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92화 (193/448)

8권-17화

‘하긴 평범한 아저씨는 아니었지. 뭔가 말 못할 비밀도 가지고 있어 보였고.’

애당초 그가 가지고 있는 무공이란 지식부터가 의문의 산물이었다. 영능 자체가 금지된 지구 출신인 이진운이 어떻게 심오한 이치를 담은 영능적 지식과 비전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가 가진 무공의 종류조차 엄청나게 많고 다양했다.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체계화되고 다듬어지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많은 종류의 무공들이 완전한 형태로 완성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난 3일간 죽도록 고생해가며 배운 것만 해도 그러했다. 처음에는 단순무식한 육체 단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상상 이상의 오묘함이 숨어 있었다.

‘이제 그동안 배운 걸 써먹을 때가 왔군.’

구오오오!

마침 인베이더 하나가 급속 접근해왔다. 이진운이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하고 남은 녀석들 중 하나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만만히 볼 순 없었다.

등급은 진멸 급이지만 공격력과 스피드는 가히 성멸 급에 비견된다는 개체 [부스트기어]였으니까.

기계군단 소속의 개체인 만큼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체를 갖고 있는 그것은 등 뒤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놈의 특성 중 하나인 부스트 업이었다.

쿠아아아!

종횡무진하는 그 움직임이 눈으로 도저히 시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게다가 몸체의 색까지 검은 색에 가까운 터라 어두운 우주공간과 동화되어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레이첸의 오감과 기감은 부스트기어의 움직임을 확실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우우웅!

체내의 영력이 휘돌기 시작했다. 허나 그 흐름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이진운에게 배운 진기운용법에 따라 영력이 운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상태에서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텅 빈 우주공간이었지만 플로트 윙의 보조를 받는 그의 움직임은 대지를 밟는 것 마냥 자연스러웠다.

쉬이익!

그런 레이첸의 움직임을 빈틈이라 여긴 건지, 부스트기어가 맹수처럼 쇄도해오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어지간한 오버러들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을 정도지만, 레이첸의 감각에는 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너무나도 뚜렷하게 포착되고 있었다.

“멍청한 놈.”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그의 움직임은 그냥 빈틈이 아니었다. 놈이 덤벼들도록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드러낸 빈틈이었다.

놈은 말 그대로 낚시꾼이 흔드는 떡밥에 홀린 물고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낚싯바늘을 문 물고기에게 다가올 말로는 뻔했다.

파고들어오는 부스트 기어의 손끝이 진한 영력의 파장과 함께 맹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부스트 기어를 흉악한 악명을 떨치게 된 무기 중 하나.

마치 칼날처럼 세워진 이것은 전함의 배리어조차 종잇장처럼 가르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섬뜩하게 우주공간을 가르며 날아드는 부스트 기어의 칼날이 닿으려던 그 순간, 레이첸의 신형이 돌연 허깨비처럼 흐려졌다.

바로 분광착영(分光捉影)의 일보섬영(一步閃影)이 이형환위의 경지에서 펼쳐진 것이다.

목표를 잃고 잔상만 가른 부스트기어가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는 순간, 놈의 좌측에서 레이첸의 신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내뻗는다. 묵직한 한수를!

그것은 군더더기조차 없는 일로의 정권(正拳)이었다. 전신의 무게와 회전, 그리고 힘의 전달과 경력이 온전히 더해진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콰앙!

부스트기어의 몸체가 마치 거대한 전함과 충돌하기라도 한 것처럼 박살나 버렸다. 복부 아래의 하체는 완전히 으스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고, 그렇게 자신하던 무기인 양 팔도 떨어져나간 것이다.

“흠··· 이 정도인가.”

레이첸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만족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물론 부스트 기어가 공격과 속도에만 치중된 타입인 만큼 내구성이 좀 약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진멸 급이다. 이렇게 손쉽게 박살낼 수 있는 개체는 아니었다.

“무공이 좋긴 좋군.”

예전이라면 그저 강력한 공격을 가해 압도하는 형식으로 잡았을 것이다. 특히 부스트기어처럼 빠르고 회피에 능한 적이라면 더 빠르게 공격하거나, 아니면 피할 수 없도록 좀 더 광범위한 형태로 그물망을 만들어서 옥죄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놈의 공격을 살짝 피하고 주먹으로 카운터를 날리는 정도로 손쉽게 끝장내 버렸다. 여기에 힘의 손실이나 심력소모까지 생각한다면 무공을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이 월등할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아리엔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남아 있는 인베이더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

다들 상당한 실력이긴 했지만 아리엔의 솜씨가 가장 돋보였다. 지금 레이첸 다음 가는 실력자를 꼽는다면 아리엔밖에 없었다.

고유스킬을 각성한 이후, 그 공능으로 상위의 경지를 엿본 그녀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급증했다. 이젠 정말로 마이스터의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말 그대로 종잇장 하나 차이. 그 간극만 메울 수 있다면 그녀는 곧바로 마이스터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싸우고 있는 지금도 그녀는 만상개화 의검천추를 전개했을 당시의 감각을 되새기면서 그 앞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하군.’

레이첸은 그녀의 신들린 듯한 검무에 전율했다.

예전에는 무공을 알지 못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흉험함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녀 주변 반경 100여 미터는 말 그대로 권역! 그 안에 든 순간, 인베이더든 뭐든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부스트 기어와 비슷한 수준의 인베이더 둘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산산 조각이 나 해체되었다. 아마 놈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죽는지조차 모르고 죽었을 게 분명했다.

‘예전이라면 한판 붙어보고 싶었을 텐데, 이젠 저 여자하고는 싸우고 싶은 마음도 안 들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설령 자신이 그녀와 직접 싸운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아니, 어쩌면 거꾸로 패할 수도 있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레이첸의 시선이 이번에는 그 옆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엘레나와 클레브가 있었다.

그들도 인베이더들을 상대로 분전 중이었는데, 특히 클레브의 전투가 꽤 인상적이었다.

‘검 대신 주먹을 들었다더니, 확실히 더 낫군.’

3일 전부터 클레브는 이진운의 권유로 새로운 무공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려 수십 년 동안 갈고닦아온 검을 포기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제아무리 스승의 권유라 해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서슴없이 그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만큼 스승인 이진운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확실한 보답으로 돌려받았다. 지금 클레브가 보이는 심상찮은 활약이 그 증거였다.

우웅!

묵직한 기운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를 중심으로 운용되기 시작한 천중무한신공의 묘리를 따라 두 주먹에 모이는 것은 바로 하늘의 무게였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1절. 연환천중인(連環天重印)

비의. 만력강천(滿力鋼穿)

투학!

일순 공간이 터져나간다는 착각이 들 만큼 강력한 충격파가 우주공간을 강타했다. 그 힘은 다가오던 인베이더 수십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허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멈추지 않고 전진하기 시작한 클레브의 두 주먹은 거칠 것 없다는 듯 유성우 같은 권격을 연이어 뿌려내고 있었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1절. 연환천중인(連環天重印)

비의 연혼십절타(燃魂十絶打)-연환만파조(連環萬波潮)

한번 출수할 때마다 열 번의 권격을 뿌린다는 연혼십절타의 연환기 연환만파조. 첫 수를 막아낸다 해도 거듭 덮쳐드는 권격의 해일 앞에선 결국 인베이더들도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휘익~!”

레이첸은 감탄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휘파람 소리를 흘렸다.

가히 압도적이었다. 물론 지금 상대한 놈들이 침공 급에도 못 미치는 것들이라고는 하지만, 예전의 클레브를 생각한다면 가히 괄목상대할만한 성취였다.

“그 무공이 저 아재에게 잘 맞긴 맞나 보네. 고작 3일 수련으로 저 정도면······.”

물론 멀린이 만들어준 환상공간에서 보내는 3일은 3년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클레브의 성취는 두 눈을 의심하게 할 만큼 대단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클레브가 타고난 재능 자체는 별 볼일 없었지만, 그에게는 그 누구도 갖지 못한 강철 같은 인내심이 있었다.

그가 배운 무공들은 바로 그런 노력과 정신력이 강한 자일수록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만큼, 그간 수십 년의 고련이 고스란히 성취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에 반해 엘레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한다면 두드러진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성취가 낮은 건 아니었다. 이전과 비교한다면 확실하게 발전되었을 뿐더러, 그녀의 실제 주력은 온갖 무기들을 구현하는 초상능력이었다.

지금도 그녀가 부분적으로 구현화 한 전함의 주포에서 뿜어진 섬광이 인베이더 무리의 일각을 전부 쓸어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아저씨가 제자로 받은 자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가 않네. 하긴 나도 아저씨 제자가 됐으니까 이젠 나까지 거기에 포함해야 되려나?”

그렇게 이진운의 제자들에 대한 감상을 내뱉던 그때, 빠른 속도로 다가오던 기운이 느껴졌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레이첸은 자신을 사정거리에 둔 인베이더 한 기를 보게 되었다. 잠시 주변을 살피느라 여유를 둔 그의 모습을 빈틈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그래, 나도 여유 부릴 때가 아니지.”

놈도 진멸 급이었지만 부스트 기어에 비한다면 잔챙이 수준. 레이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보를 내딛었다.

하지만 그 일보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기척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그의 존재 자체가 시야에서 완전히 소실된 것이다.

레이첸을 어깨에 달린 포신으로 겨누던 인베이더가 당황해하는 순간, 사라졌던 레이첸이 갑자기 놈의 등 뒤에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창응칠식(蒼鷹七式) 절초, 창응비현(蒼鷹秘眩). 이진운에게 직접 전수 받은 무공 중 하나였다.

그리고 조용히 내뻗는 한수. 그것은 상대의 방어나, 결계를 파괴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항마불인(降魔佛印)이었다.

쿠웅!

둔중한 소리와 함께 인베이더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겉은 멀쩡해보일지언정 표피 안으로 전해진 무시무시한 경력이 놈의 내부를 박살내 버렸던 것이다.

“정말로 쉽군. 너무 쉬워졌어. 잔챙이라곤 하지만, 숨 쉬는 것만큼이나 간단하게 ”

예전에는 제아무리 약한 적이라 해도 일단 힘을 방출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허비된 힘은 다시 회수되지 않는데다, 심력 소모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무공은 그 모든 소모를 최소화 하여 가장 높은 효율로 가장 큰 효과를 내도록 해주었다.

지금처럼 싸운다면 일주일 밤낮을 계속 쉬지 않고 싸우라 해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겨우 조금 맛만 본 나도 이 정도인데··· 이런 무공들을 전부 완성한 저 아저씨는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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