딪쳐 봤는데 네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카르테인의 힘이 주가 아닌, 요상한 주먹질을 앞세운 육탄전이라니. 이건 정말 예상 못했군.]

“내가 가문에서도 좀 별종이라서. 최근 스승도 따로 뒀고.”

그 대답에 데이모스는 스승이란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아마 바이우드 가문 출신인 어린 것의 전투 방식이 이렇게까지 파격적으로 달라진 것도 아마 그 스승이란 존재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패한 것도 그런 전투 스타일의 변화 때문이었다.

‘녀석이 말한 스승은 바로 울브스가 상대하고 있는 놈이겠지.’

이진운에 대해서도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입수한 상황이었다. 레이첸이 보인 기묘한 발놀림과 움직임들도 그자의 것과 일맥상통했다.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 데이모스는 레이첸에게 말했다.

[그랬군. 뭐, 좋다. 이번은 내 패배로 해 두마. 어차피 분신인 몸. 본신의 2할도 안 되는 지금 상태로는 널 이길 수 없을 테니까.]

“2할?”

2할이란 말에 깜짝 놀라는 레이첸. 상대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가면서 맹공을 가해 간신히 이겼거늘, 그게 고작 전력의 2할이라니?

그런 레이첸을 향해 데이모스가 갖잖다는 듯 내뱉었다.

[자만하지 마라. 네 녀석이 어린 나이 치고는 제법 솜씨가 괜찮긴 했다만, 그랜드 급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지. 심지어 그랜드 급 중에서도 상위에 다다른 나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고.]

“아, 진짜. 고작 2할 정도에 이 고생이라니.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소리네.”

레이첸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말해 최근 실력이 늘어나면서 자신감도 그만큼 늘어난 상태였다. 그랜드 급이라 해도 무공까지 배운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지 않을가 싶었는데, 역시

[후후후··· 재밌는 녀석이군. 다음번에 다시 한 번 네 녀석과 겨뤄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끝으로 데이모스의 육신은 완전히 부스러져 무너졌다. 그가 가진 영력으로도 더 이상 부서진 몸을 지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젠 가루만 남은 데이모스의 잔해를 확인한 레이첸은 다리가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멀쩡한 척 서 있었던 것과는 전혀 대조적이었다.

“아오··· 진짜 죽을 것 같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온 몸을 좀먹어오는 저주와 독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특히 싸우는 와중에서는 영력으로 그것을 밀어낼 수도 없어서, 인내력으로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운기요상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체내의 영력이 순환하면서 저주와 독기가 빠른 속도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배워두길 잘했지.’

이것 또한 이진운에게 배운 것들 중 하나였다. 영력을 운용해 몸을 치유하는 방법은 연합이나 가문에도 여럿 있었지만, 이진운에게 배운 것만큼 더 효과적이진 못했다.

어느 정도 저주와 독기가 밀려나면서 몸 상태가 호전되자,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인베이더는 뭐지?’

인베이더는 모든 지성체들의 적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모든 것의 파멸이었고, 그것을 통해 업을 쌓아 보다 상위의 경지로 나아가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자신과 싸운 데이모스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인베이더 특유의 적대감보다는, 오히려 까마득히 후배를 상대해준 선배와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자만하지 말라며 자신을 다그치던 그 목소리는 지금도 귓전에 선명했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베이더 쪽에 몸담게 된 건가?’

하지만 어떤 깊은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어떤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모든 지성체들의 적인 인베이더 진영에 소속된 몸이다.

조금 호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서, 그를 적대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래, 적은 적이야. 데이모스 그 자도 막상 중요한 순간이 되면 내 목숨을 거두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레이첸도 다시금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뒤에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변을 살피니 울브스와 한창 싸우든 이진운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 주변으로 기이한 안개 같은 것이 둘러싼 것으로 보아 그 안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것 아닌가 짐작되었다.

그리고 저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혼검 카르발타와 아리엔 일행의 전투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 * *

아리엔과 클레브, 엘레나는 사혼검 카르발타와 정면으로 맞붙게 되었다. 상대는 비록 분신이라 할지라도 압도적인 강자인 만큼 셋이서 함께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공은 엘레나였다. 그녀의 무구구현의 능력이 이 자리에서도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전함의 주포를 전면에 부분 구현시킨 뒤, 성대한 빛줄기를 분출하는 일격!

그것은 어지간한 공격보다 더 강대했다.

고오오오!

하지만 카르발타는 피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검 끝에 모인 영력이 극도로 응집되면서 형체를 갖추더니 곧 눈부신 검의 형상이 되었다.

그것은 무공을 배운 자라면 모를 수 없는 것이었다.

“검강!?”

아리엔의 놀란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카르발타의 검이 궤적을 그렸다. 그것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형국이었는데, 그 궤적에 닿은 엘레나의 포화가 그대로 양 갈래로 쪼개지면서 좌우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카르발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흠. 이걸 검강이라 부르는군. 그래, 들은 적은 있었다. 무공이란 걸 취급하는 곳에서 그렇게 부른다지?]

“무공을 알아?”

상대의 입에서 언급된 무공의 존재에, 아리엔은 경각심을 느꼈다. 그건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카르발타는 여전히 담담했다.

[우리가 모시는 성좌분들의 혜안은 저 우주 끝까지 닿아 있으시다. 보지 못하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으시지.]

그 말을 듣고서야 아리엔은 상대가 무공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 신적 존재들은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고 했어. 아마 무공에 대한 정보도 그런 식으로 얻었을 거야.’

하지만 아카식 레코드는 만능이 아니었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아카식 레코드는 전지전능에 가깝지만, 그것을 열람하고 취급하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했다.

제아무리 성좌들이라 하더라도 아카식 레코드에서 볼 수 있는 정보들은 아주 작은 편린에 불과할 뿐. 만일 인베이더의 성좌들이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면, 연합이 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아카식 레코드의 전부를 엿볼 수 있다면, 그건 그냥 초월자 정도가 아니라 절대신이라 불려도 무방했을 것이다.

‘역시 쉽지 않아.’

상대가 검강을 사용했다는 것은 무예가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어중간하게 영력을 응집시킨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사혼검 카르발타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여러 경로로 들어 봤었지만 연합 내에도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오리무중이었는데, 설마 이능이 아닌 제대로 된 무예로 경지에 오른 존재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우웅!

아리엔도 마찬가지로 검강을 뽑아 올렸다. 검신 위로 치솟은 푸른 광망이 마치 모든 것을 베어낼 듯 서릿발처럼 예리해 보였다.

[호오, 오러 블레이드라. 그 정도면 마이스터 문턱 정도는 되겠군.]

작게 감탄한 카르발타에게서 진한 살기가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명백한 적의였다.

[하지만 과연 그 실력은 어떨까?]

쿠구구구!

그가 기운을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주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막대하던지 이 일대의 공기가 갑자기 몇 십 배로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사혼검 카르발타.

데이모스와 마찬가지로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인베이더 측에서 악명을 쌓아온 데스 나이트로서, 그 수준은 신화 급으로 추정되고 있는 괴물.

그건 즉 스승인 이진운과 거의 맞먹거나, 그 이상이라는 의미였다.

쿠우웅!

이번에 먼저 선공을 걸어온 건 카르발타였다. 그가 지면을 박찬 순간, 마치 공간을 압축한 것처럼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콰아아앙!

“윽!”

검강과 검강이 서로 맞닿으면서 격렬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그 반동에 아리엔은 무려 수십 미터를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어··· 엄청난 힘이야!’

상대의 힘과 검에 실린 검강의 위력은 아리엔의 것을 훌쩍 뛰어넘었다. 배율로 따진다면 적어도 십여 배 이상이었다.

만일 받아 흘리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냈다면 이 일격으로 팔이 떨어져나갔을지도 모른다.

[제법이군! 그게 언제까지 갈까?]

그때부터 카르발타의 맹공이 퍼부어졌다. 그의 검은 빠르면서도 강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검술의 투로나 형태는 상당히 거칠고 투박하긴 했지만, 거기에 담긴 힘과 속도는 그런 담점을 메우고도 남는다.

특히 놈의 일격 일격이 거의 어지간한 주포와 맞먹을 지경이었다. 단 한 대만 허용한다 해도 치명적인데 반해, 아리엔의 것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강력한 맹공 속에서도 끈질기게 버텨내고 있었다.

‘이것이!?’

카르발타의 두 눈이 짜증과 분노로 점철되었다. 확실히 끝장낼 생각으로 퍼부은 공격인데도 이 계집은 쉬이 당해주지 않았다.

분명 힘과 속도는 자신이 압도적으로 우위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위태로운 모습으로 받아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뭔가··· 이상해.’

한편 아리엔도 카르발타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분명 상대는 신화 급 인베이더였다. 무공으로 친다면 현경에 도달한 초인일 텐데도, 어째서 이렇게 검술이 투박하단 말인가?

원이나 부드러움 따윈 완전히 배제한 강맹일변도의 공격! 이진운의 검에서 느꼈던 현모함 따윈 조금도 엿보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카르발타가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그의 속도와 힘, 영력의 규모는 가히 압도적이어서, 공격을 받아낼 때마다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대부분의 힘과 충격을 지면으로 흘려냈는데도 이럴진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첫 일격을 받아내자마자 즉시 한줌 핏물로 화했을 것이다.

“윽!”

근섬유가 끊어지고, 뼈마디에 금이 생겼다. 그만큼 상대의 공격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버틸 수 있는 건 이진운에게 새로 전수받은 태을단목신공 때문이었다.

한겨울에 나무가 죽은 듯 보여도 다시 봄이 되면 새싹이 돋고 가지가 뻗는 것처럼, 이 신공 또한 그러했다. 나무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신공은 그녀가 입은 상세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만일 이게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몇 번의 공격을 받아낸 것으로 진즉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아리엔이 카르발타의 몇 수를 받아낸 순간, 엘레나와 클레브도 동시에 움직였다. 좌우 양 측면에서 동시에 가세한 것이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1절. 연환천중인(連環天重印)

비의 만력강천(滿力鋼穿)

진각과 함께 내뻗는 일로의 권격! 전신의 무게와 경력은 물론, 천중무한신공의 극한의 무거움까지 단 한주먹에 담아낸 일격이었다.

그리고 활과 화살을 구현한 엘레나는 이런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관양궁을 펼쳤다. 특수하게 불어넣은 진기로 화살을 날아가는 도중에 반복적으로 재 가속시켜 극한의 속도와 위력을 부여하는 절초 일원신기전(日源迅起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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