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19화
“엄청나군요. 그 정도면 연합이 가진 전체 부의 1/100은 리스티 씨가 차지한 거나 다름없겠는데요?”
“뭐,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그래도 엄청난 건 사실이지.”
깜짝 놀라며 혀를 내두르는 그에게 이진운은 그렇게 정정해준 뒤, 덧붙여 물었다.
“리클, 네 생각은 어때?”
“제 생각이라니요?”
“아마 녀석이 네 디멘션 쿼츠를 연구해 뭔가를 만들어낸다면, 온 우주를 들썩이게 할 만한 게 나올 거야. 그리고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를 벌어들이겠지.”
“···아마도 그렇겠죠.”
리클도 그 말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리스티가 보유한 기업이 그 정도라면, 아마 디멘션 쿼츠로 운송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활용 가치를 파생시킬 수 있을 터.
어쩌면 그녀의 소레디안 컴퍼니는 10대 기업 중 최고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 수익 중 몇 퍼센트만 지분으로 받는다 해도 그 액수가 얼마나 클지 잠작이나 가나?”
“아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막대하겠죠.”
이미 소레디안 컴퍼니는 어지간한 성계 몇 개를 사들이고도 남는 액수를 매해 벌어들인다. 그런 회사가 디멘션 퀘츠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까지 획득한다면, 그 일부 지분을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잘만 된다면 일개 개인의 몸으로 연합의 100대 기업 수준의 재력을 보유할 수도 있었다.
리클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무슨 소릴 하고 싶으신 건지는 잘 압니다. 디멘션 쿼츠를 리스티 씨가 분석할 수 있도록 넘기는 게 저에게도 득이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거겠죠.”
“그래.”
이진운도 굳이 포장할 생각은 없었는지, 순순히 인정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고민은 해보도록 하지요.”
고민이란 말을 어렵사리 내놓는 리클의 모습에, 이진운은 그것이 거절의 의미임을 깨달았다. 단지 듣기 좋게 우회했을 뿐, 그의 두 눈빛은 이 제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단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단순히 이득 때문에 내가 이런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난 지금 기간트에 대한 지분을 가진 것만으로도 이미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어.”
“그럼 무엇 때문이죠?”
리클의 두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단순히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설득하려는 시도를 한단 말인가?
이진운은 그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드러냈다.
“내가 바라는 건 디멘션 쿼츠의 기술로 돈을 버는 게 아니야. 이걸로 인베이더 놈들에게 한방 먹여주는 거지.”
“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리클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해서였다.
그가 놀라든 말든 이진운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 연합은 위험한 지경에 놓여 있어. 들어서 알지는 모르겠지만, 인베이더 녀석들이 자꾸 새로운 기술을 들고 나오더군. 이번엔 위상전환이란 거였지. 기가 막히게도 놈들의 공격은 그대로 통과하는데, 이쪽의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는 아주 사기적인 기술이더군.”
“음, 예전에 한번 들어는 봤습니다. 중앙에서 한참 개발 중이라고 하던데, 그걸 인베이더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리클. 이진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래, 아직 민간에 공표는 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됐어. 지금 라인트라가 위태로운 것도 바로 그래서고. 우리가 서둘러 그곳에 도착하려는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였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네 수송함에 실은 그게 어떻게든 위상전환의 허를 찌를 비장의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전쟁이란 게 확신할 수는 없는 문제라서 말이야. 인베이더들이 가진 패가 이게 전부라면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겠지만, 뭔가가 더 숨겨져 있다면 라인트라를 사수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봐야겠지.”
“······”
리클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설마 인베이더와의 전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다. 연합 상층부에서도 각 행성정부와 시민들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 그런 사실들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만일 라인트라를 인베이더들에게 통째로 빼앗기기라도 하면, 더 이상 감출 수만도 없게 될 테니까.
그땐 라인트라 인근 주역의 성계 시민들이 대거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잠시 뒤, 리클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럼 제 디멘션 쿼츠를 분석한다면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확실히 장담할 수 있습니까?”
“장담이라···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지.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인베이더를 저지할 수 있는 패 하나는 확실히 손에 넣을 수 있지. 안 그러냐, 리스티.”
이진운이 리스티에게 다음 바톤을 넘기자, 그녀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죠. 그러니까 리클 씨. 제게 디멘션 쿼츠를 양도해 주세요. 그럼 인베이더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좋은 걸 개발해 낼게요. 리클 씨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아주 대단한 걸 만들게요. 그리고 그에 대한 수익도 확실히 챙겨드릴 거고요. 아마 지금 운송 서비스 업으로 버는 돈의 수천수만 배는 더 벌걸요?”
리클은 고민에 잠겼다. 솔직히 말해 돈에 대한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벌 만큼 벌고 있었고, 욕심도 그리 많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사업의 밑천이자 능력의 운용 핵심인 디멘션 쿼츠가 분석되는 게 껄끄러워서 거절했던 거였는데, 지금 연합이 위험할 정도라면 그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연합이 위험하다고 하니, 더 이상 저 개인적인 입장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겠군요.”
“우와! 잘 생각했어요!”
리스티는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면서 그의 결정을 반겼다. 그리곤 곧바로 디멘션 쿼츠부터 받아냈다. 그리곤 보석처럼 영롱한 그 빛깔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것을 손으로 연신 쓰다듬고 볼에 대고 비비는 등 여러 괴행을 벌이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는 그 행태를 너무도 잘 아는 이진운은 혀를 차며 그녀를 말렸다.
“적당히 좀 해라, 적당히.”
“예이, 예!”
건성으로 그렇게 대답한 리스티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방향은 그녀의 공방이었다.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당장이라도 연구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녀를 어느 누구도 붙잡지 못했다. 이진운은 사라져가는 리스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저 철딱서니 없는 것 같으니.”
그리곤 리클에게 가볍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기껏 무리한 제안을 받아들여주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디멘션 쿼츠만 챙겨서 바로 도망가는 리스티의 행태가 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미안하게 됐군. 저 녀석이 원래 뭔가에 몰입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특히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생기면 더더욱 그렇지. 이런 제안까지 받아들여줬는데, 실례가 많았어.”
“별 말씀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리스티 씨와 같은 천재라면 저런 점은 굳이 단점이라고 할 수도 없죠.”
다행이도 리클은 그에 대해 기분 나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천재에게 이 정도 괴행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이해해 준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그때, 리클이 돌연 질문을 던져왔다. 좀 전에 나눴든 이야기의 연장이었다.
“전황이 그렇게까지 심각합니까?”
“그래. 많이 심각하지.”
이진운은 라인트라의 전황을 조금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라인트라 전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지금의 전황을.
특히 이진운은 베네트 국장과 핫라인을 갖고 있는 만큼, 어지간한 군부의 관련 인물들보다 아는 것들이 더 많았다.
대략적인 전황에 대해 다 듣고 난 리클은 더더욱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알만 하군요. 그래서 제 디멘션 쿼츠까지 필요하다고 한 거였군요.”
“그래, 그 정도지. 리클 너에게 디멘션 쿼츠를 연구하게 해 달란 것도, 결국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그럼 확신은 없었다 이거군요.”
“그렇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리스티의 천재성을 생각하면 뭐라도 나올 거라 기대하고 있지. 거기에 나까지 조금 도움을 주면 때에 맞춰 도움이 될 만한 게 나와 줄지도 몰라.”
“부디 그러길 바라야겠군요.”
이제 라인트라의 울레이브 주역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3일 하고 14시간. 그 동안에 어떤 성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리스티가 천재라 해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단서는 나올 수 있겠지만, 그것을 실전에서 다룰 수 있을 만큼 실용화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전황을 어렵게 만드는 변수는 또 있어.”
이진운이 꺼낸 변수란 말에, 리클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바로 알아챘다.
“저희 형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너희 형인 리겔이 속한 의문의 세력이지. 라인트라 주역을 봉쇄한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 수 있잖나?”
“그렇지요.”
위상전환도 위협적이지만, 진짜 연합의 함대들을 위협하는 것은 바로 라인트라의 봉쇄였다. 지원 병력은 물론 필요한 보급물자까지 차단되었다는 말은, 손발 다 자른 상태로 싸운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설마 짐작도 못했어. 라인트라 주역을 이런 식으로 봉쇄하다니. 물론 이번 일의 주역은 네 형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놈들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암약해 왔던 것 같더군.”
이진운은 기밀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리겔이 어떤 일을 벌여왔는지 대략적으로 알 만큼 이야기 해 주었다. 때문에 리클도 형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알 수 있었다.
“휴우··· 정말 모르겠습니다. 대체 형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작자들과 손을 잡은 건지. 세상을 원망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싶네요.”
자신의 형이지만 그런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하는 리클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이진운은 리겔의 심정이 대충 이해가 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너희 형은 이제 멈출 수 없게 된 거야.”
“멈출 수가 없다고요? 어째서요? 이미 저희 원수들은 다 죽었는데. 원망할 대상도 없는데 왜 세상에게 원망을 돌린단 겁니까?”
그랬다. 이미 리클, 리겔 형제의 원수라 할 수 있는 크리스첸 가문의 직계들은 다 죽임을 당한 상황이었다. 이미 십여 년 전 크리스첸 가문 내에서 갑자기 큰 반란이 벌어지면서, 리클 형제와 관련해 음모를 주도했던 자들이 대거 죽어버렸다.
그리고 현재 크리스첸 가문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방계의 인물들이었다.
반란을 주도한 입지적인 인물은 바로 제일 크리스첸. 지금 현재 크리스첸 가의 가주를 맡고 있었다.
그로 인해 크리스첸 가문의 내부는 대거 숙청-개편되었고, 리클과 리겔은 원망하고 증오해야 하는 대상들을 잃어버렸다. 즉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방황하던 리클이 옛 원한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게 된 게 바로 라이트닝 운송 서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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