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72화 (173/448)

7권-22화

“뭐··· 골드 서퍼!?”

생각지도 못한 전문에 아르페인조차 충격에 빠졌다. 설마 그 이름이 여기서 튀어나올 줄이야.

천외오천은 연합 내에서 거의 불패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대단하던 천외오천의 함대가 적에게 쫓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할 줄이야.

결국 메인 브릿지에서 간단한 회의가 열렸다. 이번 사태만큼은 이진운이나 아르페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긴 너무 사안이 컸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다들 쉽사리 입을 열질 못했다.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다는 전선이 이렇게까지 변했을 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뭐가 어떻게 될 줄 알고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제대로 된 정보조차 거의 없는 만큼, 입을 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레기엔드와 다시 접촉해 봤지만, 그들도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연합이 패퇴하게 된 것이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당사자들도 제대로 된 정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게 옳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증언과 당시 상황이 기록된 데이터를 통해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강제로 공간이동당한 뒤에 공격을 당했다 이거지? 미처 대응할 수조차 없을 만큼 말이야.”

이진운이 현재 확인된 정황을 간략하게 표현하자, 아르페인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모르겠군요. 강제적인 공간이동이라니··· 그만한 크기와 질량을, 그것도 강제로 공간이동 시킨다는 건 이론적으론 몰라도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인베이더들은 어떻게 성공시킨 것일까요?”

공간이동은 이동시키고자 하는 대상의 크기와 질량이 클수록 더 막대한 에너지 량을 필요로 한다. 심지어 그것이 일개 전함도 아니고 함대, 그것도 연합의 무수한 함대들을 전부 강제로 이동시키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겠는가.

게다가 연합의 모든 전함은 영력에 의한 변화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영적 방어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걸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공간이동을 시키려면 그냥 평범하게 공간이동 시키는 것보다 수십 배의 에너지 량이 필요로 했다.

그런 모든 점들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인베이더들은 이를 성공시켰으니··· 정말 불가해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때, 리스티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렇게 불가능하진 않아요. 어떤 요소만 더해진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거든요.”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리스티는 리클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요 며칠 간 리클 씨가 건네준 디멘션 쿼츠를 분석해 봤어요. 그걸 활용한다면 보다 적은 에너지로도 실현이 가능해 보여요. 공간 간섭 자체의 난이도를 크게 낮춰주거든요. 제가 봤을 땐 인베이더들이 우리 연합의 함대를 강제로 공간이동 시켰다기보다는 전장이 된 주역의 공간을 분단시킨 뒤 라인트라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버린 것 같네요.”

공간이동은 출발점과 도착점의 두 좌표 사이의 공간을 비틀어 거리를 단축하는 방식. 하지만 이번에 사용된 공간 분단은 그와 개념 자체부터가 다르다. 이건 일정 면적의 공간 자체를 잘라내는 형태라 할 수 있었다.

짐작컨대, 인베이더는 연합 함대가 머물던 주역의 공간을 수십 수백 조각으로 나눈 뒤 라인트라 주역 전체에 흩어버림으로서, 전력을 분산시킨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연합은 현재 인베이더들에 의해 각개격파 당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걸로 보였다.

“으음. 결국 이번 일도 그 녀석이 개입한 결과라 이건가?”

디멘션 쿼츠가 사용되었을 가능성까지 생각해보면, 이번에도 리겔의 개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진운의 그런 중얼거림에, 리클은 차마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리겔이 저지르고 있는 행보 하나하나가 너무도 연합에게 치명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형, 대체 어디까지 갈 셈이야?’

사태가 이렇게 되자 메인 브릿지의 분위기는 더욱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피니티 킹덤이 참전한다 해도 과연 지금에 비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이건 일개 함대 하나가 더해진다고 해서 바뀔만한 전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상관없다는 듯, 리스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조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디멘션 쿼츠를 사용한다 해도 그 최소한의 필요 에너지량이 상당할 텐데, 그걸 다 어디서 충당한 거죠?”

“확실히··· 그건 좀 이상하군.”

인베이더 함대와 연합의 함대들은 서로 치열한 전투를 지속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강제적으로 공간을 분단시키기 위해 따로 출력을 할당할만한 여유가 있었을까?

리스티로서는 그게 의문이었다. 위상전환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출력이 필요할 거라 생각되는데, 거기에 공간분단까지 감당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과학 지식을 가진 이진운도 리스티의 의문에 공감은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 만한 무언가가 인베이더들에게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뭔가 또 숨겨둔 게 있겠지. 지금까지 계속 그러했으니 말이야.”

“하긴, 저희만 숨겨둔 패가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게 무엇인지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단서조차 없는 상황에서는 궁리해봐야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일단은 골드 서퍼 문제부터 어떻게 한 다음, 나중에 생각해볼 일이다.

먼저 아르페인이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구원하러 가야 합니다. 마탄의 사수의 골드 서퍼는 연합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지요. 저희가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알게 된 이상 포기할 순 없습니다.”

천외오천의 존재감은 단순히 전투력 하나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상징성은 연합의 사기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그러니 그들을 포기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진운은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만에 하나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게 함정일 가능성도 있겠지?”

“어쩌면요. 가능성이 없다곤 할 수 없겠군요. 게다가 골드 서퍼가 도주해야 할 상황이라면 [마탄의 사수]도 죽거나 혹은 전투를 지속할 수 없는 부상을 입었다는 말이 됩니다. 인베이더 입장에서 볼 때 그런 상태의 골드서퍼라면 미끼로 아주 제격이겠지요.”

아르페인의 견해를 들은 이진운은 머릿속으로 연정운을 떠올렸다. 그나마 천외오천 중에서는 가장 가깝게 지낸 녀석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생각한다면 당장이라도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함대 전체의 명운이 걸린 일인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르페인 외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 대답은 아르페인과 대동소이했다.

“구해야 합니다!”

“천외오천이잖아요. 당연히 구해야지요.”

이런 결과에 이진운이 외려 어리둥절해졌다.

‘그 녀석이 이리도 인기가 많았나?’

아무튼 사람들이 동의해준 덕분에 결정은 쉬웠다.

“자, 그럼 곧바로 출발이다. 우린 지금 즉시 골드 서퍼를 구원하러 간다! 다들 1종 전투대비태세를 갖춰라.”

“예!”

이진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승무원들이 곧바로 제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출발한다! 목적지는 ZPDE-40121. 그곳까지 최속전진한다!”

고오오오!

카멜롯을 위시한 인피니티 킹덤 함대가 빠른 속도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도착할 때까지 예측 소요시간은 15분 남짓. 그 사이에 부디 골드 서퍼가 당하지 않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우리가 갈 때까지만 버텨라. 연정운!’

그 즉시 우주의 풍광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5분이 지난 뒤, 인피니티 킹덤은 낯익은 함대를 볼 수 있었다.

마치 서핑보드를 연상케 하는 황금빛 준대형 전함. 그것을 중심으로 대형을 갖추고 있는 함대 골드 서퍼였다.

하지만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모함인 골드 서퍼는 상당 부분 파손된 상태였고, 몇몇 기능부진이 발생한 탓에 제대로 된 전투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호위 전함들도 마찬가지. 인베이더들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것을 목도한 이진운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자, 아군을 구원하자! 골드 서퍼를 보호하면서 인베이더 놈들을 쳐라!”

“예!”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멜롯을 비롯한 인피니티 킹덤의 포문이 일제히 개방되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포화가 뒤이어 인베이더들을 덮쳐나갔다.

콰아앙! 콰콰콰!

무시무시한 섬광 다발이 우주공간을 수놓자, 인베이더들이 무참히 스러지기 시작했다. 놈들은 한창 골드 서퍼를 공격 중인 상태라서 인피니티 킹덤의 갑작스런 일제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조차 없었다.

인베이더들의 수는 빠른 속도로 격감해나갔다. 그리고 10분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 격멸할 수 있었다.

이진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 함정은 아닌 것 같군.”

“상황을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적들의 전력도 기대 이하였고 말입니다.”

“하긴 골드 서퍼 상태를 보니 그럴 만도 했군.”

아르페인 말처럼 골드 서퍼를 공격하고 있던 인베이더들의 전력은 대단치 않았다. 강한 개체라고 해 봐야 진멸 급이 고작이었고, 성멸 급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연합에서도 이름 높은 골드 서퍼 같은 강력한 함대를 공격하는 것치고는 너무도 부실한 전력이었다.

‘놈들도 다 잡은 물고기라고 판단했겠지. 함대 꼴이 제대로 된 전투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니······.’

이진운에겐 그나마 천만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만일 인베이더 놈들이 골드 서퍼를 끝장내기 위해 제대로 된 전력을 남겨뒀다면, 인피니티 킹덤이라 해도 그들을 보호하며 싸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베이더를 전부 끝장내고 나자, 골드 서퍼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꽤 익숙한 목소리였다.

[본 함대를 구원해준 것에 감사한다. 이쪽은 골드 서퍼. 연합의 관리국 소속의······.]

“감사하긴 하냐?”

하던 말을 자르며 이진운이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자 상대방 쪽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왓다.

[어? 너는!?]

“식별신호 파악도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이지? 하긴 통신 상태도 이 지경이니 그럴 만도 하겠군.”

통신화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골드 서퍼의 통신 계통에도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서로 상대방의 얼굴조차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상대방의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자신이 모를 리 없는, 낯익은 목소리였다.

“나다, 이진운. 혹시 죽은 거 아닌가 했는데, 그래도 무사한가 보구나.”

[이진운? 그럼 우릴 구해준 게 인피니티 킹덤이었어?]

그제야 이진운의 정체를 알아챈 상대가 깜짝 놀라 그렇게 외쳤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깨닫는 게 늦어, 연정운. 내가 아니면 이 상황에서 누가 널 구해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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