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79화 (180/448)

8권-04화

“자, 그럼 시작한다.”

리클로부터 건네받은 다수의 디멘션 쿼츠를 허공섭물로 허공에 띄운 뒤 진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미 사용법은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우우우웅!

진기를 불어넣자마자 곧바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주변 대기를 울리는 공명음과 함께, 보이지 않는 파장이 함선 내부를 넘어 저 먼 우주 공간으로 번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리클이 평소에 느끼는 감각인가?’

디멘션 쿼츠는 참으로 신기했다. 공간에 대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아도, 이것을 소유한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공간을 읽고 제어할 수 있다니······.

울레이브 주역의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안에 들어와 있기라도 하듯, 모조리 파악되었다. 우주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소행성의 돌격에 타격을 입은 인베이더 함대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도 세세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하긴 이러니 적군과 아군 함대의 위치를 전부 파악할 수 있었던 거겠지. 가히 사기적인 능력이야.’

이번 작전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리클이 아군 함대들이 흩어진 좌표와 인베이더 함대들의 좌표를 전부 읽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그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면, 소행성들을 인베이더 함대 위에 떨어뜨리고, 위기에 처한 아군 함대를 불러들이는 과감한 작전은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라인트라 밖의 주역까지 감각을 확장시켜야 하는데, 공간을 읽어 들이는 방식이 처음이다 보니, 연합의 지원함대가 대기하고 있다는 좌표공간을 좀처럼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때, 리클이 옆으로 다가왔다. 우울하던 감정을 겨우 추스른 모양이었다.

“음, 생각보다 잘 하시는군요.”

“잘하기는. 아직 찾고자 하는 좌표조차 어딘지도 모르고 헤매고 있는데.”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뱉은 푸념어린 그 말에, 리클이 조언을 건넸다.

“공간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느낄 수 있다고 해서 파악되는 게 아닙니다. 공간이란 알다시피 선과 점 면이 교차하면서 생겨나는 입체적인 도화지와 같지요. 감각을 확장한다는 방식으로 읽는다면 좌표 특정 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그게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위치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좌표를 계산해서 중간에 불필요한 공간을 인식하지 않도록 필터링 해야 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감각 자체를 먼 곳으로 공간이동시킨다는 느낌으로 하면 되겠군요.”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공간을 초월하여 특정 대상을 인지하는 듯한 감각은 이미 수없이 경험해 봤었으니까.

‘그래, 심검과 비슷하군!’

그랬다. 마음이 가는 곳이 기운이 따르고, 베고자 하면 그게 어디 존재하든 반드시 베어낼 수 있는 지고의 무리. 심검(心劍)!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심검은 인지를 초월해 베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구현하는 것이고, 리클의 광범위한 공간지각력은 인지의 영역을 초월하여 자신이 찾고자 하는 바만 읽어내는 것이었다.

그 둘의 차이점을 알게 된 이상 응용은 간단했다. 어차피 의념이란 개념 안에서 사용되는 방법이었다. 의념을 어떻게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이니, 그 약간을 바꿔주는 건 이진운에게 있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공간 계통의 능력자가 아닌 만큼 난이도 면에선 훨씬 더 높겠지만, 그는 이미 반선지경까지 도달해본 초월자였다. 의념을 활용하는 것 자체만이라면 그보다 더한 강자들보다도 월등한 수준인 만큼, 수십 광년 떨어진 곳까지 닿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요령을 터득한 탓인지, 드디어 목적한 좌표의 지점이 감각에 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껴졌다. 그곳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아군의 지원함대가!

‘바로 저기군!’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 이진운은 즉시 그곳의 좌표와 이곳을 잇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피니티 킹덤의 전면 공간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워프 현상이었다.

그러자 메인브릿지에서도 즉각 반응이 나타났다.

[옵니다! 함대 전면에 거대한 변동중력원 발생과 동시에 웜 홀 출입구 형성! 그리고 막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가 빠져나옵니다! 워프 아웃 현상입니다.]

[식별신호 확인! 워프 아웃된 함대들은 전부 아군입니다. 소속은 연합의 관리국 직속 함대 갈라르 호른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보고에 이진운도 놀라 크게 눈을 떴다.

“뭐!? 갈라르 호른이라면 관리국장이 보유한 직속 함대잖아.”

[관리국장이 직접 나선 듯합니다. 그리고 관리국 소속 대형기함 아크라이더도 확인되었습니다.]

연합 내에서도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대형함 중 하나인 아크라이더.

그 이름은 꽤나 유명했다. 바로 관리국장인 베네트의 상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아크라이더가 직접 이곳까지 행차했다는 말은, 베네트 국장이 이곳 최전선까지 직접 친정을 나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베네트 국장이 아주 작정을 했군. 그냥 보급함하고 지원함대만 보낼 줄 알았는데 직접 나서다니······.”

하지만 이진운이나 라인트라의 연합 함대 입장에선 나쁠 것 없는 소식이었다. 지원 온 함대의 전력이 강할수록 인베이더와의 전쟁도 수월해질 테니까.

그게 관리국장의 직속 함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군이 합류한다는 희소식을 받자마자 이진운은 긴장을 풀었다. 디멘션 쿼츠를 사용하기 위해 심력을 상당히 쏟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리클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이거 먼 거리에 있는 좌표를 읽고, 공간을 잇는다는 게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군. 차라리 리클 네가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요. 제 감각 영역이 이진운 씨보다는 더 넓겠지만, 그런 대규모 함대를 이런 먼 곳까지 한꺼번에 이동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솔직히 말해 이진운 씨 수준의 의념은 그랜드 급도 어려워요.”

애당초 이진운이 리클 대신 이 작업을 도맡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리클은 공간 계통의 능력을 자신의 손발처럼 익숙하게 다루긴 했지만, 그가 다루는 의념의 수준은 이진운의 수준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이다. 수송함 한척 정도라면 모를까, 그 이상은 어림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아군 함대도 왔으니 이제 숨 좀 돌리겠군. 나라도 이런 식이면 꽤 지친단 말이야.”

지난 며칠간을 떠올린 이진운이 그렇게 투덜댈 때였다. 바로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난데없이 끼어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이번에는 아주 죽는 줄 알았죠. 막노동도 이런 막노동이 없었다니까요.”

이진운은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연정운과 리클 외에 또 다른 사람이 한명 더 서 있었다.

상대가 누군지를 확인한 이진운이 거의 반사적으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멀린?”

“간만에 다시 만나는군요, 이진운 씨.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네 왔지만, 이진운은 그의 인사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기척도 없이 이곳에 난입해왔다는 것 자체가 조금 거슬렸다.

“그보다는 당신, 언제 여기로 들어온 거지? 누가 내 허락도 없이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심기 불편해 보이는 그 모습에, 멀린이 과장된 얼굴로 양해를 구했다.

“어이쿠, 실례! 갑자기 이곳에서 공간간섭 반응이 느껴져서요. 허락을 구할 시간도 없이 들이닥쳤죠.”

그 말은 결국 호기심 때문이란 말이었다.

‘진짜 답이 없는 작자군. 내 감각마저 속인 걸 보면, 보나마나 환술을 사용해 기척까지 감추고 들어온 거겠지.’

이진운이 그를 지그시 째려보자, 연정운이 괜한 심력 쏟지 말라며 만류했다.

“원래 이런 녀석이니까 일일이 신경 쓰지 마. 저 녀석은 뭔가 일이 있으면 항상 낯도깨비처럼 나타났다고.”

이진운도 진지하지 못한 상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다는 건 포기했다. 상대는 멀린이었다. 본래부터 저렇게 생겨먹은 작자니, 더 말하고 다그쳐봐야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도움으로 수련장도 개조할 수 있었으니, 더 이상 추궁하기도 뭐했다.

그래서 이진운은 화제를 전환했다.

“일단은 나가봐야겠어. 명색이 국장이 이런 최전선까지 몸소 행차했는데, 나가는 봐야지.”

그 말에 따라 연정운과 멀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진운은 일행과 함께 소형정을 타고 카멜롯에서 아크라이더로 이동했다. 소형정의 외부 화면을 보자, 아크라이더의 거대한 형체가 고스란히 내비쳤다.

처음 보는 대형함의 위용에 이진운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엄청나군.’

준대형 전함인 카멜롯도 5km를 넘는 거대한 전함이지만, 이건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대지 그 자체였다.

아마드 급 대형 전함, 아크라이더. 전장만 해도 무려 50km에 달할 정도니 준대형 전함조차 그 앞에선 작은 구명탈출정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놀란 표정으로 아크라이더를 바라보던 그때, 옆에 있던 연정운이 말을 걸어왔다.

“대단하지?”

“그래 대단하긴 하군. 이런 거대한 게 움직이며 싸울 수 있다니.”

“하지만 아직 멀었어. 아직 완성이 안 됐거든.”

“완성이 안 됐다고?”

완성이 안됐다는 말에 이진운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완성 안된 함이 전선에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의문에 대해 연정운이 덧붙여 말했다.

“물론 함으로서의 기능 자체는 완벽하지. 하지만 차세대라 할 만한 기술이 없어. 그냥 준대형의 출력과 무장을 보다 대출력으로 늘린 게 전부니까. 준대형 전함을 대형화 한 거라 보면 돼.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별로 없고.”

그 말은 준대형 전함과 비교해서 획기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었다. 출력 자체는 거대해진 만큼 막강했지만, 그 외엔 차별화할만한 무장이나 신기술의 적용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대형 전함에 적용할 차세대 기술을 중앙에서 한참 연구 중이라고 하던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위상전환이었지. 인베이더 놈들이 먼저 선수 쳐서 적용시키고 말았지만.”

이진운은 그런 내막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게 하필 대형 전함에 적용될 기술이었다니.

그게 조금만 일찍 개발됐어도 지금 같은 패배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앙에서 공돌이들을 어지간히 갈아 넣고 있다고 하더라고. 더 이상 뒤쳐질 수 없다는 말이지. 그로 인한 피해는 이미 다 보고난 뒤지만.”

그 말을 듣고 나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바로 리스티의 가문에 대해서였다.

“그럼 프론사이드 가문에서는 뭘 하고 있었지? 내가 듣기로는 그곳이 연합의 과학을 주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물론 그렇지. 하지만 거긴 이제 쭉정이들뿐이야. 프론사이드 가문의 전무후무한 천재라고 불렸던 조나단과 리스티 양이 그곳을 떠났는데, 제대로 된 인물들이 있겠어? 물론 전투마법이나, 마도공학에 기반한 대량양산 쪽에는 제법 능력을 보이는 것들이 있지만, 개발과 연구 쪽은 예전의 명성만 못해. 예전부터 프론사이드는 소수의 천재들이 이끌어나갔던 곳이야. 그런데 출신 때문에 그런 천재들을 내쳤으니 당연한 결과지.”

“그랬었군.”

리스티가 프론사이드 가문에 대해 왜 그런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 알게 된 이상, 그들에 대한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리스티를 내침으로서 연합의 마도공학 발전 속도가 인베이더에 비해 전반적으로 뒤처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신경 쓰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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