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83화 (184/448)

8권-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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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함대들이 파손된 전함을 수리하며 전력 복구에 집중하는 동안, 이진운은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 실전을 거친데다 멀린이 만들어준 수련실의 환상공간 덕분인지 전보다 부쩍 실력이 늘어난 상태.

한동안 최절정의 끝자락에서 머물던 아리엔은 드디어 초절정의 문턱을 완전히 넘어섰고, 재능은 대단치 않을지라도 꾸준히 노력해온 클레브도 비로소 완숙한 절정에 이르렀다.

솔직히 말해 이진운이 가장 놀란 것은 클레브의 성장이었다.

‘적어도 5년 이상은 굴러야 제대로 된 절정고수가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클레브의 재능은 아주 평범한 수준이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장 흔해빠진 범재 타입. 그렇지만 그걸 피나는 노력으로 대체했다.

아마 단순히 노력 하나만 두고 본다면 아리엔이라 해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하루를 거의 1년 정도로 체감하게 해주는 멀린의 환상공간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무려 200년에 가까웠다. 그것도 그냥 평범하게 보낸 것도 아니고, 죽고 다치는 실전이나 다름없는 훈련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건 정말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어지간한 자라면 10년은커녕 1년도 다 못 채우고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긴 세월에 의한 정신적 마모도 문제였지만, 고통스럽고 밀도 높은 훈련을 무려 200년 씩이나 버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는 불가능하다 생각되는 그 고련을 견뎌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클레브도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는 뜻이었다.

‘그렇군.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 때문인가?’

저 무지막지한 정신력의 원동력은 바로 그 열망 때문이었다. 이진운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재능 없이는 강해질 길이 없어 방황하고 있었지만, 이젠 무공이란 수단을 얻게 되면서 그는 철저한 수도자가 되었다.

아마 무(武)를 위해서라면 클레브는 그 어떤 것이라도 서슴없이 내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엘레나는 큰 노력 없이도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녀가 가진 이능의 덕분이 컸다. 자신이 구현한 무기에 동조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경험과 활용법을 체득할 수 있는 만큼 시행착오를 크게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벌써 고수급 단계를 넘어, 어느덧 절정의 문턱에 가까워졌다. 약간의 계기만 있어도 언제든 절정에 올라설 준비가 된 것이다.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이 녀석들의 실력도 볼만 하겠어.’

“후욱, 후욱!”

클레브의 거친 호흡과 함께 삼절검의 일식인 섬진쾌가 전개되었다.

그야말로 마지막 진력을 쥐어짠 일검!

그것이 수유의 섬광이 되어 공간을 베어오고 있었다.

어지간한 고수라 해도 대응조차 못하고 목을 베일만한 쾌검이었지만, 상대는 이진운이었다.

클레브의 검이 이진운의 목덜미에 닿을 찰나, 허리 아래로 늘어뜨렸던 그의 검이 어느새 클레브의 검을 휘감듯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무섭게 뻗어오던 클레브의 검은 그 한수로 본래의 궤도를 벗어나 이진운을 베지 못했고, 이진운의 검은 한층 앞으로 나아가면서 오히려 클레브의 목을 겨누었다.

꼼짝없이 제압된 클레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이 꼴이군요. 제 수준에 맞춰주셨는데도 이렇게 맥없이 제압되다니.”

그랬다. 지금 이진운은 클레브와 같은 수준에 맞춰서 대련해주고 있었다. 힘과 속도, 사용하는 진기의 양까지 클레브와 비슷하게 맞춰서 상대해주고 있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아무리 네게 맞춰준다 해도 너와 나 사이엔 경지부터 까마득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 차이를 메우는 건 어지간해선 쉽지 않은 법이지.”

“그건 저도 잘 알지요. 헌데 제가 어떻게 제압되는 겁니까. 그것도 매번 이렇게 말입니다. 분명 검은 제가 더 빨랐는데요.”

클레브의 물음에 이진운이 조용히 말했다.

“이게 바로 후발제인이란 것이지.”

“후발제인?”

“상대보다 늦게 움직여 제압한다는 뜻이다.”

이진운이 뜻을 풀이해주자, 클레브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반문했다.

“늦게 뻗어서 상대를 제압한다? 그거 모순 아닙니까?”

“네가 직접 겪어봤는데도 그런 말이 나오나?”

“······.”

그렇게 말하니 클레브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보다 언제나 늦게 움직인 스승에게 매번 제압당했으니, 여기에 모순이란 말은 맞지 않는 것이다.

“클레브, 명심해라. 쾌검은 단순히 빠르다고 해서 최고인 게 아니다. 속도란 상대적인 것이지. 적절한 타이밍과 위치에서 뻗어낼 때 쾌검은 가장 최적의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법이다.”

“그럼 아직도 전 쾌검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거군요.”

“그래, 완급조절과 최적의 위치, 타이밍 등 여러 가지가 부족하지. 그걸 모두 감안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을 때 최고의 쾌검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진운의 설명에 클레브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 못한 얼굴이었다.

‘하긴 이런 데서 무재의 차이가 드러나는 거지.’

아마 아리엔이나 엘레나였다면 지금 이 말만으로도 바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클레브에게는 직접 시연해 보일 수밖에.

“자, 보여줄 테니 잘 봐라.”

이진운이 그 즉시 검을 뻗어냈다.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찌르기였다.

그 순간, 클레브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빛살처럼 다가오는 검첨! 너무 빠르고 날카로워서 당장이라도 신체 어느 곳이든 꿰뚫릴 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클레브는 이진운의 찌르기를 막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에게 다가오던 검첨의 속도가 갑자기 크게 완만해 지는 것이 아닌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꿰뚫을 것 같았던 이진운의 검이 이젠 아득할 정도로 멀게 느껴졌다.

부웅!

처음 뻗던 속도에 맞춘 클레브의 방어는 자연히 허공만 가르고 지나갔다. 너무 찰나에 벌어진 변화라서, 미처 방어하던 검초를 수정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느리게 다가오던 이진운의 검 끝이 급격히 가속해 들어왔다.

느리던 와중에 벌어진 급가속이라 그런지, 클레브의 눈에는 빛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졌다.

툭.

어느새 다가온 이진운의 검이 클레브의 목덜미를 가볍게 건드리고 있었다.

마치 한 차례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빠르게 다가오던 검첨이 어느새 한없이 멀어지다가 갑자기 빛이 되어 자신을 향해 날아든 기분이었다.

잠시 넋 나간 듯 서 있던 클레브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게··· 그 완급조절과 타이밍이군요.”

“그래, 같은 초식이라도 이런 기교를 부리면 수많은 변화를 낳을 수 있지. 단조로운 직선 찌르기도 이런데, 변화가 많은 검초라면 한층 더 심해질 테고.”

이진운의 설명에 클레브는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클레브도 완급조절과 타이밍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도 종종 이런 변화를 사용하긴 했었으니까.

하지만 쾌검에서도 이런 방식이 이렇게까지 효과적일 줄은 몰랐다. 막상 직접 당해보니 그 효과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클레브의 시선이 아리엔과 엘레나가 있는 곳을 향했다. 지금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둘은 자신과 달리 그다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는 이미 스스로 깨닫고 체득했다는 뜻이었다.

‘이것도 재능의 차이라 이거지?’

하나를 배우면 피나는 노력해야 그 하나를 얻을 수 있는 자신과 달리, 저들은 서넛, 많게는 열을 얻는다.

그런 일은 이미 어려서부터 뼈저리도록 수없이 경험해 왔었다. 이제 와서 그런 재능의 차이로 절망하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노력해야겠다는 각오만 한층 더 커졌다. 저들이 한 시간을 수련한다면, 자신은 그 열배를 수련할 것이고,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그 몇 배를 수련에 쏟을 것이다.

그게 재능이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진운은 결연한 표정을 하고 있는 클레브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아마도 수련 강도나 시간을 더 높일 생각이겠지. 지독한 녀석.’

자신도 어지간히 수련 중독자이긴 했지만, 클레브만큼은 아니다. 이 녀석은 말 그대로 인생의 모든 것을 수련에 갈아 넣고 있었다.

무공을 배운 이후, 그 자그마한 희망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녀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이진운에게는 성명절기인 천룡무상검 외에도 또 다른 신공절학이 있었다. 다만 수련 과정 자체가 워낙 고통스럽고 지난해서 초인적인 인내심이 필요한 무공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정식으로 전수하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그 전승자를 찾은 것 같았다.

‘시간이 되면 슬슬 기초부터 닦아줘야겠군. 녀석이라면 해낼 수 있겠지.’

이 무공은 이진운이 아는 무리들과 지금까지 배운 여러 과학적 이치들이 하나로 집대성된 새로운 무학.

점창의 것이되, 점창의 것이 아닌··· 이진운의 손에 의해서 새롭게 탄생된 무학이라 해야 할 것이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그것이 이 무공의 정체였다.

점창의 무학인 칠절중수를 새롭게 개편해서 탄생한 이 무공은 제대로 익힐 경우 결코 천룡무상신공과 천룡무상검에 뒤지지 않는다.

‘물론 익히기는 절대 쉽지 않겠지만 말이야.’

아마 이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지옥같은 고통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무공을 익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요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견뎌낼 수만 있다면 그 결실은 그만큼 클 것이다. 그리고 이진운은 클레브에게서 그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야. 아직은 기초를 더 닦을 필요가 있어. 전쟁통이라서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그래서 전수는 조금 훗날로 미루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클레브를 담금질하면서 무공의 이치가 어떤 것인지를 기초부터 알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레이첸. 네 녀석이지?”

“뭐? 아저씨, 지금 날 말하는 거야?”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이첸이 깜짝 놀라 물었다. 자기들끼리 한창 대련하고 수련하는 가 싶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지목되자 조금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래, 네 발로 여기까지 찾아왔으면 내게 배우겠다는 뜻 아닌가?”

전에 이진운이 레이첸에게 권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제자가 되어 무공을 배워보라고.

카르테인으로부터 전해지는 이능의 힘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선 무공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렇게 이진운이 제자들과 시간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수련장을 직접 찾아오게 된 거였다.

“···아직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어. 단지 어떻게 배우는 지 내 눈으로 확인해볼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감상은 어떻지?”

던져진 그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레이첸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의 말도 일리는 있어. 나도 이능을 사용할 때 완급과 타이밍을 조절해서 싸우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체계적인 방식으로 활용한 건 아니었으니까.”

레이첸은 전투에 있어 나름대로 경험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능을 활용할 때도 완급과 타이밍은 물론, 페이크도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느 수준에서였다. 이진운이 보여준 무공이란 것처럼 변초라느니, 무슨 무거움이니 가벼움이니 하는 그런 식의 변화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이건 그동안 알던 응용의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레이첸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내 이능은 그 무공이란 것과 계통부터가 다르잖아. 그래도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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