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78화 (179/448)

8권-03화

[박살내주마!]

그의 전신에서 불길처럼 일어난 기세가 강대한 형상으로 타올랐다. 유형화 된 영력은 말 그대로 닿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소멸시킬 수 있는 위력이 있었다.

쿠콰콰콰!

그렇지만 제아무리 강력한 힘이라 해도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법이다. 루클라가 뻗어낸 영력의 해일이 강타하려는 순간, 이미 적함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있었다.

아군 함대를 구출해낸 방식과 동일한 수법으로 이 주역을 빠져나간 것이다.

콰아앙!

하필이면 그 근처를 지나가던 운석 하나가 루클라의 공격을 맞고 엉뚱하게 터져나갔다.

그것이 루클라를 더욱 광분하게 만들었다. 정작 맞춰야 될 적은 도망간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화는 그만 내고 이성을 찾게. 분별없이 날뛸수록 놈들에게 더 농락당할 뿐이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사내가 흥분해 날뛰려는 그를 붙잡아 말렸다.

“안다! 나도 안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농락당하다니. 제기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젠 다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했었다. 연합 함대는 뿔뿔이 흩어져 각개격파 당하는 중이었고, 아군의 함대는 차근차근 놈들을 섬멸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갑작스런 소행성군의 돌진과 위상공간을 파훼한 정체 모를 미사일 스프레드.

그것이 모든 상황을 뒤엎어버렸다. 심지어 각개격파중인 연합 함대들마저 갑작스런 대규모 공간이동으로 놓치고 말았으니 실패도 이런 대실패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위상공간을 벗겨 내다니. 놈들도 보통이 아니군.”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번 사태의 정황을 처음부터 찬찬히 짚어나갔다.

소행성이 덮쳐오고, 그 타이밍에 맞춰 날아든 정체불명의 특수 미사일이 날아들었지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바로 공간에 일어난 변화였다.

공간이동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지난번 작전에서 써먹었던 일정 공간을 우주로부터 분단시킨 뒤 특정 좌표로 날려버리는 형태였는지는 아직 파악이 되지 않고 있지만··· 이것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놈들이 이런 식의 작전을 시행한 걸 보면··· 저 쪽에도 그 가면 쓴 자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공간계통 영능력자가 있다는 말이겠군.”

사내의 두 눈의 냉정하게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지난번과 같은 작전으로 연합을 몰아붙일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그와 비슷한 놈이 연합에도 있다는 건가?”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네. 그게 아니고선 소행성이나 미사일들이 함대의 센서에 파악되지 않은 채로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공간 계통 능력으로 놈들의 허를 찌르는 방식은 불가능하다는 말인데··· 성가시게 됐군. 그래도 놈들이 지금까지 입은 타격이 적지 않으니 뒤쫓아야 할까?”

루클라도 조금은 화가 누그러졌는지, 비교적 냉정하게 사태 파악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놈들을 뒤쫓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만류했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 추격은 금물이네. 우리가 입은 피해도 적지 않은 편이니, 일단은 수습부터 하는 게 좋겠지. 게다가 이런 계략까지 보여준 상대인 만큼, 뒤쫓는 곳에 함정이 기다리고 있지 말란 법도 없어. 괜히 추격했다가 함정에 걸려들기라도 하면 호된 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지.”

“젠장,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결국 참으란 말이군. 제기랄!”

루클라는 씨근덕거리며 다시 기함을 향해 몸을 돌렸다. 소행성이 돌진해 오는 바람에 반파된 상태긴 했지만, 그래도 항행 자체는 무리가 없었다.

“나는 먼저 돌아가겠다, 울브스. 뒷수습은 네놈이 알아서 해라.”

루클라는 그렇게 내뱉은 뒤 그 자리에서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에게 울브스라 불렸던 사내는 사라진 루클라에 대해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뇌리를 가득 채운 것은 방금 전 공간에 간섭해왔던 특이한 수법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묘하군. 공간 계통의 능력이라 해도 어느 정도 특징이나 차이는 있을 텐데··· 그 자와 이렇게까지 흡사할 수도 있는 건가?”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의혹일 뿐, 어떠한 단서도 없는 상황. 신좌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가면인을 의심하기에는 근거가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은 함대부터 수습해야겠군.”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지은 울브스는 루클라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를 떠났다.

* * *

“휴, 간신히 성공이군. 이걸로 아군의 잔존 함대는 무사히 구출했다.”

3단계까지의 작전이 무사히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은 이진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확신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예측 못했던 변수가 생길까봐 조금은 불안했던 것이다.

옆에서 리스티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 아저씨! 다시 봐야겠는데요? 싸움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작전까지 세울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작전보다는 리클의 능력이 유용했다고 봐야겠지. 그가 없었다면 이 작전은 절대 성립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랬다. 소행성과 미사일들을 공간을 뛰어넘어 이동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리클의 디멘션 쿼츠 덕분이었다.

그것으로 위상전환을 무효화하고, 소행성을 격돌시켜서 놈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다시 디멘션 쿼츠의 힘으로 뿔뿔이 흩어져 공격당하고 있던 아군 함대들을 일제히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물론 그동안 입은 피해가 막심하긴 하지만, 남은 함대들을 수습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수확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등과교환의 법에 따르는 법이다. 이렇게 득을 본 일이 있다면, 손해를 본 사람도 있었다.

이번 손해의 가장 큰 주역인 리클이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아하하··· 그 덕분에 전 디멘션 쿼츠 물량의 절반을 날렸죠. 무려 10년 동안 비축해놓은 것들이었는데, 날리는 건 한순간이라니······. 그게 전부 사업 밑천이었는데.”

그가 허탈해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의 라이트닝 운송 서비스는 애당초 그가 만든 디멘션 쿼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업이었으니까.

“나중에 보상해줄 테니까, 너무 실망하진 않았으면 좋겠군.”

“그래요, 제가 몇 배로 갚아줄 테니까. 저 돈 많은 거 알잖아요.”

이진운과 리스티가 그렇게 말했지만, 리클에겐 조금도 위로가 되질 않았다. 디멘션 쿼츠는 그의 사업 밑천임과 동시에, 그가 발휘하는 능력을 크게 증폭시켜주는 매개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실력을 크게 웃도는, 말도 안 되는 규모의 능력을 다룰 수 있는 것도 다 평소 디멘션 쿼츠를 비축해 놓은 덕분이 컸다.

그렇게 리클이 비실대고 있던 그때, 리스티가 또 한 번 예기치 못한 폭탄을 던져왔다.

“아, 참. 그리고 디멘션 쿼츠 제작 방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분석이 끝났어요.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소규모 양산은 가능할 것 같아요.”

“뭐, 뭐라고요!? 벌써?”

넋 놓을 줄 알았던 리클이 깜짝 놀라면서 리스티를 돌아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요. 연구하고 있던 건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게······.”

리클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꾸하는 리스티를 괴물 바라보듯 쳐다보았다.

‘프론사이드 가문에서도 취급 불가능한 역대 급의 천재라더니, 이 정도였다는 건가?’

허나 그런 결과물을 내놓고도 리스티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완벽하진 않아요. 리클 씨가 만든 거에 비하면 조금 조잡하긴 하지만, 몇 가지 보조 장치가 있으면 그럭저럭 쓸 만할 거예요.”

“······.”

제아무리 불완전하다 해도 디멘션 쿼츠를 손에 넣고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3일도 안 된다. 리스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천재인지 새삼 절감할 수 있었다.

위잉!

그때, 작전 지휘실 안으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다름 아닌 연정운이었다.

그가 평소완 달리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오오! 드디어 왔다 왔어! 다들 무사히 도착했다고!”

“누구 말인데?”

이진운이 그렇게 묻자, 연정운이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와 같은 녀석들 말이야. 다들 별 탈 없이 돌아왔더라고.”

연정운과 같다면 지구에서 온 천외오천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들이 무사하다는 그 말에 이진운이 묘한 표정으로 연정운을 바라보았다.

“그럼 루클라에게 호되게 당한 건 너뿐이라 이거군.”

“아 진짜! 그놈이 나만 노렸다니까!”

연정운이 그 즉시 발끈 하며 소리 질렀다. 같은 천외오천은 멀쩡한데, 자신만 적에게 당해 골골하고 있었던 게 영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이진운은 그런 반응에 한 차례 피식 웃고는 그 다음을 언급했다.

“아무튼, 그들이 무사하다니 됐다. 이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군.”

“다음 단계? 네가 세운 작전에 다음 단계가 있었어?”

이건 연정운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번 작전은 총 3단계였고, 지금 이 상황이 그 결과 아닌가?

그렇지만 이진운도 자신이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던 모든 것을 공개했던 건 아니었다. 작전이 성공할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서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군 함대를 구출하는 것까진 그렇지. 하지만 아군을 구출했다고 해서 이 전쟁이 끝난 건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지금 이대로 전쟁을 지속할 순 없어. 아군 함대의 피해도 크고, 이걸 수리하려면 리클의 수송함에 실린 물자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해.”

그렇게 말한 이진운의 시선이 다시 리클을 향했다. 그러자 리클이 흠칫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함이 갑작스럽게 엄습해 와서였다.

“뭡니까? 왜 절 그런 눈으로!?”

“리클 이번 한번만 더 희생해 줬으면 좋겠다.”

“예?”

이진운의 입에서 튀어나온 희생이란 말에 리클이 설마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느낀 불길함은 곧 현실이 되었다.

“지금 워프가 봉쇄된 상황에서, 네 도움이 필요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은 디멘션 쿼츠가 필요하지.”

이쯤 되니 리클도 이진운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 디멘션 쿼츠를 전부 소모해서, 후방에서 오지 못하고 대기 중인 지원 병력을 이곳으로 불러올 생각이라 이겁니까?”

“그래. 지금은 그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면서 말하는 이진운의 두 눈은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

결국 리클은 정말로 울고 싶은 표정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다. 그도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안 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밑천이······.”

“이봐, 울지 마. 나중에 연합에서 다 보상해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그 모습이 얼마나 측은해 보였던지 옆에서 연정운까지 이렇게 위로했지만, 그걸로 위로가 되진 않았다. 디멘션 쿼츠는 리클에게 있어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런 물건이었으니까.

리클이 우울해 하든 말든, 이진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남은 전력이 턱없이 적어진 지금, 앞으로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선 지원군은 반드시 필요했다.

“자, 그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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