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90화 (191/448)

8권-15화

* * *

연합 함대의 2차 포격을 막아낸 울브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군. 어쨌든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긴 했지만 이 뒤가 문제일 것 같네.”

루클라도 그 말에 동감을 표했다.

“그렇겠지. 일단 가동은 했지만, 에메랄드 헤븐은 조율도 다 끝나지 않은 상태니까.”

일단 에메랄드 헤븐을 예정보다 더 일찍 가동시키긴 했지만,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세계수와 함대 사이의 에너지 공유조차 불안해서 이걸로 정밀한 대응포격을 가한다는 건 어림도 없었다. 결국 당장 할 수 있는 건 방어 외엔 없다는 의미였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에메랄드 헤븐의 상태를 곧 눈치 챌 것일세.”

“그러면 금방 이쪽으로 들이치겠군.”

“그렇겠지. 조율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뻔히 알 테니까.”

이제 더 이상 서로 포격을 주고받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인베이더 측은 에메랄드 헤븐의 상태가 불안정해서 불가능하고, 연합 측은 에메랄드 헤븐의 막대한 에너지가 자아내는 역장 자체를 뚫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이제 직접 나서서 싸울 때라 이거군.”

루클라가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일방적으로 당하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제야 원을 풀게 생긴 것이다.

게다가 포격만 주고받는 함대전보다는 직접 몸을 부딪쳐 싸우는 접근전이 성격에도 더 잘 맞았다.

“그대는 어쩔 생각인가?”

울브스가 넌지시 묻자 숨을 고르고 있던 가면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전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조금 무리를 했군요.]

“하긴 그럴 만도 하겠군. 그럼 우리끼리 나서지. 그럼 그동안 몸조리하며 쉬게나.”

그 말을 끝으로 울브스와 루클라는 메인 브릿지를 벗어났다. 이제부터 직접 전투에 나서기 위함이었다.

메인 브릿지에 홀로 남겨진 가면인은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연합 함대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리클··· 네가 왜 거기 있는 거냐?]

* * *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네요.”

“그렇군.”

리스티의 말에 이진운도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인베이더와의 근접전이 될 것이다.

믿었던 아르마다 시스템에 기반한 전함의 화력이 먹히질 않으니 그 수밖에는 없었다.

“조율을 마치기까지 예상되는 시간은 어떻지?”

이진운의 물음에 리스티는 간단히 계산을 해보더니 곧 답변해 주었다. 하지만 확실치가 않은 듯 보였다.

“지금 보이는 진척속도로 보면 2시간 정도요? 하지만 정확하진 않아요. 어느 정도 오차는 있을 수 있어요.”

“2시간이라. 쉽지 않겠어.”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안에 인베이더 함대에 확실한 타격을 입혀서 저 세계수 행성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야 했다.

연합의 전력을 총 동원한다 해도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아르페인도 이 상황이 참으로 막막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예, 정말로 쉽지 않을 겁니다. 인베이더 놈들도 필사적일 테니까요. 저 세계수 행성의 힘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겠죠.”

“그래도 어떻게든 해낼 수밖에. 저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화력으로 전환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가 없어.”

이진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배틀슈트를 걸치고 무기들을 챙겼다. 이제부터는 직접 우주로 나가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의 제자들과 일행들도 마찬가지여서 각자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레이첸은 현재 상황을 전해 듣고는 단 한 마디로 표현했다.

“상황이 참 더럽네.”

하지만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뭐라 몇 마디 더 투덜댔겠지만,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아저씨··· 아니, 스승님. 이번 싸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

여전히 호칭과 존대가 제멋대로인 레이첸의 물음에, 이진운은 그에 대해선 나중에 몰아서 꾸짖기로 하고 일단은 대답해 주었다.

“글쎄, 싸워 봐야 알겠지. 드러난 것만 보면 당장은 우리가 우세하겠지만, 시간을 끌면 오히려 위험해져.”

“속전속결이라는 건데. 그놈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랜드 급의 강자의 수만 따진다면 연합 측이 더 압도적이었다. 천외오천에, 베네트 국장까지 포함된 연합의 전력은 루클라와 울브스 둘 뿐인 인베이더와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놈들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뭔가 수가 있겠지. 그냥 무모하게 덤빌 놈들은 아니니까.”

헌데 그때였다. 대기실에서 준비 중이던 일행을 누군가가 찾아왔다. 이진운은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고는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제이나?”

“아, 여기 있었네요.”

“여긴 어떻게?”

카멜롯에서 배식 일만 하던 그녀가 이런 전투태세 중에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왔단 말인가?

그런 이진운의 내심을 읽은 건지, 제이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어요.”

“으음, 할 말이라니. 전투가 끝난 다음에 들으면 안 되겠습니까?”

“급한 일이에요. 그리고 당신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상황과 관련이 있죠.”

그 말에 이진운의 안색이 변했다.

제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정통 하이 엘프에 가까운 피를 타고난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이 상황에 관련해서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다면, 이진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들어보지요.”

이진운이 수락하자, 제이나는 바로 자신이 온 이유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좀 전부터 강렬한 느낌이 왔어요. 거대한 정령력의 힘이 우주 저편에서부터 들끓어 오르고 있더군요.”

“거대한 정령력이라면··· 혹시 세계수 행성을?”

“세계수 행성?”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진운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워 세계수 행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계수 행성이란 명칭은 연합에서 임시로 지정한 명칭이기 때문이었다. 제이나가 그 명칭만 듣고 바로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세계수 행성의 모습을 보게 된 그녀의 안색이 무겁게 변했다.

“역시 그랬군요. 예, 그래요. 아마 그 세계수 행성이란 게 원인인 것 같네요.”

“그럴 겁니다. 저 세계수들이 행성으로부터 끌어낸 힘이 막대한 정령력으로 변환되는 걸 측정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변질된 힘이에요. 그리고 정명한 힘을 가진 이쪽에 적대적이죠. 직접 전투에 나서시는 것 같은데 아마 위험할 거예요.”

제이나가 염려어린 목소리로 경고해 왔지만, 이진운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무척 위험천만하다는 것도요. 하지만 나서지 않을 순 없습니다. 어떻게든 그 힘이 사용되기 전에 저지해야 하니까요.”

“휴, 그렇겠죠. 아직은 제대로 제어가 되는 것 같지 않지만, 제어가 되기 시작한다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테니까요.”

잠시 한숨을 내쉰 그녀가 곧 결연한 얼굴로 부탁을 해왔다. 그것은 이진운도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였다.

“그럼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데려가 달라니.”

이진운은 당황해 물었다. 자신이 지금 뭔가 잘못 듣지 않았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말 그대로에요. 저도 전장에 나가고 싶어요.”

“그 말은 지금 당신도 싸우겠다는 말입니까?”

“예, 저도 싸울 테니까 부디 같이 데려가 줘요.”

이진운은 기가 막혔다. 이전의 기억을 송두리 채 잃은 그녀가 무슨 싸움을 하겠다는 말인가. 물론 지금도 본능적으로 정령을 다루는 솜씨를 보여주곤 있었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전투에서 효과적일지는 이진운도 섣불리 말하기 어려웠다.

“제이나 씨, 당신 싸울 줄은 압니까?”

“어느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나름 시험도 해 봤고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난 이진운은 이전에 받아봤던 보고를 떠올렸다. 거기에는 제이나가 가끔 한 번씩 수련장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때는 그냥 자신이 가진 정령의 힘에 익숙해질 생각인가 싶어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따로 전투 훈련이라도 했던 모양이었다.

“시뮬레이션이라도 몇 번 해본 모양인데, 전투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실전은 더더욱 위험하고요. 그런데도 나갈 생각입니까?”

이진운은 거듭 설득했지만, 제이나는 생각보다 완강했다. 평소의 성품을 생각해보면 그녀답지 않게 억지를 쓰고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물론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꼭 나가야 해요.”

“이유가 뭡니까? 제이나 씨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러진 않을 텐데 말이죠.”

이유를 묻는 그 말에, 잠시 주저하던 제이나가 다시 입술을 뗐다.

“저도 뭐라 설명하긴 힘들어요. 하지만 전 반드시 가야 해요. 저 행성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좀 전에 띄워놨던 홀로그램 영상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그녀에게 보여준 세계수 행성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다.

“세계수 행성 말입니까?”

“예. 그래야 한다는 느낌이 오고 있어요.”

“으음······.”

그녀가 이렇게 말하니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제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하이 엘프의 혈통이었다. 본인이 그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녀가 세계수에 가야 한다고 느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잠시 갈등하던 이진운은 곧 결정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제이나 씨도 함께 가기로 하죠.”

“제 무리한 부탁을 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제이나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그녀도 자신의 부탁이 꽤나 무례하고 성급하단 걸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한 가지만 조건을 붙이죠.”

“조건이요?”

“반드시 제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조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보호할 수 없으니까 절대 옆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무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조건은 제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예, 알겠어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진운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더욱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졸지에 보호해야 할 짐이 하나 늘었군. 하지만 어쩌면 그녀야말로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어.’

이진운이 굳이 제이나를 대동하기로 결정한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세계수와 가장 밀접한 관계인 하이 엘프의 혈통인 그녀가 세계수 행성에 어떻게든 간섭하거나 무력화 할 수 있다면, 이 전쟁은 이긴 거나 다름없을 테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만, 일단 시도해서 나쁠 건 없었다.

‘대체 그놈들은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던 거지?’

이진운은 지금 이 상황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모두가 서로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조 과정을 거쳐 변질된 세계수는 물론, 가면인의 세력과 그들이 가진 비밀시설들. 그리고 거기에 납치되어 있던 제이나까지.

마치 일부러 교묘하게 짜 맞춘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단서가 적으니 확신하긴 그렇군. 허나 좀 더 두고 보면 알겠지.’

허나 지금은 그보다는 눈앞에 닥친 전투부터 대비해야 할 때였다. 이진운은 제자들을 독려하면서 그들의 전의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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