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77화 (178/448)

8권-02화

그렇지만 가면인을 한층 더 경악하게 만든 사실은 따로 있었다.

[설마, 이 운용 방식은!]

그는 그제야 이 일대 공간에 일어난 변화에 숨겨진 기법이 자신이 알고 있던 방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운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제외하고 나면 이 우주에서 단 한 사람뿐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리클 네가 거기 있는 거냐?]

그는 동요에 찬 목소리로 쥐어짜듯 내뱉었다.

현재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친 혈육.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면을 쓰고 활동하면서도, 가끔 한 번씩 동생의 안부를 확인해 보기도 했었다.

‘분명 특기를 살려 운송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녀석이 왜 이런 최전선에?’

어쩌다가 전쟁에 휘말리게 된 건지, 아니면 연합의 함대에 진심으로 합세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리클이 연합 쪽에서 자신의 능력을 적극 발휘한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선 이 운용법을, 그리고 디멘션 쿼츠까지 사용해 가면서까지 도울 이유가 없었다.

[하필이면······.]

가면인은 이를 악물었다.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변수가 끼어들다니.

그것도 하필이면 그 변수가 친동생이란 사실이 그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고민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지금 그의 동생이 인베이더 함대를 향해 쏟아낸 것들은 그가 상상하던 바를 훌쩍 뛰어넘었으니까.

공간 자체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그의 감각 너머로 저 우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 그대로 전해졌다.

가면인의 두 눈동자가 경악으로 급격히 커졌다.

[리클 이 자식!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이젠 동생이라고 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리클이 분단시킨 공간 째로 인베이더 함대를 향해 쏟아낸 것은 바로 거대한 운석군이었으니까.

쿠구구구구!

무지막지한 압력이 느껴진다.

아니, 이젠 그의 감각뿐만 아니라, 인베이더 함대의 센서에도 운석군의 존재가 포착된 상황이었다.

위잉! 위잉! 위잉!

“지금 무슨 일이냐!? 왜 갑자기 경보가 울리고 난리야?”

루클라가 그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함의 통제를 맡고 있던 기계군단 소속의 인베이더들 중 하나가 곧바로 답변해왔다.

[대량의 운석군이 본 함대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접근 중.]

“뭐? 운석군!? 갑자기 그딴 게 왜?”

루클라는 운석군에 대해 듣고 나서도 시큰둥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한낱 운석군 따위가 함대에 영향을 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위상전환이라는 이면 공간에 걸쳐져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운석군 따윈 그냥 투과되어 지나갈 게 틀림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내가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이 상황은 좀 이상하군.”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운석군 따윈 우주 어딜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건데. 네놈도 별 시답잖은 거에 다 관심을 갖는군.”

별거 아닌 일로 번거롭게 구냐는 듯 내뱉는 그 말에, 사내는 자신이 의심하던 바를 꺼내놓는다.

“물론 운석군 자체는 그렇지.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함의 센서가 감지 못할 운석군이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음?”

[운석군 급속 접근 중! 도착까지 앞으로 1분 23초.]

또다시 기계군단의 인베이더가 현 상황을 알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운석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을 본 루클라가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미친 이건 운석군 정도가 아니라 어지간한 소행성군 수준이잖아? 이런 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몰랐다고? 이 깡통들이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그가 기계군단 인베이더들을 노려봤지만, 인공지능에 가까운 자아를 가진 그들이 루클라가 성질낸다고 해서 반응할 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사내가 물었다.

“그럼 운석군이 어떻게, 어디서 나타난 거지?”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출현! 센서에 포착되기 직전에 대규모 공간의 뒤틀림이 포착된 것으로 보아 워프나 공간이동에 가까운 현상에 의해 출현한 것으로 짐작됨.]

“그 말은··· 이 상황 자체가 인위적이라는 건가?”

사내의 눈매가 자연히 가늘어졌다. 공간의 뒤틀림과 함께 출현한 소행성군. 누가 봐도 이게 우연히 발생한 자연현상이라 여길 리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루클라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럼 이 소행성들이 날아오는 것 자체가 어떤 놈이 수작을 부린 거라 이거냐? 뭐 그래봐야 쓸데없는 짓이군. 이런 소행성 따위가 우리 함대의 위상공간을 침범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 말도 틀리진 않았다. 위상전환에 의해 이면공간에 들어산 함대를 물리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래도 사내는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그래도 모르니 주변을 경계하도록.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이행!]

그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메인 브릿지로 들어섰다. 바로 가면인이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거슬린다는 듯 루클라가 짜증 어린 투로 내뱉었다.

“뭐야? 네놈은 또 왜 돌아왔지?”

[지금 어서 함대의 선수를 돌려야 합니다! 저 운석군의 궤도상을 벗어나야 해요!]

“뭐라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외친 그 소리에, 루클라는 물론 사내조차 조금 인상을 찡그렸다. 가면인이 이번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선을 넘은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가면인을 탓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보다 앞서 가면인의 입에서 안타까움에 젖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이런! 늦었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이질적인 것이 떠올랐다. 그것은 공간의 뒤틀림이었다.

그리고 일그러짐 너머로 수백 수천 개의 무언가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운석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베이더 함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뭐야 저건?

“미사일?”

루클라와 사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공간상에 일어난 변화와 함께 갑자기 미사일들이 나타나다니! 아무리 봐도 심상치가 않은 징조였다.

“일단 격추해라!”

사내의 명령에 즉각 화망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저 미사일들이 위상공간을 침범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진 않지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였다.

쾅! 콰아앙!

여기저기서 터져나가는 미사일들이 성대한 불길을 쏟아냈다. 하지만 대공화망으로도 미사일들을 전부 잡아내긴 어려웠다. 처음 출현한 시점부터 함대에 너무 가까이 근접해 있었다.

결국 잡아내지 못한 수십 발의 미사일이 그대로 인베이더 함대 위로 떨어졌다.

콰아앙! 쿠쿠쿵!

거센 폭발과 함께 함체가 진동을 일으켰다. 그것을 깨달은 루클라가 당황해 외쳤다.

“뭐야, 폭발이라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정상적인 경우라면 미사일들은 그대로 함대를 투과해 지나가야 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은 미사일들을 제대로 투과시키지 못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경악으로 일그러진 사내의 입에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런!? 위상공간이······!”

지금까지 인베이더 함대를 지켜준 위상전환이 완벽히 해제되었다. 이면 공간에 발을 걸치고 있던 상태에서 다시 현실의 우주 공간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루클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외쳤다.

“어떻게 연합 놈들이!? 위상공간을 해제할 수단을 손에 넣은 건가?”

하지만 놀라고 있을 새가 없었다. 그보다 더 다급한 일이 그들 앞에 닥쳐왔으니까.

[소행성들의 뒤에서 핵추진 반응! 일제히 가속합니다.]

“뭐야?”

화면에 비친 소행성들이 더욱 빠르게 접근해왔다. 방금 전까지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타고 오르는 섬뜩한 위기감에 사내가 다급히 외쳤다.

“피해!”

* * *

이진운이 세운 작전은 총 3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첫 단계는 그들이 미리 파악해놓은 운석군에 핵추진 부스터를 설치하고, 그것을 공간분단 시킨 뒤 인베이더 함대가 있는 좌표에 뿌리는 것이었다.

위상전환을 무적이라 믿는 인베이더들에게 있어 운석군 따윈 그냥 스쳐지나가는 먼지만도 못한 현상일 터. 회피하지도 막지도 않을 거라 짐작했는데, 결국 예상한 대로 되었다.

그리고 2단계는 바로 이것이었다. 운석군과 마찬가지로 미사일 다수를 운석군 앞쪽의 좌표로 이동시키는 것.

그것으로 방심하고 있던 인베이더 함대를 보호하는 위상공간을 해제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 작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곧 납득하고 말았다.

도이벤 행성에서 오행상극의 원리를 통해 유사 위상공간을 해제할 수 있도록 제조된 SB탄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납득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진운이 세운 작전대로 놈들의 보호막이 벗겨졌다. 그것을 본 오퍼레이터들이 두 눈을 번뜩였다.

[성공이군! 놈들을 보호하던 위상공간이 사라졌어!]

[자, 시작합니다! 핵추진 부스터 가동!]

구우우!

소행성들 뒤편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더니 무시무시할 정도로 급가속하기 시작했다. 핵펄스 추진 형태의 부스터가 원격 조종을 통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가속이 붙었는지 그냥 운석군 정도가 아니라 이건 완전히 혜성군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고오오오!

분명 우주 공간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텐데도, 승무원들은 마치 우주공간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 자체가 너무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물리적인 타격이 먹히지 않는 인베이더들이라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무려 지름만 수십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소행성의 돌진이었다. 진작부터 배리어라도 전개했다면 모를까, 위상전환이 해제된 직후 맨몸뚱이가 된 함체만으론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충격량이었다.

물론 인베이더 함대에서도 이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결국 헛된 발버둥으로 끝났다. 제네레이터의 출력 상태가 배리어를 전개할 수준이 되지 못한데다가, 점점 더 가속해 날아오는 소행성들을 피하기엔 너무도 늦어 있었다.

콰아아아앙!

무지막지한 질량과 충격량에 인베이더 전함들이 짓이겨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제아무리 견고한 전함이라 해도 이만한 데미지는 견딜 수 없었다.

상당수의 인베이더 함대가 침몰하고 박살났다. 그나마 인베이더 함대의 기함인 가이릭스는 반파 상태에 그쳤지만, 그래도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직 3단계 작전은 시작도 안한 상태였다. 오퍼레이터들은 2단계 작전이 성공한 즉시 다음 단계를 진행해 나갔다.

[다음 작전으로 넘어간다!]

[디멘션 쿼츠, 발동!]

[생존한 아군 함대 좌표 포착! 각 함대의 공간좌표를 잘라낸 뒤 이쪽 좌표와 잇는다!]

끼기기긱!

공간이 비틀리면서 기괴한 소음을 낳기 시작했다. 그것은 운석군을 이동시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간의 일부를 도려낸 다음 특정 좌표로 이동시키는 수법이었다.

인베이더들은 가면인을 통해 이 방법으로 연합의 함대를 흩어버렸지만, 이진운은 이 방법을 반대로 응용해 위기에 처한 아군 함대들을 구출하려는 것이다.

[이놈들이이이! 감히 이따위 짓을!]

그때, 반파한 기함 가이릭스로부터 강대한 영언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우주 공간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엄청난 기세로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영언이 끝나기도 전에 루클라의 신형이 우주공간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나왔다.

[박살내주마!]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