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74화 (175/448)

7권-24화

헌데 그때, 연정운이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큭! 뭐야 이거?”

마기와 독기가 미친 듯이 끓어오르면서 전신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동안 영력을 총 동원해서 간신히 억눌러두었던 것들이 일제히 폭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이진운이 침착한 목소리로 그를 진정시켰다.

“놀랄 것 없어. 일부러 그런 거니까.”

“뭐?”

“네 나름대로 저주와 독기를 억눌러 진정시켜놓긴 했지만, 그게 더 문제가 됐다. 네 몸 안에 아주 자리를 제대로 잡았더군. 그냥은 뽑아내기가 어려워졌어.”

“으윽··· 그래서 이렇게 막 건드려놓은 거냐? 이게 미쳐 날뛰기 시작하니까 미치게 아프네.”

“그래, 일단 끄집어내려면 그럴 수박에 없었어. 어쨌든 폭주가 시작됐으니까 조금만 참아 봐. 바로 치료를 시작할 테니까.”

“좀 빨리··· 좀 해라. 죽겠다.”

연정운이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이었다. 굳이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몸 안에서 폭풍이 일어나 마구 헤집는 듯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빈틈이 보였다. 좀 전까진 저주와 독기가 단단히 자리를 잡은 상태로 견고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면, 지금은 찔러볼 만한 부분들이 보이고 있었다.

이진운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오른손 검지로 세 가닥 지력을 뿜어냈다. 그것은 일양지의 절초 중 하나인 삼환합령포(三環合靈砲)였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진 지력은 마치 빨려 들어가듯 연정운의 가슴팍으로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표피에 상처 하나 없이 그대로 투과해 들어간 것이다.

허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내부로 투과해 들어간 세 가닥의 지력은 둥근 파문을 그리면서 맹렬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웅웅웅!

세 개의 지력은 서로 공진하면서 더욱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은 소리의 공진현상과 비슷해서 사용하기에 따라선 상대의 내부를 부술 수도 있는 위험한 수법이었다.

진동이 더해갈수록 연정운의 안색도 더욱 검게 죽어나갔다.

“끄으으! 점점 더 아프잖아. 날 죽일 셈이야?”

“입 다물고 있어! 입으로 기운이 새어나가면 지금까지 한 치료가 전부 허사가 돼.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어?”

이진운이 격한 목소리로 외치자, 연정운은 그 기세에 움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아프고 힘든 치료인데 이걸 허사로 만들 순 없었다.

그가 입을 다문 채 고통을 참아내고 있자, 이진운은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삼환합령포에 의해 저주와 독기, 그리고 그것의 근간이 되는 마기의 기운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게 또렷하게 느껴졌다.

한 덩어리로 뭉친 기운은 다루기 어렵지만, 산산이 흩어진 작은 기운들은 쉬이 제어할 수 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제야 겨우 됐군. 이제 남은 건 산산이 부서진 이 기운들을 제거하는 것뿐인가.’

그가 내려다본 연정운의 전신은 온통 검게 물들었다. 가슴팍에 집중되어 있던 마기들이 흩어지면서 전신에 퍼진 탓이었다.

겉으로 보긴 아주 안좋아 보였지만, 지금이야말로 마기와 저주가 가장 약화된 시점이라 할 수 있었다.

이진운은 다시 진력을 끌어올렸다.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하자, 순수하고 맑은 정기가 그의 양손 십지에 몰려들었다.

‘역시 쉽지 않군.’

이번 생에서는 처음으로 운용하는 천룡무상신공이었다. 지금까진 경지가 일천한 탓에 시도조차 안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천룡무상신공이 아니면 이런 마기를 제어할만한 순수한 정기를 정제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의 상태는 조금 무리한 것에 가까웠다.

우우우웅!

기운이 응집된 것만으로도 대기가 웅웅대며 떨렸다. 그만큼 이번 치료에 이진운이 막대한 기운과 심력을 쏟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것이 절정에 이른 순간, 그의 양 손이 활짝 펼쳐졌다. 그리고 열 손가락을 떠난 지력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연정운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일양지(一陽指)

십지파혼격(十指破魂擊)

투투투퉁!

지력들이 연정운의 신체 중 각 대맥에 닿는 순간, 마치 북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좀 전과 마찬가지로 상처 없이 스며들어간 열 가닥의 지력들은 곧 수천수만 가닥의 지력으로 터져나가면서 연정운의 전신 혈도와 세맥들을 일제히 쓸어나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그것은 장마 때에 불어난 계곡의 격류 같았다. 모든 것을 씻어 내리는 격렬한 정기의 흐름 앞에, 전신에 흩어져 있던 마기와 저주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쓸려나가고 있었다.

애당초 한데 뭉쳐 있었다면 모를까.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기운만으로는 이진운의 십지파혼격의 힘을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났을까? 온통 검은 색으로 물들어 있던 연정운의 전신은 점점 제 색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그의 몸 안에 있던 마기와 저주들이 소멸된 모양인지, 검은 아지랑이 같은 잔재들이 피부를 통해 연기처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연정운이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곤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더 이상 몸을 구속하던 마비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를 지금까지 괴롭히면서 몸을 갉아먹던 저주와 독기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연정운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너, 뭘 어떻게 한 거야? 이거 부상을 입기 전보다 몸 상태가 더 좋잖아!”

“당연하지, 그냥 일반적인 치료가 아니니까. 마기와 저주를 씻어내면서 네 몸 안에 있던 탁기와 노폐물까지 모두 쓸어버렸다. 몸 상태가 더 좋은 건 당연한 결과야.”

그랬다. 이진운이 방금 사용한 치료법은 중원무림에서 말하는 개정대법에 가까웠다. 물론 어느 정도 차이점은 있겠지만, 오히려 효과는 그 이상이었다.

그가 시전한 일양지는 점창의 대표적인 신공절학이자, 다양한 내상과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의술무공으로 유명했다. 그 중에서도 십지파혼격은 대표적인 수법으로서, 사용하기에 따라선 상대의 전신 혈도와 세맥을 파열시켜 즉사하게 할 수도 있고, 혹은 그와 반대로 각종 주화입마나 내상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무공에 적합한 신체로 변화시킬 수도 있는 공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효과를 연정운이 톡톡히 보게 되었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결과 이전보다 나은 상태가 된 것이다.

“신기한 녀석이네. 어떻게 이런 치료법을 알고 있는 건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연정운은 기운을 끌어올려봤다. 이전보다 자신의 의념에 반응하는 영력의 흐름과 응집성이 더 좋아져 있었다.

예전의 영맥이 좁은 국도와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 고속도로를 접한 것 마냥 순탄하고 넓었다.

“진짜 믿기지가 않네. 이 정도면 그냥 몸 상태가 좋아진 정도가 아니라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이전과 비교하만 어느 정도지?”

“음, 예전보다는 한 1할 정도 더 강해졌다고 보면 될 거야.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거고. 직접 나가서 싸워보면 더 정확할 텐데, 여기서 더 확인하는 건 무리지.”

이진운의 물음에 자신의 상태를 잠시 계측해본 연정운이 그렇게 답했다.

‘1할이라. 고생한 결과가 나쁘진 않아 다행이군.’

그 정도면 적지 않은 전력 상승이었다. 그랜드 급은 현경과 맞먹는 경지. 그런 경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건 말처럼 쉽지 않으니까.

물론 그랜드 급을 초월해 반신에 도달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위기를 맞게 된 연합의 상황에서는 아주 희소식이라 할 수 있었다.

“휴우······.”

이진운은 조용히 숨을 내쉬면서 체내의 진기를 다독여나갔다. 무리하게 천룡무상신공까지 사용해가면서 정기를 모은 탓에 여러모로 무리가 간 상태였다.

몸 상태에 밝은 모습을 보이던 연정운도 그런 이진운의 기색을 눈치 챘는지,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 왔다.

“아무튼 고맙다. 네 얼굴을 보니 꽤 힘든 치료인 모양인데, 덕분에 살았어.”

“고마운 줄 알만 됐다. 대신 내가 고생한 만큼 열심히 싸워라. 안 그러면 지금 치료했던 거 다시 무를 거다.”

이미 치료한 걸 다시 되돌리는 건 사실 불가능하지만, 이진운은 그렇게 엄포를 놨다. 그만큼 고생해서 치료했다는 뜻이었다.

“알았다. 고생시킨 만큼 더 열심히 싸울 테니까, 지금은 쉬기나 해. 잘못하면 쓰러지겠다, 너.”

“그래, 조금 숨 좀 돌리자.”

이진운은 그 자리에서 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하긴 평범한 개정대법도 아니고, 개정대법과 함께 치료를 병행한 상황이었다. 이진운이 제아무리 화경의 끝에 다다라 있다 해도 몸이 축날 만 했다. 사실 그가 만유합원신기와 같은 신공을 알지 못했다면 진원지기까지 소모해가면서 치료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30분 정도 운기조식을 하자, 어느 정도 평소의 안색을 되찾게 되었다.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평범하게 쉬는 것만으로도 제 상태로 돌아올 터였다.

이진운이 눈을 뜨자, 연정운이 괜찮냐며 물었다.

“뭐야, 벌써 일어났어? 더 안 쉬어도 되는 거야?”

“쉴 만큼 쉬었다. 그러니 그만 나가보자. 다들 기다리겠다.”

그들이 방을 나서자,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그들의 염려어린 시선은 전부 연정운을 향해 몰려 있었다.

이렇게 함대의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걱정 받는 걸 보면, 나름대로 인덕은 있는 모양이었다.

“치료는 무사히 끝났다. 이제 연정운은 멀쩡해.”

이진운이 그렇게 공표하자, 사람들의 얼굴이 급속도로 밝게 변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외오천인 마탄의 사수의 부활이었다. 그가 다시 전력으로 복귀할 수만 있다면 골드 서퍼도 공격적인 작전을 펼치는 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걸로 기뻐하기엔 일러.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걸 극복하려면 어떻게든 머릴 맞대고 방법을 찾아야 해. 연정운 한명이 회복됐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야.”

그제야 사람들이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이성을 되찾았다.

그의 말 대로였다. 지금의 전황은 연정운 한명이 가세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합에게 불리해진 판세를 뒤엎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뭔가 변수나 패가 필요했다.

하지만 골드 서퍼도 전력의 상당수를 잃고, 모함조차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상황에서 그런 패가 어디 있겠는가.

다들 어두워진 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누군가가 물음을 던졌다.

“그럼 이제부터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은 골드 서퍼 함대부터 수리하고 봐야겠지. 함이 제대로 싸울 수 없다면 뭘 시도해볼 수도 없으니 말이야.”

“뭐, 수리를? 여기서 말이야?”

연정운이 깜짝 놀라 그렇게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골드 서퍼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외딴 공간으로 이동되는 바람에 연합 함대가 보유하던 대규모 물자와 여유 부품들도 전부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이진운의 말에 금세 환한 얼굴이 되었다.

“부품이나 물자는 충분히 갖고 왔으니까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오는 길에 준대형 급 수송선으로 꽤 많이 싣고 왔으니까.”

“아, 그래? 그거 다행이네.”

골드 서퍼가 보유한 전함들만 수리할 수 있다면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싸울 수 있었다. 여기에 전력 복귀한 자신까지 더해진다면, 작전에 따라 인베이더의 허를 찌르기엔 충분했다.

그때부터 골드 서퍼의 승무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함대를 수리하고 다시 태세를 정비하려면 한시가 급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진운은 연정운과 일행을 따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한 자리에 모여 앉게 한 뒤,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럼 수리가 완료되는 동안 우리는 작전을 세우기로 하자.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인베이더 놈들에게 한방 먹일 수 있는 그런 작전 말이야.”

이미 대략적인 계획은 그의 머릿속에 세워져 있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세분화해서 각자가 어떤 역할을 분담하느냐를 결정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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