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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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서퍼 함대의 정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주 한복판에서 수리하는 터라 따로 도크가 없어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그 정도는 메탈 기어와 기간트들을 수리에 대거 동원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었다.
[자자, 서두른다고 해서 성급하게 움직이지 마!]
[어이, 거기 부품 좀 가져와! TJS-0032d이 필요해!]
[젠장, 위험하잖아! 거기 너무 붙지 말라고. 그러다가 부딪치면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려!]
메탈 기어와 기간트를 다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투 요원들이었다. 그들이 정비공의 설명에 따라 움직이려니 생각보다 수리가 수월치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함선을 정박할만한 도크가 없는 환경에서 수리하려면 맨몸으로 우주공간에 나서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위험했다. 조금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발 디딜 곳도 없는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영영 우주의 미아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간트나 메탈 기어들은 사정이 좀 나았다. 나름 우주 공간에서도 비행할 수 있는데다, 기체의 발 부분에 자성을 활성화시켜 함상에 부착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떨어질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수리공들은 거듭된 난항에 진땀을 흘리며 투덜거렸다. 덕분에 어쨌든 수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직접 하는 것만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파일럿 교육도 받아놓을 걸 그랬어.]
[누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나?]
우주공간에서 아무런 설비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전함을 수리할 일이 생길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함대 하나가 움직이면 보통 수리를 위한 도크함 정도는 필수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외딴 공간에 떨어지면서 받은 기습 탓에 도크함이 침몰해 버렸으니 이런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메탈 기어와 기간트 파일럿들도 조금씩 수리기술에 익숙해지면서 진척속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예정했던 삼일 안에 수리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물론 수리를 마친다고 해서 골드 서퍼 함대가 예전에 전력을 전부 되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미 침몰해 사라진 전함들도 있었고,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함들도 있었으니까.
온전했을 때와 비교한다면 6할 정도의 전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거라도 건진 게 어디야? 그땐 진짜 전멸해서 끝장나는 줄 알았다고.”
연정운은 위험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과장되게 어깨를 떨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그때의 상황은 정말이지 절망적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당해야 하는 무력감. 솔직히 말해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전력이 감소한 건 사실이야. 그래도 우리 인피니티 킹덤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게다가 연정운이 완벽히 회복된 것은 물론 이전보다 한층 더 강해진 상태다. 굳이 전력을 재평가한다면 골드 서퍼가 온전할 때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진운과 인피니티 킹덤이 여기에 가세하면 어지간한 함대 서넛 이상이라 할 수 있었다.
“하긴 네 함대도, 네 실력도 만만치 않으니 인베이더 놈들 본대와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문제될 건 없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이진운을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과 아득한 차이가 존재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순식간에 실력이 진보하더니, 이젠 그랜드 급을 바로 코앞에 둔 실력자가 되었다.
아니, 지금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이진운에겐 분명 겉으로 드러나는 실력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날 치료한 그 기이한 수법도 그렇고··· 비밀이 많은 친구란 말이야.’
그렇지만 굳이 그 비밀을 캐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각자 다 비밀은 있기 마련이었고, 자신도 그에게 말 못할 비밀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있었다.
“헌데 그 작전, 정말 가능하긴 한 거냐?”
바로 이틀 전 이진운이 내놓았던 작전이 문제였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가능하다곤 하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할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확인해 봤지. 여러 방향으로 가능성을 타진해 봤는데, 충분히 승산이 있었어. 리스티도 분석해서 같은 결론을 냈으니 확실할 거야.”
확신에 찬 그 대답에 연정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진운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은 모양이었다.
“설마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정말 우주가 넓긴 넓군. 그런 식으로 능력을 응용하는 사람도 있을 줄이야.”
“나도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작전은 생각도 못했을 거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이진운은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파격적인 능력이 있기에 이번 작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작전의 핵심은 신속하게 타격하고 빠지는 거야. 놈들에게 큰 데미지를 입히는 즉시 아군을 구출해 나오는 거지.”
“그야말로 1초 단위를 다투는 시간싸움이겠군.”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뿔뿔이 흩어진 연합의 함대를 다시 하나로 집결시킬 수 있어.”
이진운의 말대로 작전을 성공시킬 수만 있다면, 연합의 전력은 다시 결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베이더 놈들도 무능하고 어리석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보다 더 걱정되는 점도 있었다.
“그렇긴 한데··· 아군의 함대들이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을지 모르겠군. 부디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골드 서퍼도 이틀 전 이진운과 인피니티 킹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하루도 못 버티고 침몰했을 것이다. 다른 연합의 함대들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을 지에 대해선 그도 그리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진운도 이에 대해서는 별말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지자, 연정운이 즉시 화제를 바꿨다.
“그건 그렇고 네 함대의 멤버들은 점점 화려해지는 것 같은데? 리스티라는 프론사이드 가문의 여식도 그렇고, 바이우드 가문의 장자에다가 이번에는 크리스첸 가문 출신까지. 이러다가 5대 가문 사람들이 다 네 함대에 모이는 거 아니야?”
웰라우드 가의 아리엔까지 포함하면 벌써 4대 가문 출신이 한 함대에 모인 셈이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남은 하나의 가문인 하이엑트라 가 출신만 더해진다면, 5대 가문 출신이 모두 모이게 되는 셈이다.
“글쎄, 아리엔이나 레이첸 빼고는 다들 가문에 대한 소속감 따윈 없어서 말이야. 별 의미 없는 일이지.”
오히려 가문에 대한 악감정이 있으면 있었지, 소속감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리스티도 그랬고, 특히 리클은 더더욱 그랬다.
지금은 크리스첸 가문 수뇌 전체가 다른 방계의 인원으로 대체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던 호감이 다시 생길 순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삼일 째 하루가 지나갔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간신히 수리를 마칠 수 있었다. 다들 지친 모습으로 숨을 몰아쉬던 그때, 이지운과 연정운이 그들 앞에 나섰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연정운이었다.
“자, 그동안 수리 하느라 다들 수고들 많았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지? 내일이 작전 개시일이라는 거.”
“······.”
지친 얼굴들 위로 긴장감이 떠올랐다. 그들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작전에 대한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몸이 경직되었다.
내일의 작전이 바로 연합 함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어. 게다가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어떻게든 우린 해내야 해! 해낼 수밖에 없어! 지금의 위기를 다시 반전시키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으니까. 이대로 놔둔다면 연합 함대는 끝장이야.”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다시 상기한 듯, 다들 한층 더 무거운 모습이 되었다. 그렇지만 연정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야. 이번 작전은 성공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여러분들도 작전에 대해 들어 알겠지만, 이번에야말로 인베이더들의 뒤통수를 갈겨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금까지 놈들의 흉계에 당한 것들을 생각하면 다시 되갚아주고 싶지 않나? 나는 그러고 싶은데.”
“물론입니다!”
“인베이더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죠!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그러겠습니까?”
“하긴 이번에는 놈들이 당할 차례지! 이젠 당하고 있는 것도 지긋지긋해!”
다들 연정운의 연설에 호응하면서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만큼 인베이더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극에 달했다는 증거였다.
그들에게서 두려움의 감정 따윈 일절 엿보이지 않았다.
연정운은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면서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음, 좋은 반응들이야. 그런 전의와 기세를 계속 유지하도록. 일단 오늘 저녁은 편히 쉬고 내일 작전을 기대하도록! 인베이더 놈들의 엉덩이를 확실히 걷어차 주자고!”
“예!”
“자, 그럼 해산!”
그것으로 승무원들과 정비공들이 일제히 해산하였다. 이제부터는 다들 자유 시간을 가지면서 그동안의 피로를 씻어낼 것이다.
물론 피로를 전부 풀기에는 내일 아침까지의 시간은 너무도 짧겠지만, 그들은 프로였다. 내일 작전 개시 시간까지 어떻게든 만전의 컨디션으로 작전에 임할 터였다.
그때가지 방관하듯 지켜보던 이진운이 조금은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연설 잘 하는데?”
“여기서 먹은 짬밥이 얼만데. 병사들 다독이는 정도는 간단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연정운은 지구에서 보냈던 군 생활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2년이란 시간도 지긋지긋했는데, 지금은 이런 우주까지 나와서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을 군대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입에서 푸념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진짜 지긋지긋하다. 이렇게 싸우는 것도.”
“하긴 넌 벌써 10년도 넘었었지. 지긋지긋할 만도 하군.”
천외오천이 연합에 소환된 기간만 따지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그동안 계속 싸워왔으니 매너리즘을 느낄 만도 했다.
“인베이더 놈들 엉덩이만 쫓아다닌 세월만 10년이 훨씬 넘었지. 이젠 놈들 면상만 봐도 지겨울 정도야.”
“하지만 과연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 연합에서도 무려 1000년이나 이어온 이 전쟁을?”
이진운은 이 전쟁이 종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필멸자들 간의 싸움도 아니고, 그 위에는 신으로 불리는 초월자들이 관여되어 있었다.
신을 멸할 수 없는 한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게 말이다. 희망이 없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라서 더 그렇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심정이야.”
“······.”
이진운도 더 뭐라 말하진 않았다. 아직 자신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연정운과 같은 지긋지긋함을 느끼게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전쟁. 하긴 이 싸움에 끝이 있기나 할까?
‘모르겠군. 지금까진 그저 인베이더 놈들을 처치하는 데에만 급급했는데··· 앞으로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
이진운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신과 일행의 장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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