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14화
바아아앙!
또다시 제네레이터들이 맹렬하게 가동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바로 2차 포격이었다.
그렇게 발생된 에너지는 다시 아르마다 시스템에 의해 교류, 증폭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임계점에 이른 순간, 베네트 국장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쏴라!”
콰콰콰콰!
또다시 포구로 성대한 화력을 일제히 뿜어내는 연합 함대! 그 위력은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이번 포격이라면 공간왜곡에 의한 방어조차 상실된 인베이더 함대를 반드시 격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강한 위용으로 뻗어나간 연합 함대의 포화는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쿠구구구!
보이지 않는 벽에 차단되기라도 한 듯,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빛과 에너지의 분류! 그것을 본 베네트 국장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뭐지 저건!?”
* * *
[쿨럭!]
격한 기침 소리와 함께 가면인의 턱 부분에서 피가 흘렀다.
“괜찮나?”
울브스가 다급히 묻자, 가면인이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 무리했습니다. 생각보다 적의 화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군요. 공간왜곡으로 아군 함대를 격리시켰는데도, 그 데미지가 이 정도까지 뚫고 들어올 줄은······.]
비축하고 있던 디멘션 쿼츠의 남은 물량 모두를 동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연합 함대의 일제 포화를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위력이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엄청나더군. 대체 연합 놈들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저런 출력이 나올 수 있는 거야?”
루클라의 중얼거림에 울브스가 자신이 짐작한 바를 입에 담았다.
“내가 느낀 게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전함들의 에너지가 서로 교류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증폭되는 것 같았다. 이 말도 안되는 화력도 그 결과물 중 하나일 거라 생각되네.”
“크, 이게 연합 놈들이 만들어낸 신기술이라는 건가?”
연합이 나름대로 비장의 패를 가지고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덕분에 인베이더 함대의 1/4에 달하는 전력이 순식간에 쓸려나가고 말았다.
그래도 피해가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은 다 가면인 덕분이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단 한 번의 일제포화로 전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음 포격은 저도 막지 못합니다.]
가면인의 물음에 울브스는 더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상관없네. 놈들에게 맞설 우리의 비장의 패도 이제야 겨우 준비가 끝났으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막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연합 함대가 사용한 기술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압도적일 지경이었다.
[이건!?]
가면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만큼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인베이더 쪽에서도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한수가 이런 터무니없는 것일 줄이야.
“이게 우리가 준비해온 비장의 신무기, 에메랄드 헤븐. 이제야 완성되었나?”
울브스의 중얼거림과 함께, 인베이더 함대 뒤편으로 거대한 형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떠올랐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감춰져 있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연합 함대가 준비한 회심의 2차 포격이 가로막힌 뒤, 인베이더 함대 뒤쪽에서 거대한 형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관측한 오퍼레이터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광학 스텔스 해제 반응 포착! 인베이더 함대 뒤편에서 거대한 물체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광학 스텔스라고? 그 새 지원군이라도 온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 주역에 있었던 걸로 판명됩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 더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르마다 시스템에 의해 증폭된 포격을 막아낼 만한 게 있었다면, 지금까지 왜 사용하지 않고 숨겨두고 있었단 말인가?
“저게 우리의 포격을 막아낸 거라 이거지?”
하지만 지금 보이는 것은 어렴풋한 윤곽뿐이었다. 전체적인 형상조차 아직 분명치가 않았다. 그것이 궁금했던 베네트 국장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데 광학 스텔스 치고는 해제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는 것 같군.”
[너무 거대한 질량이라서 그렇습니다. 이건··· 상상을 초월합니다.]
“거대하다니, 어느 정도인가?”
[이 정도면··· 예측컨대 거의 아르탈 본성과 맞먹습니다.]
“뭣!?”
아르탈 행성은 지구의 크기와 비교하면 무려 열 배 이상 컸다. 헌데 그런 규모의 질량이라니! 대체 인베이더 놈들이 뭘 준비해놓고 있었단 말인가.
광학 스텔스가 전부 해제되고 나자, 곧 윤곽이 뚜렷해졌다. 이를 목도한 베네트 국장이 놀라 중얼거렸다.
“아니, 저게 무슨······!?”
그건 지원 함대나 전함이 아니었다. 바로 표면이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 차 있는 행성 그 자체였다.
그것이 방금 아르마다 시스템으로 출력을 끌어올린 포화를 막아냈던 것이다.
* * *
“저건!?”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떠오른 그 광경에 이진운도 침음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광학 스텔스 너머로 인베이더 놈들의 비장의 무기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더니, 뜬금없이 거대한 행성이 튀어나올 줄이야.
하지만 이진운의 직감은 그것을 더 위협적으로 느꼈다. 저 행성으로부터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페인도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인베이더 놈들이 끌고 나온 행성요새? 지금까지 인베이더들이 저런 행성요새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그가 말하는 행성요새란 바로 행성 자체를 개조해서 만들어낸 행성병기를 의미한다. 병기로서의 막대한 화력과 요새로서의 강력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동원되지 않는 각 진영의 최종병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재 인베이더 측이 가진 기존의 행성요새의 출처는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행성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란 말인가.
설마 새롭게 만들어지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리스티가 그 말을 부정하고 나섰다.
“행성요새가 아니에요.”
“아니라고?”
“예, 잘 보세요.”
리스티는 즉시 홀로그램 스크린의 화면 중 일부분을 조작해 크게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베이더 함대 뒤편에 등장한 행성의 지표면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혀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나무?”
그랬다. 행성의 표면은 온통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이 행성 표면을 물들이고 있던 에메랄드빛의 정체였던 것이다.
이진운의 얼떨떨한 중얼거림에, 리스티가 살짝 끼어들어 정정해 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수죠.”
“세계수라고?”
“예, 저 행성이 등장하자마자, 그때 봤던 세계수와 동일한 패턴의 에너지가 발생되고 있어요. 정령력에 가까운 이 힘! 분명해요.”
“그럼 저게 방금 우리 연합의 포격을 막아낸 원인인 건가?”
“그렇겠죠.”
“정말 미치겠군. 이놈들은 하는 짓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데?”
새롭게 등장한 행성 표면을 뒤엎은 초록색 빛의 정체를 확인한 이진운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때 봤던 세계수 한 그루만 해도 인베이더들에게 막대한 힘을 공급하여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게 탈바꿈시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건 그런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설마 거대한 행성 하나에 셀 수 없이 많은 세계수들을 성장시켜서 이것을 함대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할 줄이야.
이거야말로 이동식 보급행성기지라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짐작되는 출력은?”
이진운이 묻자, 리스티가 즉시 계산해 답을 내놓았다.
“아르마다 시스템과 비교하면, 45배 가까이 차이가 나요.”
“···절대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군.”
무려 45배나 된다니. 이 정도면 가히 절망적인 격차였다. 물론 놈들의 함대에도 내구적 한계가 있는 만큼, 그 막대한 힘을 온전히 화력으로 쏟아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래도 아직 가능성이 없진 않는지, 리스티가 조금은 희망적인 말을 던졌다.
“그래도 완전하진 않아요. 아직 출력 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고 있어요.”
“그럼 방금 포격을 막은 건?”
“그냥 행성 자체에서 발생된 에너지들이 만들어낸 자연적인 역장이에요. 세계수가 뽑아내는 에너지가 워낙 막대한 탓이죠.”
이진운은 기가 차 혀를 내둘렀다. 얼마나 그 힘이 막대하면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여파에 의해 형성된 역장만으로도 그 무지막지한 포격을 막아낸단 말인가?
“그럼 아직 함대에까지 그 에너지가 공유되고 있진 못하다 이거군. 그래서 그동안 사용 못하고 숨겨놨던 건가?”
“예, 아마 그럴 거예요. 하지만 조율 과정만 마치고 나면 끔찍할 일이 벌어질 수 있을 테니 서둘러야 할 걸요?”
그 말에 이진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르페인을 돌아보았다.
“일단은 베네트 국장에게 전해. 저 행성의 정체를. 그리고 대책을 세워야겠어.”
“예.”
아르페인은 즉시 연락을 취했다. 이제부터는 말 그대로 시간싸움이었다.
* * *
통신을 받은 베네트 국장은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에 기가 막혀 중얼거렸다.
“미치겠군. 저게 이동식 에너지 보급 행성이라는 건가?”
[예, 리스티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군요.]
“이놈들이 이럴 생각으로 세계수란 걸 개조했던 거였어. 하, 진작 이런 경우도 생각을 했었어야 했는데.”
설마 행성 하나를 세계수로 가득 채워서 에너지 보급용으로 사용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하이브를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유닛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너무 큰 오판이었다.
“그래도 아직 조율 자체가 끝나지 않았다니 다행이군. 그래서 그 전에 들이쳐서 인베이더들을 전멸시키든, 저 행성을 박살내든 해야 한다 이건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놈들은 저 행성을 방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처럼 함대의 포격을 사용해 봐야 타격을 주기 어렵겠죠.]
“아쉽군, 기껏 준비한 아르마다 시스템이었는데······.”
사실 에너지 효율과 증폭력까지 따진다면 아르마다 시스템은 세계수의 성능을 크게 뛰어넘는다. 하지만 행성 자체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출력 기반부터가 문제였다.
스케일부터 차원이 다르니, 제아무리 기술적인 수준이 더 높고 증폭력과 효율이 뛰어나다 해도 이건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함대의 포격으로 승기를 잡겠다는 작전은 전부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백병전뿐이군. 가까이에서 싸우는 거라면 저 세계수 행성의 방어막도 놈들을 지켜주지 못할 테니 말이야.”
[예, 리스티도 그렇게 말하고 있더군요.]
“알겠네. 그럼 곧 출정 준비를 하지. 다들 전투태세를 갖추게. 이젠 직접 싸워야 할 때가 왔어.”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통신을 끝낸 베네트 국장은 몸이 불편한 듯 옷깃을 고쳐 매었다. 그리고는 쓰게 웃었다.
“역시 쉽게는 안 넘어가는군.”
언제나 그러했다. 지금까지 인베이더들과 싸우면서 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놈들을 박살내기 위해 뭔가를 준비하면, 그쪽에서도 이쪽의 허를 찌를 수단을 꼭 한두가지씩 들고 나왔으니까.
그래서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전쟁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긋지긋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결코 질 수는 없었다. 놈들과의 전쟁에 연합 전체의 명운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이겨야겠지. 가진 모든 것을 다 쓰더라도.”
각오를 다진 베네트 국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래간만에 전선에서 활약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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