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21화
콰르르릉!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을 떠난 칠흑빛 번개가 시공간을 관통해 나갔다.
이를 본 데이모스의 두 눈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이건!]
칠흑빛 벼락이 중력파의 중심을 꿰뚫었다. 그것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더니, 급기야 데이모스의 신형마저 관통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분명치 않았다. 이 알격으로 치명상을 입었어야 할 놈의 형체가 마치 신기루마냥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환영!?’
그랬다. 지금 남겨진 것은 데이모스가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놈의 본체는 어디론가 모습을 감춘 채, 환영을 앞세워 레이첸을 기만한 것이다.
하지만 레이첸은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았다. 경험 많은 인베이더들을 상대하다보면 아주 다양하리만큼 교활한 술수들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역시 수백 년 이상 묵은 인베이더답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은데. 하지만 내 앞에서 얼마나 숨어있을 것 같아?’
그는 그 즉시 대응에 나섰다. 상대가 숨어서 자신을 찌를 기회를 엿본다면, 그러지 못하도록 한바탕 재를 뿌려주는 수밖에.
내뱉고 들이마시는 호흡을 따라 장중한 영력의 흐름이 돌연 격렬한 형태로 운행되었고, 그것은 내딛는 진각과 함께 외부로 분출되었다.
패천권(覇天拳)
중의진멸각(重毅鎭滅脚)
쿠콰콰콰!
어두운 파장이 크게 동심원을 그리면서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어찌나 강력하던지 검은 파문이 지나가는 곳마다 지표면이 박살나 붕괴되고 있었다.
단순히 진각에 의한 충격파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거움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중력파로 지표면을 공진시켜서 형성한 일종의 유사 공간진동이나 다름없었다.
환영을 남긴 채 저 멀리 떨어져서 기척차단과 비가시화 마법을 사용해 기회를 노리고 있던 데이모스는 갑자기 밀려오는 검은 파동 앞에 깜짝 놀라 방어에 들어갔다.
설마 놈이 자신을 찾기 위해 주변을 광범위하게 쓸어버리는 미친 짓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칫!]
다행히 검은 파동은 몇 겹으로 두른 배리어를 뚫지 못하고 상쇄되었지만, 그 덕분에 위치가 드러나게 된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데이모스를 발견하자마자, 레이첸이 또다시 궁신탄영의 수법인 섬화탄신을 전개해 쇄도해오고 있었다.
데이모스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어린 놈이 제법이구나.]
사실 계획대로라면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최고위 마법을 전개해 단숨에 끝장낼 생각이었다.
한데, 어린 녀석의 실력은 물론 대응능력까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바이우드 가문의 장자라더니··· 이건 듣던 것보다 대단한 녀석이었군.’
데이모스도 레이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연합을 구성하는 핵심 세력들은 인베이더 측에서도 언제나 주시해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하물며 바이우드 가문의 장자에 대해 조사해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헌데 문제는 녀석의 시력이 조사 내용과 일치하지가 않는다는 점이었다. 녀석이 마이스터 초입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그보다 더하지 않은가!?
적어도 마이스터 상급, 그 이상은 되어 보였다.
[성가신 것!]
빛과 같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레이첸을 향해 그가 석장을 겨누었다. 그러자 그 주변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떠오르는 가 싶더니, 막대한 물줄기들이 생성되면서 맹렬히 휘돌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강력한 수압으로 회전하는 물의 창날들! 그것들은 무려 수백 개에 달했다. 하나하나가 거의 강기에 준할 정도니, 그 위력이 어떨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최상계 흑마법. 샤이진 크러스<수령탄마정水靈彈魔釘>
쿠르르릉!
거대한 물의 창들이 굉음과 함께 날아들었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고층 건물에 맞먹는 그것들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대기를 찢어발기는 여파를 뿌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레이첸은 이를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더 가속해 달려들었다.
그의 오른손과 왼손 각각에 차갑고 뜨거운 상극의 기운이 맺혀 있었다.
합장하는 듯한 동작에 의해 두 기운이 한 곳으로 모인 순간 극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기운이 서로 맞닿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합장했던 두 손을 활짝 펼친 순간, 무지막지한 기운이 해방되었다.
패천권(覇天拳)
번천파열인(翻天破裂印)
콰콰콰쾅!
눈부신 광량과 함께 막대한 에너지의 분류가 공간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은 데이모스가 전개한 샤이진 크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레이첸도 완전히 무사하진 못했다. 부서진 수창의 잔해에는 흑마법다운 독기와 저주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큭!”
몸을 갉아먹어오는 저주와 독기에 의한 고통이 쩌릿하게 밀려왔다. 그리고 이 고통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욱 자신을 좀먹어 들어올 것이다.
‘젠장! 역시 장기전은 무리겠어.’
하지만 이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흑마법사 중에서도 최고의 권위자인 죽음의 인도자 데이모스를 상대하는 일인데, 이 정도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그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쇄도한 끝에 드디어 데이모스의 모습이 간격 안에 들어왔다.
레이첸은 그 즉시 반격에 들어갔다.
내딛는 진각, 그리고 지면을 밟으면서 일어난 반동을 전달하면서 폭풍처럼 휘도는 허리와 상체!
그리고 전신에 실린 모든 경력과 힘, 그리고 무게가 실린 단 일로의 권격!
그것은 모든 것을 분쇄하고 관통하는 일격이었다.
패천권(覇天拳)
만천관인(滿天貫印)
쩌저정!
[크헉!]
데이모스의 입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든 공격을 부순 것도 모자라, 심지어 코앞까지 다가와 펼친 주먹질이 무려 수십 겹의 배리어를 부수고 자신의 하체를 분쇄해 버렸으니까.
그가 전개한 다중 복합 배리어가 준대형 전함의 포격도 잠시나마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단 점을 생각한다면, 이 일격이 얼마나 강력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데이모스는 졸지에 하체를 잃고 말았지만, 즉시 비상마법으로 상체를 띄운 채 뒤로 재빨리 물러서서 태세를 정비했다.
다시금 배리어를 전개하면서 다음 대응책을 준비하기 시작한 데이모스는 눈앞의 상대에 대해 치를 떨었다.
[이 지독한 놈!]
전신의 피부가 검붉게 물들은 레이첸의 모습은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독기와 저주에 의해 침식되면서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고 있을 텐데도 저렇게 악착같이 달려들다니.
지금까지 봤던 상대들 중에서도 가장 독종이었다.
만일 자신이 분신이 아닌 본체였다면 이 일격으로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이젠 끝장을 보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데이모스가 이를 갈았다. 제아무리 분신을 조종하는 상태라서 제 실력을 발휘 못한다 해도, 고작 바이우드 가의 가주도 아니고 그 자식 놈에게 이렇게 당하게 되다니!
그렇기에 그의 마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했다.
최상계 흑마법. 메디 크로암<악령소현惡靈召現>
구오오오!
데이모스가 석장을 높게 치켜든 순간, 수많은 악령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진멸 급에 버금갈 정도여서, 웬만한 강자라 하더라도 여기에 휘말리면 숫자에 압도되어 죽을 수밖에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레이첸의 두 눈은 무척이나 냉정했다.
“쓸데없어!”
이미 데이모스의 의도는 그도 충분히 파악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수로 대응할 뿐이다.
그는 양 주먹을 허리로 가져갔다. 그리고 영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두 종류의 힘이 그의 양팔에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인력(引力)과 척력(斥力) 두 종류의 힘이었다.
그리고 두 힘의 조화가 완성된 순간, 레이첸의 양 주먹이 폭포수처럼 공간을 휩쓸기 시작했다.
패천권(覇天拳)
탄섬격뢰(彈閃擊雷)
투콰과과과!
[이··· 이건!?]
그 순간, 데이모스는 기적과 같은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니 그의 입장에서는 악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써 소환한 악령들이 순식간에 터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고작 어린 녀석의 말도 안 되는 유성우 같은 주먹질에 의해서.
[이런 미친! 저런 게 가능하다고!?]
데이모스는 마법사임과 동시에 온갖 과학적 지식과 법칙에 해박했다. 그래서 레이첸이 어떤 식으로 뭘 했는지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인력과 척력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어. 그걸로 주먹을 내뻗고 거둠을 극대화한 거야. 심지어 그걸 끊이지 않고 연속적으로···!?’
기가 막혔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설명이 가능한 수법이지만, 그걸 불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재현하다니! 이 정도로 인력과 척력을 정밀하게 운용하기 위해선 얼마나 고도의 제어력이 필요한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건 레이첸의 반응이다. 저 수법으로 제아무리 악령을 쓸어버린다 하더라도, 누적되는 저주는 변함이 없었다. 흑마법이란 게 본디 그런 방식이었으니까.
헌데도 놈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얼굴이 일그러진 걸 보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참아내면서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아니, 무슨 애새끼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싸움터만 쏘다니기라도 한 건가? 하는 짓이 백전노장이 따로 없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이첸은 그 나이 대에 비해 전투경험이 꽤 많은 편이었다. 거기에 멀린의 도움으로 구현한 수련실의 환상공간에서 수많은 가상전투를 치르면서 그 경험은 더욱 농밀해졌다.
이젠 어지간한 백전노장들보다 더한 경험치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 레이첸이 이런 고통 따위에 연연해 공격태세를 늦출 이유가 없었다.
악령들이 전부 터져나간 순간, 레이첸의 발이 기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데이모스가 눈치 챈 순간, 이미 상대는 지척으로 다가와 있었다.
‘어느새!?’
데이모스의 두 눈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아직 다음 수를 준비하지도 못한 상태인데, 놈에게 거리를 허용하고만 것이다.
‘젠장! 하필이면······!’
본체였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이 본체에서 조종하고 있는 인형이기에 발생한 문제였다.
조종하는 데에 드는 약간의 딜레이 타임. 그것 때문에 레이첸의 움직임을 잠시 시야에서 놓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데이모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되었다.
조용히 내뻗는 일장. 그것이 데이모스가 전개한 배리어 위를 살포시 누르듯 닿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패천권(覇天拳)
단중범화경(鍛重氾化勁)
두우우우우우우우~!
마치 범종이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가 공간을 진동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이 산산이 분쇄돼었다.
데이모스를 보호하던 배리어도, 그 안에 있던 데이모스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격렬한 진동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데이모스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미친······. 네놈!?]
말을 하는 도중에도 그의 몸은 점점 부스러지고 있었다. 이미 레이첸의 일장 앞에 완전히 끝장 난 상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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