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76화 (177/448)

8권-01화

현재 전황은 인베이더들이 압승이나 다름없었다.

아르탈 연합 함대들이 모여 있던 공간 자체를 도려내듯 분단한 뒤 라인트라 주역 곳곳에 흩어놓음으로서 전력을 분산시켰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병력으로 기습 공격을 가해 허를 찌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천외오천 중 일부와 실력자들까지 부상을 입을 정도였으니, 작전은 성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곳곳에 흩어진 연합의 함대를 상대로 압도적인 전과를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몇몇 함대는 전멸시켰고, 나머지 함대들도 조금 더 발악하면서 연명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아마 며칠 못가서 전멸했다는 소식이 곧 당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성과를 내고도 심기가 불편한 이가 있었다.

라인트라에 파견된 인베이더 함대의 기함 가이릭스.

이젠 싸울 일도 없는지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고 있던 루클라는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군.”

“또 뭘 가지고 그렇게 불만인가? 자네는 항상 불만으로 가득 찬 것 같군.”

그러자 옆에 있던 이가 딴죽을 걸었다. 그자는 아주 잘생긴 얼굴의 청년이었다. 푸른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차림새도 마치 귀족을 연상케 할 만큼 고급스러웠다.

그런 사내의 모든 것들이 루클라에게는 신경을 거슬리게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냥 내뱉은 말 가지고 시비 걸지 마라. 네놈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나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성미 급하고 거칠기만 한 자네와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게 얼마나 곤욕인지 알고 있나?”

“이 자식이!”

사내가 받아친 그 말에 루클라는 발끈하면서 으르렁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불화가 싸움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바로 그들 위에 군림하는 성좌들 때문이었다. 사내를 보낸 것도 바로 성좌들의 뜻인 만큼,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싸운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젠장, 카룬다임께선 하필이면 이 녀석을 보내신 거지?”

루클라는 눈앞의 상대가 자못 껄끄러우면서도 싫었다. 왜냐면 한번 놈과 맞붙었다가 호되게 당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력이나 경지에서 뒤떨어지는 건 아니다. 루클라와 사내는 거의 대등한 수준이었다.

다만 그와 상성이 좋지 못했다. 특히 물리적인 힘으로 근접전을 장기로 하는 루클라로서는 가장 까다로운 타입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불편해 하고 있는 건 눈앞의 사내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메인 브릿지 한편에서 잠자코 있는 가면을 쓴 자 때문이었다.

가면인에 대해선 루클라조차 정확한 정체를 알지 못했다. 단지 상부에서 그자의 도움을 받아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라고 명령을 받았을 뿐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연합 함대를 뿔뿔이 흩어버린 뒤, 기분 좋게 박살내줄 수 있었지만 가면인만 보면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루클라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지금까지 침묵을 고수하던 가면인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대체 너 뭐 하는 놈이냐? 무슨 생각으로 우리한테 붙어먹을 생각을 다 한 거지?”

루클라가 던진 노골적인 물음에, 가면인은 태연스럽게 대응하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는 협력자입니다. 성좌분들께 들어서 알고 있을 텐데요.]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그 모습에, 루클라의 눈매가 더욱 일그러졌다.

“그래, 안다. 네놈이 우리의 협력자라는 거.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도 네놈의 공이 크다는 것도 잘 알지.”

형형한 그의 눈빛이 가면인을 향했다.

“그렇지만 말이다. 난 네놈을 도저히 신용할 수가 없다.”

[어째서입니까? 제 도움으로 이번 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도 믿지 못하시겠습니까?]

“네놈의 공은 인정한다. 확실히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성과를 이뤘지. 네가 가져온 그것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놈들을 쉽게 박살내진 못했을 거란 건 인정해.”

하지만 입으로는 인정한다면서도 진한 불신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가면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그를 바로 코앞에 둔 상태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말이야. 네놈은 인간이잖아?”

[······.]

“우리가 적대하고 있는 놈들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종족이 바로 인간인데, 우리가 어떻게 인간을 믿을 수 있겠어? 특히 네놈같이 수상쩍은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지. 일단 우리에게 득이 되게 해줬지만, 그게 과연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일까? 내가 볼 땐 네놈이 나름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루클라가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은 가면인은 더 이상 그와 대적하지 않기로 했다. 애당초 대적할 마음도 없지만, 그와 말을 계속 섞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느끼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일단은 물러설 때였다.

[제가 꽤 못마땅하신 모양인가 본데, 그렇다면 일단 물러가기로 하지요. 여기 있어봐야 루클라 님의 심기만 어지럽힐 테니 말입니다. 나중에 일이 있으면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한 뒤 가면인은 가볍게 예를 보인 뒤 그 자리를 떠났다.

가면인이 사라진 뒤에야 잘생긴 사내가 그제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흐음, 자네, 인간에 대한 불신은 알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인 것 아닌가 싶군. 그 자는 우리의 협력자일세. 성좌들께서도 인정한 자를 그렇게 취급하면 곤란할 텐데.”

그렇지만 루클라는 상관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인간이다. 이 우주에서 가장 못 믿을 것들이 바로 인간들이지. 교활하고 저열한 것들.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같은 종족마저 언제든 등질 수 있는 것들인데, 우리도 적당히 이용하다 버려야지. 성좌들께서도 그걸 바라실 거다.”

그건 너무 지나친 확대 해석이었다. 사내는 루클라의 말에 일정 부분 동감하면서도 완전히 찬동하긴 어려웠다.

“글쎄 성좌들께서 어떤 생각이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을 믿기 어렵다는 건 나도 동감이군. 특히 동족을 배신한 녀석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게다가 그 목적도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자네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군.”

“지금까지 많은 인간들을 봐왔다. 그놈들은 언제나 악랄하고 치졸했지. 호의를 베풀어 줘도 결국에는 배신으로 되돌려주더군. 그런 인간의 협력자라고? 나는 놈을 철저히 감시할 거다. 그리고 수상한 조짐만 보이면 언제든 그 자리에서 처단할 거다.”

“자네 마음대로 하게. 하지만 이건 명심하게. 그 자는 성좌들께서 붙여준 존재일세. 괜히 섣불리 움직여서 그분들의 화를 사진 말게나.”

사내가 던진 충고에 가까운 경고에, 루클라는 짓씹듯 내뱉었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어.”

* * *

메인 브릿지에서 나온 가면인은 걸음을 옮기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꽤 까다롭게 나오는군. 멍청한 주제에 그래도 야성은 살아 있다 이건가?]

하지만 그래봐야 자신을 어쩌진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인베이더들을 위해 공헌한 바가 있으며, 그것은 그가 인간이라 해도 쳐낼 수 없을 만큼 컸다. 성좌들도 인정한 마당인데, 고작 그 휘하에 수하 따위가 그들의 결정을 두고 왈가불가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당분간 조심은 해야겠군. 저렇게 경계를 하면 나도 움직이기가 쉽진 않지.]

하지만 그래봐야 당분간일 뿐이다. 이번 전쟁의 우세를 인베이더 쪽으로 기울게 한 이상 자신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봐도 좋았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일 뿐인가? 하긴 이만큼 시선을 끌었으면 연합 놈들도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신경 쓸 겨를 따윈 없겠지.]

라인트라 전선에 파견한 전력이 전멸하고 나면, 아르탈 행성 연합은 말 그대로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당장 인베이더 함대들이 절대방위선을 뚫고 들어올 판국인데, 조사 따위를 진행할 여력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사이에 전부 끝내 놔야겠지. 어떻게든.]

지금도 그의 동료들은 바쁘게 움직이면서 일을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연합의 신경이 라인트라로 쏠린 이때야말로 밀렸던 것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료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의 이용대상이었을 뿐, 그가 진심으로 동료라 생각하는 자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도 믿지 못했다. 그때 그날 이후로, 그는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믿었던 가문에 의해 배신당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억울했던 그 일을 그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분노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가슴 깊이 남아 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원한의 당사자들은 뜻하지 않은 계기로 다 죽어 없어져버렸지만··· 덕분에 그의 증오는 이제 세상 전체, 아니 우주 전체를 향하게 되었다.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흘러나오는 안광에서 원념과 증오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 머지않았어. 내가 바라던 그것이 완성될 때가 말이야.’

그가 바라는 것이야 말로 성좌들이 원하는 결과였다. 그래서 성좌들도 인간인 그를 신용하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면인은 성좌들이 보내는 그런 신뢰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그들 덕분에 목적의 반 이상을 이뤄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성좌들의 계획에 자신이 편승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때, 가면인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무리했던 반동이 찾아온 것이다.

[으음. 조금은 쉬어두는 게 좋겠군.]

그가 힘을 쓴 덕분에 인베이더 함대가 승리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분명했다. 자기 자신을 한계 이상으로 쥐어짠 만큼, 당분간은 힘을 쓰기 어려울 듯싶었다.

그래도 이번 전쟁의 승패는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없으니, 조금은 여유를 둬도 될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자신의 숙소로 발걸음 옮기려던 그때였다.

힘겹게 떼던 가면인의 발걸음이 일순 우뚝 멈춰섰다.

······!

[이건!?]

돌연 거대한 울림이 느껴졌다. 어떠한 소리도, 충격도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존재하는 울림이었다.

아마 다른 녀석들은 미처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가면인은 분명하게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공간 자체에 대규모 변화가 생기면서 일어나는 뒤틀림의 파동이었으니까.

그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곳 라인트라에서 자신이 모르는 공간의 변화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즉시 감각을 최대한 돋워 상황부터 파악해 나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안 그래도 몸이 한계에 닥친 상황이라 쉽진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돌발위기 상황에선 어떻게든 더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파악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공간이··· 분단되고 있어!? 아니, 어디선가 분단된 공간의 조각들이 이곳으로 날아오는 건가? 대체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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