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93화 (194/448)

8권-18화

“이제 겨우 조금 맛만 본 나도 이 정도인데··· 이런 무공들을 전부 완성한 저 아저씨는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그는 이진운이 보여주고 있는 뒷모습을 응시했다. 지금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인베이더들을 단숨에 수백 수천 마리씩 쓸어가면서 길을 뚫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러면서도 정작 이진운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뭘 어떻게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의 제어 하에 있는 검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도 된 듯 믿기지 않는 조화를 부리면서 홀로 날뛰고 있었다.

“어검술이라고 했었지?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건 분명 사상기의 일종인 것 같은데······.”

아직 무공의 경지와 체계에 대해 다 알지 못하는 레이첸으로선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검이 스스로 날아다니면서 온갖 수법을 구사하는 거야 크게 놀라울 건 없었다.

오버러 중에서도 그와 유사한 형태의 능력을 다루는 자들은 여럿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진운의 어검술은 그런 차원을 한참 넘어섰다. 단순히 검을 조종하는 차원을 넘어, 시공간의 개념적 한계마저 초월해 움직이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우주공간을 뒤흔드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거대한 형체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가루다 급인가? 이놈들 역시 눈치가 빠른데? 우리가 세계수 행성에 접근하는 걸 막으려고 벌써부터 나선 건가.”

레이첸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인베이더가 보유한 전함 중 준대형인 가루다 급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나아가긴 힘들 것이다. 가루다 급 한 척을 비롯해서 중형 전함 가란드 급 여섯 척이 함께 세계수 행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진로를 정확히 막아섰으니까.

물론 지금의 경로를 우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회하는 걸 가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정면 돌파뿐인데··· 가능할까?’

준대형 전함 정도 되면 그 화력과 방어력은 마이스터 급으로선 감히 감당할 수조차 없었다. 그나마 그랜드 급 정도는 되어야 어떻게든 뚫어볼 만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그게 가장 보편적인 상식이었다.

게다가 가루다 급 옆에는 호위함인 가란드 급까지 포진하고 있는 판국이니, 돌파는 더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레이첸은 아주 승산이 없다고 보진 않았다. 저 앞에 서서 자신들에게 등을 보여주고 있는 이진운의 존재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위용으로 다가오고 있는 인베이더 함대를 바라보면서도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듯 고고하게 우주공간에 서 있었다.

기이잉!

함대의 포신이 일제히 이쪽을 향했다. 막대한 화력으로 자신들을 단숨에 쓸어버리겠단 심산인 것 같았다.

그때, 이진운으로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종의 이미지였다. 그의 심상이 그리고 있는 형태가 이런 식으로 주변으로까지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이건!?’

레이첸의 머릿속에 그려진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진 않았다.

그것은 분명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본디 검이 닿을 수 없는 저 수평선 너머부터, 길게 구름을 베고 나아가 하늘 끝까지 가르는 광경은 압도적이면서 놀라웠다.

그리고 그의 뇌리로 전해진 이진운의 심상은 지금 이 자리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우우웅!

지금까지 인베이더들을 유린하던 검이 인베이더 함대를 겨누듯 멈춰 선다. 마치 함대를 홀로 상대하겠다는 듯, 고고하게 서 있는 검으로부터 압도적인 기세가 느껴졌다.

고오오오!

그것을 심상치 않게 여긴 건지, 인베이더 함대 쪽에서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막대한 에너지가 각 전함의 포구로 빠르게 집중되고 있었다.

허나 이진운이 그보다 한발 더 빨랐다. 그는 눈앞의 함대를 바라보면서 딱 한마디만 내뱉었다.

“베어져라.”

그 작은 읊조림이 바로 현실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심어검!

무한한 마음과 하나 된 검이 부리는 초월된 조화의 경지였다. 지금 그 지고의 결정체가 수직으로 천천히 공간을 그어나갔다.

심어검(心御劍)의 의(意).

절위제현(切僞霽現).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첨예한 기세로 공간을 갈라갔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인베이더 함대도 그냥 무방비 상태로 있진 않았다. 어지간한 공격을 받아도 견딜 수 있는 배리어를 가동 중에 있었다.

하지만 절위제현의 힘은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형의 기운은 심지어 배리어조차 가볍게 뚫고 지나가 메인 브릿지 부분을 그대로 베어버린 것이다.

콰아아앙! 콰아앙!

메인 브릿지를 베인 전함들이 성대한 폭발과 함께 폭침하기 시작했다. 그건 가루다 급이든 가란드 급이든 예외는 없었다.

단 한수로 함대 하나를 침몰시킨 이진운의 무위에 레이첸은 경악과 혼란으로 가득차고 말았다.

자신이 본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뭐지 그건? 배리어 째로 베어버린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분명 배리어에는 조금의 손상도 없었다. 대체 유령도 아니고 어떻게 배리어를!? 참격을 공간도약시킨 것도 아니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뚫고 지나간 게 아니라 투과하고 지나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배리어 자체에는 조금도 손상이 없었으니까.

허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심검(心劍)이란 단순히 의지로 이루어지는 무음무형의 공격만이 아니다. 마음먹는 순간 그 무엇으로라도 구현되는 형질과 형태를 초월한 것.

그것이 바로 심검이었다.

이진운의 심어검은 바로 그러한 심검의 이치에서 비롯된 한수였던 것이다.

이제 겨우 무공을 익혀나가고 있는 레이첸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

일행 모두가 넋 나간 모습이 되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검이 스스로 움직여 우주공간을 베더니, 인베이더 함대 하나가 통째로 베어져 침몰해 버렸다.

이걸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나마 이진운의 실력에 대해 나름 잘 알고 있는 제자들조차 이럴 정도니, 레이첸이나 제이나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레이첸은 기가 막혀 혀를 내둘렀다.

“이젠 진짜 사람이 아니네. 그랜드 급도 아닌데 함대를 베어내? 그것도 준대형 전함까지 함께?”

자신과 격 자체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이런 힘을 발휘하다니.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그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다지만, 그래도 그 점이 불가사의한 것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자신이 이뤄낸 결과물조차 별 감흥이 없다는 얼굴로 일행을 돌아보았다.

“자, 서두르자. 시간이 없어. 놈들이 또 몰려오면 기회를 놓칠지도 몰라.”

“예!”

이진운의 말에 따라 일행은 서둘러 움직였다. 방위선을 담당하는 함대까지 침몰시킨 지금, 이제 세계수 행성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 * *

“역시 오는가?”

함대의 기함 안에 혼자 남아 있던 울브스는 조용히 두 눈을 떴다. 루클라는 한창 천외오천을 상대로 분전 중이었고, 이제 이곳에서 싸움에 나설 수 있는 그랜드 급 이상의 강자는 자신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홀로그램 화면을 향했다. 그곳에는 에메랄드 헤븐을 향해 빠르게 접근해오는 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이진운이라. 카룬다임께서 말하신 자가 저 자로군.”

본래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파견될 자는 루클라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카룬다임이 내세운 주장으로 자신까지 라인트라로 오게 되었다.

지금 그가 가진 최종 목적은 인베이더의 승리도, 연합을 전멸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이진운의 제거였다. 이를 위해 그가 이곳에 파견되게 된 것이다.

“대체 무얼 보고 저 자를 경계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명대로 해야겠지.”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의 신형은 홀연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이진운 일행은 드디어 세계수 행성 안으로 진입해 나갔다. 대기권 진입 시 대기와의 충돌로 맹렬한 마찰열이 발생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배틀 슈트의 액티브 배리어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플로트 윙을 전개한 채로 지상을 향해 떨어지던 이진운은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세계수 행성이군.”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뿜어내던 세계수로 가득 찬 행성의 지상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저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는 게 조금 이질적일 뿐, 그 외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별다른 방어 시스템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이렇게 대기권 안으로 진입하는 데도 아무런 공격조차 없는 걸 보면, 자신들을 제지할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레이첸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거. 너무 허술하잖아?”

“뭐가 말인가요?”

아리엔이 무슨 뜻이냐는 투로 묻자, 레이첸이 곧바로 답했다.

“생각해봐. 이 세계수 행성은 인베이더 놈들의 비장의 무기인 것 같은데, 우리가 침입했는데도 막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비장의 무기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한다고? 놈들도 바보가 아닌데?”

“하긴 그렇네요.”

“물론 행성 자체가 조율도 끝나지 않은 미완성 상태라서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무방비해. 대공화망을 구성할 수 있는 포대조차 하나 없잖아. 비상식적이야.”

그렇게 다들 의문을 떠올리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바로 지금까지 조용히 동행하고 있던 제이나였다.

“저, 이진운씨?”

“무슨 일입니까?”

이진운이 돌아보자,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쪽에서 흐름의 중심이 느껴지고 있어요.”

“흐름의 중심이라면?”

“아마도 이 행성을 뒤덮은 세계수들을 아우르는 구심점이겠죠.”

그 말에, 이진운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이만한 규모를 통제하려면 코어 역할을 하는 나무가 있겠군.”

행성으로부터 빨아들인 에너지들을 통제하고 아군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절차가 필요했다. 물론 세계수가 한 그루 뿐이었다면, 굳이 코어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행성 전체를 뒤덮을 만큼 많은 세계수들을 하나로 엮어 제어하려면 구심점 역할을 하는 코어 트리의 존재는 필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베이더 놈들도 저 나무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조율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예, 지금 바로 그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음, 그러지요. 그럼 제이나 씨가 앞장서시죠.”

그녀의 주장에, 이진운은 그대로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지금 현재 세계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제이나 뿐이었다. 기억은 잃었을지 몰라도, 그녀가 타고난 하이 엘프의 피라면 본능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애당초 세계수 행성에 오게 된 것도 바로 그녀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제 와서 그녀의 주장을 무시할 이유가 없었다.

일행은 제이나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배틀 슈트의 플로트 윙 기능을 전개한 만큼 음속 이상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어요. 바로 저기에요!”

제이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알겠군.”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세계수라는 것 자체가 원체 거대하긴 했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높이 자체는 여타 나무들과 다를 것 없지만, 그 굵기나 사방으로 뻗어나간 뿌리들이 엄청난 면적의 토지를 뒤덮고 있었다.

눈대중으로 볼 때, 적어도 다른 세계수들의 수십 배 이상은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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