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68화 (169/448)

7권-18화

쿠우우우!

검 끝에 어린 묵빛 광채가 짙어질수록 주변으로 묵직한 중압이 내리깔렸다. 어찌나 묵직하던지 일순 그들이 올라서 있던 카멜롯의 거대한 함체마저 크게 흔들릴 지경이었다.

그때, 카멜롯의 메인 브릿지와 연결된 통신에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비명 같이 들려왔다.

[중력자 반응 급속 증대! 엄청난 양입니다. 함대의 균형이 흐트러질 정돕니다.]

[다들 침착해라! 지금 그 중력자 반응은 사령관님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이능 중 하나다. 우릴 향한 공격이 아니니 두려워 할 것 없어!]

아르페인이 그렇게 외치자, 오퍼레이터들의 동요도 금세 진정되었다.

[예, 지금 확인했습니다. 중력자 반응이 응집되고 있는 포인트는 사령관님이 든 검 끝! 본 함의 중력파 포의 출력에 버금가는 수치입니다!]

[세상에··· 응집 상태만으로도 함대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중력자를 일개 개인이!?]

하긴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을 만도 했다. 일개 개인이 전함의 공격력에 맞먹거나 그 이상 가는 출력을 다룰 수 있다니.

이 정도면 가히 그랜드 급에 버금가는 수준 아닌가. 말로만 듣던 천외오천 정도 되어야 이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조심해. 자칫하면 휘말릴지도 몰라.”

그렇게 경고한 이진운의 검 끝이 더욱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은 기운을 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히 포악하다고 말할 정도여서,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리클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것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단순히 막대한 중력자만 응집되는 게 아니야. 공간 자체가 이지러지면서 저 사람의 검 끝으로 압축되고 있어.’

그랬다. 이것이 이진운이 가진 무공의 가능성 중 하나. 단순히 검을 휘둘러 상대를 베고 찌르는 게 전부가 아니라, 검 자체로 우주의 섭리를 그려내는 것.

그것이 그가 가진 무공의 진짜 모습이었다.

우우우!

리클이 한데 모아 붙잡아두고 있는 시공간의 뒤틀림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외부에 간섭을 받아 요동하고 있었는데, 이런 부분들만을 한데 모아 놓으니 서로 공진하면서 더욱 큰 공진을 낳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는··· 못 잡아둡니다. 이제 한계라고요!”

리클이 쥐어짜듯 그렇게 내뱉었다. 이만한 규모의 시공간의 흔들림을 혼자서 감당하는 건 역시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더 이상 기다릴 필요는 없을 듯 보였다.

“됐다. 아주 잘 버텼어. 그럼 이제부터 시작한다.”

비로소 모든 준비가 끝난 이진운이 그렇게 말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검 끝에 어린 검은 기운은 이제 응집된 형태를 넘어 마치 거대한 혜성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중검의 이치를 훌쩍 뛰어 넘어 공간 자체를 압축하여 검에 담아 내리치는 공간의 검!

공간 자체가 가진 인력과 무게가 그대로 압축된 형태로 실리는 만큼 그 위력은 가히 통천가공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5식. 묵룡천중세(墨龍天重勢)

비오의. 묵성진천세(墨星振天勢)

쿵!

내딛는 일보와 함께 묵빛 궤적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끝에는 거대한 칠흑빛 혜성이 전면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쿠아아아!

그것이 검 끝을 떠난 순간,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함대를 뒤흔들었다. 얼마나 요동이 크던지 다들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함에 발을 고정시키기라도 한 듯,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채 전면을 응시했다. 자신이 펼친 한수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곧 묵성진천세가 믿기지 않는 위력으로 뻗어나가 리클이 응집시켜둔 시공간의 흔들림을 관통하는 광경을 정확히 목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꿰뚫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가 한계까지 압축해둔 중력자와 공간이 해방되면서 관통되고도 남은 시공간의 흔들림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쿠구구구구구!

묵성진천세가 뻗어나갈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충격파가 밀려들었다. 이를 확인한 메인브릿지에서도 다급히 대응에 나섰다.

[디스토션 필드 출력 최대! 충격파 방어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충격파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거셌다. 인베이더 함대의 공격을 받을 때 이상의 데미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충격파가 예측보다 거셉니다. 필드 출력 감소! 87%··· 76%···65!]

[어떻게든 제네레이터를 쥐어짜라! 필드 출력을 최대한 상향 유지해!]

그렇게 거센 충격파의 후폭풍이 지나간 다음에 겨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기능부진은 확인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필드의 출력을 유지한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 웜 홀의 전방을 관측한 오퍼레이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해왔다.

[워···웜 홀이 안정화 되고 있습니다. 필드의 불균형과 수축 현상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휴··· 제대로 된 건가.”

이진운은 이제야 다 끝났다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

사실 그의 현재 실력으로 이 정도 수준의 힘을 일시에 발휘한다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준비할 시간만 적당히 갖춰진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의 영혼은 이미 한번 반선지경에 도달했었던 만큼, 외부의 기운을 통제하는 데에 아주 능숙한데다가, 만유합원신기의 힘으로 부족한 기운을 계속 누적시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렇게 모아들인 기운은 한번 공격으로 완전히 다 소모하게 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만 주어진다면 단 한번이라도 그랜드 급 이상의 공격을 펼칠 수 있다는 건 큰 이점이었다.

“이걸로 끝! 깨끗이 해결됐네요.”

리스티는 성공이라면서 웃으며 외쳤다. 그리고 그 옆에는 꽤 지쳐 보이는 리클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진운 씨··· 당신 대체 정체가 뭐죠?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게다가 방금 그건 분명 공간과 중력계통이잖아요. 어떻게 검으로 그런 능력을······.”

“글쎄, 나는 어떤 초상능력도 갖고 있지 않아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지.”

이진운은 그런 리클에게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말해주었다.

“영능은 실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 다루기에 따라서는 초상능력 없이도 공간이든 중력이든 모든 계통의 힘을 다룰 수 있어. 네가 알던 기존의 상식이 전부는 아니란 거지.”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진운 씨가 가진 검술인 겁니까?”

리클은 그제야 이진운의 검술에 대해 주목했다. 굳이 그가 검을 든 채로 그 힘을 발휘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 내가 가진 무공이 바로 그런 예 중 하나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내 무공만 그러리란 법은 없어. 우주는 넓으니까 내 무공과 같은 영능학이 또 없진 않겠지.”

“그렇군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리클.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이진운도 알지 못했다.

“자, 일단 들어가자고. 이제 항행이 시작될 텐데, 계속 여기 있을 순 없잖아.”

이진운의 그 말에 리스티와 리클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멜롯의 함 내로 향했다. 요동치던 웜 홀도 다시 진정되었으니 슬슬 속도를 올릴 때가 되었다.

* * *

웜 홀을 진정시킨 이후, 인피니티 킹덤은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켜 최대한 서둘렀다. 예기치 못한 일로 시간을 지체한 만큼,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울레이브 주역의 상황도 걱정이 되었다. 리클의 예상대로라면 지금 그곳은 모든 워프 항행이 봉쇄된 상태.

그 상태로 고립된 연합의 함대들이 어떤 위기에 처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뭔가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함대가 낼 수 있는 속도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도착할 때까지 각자 최선을 다하면서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길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 며칠 사이, 리스티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구하느라 바쁘다기보다는 리클을 쫓아다니느라 바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딱히 리클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디멘션 쿼츠 때문이었다.

그녀도 난생 처음 보는, 능력을 물질화 한 결정체.

공간 계통의 이능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도 그것만 있으면 공간능력을 소모성으로나마 발휘할 수 있다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리클은 질색하며 도망 다녔다. 디멘션 쿼츠는 그의 유일한 밥벌이 밑천이었다. 그의 운송 사업이 디멘션 쿼츠 하나만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인데, 그 노하우를 털리게 되면 망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리스티를 뿌리치기 위해 카멜롯 온 데를 뛰어다녔다. 그 둘의 추격전을 지켜보는 것도 요 며칠 간 카멜롯 승무원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결국 보다 못한 이진운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적당히들 좀 해라. 정신 사납다.”

그 말에 둘이 굳어진 듯 멈춰서고 말았다. 그동안 그들 둘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함대의 사령관인 이진운이 한 말은 그 무게부터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리스티, 언제까지 리클을 쫓아다닐 거냐?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이잖아.”

“너무 흥미롭잖아요. 능력을 결정화시킬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이건 연구자로서 포기할 수 없다고요.”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가 싫어하는 걸 강요할 순 없는 일이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말끝을 흐리면서도 포기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리클을 응시하는 리스티. 그 집요한 시선을 받을 때마다 리클은 움찔 거리며 껄끄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리클 네 생각은 어떻지?”

“절대로 안 됩니다. 디멘션 쿼츠는 제 밑천이라고요. 이게 리스티 씨에게 분석된다면 결국 양산이 된다는 건데, 그러면 제 사업은 그날로 망한다고요.”

그의 하소연에 이진운은 다시 리스티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리클의 말을 부정했다.

“에이, 그럴 일 없다니까요. 전 결정화 원리만 분석할게요. 그리고 그에 대한 권한과 지분도 충분히 드릴 거고요. 설령 사업이 망한다 해도 섭섭지 않을 만큼 챙겨드릴게요. 어차피 저, 돈은 넘치도록 있거든요. 그리고 이걸 연구하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뭔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베이더들을 상대로도 큰 효과가 있을 걸요?”

“그래?”

인베이더를 상대로 쓸 수 있는 강력한 뭔가를 만들 수 잇다는 소리에, 이진운도 조금은 솔깃해졌다. 어지간해서는 리스티를 만류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리클을 설득하는 걸로 방향을 바꿨다.

“리클, 리스티는 소레디안 컴퍼니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무려 연합의 10대 기업 중 하나지.”

“그거야 물론 잘 알지요. 단골 고객이었는데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리클.

상대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음에도, 이진운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회사들도 다수 거느리고 있지. 아마 그걸 전부 합친다면 10대 기업 둘을 합친 수준과 맞먹을 정도일걸?

“그 정돕니까?”

“그래. 사실이지.”

이건 리클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사실 리스티가 소레디안 컴퍼니의 주인이란 사실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리클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녀와 직접 거래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설마 그 정도로 많은 걸 숨기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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