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73화 (174/448)

7권-23화

[너··· 어떻게? 울레이브 주역에는 대체 언제 온 거야? 내 기억으로는 인피니티 킹덤은 울레이브로 배치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연정운이 혼란스런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그가 아는 한 인피니티 킹덤은 도이벤 성계 주변을 사수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그곳에 있어야 할 함대가 갑자기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자신의 함대를 구원해주기까지 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베네트 국장이 약속대로 철저히 비밀로 했나 보군. 너한테까지 알려주지 않은 걸 보면 말이야.”

[그 말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지?]

이진운의 말에 어떤 사정이 있음을 바로 깨달은 연정운, 하지만 이진운은 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

“그래, 일단 얼굴부터 보자. 네 상태가 어떻기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지 한번 봐야겠다.”

[그래.]

그걸로 둘은 통신을 중단하였다. 어차피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서 더 이상 대화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아르페인이 한시름 덜었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마탄의 사수가 무사했다니, 그거 하나는 천만 다행이군요.”

“다행이긴 한데··· 녀석의 상태가 그리 멀쩡한 것 같진 않아.”

이진운이 조금은 염려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랜드 급 정도 되면 어지간한 부상을 입어도 전투불능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만일 정말로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라 한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만큼 부상이 심각하다는 말이 된다.

“전투에 나서지 못했던 것만 봐도 짐작은 했습니다만··· 부상이 심각하진 않아야 할 텐데요.”

“일단 직접 보고 확인을 해 봐야겠지.”

아르페인의 말에 그렇게 대꾸한 이진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즉시 연정운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 * *

이진운은 일행과 함께 골드서퍼 함대로 건너갔다. 보통이었다면 카멜롯 내에 준비된 소형정을 탔겠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리클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공간이동이라면 아무런 준비 없이 간단하게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에 대해 기별을 받은 골드 서퍼 승무원들은 공간이동으로 넘어온 이진운 일행을 크게 환영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있는 안색이 창백한 연정운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진운은 곧바로 연정운 앞으로 다가가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못난 녀석! 명색이 천외오천이라면서 이런 부상을 당해?”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연정운의 상태가 어떤지 염려스러운 듯 살폈다.

연정운도 그런 이진운의 마음을 읽은 듯, 멋쩍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이거 정말이지 못난 꼴을 보였네.”

이진운도 더 이상 그에게 뭐라 하지 못했다.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서였다.

“보아하니 겉모습이 멀쩡한 걸 보면 외상은 그렇게 깊은 것 같지 않은데··· 문제는 내상인가?”

“내상은 내상인데 좀 상태가 복합적이야. 저주와 독이 함께 섞여서 회복력을 막고 있어. 지금은 평범하게 거동하는 것도 힘들 정도야. 어찌나 지독한지 이것저것 치료법을 시도해 봤지만 차도가 없었어.”

역시 짐작했던 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연정운이 전투에 나설 수 없었던 것은 부상도 부상이지만, 어떤 요소로 인해 본연의 회복력이 크게 저하된 탓이었다.

물론 그랜드 급이라 해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상대를 접근시키지 않고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 게 특기인 연정운이 이렇게 심하게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저주와 독이라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원거리 공격이 특기인 네 녀석이 상대에게 간격을 내주는 일은 거의 없을 텐데.”

“완전히 허를 찔렸어. 설마 놈들이 이런 수를 가지고 나올 줄이야.”

“레기엔드 함대에게 대충의 상황은 들었어. 연합의 함대들이 죄다 강제로 공간이동 당했다고?”

“그래,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서 대응조차 할 수 없었지. 그래서 나와 골드 서퍼도 엉뚱한 이곳에 내동댕이쳐졌는데, 이미 인베이더 놈들이 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나도 미처 반응할 새 없이 당해버렸지.”

“그렇군.”

그런 방식의 기습이라면 연정운이라 해도 당할 만 했다. 제아무리 그랜드 급의 감각이 대단하다 해도, 갑자기 다른 공간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면 상대의 기습을 사전에 눈치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연정운을 이렇게 만들 순 없었을 터. 상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널 이렇게 만든 상대가 누구지?”

“루클라. 이젠 꽤 유명해진 녀석이지. 그런데 하필 그 녀석이 나한테 안 좋은 감정이 많거든.”

루클라에 대해서라면 이진운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바로 라인트라에서 시작된 전면전을 알린 장본인 아닌가.

“단순히 적대관계라서 널 노린 게 아니라는 거냐?”

“흐흐, 용성군이 놈을 상대하고 있을 때, 내가 좀 장난질을 쳤지. 아주 먼 거리에서 저격을 좀 해줬거든. 몇 번은 놈을 직접 쏴서 부상도 입혔고, 몇 번은 놈이 보호하고 있던 인베이더 함대를 저격해서 제대로 박살냈지. 그렇게 몇 번 티격태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악감정만 쌓인 모양이더라고. 나중에는 나만 죽어라 쫓아다녀서 꽤 고생 좀 했지.”

놈에게 당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면서도, 놈을 골탕 먹인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히죽히죽 웃어대는 연정운이었다.

이진운은 전투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 지, 지금 하는 말만 듣고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집요하면서도 야비한 공격으로 거듭 루클라 성질을 건드린 게 틀림없었다.

의도적으로 상대를 흥분시킨 뒤, 드러난 빈틈을 정확히 저격하는 것, 그게 바로 연정운의 전투 스타일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변태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전투 방식이었다.

물론 그 방식에 대해 뭐라 지적하긴 어려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진운은 연정운이 못마땅했다. 이렇게 호되게 당한 상황에서도 적을 괴롭혔을 때 느꼈던 쾌감을 잊지 못하고 히죽거리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하고 부상이나 좀 보자. 너 정도 되는 강자가 계속 전투불능 상태로 있으면 진짜 민폐다.”

“글쎄, 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연정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면서 윗옷을 걷어 올려 보였다. 이진운이 살핀다고 해서 딱히 치료 방법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상의를 걷자마자 가슴팍에 새겨진 진한 장인(掌印)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먹으로 그려놓은 듯 아주 뚜렷한 검은 색을 띄고 있었다.

‘이건 거의 마공에 가깝군. 독기와 저주가 섞인 듯한 형태. 거기에 마기가 서려 있어. 이러니까 일반적인 방법으론 치료가 안 되지.’

마공은 대체적으로 인체에 치명적이었다. 특히 내공으로 내상을 다스릴 수 있는 자들이라 해도 마기는 위험했다. 지속적으로 내상을 악화시키는 한편, 회복력 자체를 반대로 작용시켜서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도록 만드는 게 마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정운이 당한 공격은 그가 아는 마공과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대체적인 특징은 거의 흡사했다. 그랜드 급이나 되는 연정운이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나름 납득이 갔다.

부상 입은 부위를 확인한 뒤에도 이진운은 연정운의 상태를 여러 방식으로 파악해 나갔다. 그의 눈동자를 살피는 한편, 맥박을 재고 맥문을 통해 진기를 불어넣어서, 그의 내부가 어떤지도 자세히 살폈다.

그의 정밀진단이 계속될수록 연정운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야, 뭘 이렇게 진지하게 해? 무슨 진짜 의사라도 된 것 같잖아.”

처음에는 그냥 무슨 부상을 입었나 확인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확인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자신의 내부에 영력을 불어넣을 때는 대체 무슨 짓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연정운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진운이 진단하는 방식이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아마추어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그가 아는 의사들의 진단방식과는 전혀 달랐지만, 나름대로 명확한 이론과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략 30분 남짓한 진단이 끝난 뒤에야 이진운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우선 치료부터 하자. 일단 자리부터 옮겨야겠어.”

연정운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치료라고? 이걸 지금 치료할 방법이 있다는 거야?”

“그래. 쉽진 않겠지만 할 수는 있어.”

이진운이 단언하자, 연정운은 놀라다 못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슨 방법으로? 그리고 너, 언제부터 의료분야에도 능숙했던 거야? 처음 보는 방식이긴 하지만, 그냥 야메는 아닌 것 같던데.”

“지구에 있을 때 배워둔 전통 의학이지. 나름대로 자신 있으니까, 너도 더 이상 쓸데없는 말 말고 치료나 받으시지?”

이진운은 중원무림에서 배워둔 의술을 그렇게 지구의 것이라 둘러대었다. 어차피 중원무림의 의술도 결국 보면 한의학이나 중의학과 상당부분 비슷한 편이니, 상관없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연정운은 결국 따로 자리를 옮긴 뒤 이진운의 손에 의해 강제로 눕혀졌다. 저주와 독기로 제대로 힘을 끌어올릴 수조차 없는 그로서는 이진운의 손길에 저항할 수조차 없었다.

“아, 젠장. 이거 무슨 몰모트 취급당하는 느낌인데.”

연정운이 그렇게 투덜댔지만, 그렇다고 이진운의 치료를 거부하진 않았다.

“나중에 내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올 거다. 그러니까 지금은 잠자코 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진운은 자신의 오른손과 왼손의 검지를 들어올렸다. 이제부터 그가 시도할 치료법은 기공의 극치였다. 섬세한 제어는 물론, 막대한 심력과 진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시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치료법이었다.

“후우······.”

숨을 내쉬면서 탁기를 뱉어내고 외부의 맑은 기운을 받아들였다. 이 치료를 위해선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인 치료라면 모르겠지만, 연정운의 부상은 마공에 가까운 공격에 당한 것이었다.

이것을 치료하려면 그와 상극인, 순수하고도 정명한 기운이 필요했다. 그래서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여 정제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순백의 기운! 그것은 어찌 보면 신성력에 가까운 힘이었다. 그것이 이진운의 양 검지에 맺혔다.

타타다닥!

기운을 모으자마자 이진운의 출수가 이루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뻗어낸 그의 양 검지가 어느새 연정운의 전신 혈도들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치료법이야? 손가락으로 온 몸을 찔러대고 있잖아.”

하지만 놀라긴 일렀다. 그렇게 떠들어대던 연정운이 갑자기 굳은 얼굴로 물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뭘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그것도 치료의 일종이다. 잠시만 그대로 있어.”

그렇게 내뱉은 이진운은 냉정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연정운의 내부를 살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진운의 눈에는 그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가슴팍에 새겨진 장인을 중심으로 전신에 뻗어 있는 마기와 독기가 자신이 전신 혈도를 찌르며 주입한 진기에 의해 요동하고 있는 것을.

일단 내부에 단단히 자리를 튼 해로운 기운들을 흔드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허나 이것은 치료의 첫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치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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