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67화 (168/448)

7권-17화

* * *

리스티는 곧바로 따로 자리를 만들었다. 자신의 계산대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방법부터 일단 숙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먼저 리클에게 데이터 문서를 건네주었다.

“일단 보고 암기하세요. 궁금한 게 있으면 제게 바로 물어 보시고요.”

밴더의 홀로그램 창을 연 리클은 그 내용부터 확인했다.

문서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리클의 두 눈동자는 갈수록 놀람으로 가득 찼다.

“이건?”

그가 놀라서 리스티를 돌아보자,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역시, 출중한 공간능력자라 그런지 바로 알아보는군요. 할 수 있겠죠?”

“할 수는 있긴 한데··· 이 운용법은 대체?”

고개를 끄덕거린 리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리스티가 건네준 문서에는 웜 홀의 시공간을 불안정하게 간섭하고 있는 부분들만을 한데 추려서 모아내는 그런 운용법이 적혀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리클과 리겔이 다룬다는 [공간의 늪]을 파훼하기 위한 카운터 운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방금 만들었어요. 꽤 괜찮죠?”

감상을 묻는 리스티의 모습에, 리클은 더듬거리며 다시 물었다.

“설마 이걸, 지금··· 이 자리에서?”

“예. 방금 전에 공간의 늪 운용법을 들려주셨잖아요. 그걸 분석해서 만든 거예요. 꽤 괜찮죠?”

“······.”

입밖으로 뭐라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가 소싯적에 형과 머리를 맞대어 가며 만든 운용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간단히 분석될 만큼 허술한 건 아니었다. 이걸 만들어내는 데만 해도 무려 몇 년이 걸렸으니까.

그런데도 리스티는 불과 몇 분 만에 구조를 파악하고, 파훼법까지 만들어 내놨다. 그녀가 과연 자신과 같은 인간인지조차 의심 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리스티는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전해준 운용법만이 그녀가 생각하는 계획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드린 운용법만으로는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웜 홀의 시공간 터널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외부의 간섭 때문이지만, 이미 한번 시작한 흔들림은 관성이 생겨서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멈출 수가 없거든요. 초기에 잡았다면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진행이 되면 막기가 쉽지 않죠.”

그제야 이진운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냐?”

“맞아요, 아저씨. 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아저씨의 힘이 필요해요. 리클 씨가 제게 받은 운용법으로 외부의 간섭받고 있는 부분들을 한 점으로 끌어 모으면, 그걸 중력이나 공간 계통의 수법으로 단숨에 날려버리세요. 그러면 되요.”

명쾌하고 간단한 그 말에, 이진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작전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10분 후로 잡죠. 제 계산대로라면 그때가 제일 나을 것 같아요.”

그렇게 웜 홀을 안정시키기 위한 모든 계획이 갖춰졌다.

하지만 이진운은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리클에게 용무가 있어서였다.

“그 전에··· 리클. 너에게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군.”

“뭡니까?”

“이번 웜 홀의 이상에 네 형이 관련되어 있다면, 지금 이 근처에 있다는 이야기인가?”

이진운의 입에서 리겔에 대해 언급되자, 리클이 일순 멈칫했지만 그는 곧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그렇진 않을 겁니다. 형이 직접 제어하는 거였다면 제가 금방 알아챘겠죠. 운용 방식에 조금 차이가 있거든요.”

“그럼 본인이 이 주변에 없는데도 이 먼 곳까지 웜 홀을 흔드는 게 가능하다고?”

“그건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먼 곳에 능력을 투사하는 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죠. 하지만 저희 형제에게는 나름대로의 편법이 있죠.”

그는 품속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내놓았다. 그것은 짙은 보랏빛을 띤 작은 보석이었는데, 시선을 빨아들일 것 같이 깊고 영롱한 색이 아주 특징적이었다.

이진운이 기감을 일으키자, 그 보석으로부터 심상찮은 기운의 응집이 느껴졌다. 순수한 보석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게 뭔가?”

“제 능력을 일종의 결정화 해 만든 겁니다. 저희 형제는 차원의 파편-[디멘션 쿼츠]라고 부르죠.”

리스티와 이진운은 그 말에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평범한 보석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설마 그가 가진 공간 능력을 보석 형태로 결정화 시킨 결과물일 거라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와, 이런 게 가능하다니···. 저도 오늘 처음 봤어요.”

“구현 계통의 능력도 몇 번 봤지만, 이건 전혀 다른 물건이군. 순수하게 능력 자체만을 결정화 시켰어.”

엘레나처럼 무언가를 능력으로 구현하는 경우는 있지만, 능력 자체를 응집시켜 결정화하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건 즉, 저 보석을 이용할 경우 리클이 다루는 공간계통의 현상을 발휘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야 알겠네. 라이트닝 운송 서비스도 그만큼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디멘션 쿼츠를 이용해서였군요.”

“예, 이것 덕분이었죠. 이것 덕분에 제 회사 직원들도 지금처럼 차원단층이 존재하는 공간을 워프 항법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랬군요. 신기하네.”

리스티는 그것이 자못 흥미롭다는 듯 디멘션 쿼츠만 유심하게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리클도 절대 내줄 수 없었다. 이것이 그녀에게 넘어갔다간 자기 밥줄까지 전부 분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디멘션 쿼츠가 없었다면 리클은 고작 해봐야 1인 운송업으로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이거 아무나 사용 못하게 되어 있죠?”

“예. 물론이죠. 특정 영자 패턴 암호화까지 해 놔서 제 회사 직원들이 아니면 발동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유출이 되더라도 문제가 없고요. 물론 리스티 씨, 당신은 제외예요.”

리스티가 디멘션 쿼츠에 눈독을 들였지만, 리클은 절대 넘겨줄 수 없다며 바로 회수해서 품속에 갈무리했다. 암호화 해두긴 했지만, 그 정도 보안으로 리스티의 분석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엇을 떠올린 건지, 이진운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네 형이란 자도 그 디멘션 쿼츠를 이용해 이런 간섭 현상을 일으켰다는 말이겠군.”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렇게 광범위한 우주에서 일정 주역의 워프를 봉쇄하려면 이 수밖에 없었겠죠. 아마 제 예상으로는 라인트라의 울레이브 주역에 이런 디멘션 쿼츠들이 수천 개 이상 뿌려졌을 겁니다.”

그 말만으로도 리겔이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명백해졌다. 그것은 라인트라의 봉쇄였다. 연합의 보급과 추가 지원 병력을 원천 차단함으로서 라인트라 안에서 완전히 고사시키겠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

“애당초 우리만 노린 게 아니었다 이거군.”

처음에는 인피니티 킹덤을 직접 노리고 꾸민 짓인가 싶었는데, 다행이도 그건 아닌 듯 보였다. 만일 인피니티 킹덤의 이번 항행 경로가 놈에게 들통 난 거였다면, 가장 먼저 베네트 국장을 의심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멘션 쿼츠는 어디까지나 소모품이라서요. 그 힘을 쓸수록 크기가 작아지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죠. 제 예상대로라면 봉쇄가 유지되는 건 기껏 해봐야 2주 정도일 겁니다.”

“2주라······.”

그 2주라는 말이 이진운에게는 몹시 불길하게 느껴졌다. 울레이브 주역을 2주간만 봉쇄한다는 건, 인베이더 측에 그 안에 승패를 결정지을만한 뭔가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물론 리겔이 더 많은 디멘션 쿼츠를 만들 여력이 없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만은 아닐 거란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서둘러야겠어. 라인트라를 봉쇄할 정도면 분명 놈들이 노리고 있는 게 있을 테니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제 형 리겔은 철두철미한 성격입니다. 아마 무슨 일을 저지르든 생각만큼 쉽진 않을 겁니다.”

“···그래, 그 녀석이 어떤 놈인지는 잘 알고 있지.”

이진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가면을 쓰고 활동해온 리겔 때문에 꽤나 많은 일을 겪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놈이 개입된 거라면 꽤 변변찮은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 * *

10분 뒤 이진운과 리스티, 리클은 카멜롯의 함상 위로 나왔다. 그들이 보게 된 것은 인피니티 킹덤을 둘러싼 웜 홀의 터널이 크게 요동치는 광경이었다.

이미 화면을 통해 보긴 했었지만,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보니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고오오오!

“점점 심해지는군. 서둘러야겠어.”

터널을 유지하고 있는 변동중력장이 요동치면서 함대의 움직임도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함이 균형을 못 잡고, 터널을 유지하고 있는 필드의 경계면에 닿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자, 그럼 제 지시대로 해요! 제가 신호를 보내면 곧바로 시작하는 거예요!”

리스티의 말에, 리클이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명도 아니고 함대 전체의 명운이 걸린 일이었다.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리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막대한 영력이 인피니티 킹덤이 나아가고 있는 터널의 일대로 퍼져나갔다.

그 힘의 규모를 읽어낸 이진운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거렸다.

‘역시··· 이 정도면 거의 마이스터 급 이상이군. 최근 실력이 늘어난 레이첸 녀석보다는 못하겠지만, 거의 근접한 수준이야.’

하지만 그의 실력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리스티가 급조해 만들어낸 파훼법이 효과가 있었던지, 웜 홀의 요동치던 시공간의 경계면들이 이지러지는가 싶더니 그것이 수축하고 있던 전면으로 빠르게 몰리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생각보다 과정이 쉽지 않은지, 리클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분 되지 않았는데도, 그의 전신이 온통 땀투성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생이 헛되지 않았는지, 곧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끄그그긋!

공간이 쥐어짜지면서 내는 괴로운 소리와 함께, 혼돈으로 가득 차 보이는 시공간의 일부가 함대 앞에 응축되었다.

그것이 바로 리스티가 말하던, 리겔의 디멘션 쿼츠에 의해 간섭받은 부분들이었다. 이 구분들만 깔끔히 날려버리고 나면, 웜 홀의 시공간 터널은 다시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다.

“됐어요, 아저씨! 이번엔 아저씨가 나설 차례예요.”

리스티의 외침을 듣자마자, 이진운은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이미 모든 준비는 마친 상태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으며, 체내에는 역기충혈대법과 만유합원신기에 의해 충만한 진기로 가득 찬 상황!

검 끝으로 전면을 겨눈 순간, 막대한 이지러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흔들림이었지만, 그것은 공간 자체를 뒤틀면서 압축되어가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압축되었는지, 이젠 검 끝에 맺힌 기운이 빛마저 빨아들일 것 같이 어두웠다.

‘저건!?’

그것을 목도한 리클이 말없이 전율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간 계통에 있어서만큼은 남들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이상, 이진운의 검 끝에 실린 칧흑빛의 정체를 모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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