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91화 (192/448)

8권-16화

* * *

세계수 행성의 등장 이후, 재빠르게 결단을 내린 연합 함대는 빠른 속도로 인베이더 함대가 있는 방향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세계수 행성의 조율을 마치기 전까지 인베이더 함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번 전쟁의 승패가 뒤바뀌게 될 것이다.

인베이더 함대 측에서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조율이 끝날 때까지 필사적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루클라가 사납게 웃으며 외쳤다.

“자, 와라! 얼마든지 덤벼라!”

“덤비라고? 그럼 또 쓴 맛을 보여줄까?”

이에 호응하고 나선 건 연정운이었다. 지난번 루클라의 기습에 당해 부상을 입었던 일을 되갚아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연정운, 네놈이 내손에 또 당하고 싶어서 온 모양이군. 이번엔 다시 회복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죽여주마!”

루클라의 손에서 막대한 영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밀도와 크기였다.

콰아아아앙!

놈의 손을 떠난 영력의 집합체가 우주공간을 뒤흔들었다. 연정운도 이에 맞서 총구를 겨누더니 강력한 한 발을 쏘아냈다.

“파황탄(破荒彈)!”

묵직한 기세로 뻗어나가는 섬광이 루클라가 던진 거대한 영력의 정 중앙을 꿰뚫었다. 그러더니 영력의 집합체 자체를 산산조각으로 분쇄해 버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분명 분쇄되었다고 판단한 영력의 조각들이 돌연 폭사하면서 그 여파가 연정운이 있는 곳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재빨리 영력을 운용해 몸을 보호하는 결계를 구사한 연정운은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뭐지, 이 자식! 예전하고는 전혀 다르잖아?”

예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수법은 여러 번 겪었었다. 하지만 위력부터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때는 파황탄에 완전히 분쇄시킬 수 있었던 수법이, 이번에는 제대로 없애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천외오천 중 일인인 용성군이 나섰지만, 그의 수법도 루클라에게 별반 피해를 주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지?”

멸사기의 한 수를 가볍게 막아내는 루클라의 모습에, 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 되었다.

용성군의 멸사기는 상대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수법이었다. 기운 자체가 상대를 죽음으로 이끄는 성질을 가진 만큼 실력적으로 우위를 가졌다 해도 쉬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멸사기를 루클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짓 몇 번으로 가볍게 방어해 보였다. 예전의 놈을 생각한다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무위였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공격을 퍼부어 보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천외오천도 어째서 루클라가 이렇게까지 달라졌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연정운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 놈이 다루는 영력의 양이 예전에 비해 몇 배로 늘었어.”

[그렇군. 출력의 차이라 이건가?]

하지만 단순히 출력 차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루클라는 본래 자신과 동격의 경지에 이른 인간이나 여타 지성체들보다 압도적인 영력을 자랑하는 인베이더였다.

헌데 그때보다 영력이 무려 수배 이상 불어나다니. 이 정도면 평범한 그랜드 급 실력자들이 보유한 영력의 양의 수십 배라 봐도 좋았다.

“그런데 이 정도로 터무니없는 영력을 어떻게 얻은 거지? 그렇다고 놈의 격이 갑자기 반신 급으로 상승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마도 그 힘의 정체는 바로 저것일 거다.]

용성군은 인베이더 함대 뒤에 드리워진 거대한 행성을 가리켰다. 세계수들로 뒤덮여 있는 녹색 행성. 저것이 아마도 루클라가 믿기지 않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원천일 것이다.

그 소리가 루클라의 귀에도 들렸는지, 놈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 봤군. 맞다, 저 [에메랄드 헤븐]이야말로 미친 듯이 끓어오르고 있는 이 힘의 원천이지. 봐라! 무한하기까지 한 영력을!”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지금도 루클라의 전신에서는 거의 폭발적이라 할 수 있는 힘이 끝없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초월자도 아닌 일개 개인이 이만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마이스터 급에 이르는 강자들도 이 근처에는 접근조차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그런데 [에메랄드 헤븐]? 그게 저 행성의 이름인가 보지?”

연정운이 슬쩍 떠보듯 묻자, 루클라가 자신만만하게 화답했다.

“그렇다. 이 에메랄드 헤븐의 힘으로 이참에 네놈들을 이곳에서 확실히 장사지내줄 것이다.”

확실히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떠들 만도 했다. 지금 루클라는 천외오천 다섯을 상대로 거의 팽팽한 수준으로 맞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정도 무위를 보여준 존재는 반신 이상의 초월적 존재외엔 없었다.

그렇지만 연정운이나 다른 천외오천들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르탈 행성으로 소환된 이후, 이 정도 난관은 언제나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더 묻겠는데··· 그거, 아직 조율이 끝나지 않아서 사용 못하는 거 아니었나?”

“물론 함대야 그렇겠지. 허나 예민한 기계와 달리, 그 정도는 이 몸의 제어능력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다시 던져진 연정운의 물음에, 루클라는 피식 웃으며 대꾸해줬다. 자신에게서 뭔가 캐내고 싶어 묻는 연정운의 속셈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알려줘도 상관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자, 그럼 네놈들도 듣고 싶은 것도 다 들었을 테니, 슬슬 없어지라고!”

루클라를 중심으로 들끓는 영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해일이 되어 우주공간으로 휘몰아쳐왔다.

대섬멸기(大殲滅技)

폭류파(爆流波)!

* * *

그 시각, 다른 이들도 전투가 한창이었다. 연합 소속의 오버러들은 물론 기간트와 메탈 기어들이 총 출동해 인베이더들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이진운 일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접근해온 진멸 급 인베이더 하나를 쾌검으로 단숨에 베어버린 그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도 들었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바로 저 세계수 행성이다. 내가 길을 열 테니, 너희들은 뒤떨어지지 말고 잘 따라와라.”

“예.”

“그리고 제이나. 당신도.”

“예, 알고 있어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제이나. 평소의 느긋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눈빛이었다.

이진운은 그 즉시 걸음을 뗐다. 텅 빈 우주공간이었지만, 허공답보의 묘리를 사용하는 그는 발 디딜 곳 없는 우주공간도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럼 시작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치솟았다. 천룡무상신공을 중심으로 만유합원신기와 태을단목신공, 그리고 역기충혈대법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게 맞물리면서 거대한 힘을 자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가로막고 있는 인베이더들을 향했다.

이진운이 저 편을 가리키자, 그의 등 뒤에서 저절로 떠오른 검도 그곳을 향해 사납게 검봉(劍鋒)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맺히는 강기의 선명한 형체가 우주공간을 경동시켰다.

심어검(心御劍)의 의(意).

폭뢰만검전(瀑雷萬劍箭).

한 자루 검신에서 터져 나온 눈부신 섬광과 함께 무수한 검강이 전면의 우주공간을 향해 폭발적인 기세로 쏟아졌다.

그것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일정 범위를 통째로 쓸어나가는 강기의 폭우! 그 앞에서는 어느 인베이더도 무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진멸 급 인베이더들조차도 살아남지 못하는 판국에, 평범한 인베이더들이 살아남을 리 없었다.

[세상에···!]

[수천에 이르던 인베이더가 한순간에?]

[이 정도면 거의 천외오천 급이잖아?]

여기저기서 놀란 아군의 목소리들이 통신회선을 통해 들려왔다. 그만큼 이진운의 무위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여러 차례의 활약으로 그의 이름이 꽤 유명해지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의 강자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위를 선보이고도 이진운은 조금도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전생 시절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어.’

심어검(心御劍)이란 바로 시공마저 초월하여 모든 것을 의지대로 구현한다고 일컫는 심검의 진경에 해당하는 경지.

이제 겨우 현경으로 올라서는 문턱에 다다른 그로서는 사실 구사 자체가 불가능한 수법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격은 오래 전에 반선지경에 올라선지라, 이렇게 편법을 동원해 심어검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래서인지,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눈에 띄었다. 속도나 변화도 기대했던 것에 크게 못 미치고 있었다.

‘하긴, 첫 술에 만족할 순 없지.’

그래도 심어검을 다시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카룬다임과 치렀던 격전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 화경의 끝자락에 올라서지 못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심어검은 흉내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 가자!”

멍하니 서 있는 일행들에게 그렇게 외친 이진운은 폭뢰만검전으로 뚫린 방어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플로트 윙을 전개한 그의 움직임은 한 줄기 선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인베이더 놈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이진운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아챈 놈들이 벌떼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가 노리는 게 바로 다름 아닌 에메랄드 헤븐임을 알아챈 것이다.

허나 그 어떤 것도 이진운을 막을 수 없었다. 그가 드러낸 전력은 놈들이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으니까.

‘쓸데없는 짓!’

입가에 떠오른 냉소와 함께 그가 아는 수십, 수백 개의 절초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그것들은 신화 급 인베이더가 아니고선 절대 막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콰콰콰콰!

몰려들기 무섭게 인베이더들이 단숨에 쓸려나갔다. 그 광경은 마치 살충제에 떼거지로 죽어나가는 벌레 떼 같았다.

뒤따라오던 레이첸이 놀란 나머지 혀를 내둘렀다.

“와, 미쳤네. 오늘 이 이저씨, 무슨 날인가? 아주 날아다니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리엔이 조용히 걸고 넘어졌다. 그녀도 마침 다가오던 인베이더 여럿을 막 베어 넘기고 있었다.

“호칭은 제대로 하죠? 이젠 당신한테도 스승님이잖아요.”

“칫, 까다롭게 굴기는···. 알았어, 스승님이라 하면 되잖아.”

그렇게 내뱉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좀체 이진운의 등 뒤에서 떠날 줄 몰랐다. 그만큼 그의 무위가 경이적이어서였다.

‘이젠 정말로 우리 아버지와 맞먹겠는데?’

예전에도 그럴지 모른다고 어느 정도 생각은 했었지만, 이젠 거의 확실해졌다. 자신이 스승으로 섬기게 된 이진운은 아버지와 비견되는 엄청난 강자였다.

‘분명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럼 저 아저씨는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는 건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아직도 성장세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진운이 어디까지 강해질지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이진운이 아르탈 행성 연합에 소환된 지 불과 1년이 조금 넘었다는 것이다. 길게 잡아도 1년 6개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영능에 대해 무지했던 그가 그랜드 급을 넘보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못해 경악스러웠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성장이 아니라 비약 그 자체였다.

“앞으로 이 이상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랜드 급도 아니고 고작 문턱에 가깝게 다다른 수준만으로도 이만한 무위를 선보이고 있는 이진운이었다.

그가 그랜드 급, 더 나아가서 초월의 첫걸음이자 반신의 영역이라는 오버 그랜드 급에 도달하기라도 한다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강력해질 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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